본문 바로가기
♣.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46강. 넉 달 농사와 이방인 구원(레 23:22/요 4:35-38)

by coroa 2021. 12. 15.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6강. 넉 달 농사와 이방인 구원(레 23:22/요 4:35-38)

-.정낙원 목사

 

레 23:22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요 4:35-38절.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하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이 노력한 것에 참여하였느니라”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는 일입니다.

이를 구약에서는 7대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7대 절기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절기 속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 하실 일들이 세분화 되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절기는 세 텀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세 가지 텀(과정)으로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을 보면 세 텀(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갈라내는 것이고,

둘째는, 채우는 것이고,

셋째는, 안식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세 과정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이 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의 삼 직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시는 삼직의 일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이라는 순서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구원이 세 과정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는, 죄와 사망에서 갈라내는 일을 하시고,

둘째는, 하늘에 것으로 채우는 일을 하시고,

셋째는, 다 채워지면 천국에서 안식케 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이를 7대 절기에서는 봄, 여름, 가을 절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선지지로 하신 과거적 사역을 말하고,

여름 절기는, 부활 후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제사장으로 하시는 현재적 사역을 말하고,

가을 절기는, 장차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미래적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고,

여름 절기로는, 칠칠절(오순절)과 넉 달 농사 기간이 있고,

가을 절기로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이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선취적으로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남자는 의무적으로 매년 삼 차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삼 차란?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를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역사의 시간 속에서 다 하실 일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과거와 현재와 미래 시제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봄 절기인, 무교절은 이미 하셨고,

여름 절기인, 맥추절은 지금 하고 계시며,

가을 절기인, 수장절은 장차 하실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것은 여름 절기에 속한 넉 달 농사입니다.

 

넉 달 농사는 절기로는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름 절기의 시작인 칠칠절을 지낸 후에 가을 절기인 7월 1일 나팔절까지는 넉 달 동안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넉 달 농사 기간을 여름 절기에 포함을 하여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나팔절이 오기까지 넉 달은 농사를 짓는 시기입니다.

이 때 지어진 열매는 가을 절기인 나팔절에 추수가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나팔절에 추수가 된 곡식은 하나님의 곡간에 저장이 되어집니다.

이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천국에 들어갈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농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한 알의 밀알로 심어서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생산해내는 농사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래서 여인이 아이를 출산할 때와 같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이는 초실절의 첫 열매입니다.

그리고 50일이 지나서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십니다.

 

오순절에 새 소제로 떡 두덩이를 드립니다.

이는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혈과 육으로 낳아지던 시대가 끝나고 성령으로 낳아지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성령 강림이 일어나면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성령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거듭나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가 되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의 시대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은혜 시대라고 합니.

 

새 언약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겨나는 것입니다.

이들을 이면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또는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세상 역사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점으로 구약과 신약이 나누어집니다.

 

구약을 예수님이 오시기 전이라고 하여서 주전(主前)이라고 하고,

신약을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라고 하여서 주후(主後)라고 합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라는 뜻으로서 이는 율법 시대라고 하고,

신약은 새 언약이라는 뜻으로서 이는 은혜 시대라고 합니다.

 

언약적으로 보면 구약은 옛 언약의 시대입니다.

 

옛 언약 시대에는 혈통적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혈통적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으로 낳아진 백성들입니다.

하지만 이들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신약은 새 언약의 시대입니다.

 

새 언약 시대에는 영적 이스라엘들이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낳아진 자들입니다.

이들을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생겨난 자들을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칠칠절 후 넉 달 동안 온 세상에서 성령으로 자기 백성들을 생산해 내고 자라가게 하는 구원의 농사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고자 하심입니다.

이를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어서 많은 열매를 맺는 것과 같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한 알의 밀알처럼 죽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일의 밀알 속에서 수많은 밀알들을 끄집어내듯이 예수님 안에서 수많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끄집어내는 것입니다.

이를 성령으로 창조하는 방식으로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칠칠절 후 넉 달 동안 곡식 농사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농사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칠칠절이 신약의 성령강림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넉 달 동안 성령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창조가 되는 일을 시작 됩니다.

칠칠절 이후 넉 달이 지나 나팔절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을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칠칠절 이후 나팔절까지 넉 달 농사 기간은 신약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예수님이 재림하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성령 강림 이후 예수님 재림 때까지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칠칠절 후 넉 달 농사 기간은 이방인 구원의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당부를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3년 반 동안 동고동락하면서 천국 복음에 대하여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승천하시기 전에 사명을 주십니다.

그 사명은 예수님의 죽음에 의미를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리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들을 제자들을 통해서 온 세상으로 퍼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마 28:18-20절.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승천하면서 12 제자들에게 자신이 육체로 십자가에서 한 일을 온 세상에 널리 전하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 백성들을 예수님의 십자가에 연합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받은 권세를 제자들에게 주시고는 너희는 온 족속으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서 예수님의 제자를 삼으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세례를 주라는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동참케 하라는 것입니다.

 

이는 곧 온 인류에게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리라는 뜻입니다.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되어집니다.

그래서 부활 하신 후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숨을 내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요 20:19-23절.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주신 이유는 아버지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죄인들의 죄를 사하도록 하신 일을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아버지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듯이 이제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셔서 죄사함의 비밀을 세상에 알리라고 보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예수의 증인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증인은 경험한 자입니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와 연합케 하여서 경험케 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오순절 성령의 강림과 함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자신의 몸에 경험케 되는 사건 속으로 말려들어가게 되었던 것입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고서는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게 되면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증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칠칠절이 끝나면 즉시로 넉 달 농사 기간으로 돌입이 됩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즉시로 제자들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잡아서 옥에 가두고 죽이는 일을 하려고 가다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즉시로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고 증거 하였습니다.

바울은 부활 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입니다.

 

다메섹 이전에는 예수를 죽이는 자였는데,

다메섹 이후에는 예수 때문에 죽임을 당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성령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국한 된 것이 아닙니다.

신약의 모든 성도들에게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법에 사람이 은혜의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행 1:4-5절.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초실절에 예수님이 부활 하셨습니다.

초실절이 지난 후 50일째는 칠칠절으로 지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50일째에 칠칠절이 성령 강림으로 일어났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10일 후에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로부터 받아서 제자들에게 보내주신 것입니다.

 

행 2:33절. “하나님이 오른 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성령의 오심을 이렇게 표현하는 것은 성령은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라는 명을 받고서 보내심을 입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도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성령은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들에 영’이라고도 하고 또한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성령의 오심은 곧 예수님 자신이 오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요 14:16-19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17.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예수님께서 세상에 있는 자기 백성들에게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성령의 오심을 예수님은 자신의 오심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예수를 몰라보지만 제자들은 알아본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오신 성령으로 예수님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면 예수그리스도의 증인이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알려 주시고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알려 주신 예수그리스도가 진짜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행 1:8절.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성령이 임하시면 성도는 예수의 증인으로 세상에 보내어집니다.

제자들은 성령의 능력으로 세상에 나가서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걸 넉 달 농사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의 구원을 넉 달 농사로 비유하셨습니다.

 

요 4:4-38절.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35.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예수님께서 갈릴리로 가시는 노정에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십니다.

‘수가’ 라는 곳에 한 우물을 찾아갑니다.

그곳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길러 나온 것입니다.

 

‘수가’ 라는 말은 ‘마지막’이라는 뜻으로서 추수를 상징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추수하러 가셨다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개 같은 자라고 하면서 이방인으로 취급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 지역으로 출입하는 것조차도 금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제자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사마리아 길로 향하는 것을 말렸던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제자들의 만류에도 뿌리치고 사마리아로 가신 것입니다.

 

그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는 것입니다.

그 우물에 사마리아 여자가 물을 긷고자 온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그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물을 성령 이야기로 풀어나가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여자가 예배이야기를 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어디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의 성전이 있는 그리심 산에서 드려야 하느냐!

아니면 유대인들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가서 드려야 하느냐!

 

그러자 예수님은 이제는 구약식으로 어떤 장소에 가서 예배를 드릴 필요가 없다고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새로운 방식의 예배가 이루어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를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지는 예배라고 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오시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때 빵을 사러 갔던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님에게 빵을 드리면서 점심을 잡수시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내가 먹을 양식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합니다.

 

요 4:32-34절.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 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이 먹을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뜻은 아버지께서 주신 자들을 살리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사함을 주어서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을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시키는 일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뜬금없이 넉 달 추수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이러한 것을 모릅니다.

무슨 말인지 의아해 합니다.

추수를 하려면 아직까지 넉 달이 지나야 하는데 무슨 추수를 한단 말이냐 라고 의아해 합니다.

 

요 4:35-38절. “너희가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른다고 하지만,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서 밭을 보아라 곡식이 희어져서 추수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너희들 눈에는 지금은 추수할 시기가 아니고 한창 농사를 지어서 넉 달이 지나 추수를 한다고 하지만 내 눈에는 이미 곡식들이 익어 희어져 추수를 해야 하는 시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제자들은 실제 곡식의 추수를 말하였고,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라는 말씀은 육적인 농사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말씀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는 말씀은 실제 곡식 농사를 말하는 것이었고,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라는 말씀은 지금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시는 일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곡식의 추수를 구원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을 곡식이 다 익어서 밭에서 추수 당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구원이 곡식이 추수당하는 것과 같은 모습으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추수와 구원은 영적으로는 동의어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종말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 세상이 끝나는 ‘역사적 종말’이 있습니다.

둘째는, 인간이 죽는 ‘개인 종말’이 있습니다.

셋째는, 아담 안에서 난 옛 사람이 죽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나는 종말이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종말은 성도 구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추수 이야기도 성도의 구원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이 곡식의 추수처럼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성도의 구원이 어떻게 주어지는지를 살펴봅시다.

 

구원은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입니다.

구원이 종말을 전제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애굽을 떠남이 있어야 합니다.

애굽을 떠남이 없이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천국을 가려면 세상을 떠남이 있어야 합니다.

 

기존의 곳에서 떠남은 곧 종말인 것입니다.

종말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첫 걸음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반드시 종말을 통해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마치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씨를 줍니다.

그럼 엄마는 그 씨를 열 달 동안 자기 뱃속에서 키웁니다.

열 달이란 충만한 때를 말합니다.

갓난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충만한 기간인 열 달을 삽니다.

그러다가 때가 차면 세상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이 세상으로 보내어 질 때 창세전 언약을 품고서 오는 것과 같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아빠의 씨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씨를 품고 정한 때까지 삽니다.

그러다가 정한 때가 되어서 예수를 믿게 됩니다.

이 때 우리의 옛 사람은 죽임을 당하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엄마의 뱃속은 흑암의 세계입니다.

갓난아이는 흑암의 세계에서 엄마가 물과 피를 쏟는 해산의 수고를 통해서 빛의 세계로 나아오게 됩니다.

엄마가 아이를 출산 할 때 몸이 찢어지고 물과 피를 쏟는 것은 엄마의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고 죽음으로 성도들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세상으로 나오는 것은 성도가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으로 구원을 받는 것과 같은 그림인 것입니다.

구원은 반드시 옛 것으로부터의 단절로 시작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종말이 창조를 몰고 오는 것입니다.

 

성도가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게 되면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이럴 때 옛 사람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구약의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은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람을 찾아가서 가나안으로 빼내십니다.

갈대아 우르는 아브람의 고향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에서 데라의 아들로 살았습니다.

데라의 아들로서의 “아브람”은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서 죽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인도 하고는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시켜버립니다.

 

이름을 바꿔 주신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이름은 부모가 자식에게 지어주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주셨다는 것은 이제부터 아브라함의 아비는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를 떠나면서 유브라데 강을 건너 왔습니다.

유브라데 강을 건너온 사람을 히브리인이라고 합니다.

‘히브리’ 라는 말은 ‘강을 건너온 자’라는 뜻입니다.

 

강은 죽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람은 강을 건너오면서 죽임을 당하였고 아브라함이라는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 것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아 버립니다.

이렇게 되면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아브라함과 같은 과정을 밟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애굽에서 홍해를 건너오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살다가 모세를 통해서 홍해를 건너온 것은 일찍이 그들의 조상인 아브람이 하나님의 손에 이끌리어 유브라데 강을 건너서 가나안으로 온 것과 같은 것입니다.

 

유브라데와 홍해라는 이름만 다를 뿐이지 그 의미는 동일한 것입니다.

구원은 반드시 강을 건너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구원의 서정에는 반드시 옛 사람의 죽음이 전제가 되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아브람과 같은 과정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일차적으로는 세상에서 교회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것은 겉으로 나타난 것이고 실제로는 율법 아래서 은혜 아래로 옮겨짐을 당하게 됩니다.

옛 언약에서 새 언약 안으로 옮겨짐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그런데 죄를 주관하는 것은 율법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와 사망의 권세인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는 모두 율법 아래 가두어져 있었습니다.

율법의 종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율법에서 해방을 맞이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도말시켜 주신 것입니다.

 

이 일을 성령이 오심으로서 우리 안에서 실제화 되어서 일어나게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이라는 옛 남편으로부터 해방을 맞이하고 예수라는 새로운 남편에게 시집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사마리아의 수가성 여인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찾아가서 먼저 남편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남편을 여섯이나 두었지만 불행하였습니다.

여섯 남편이 여인의 갈급함을 해소 시켜주지 못하였습니다.

 

그것이 가장 뜨거운 시간인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온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새로운 남편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새로운 물을 주십니다.

그 물은 예수님이 보내주시는 성령이십니다.

성령이 오면 옛 남편으로부터는 떠남이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그동안 야곱의 우물 물을 마시고 살았습니다.

야곱은 구약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아버지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영적으로 구약의 우물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우물은 구약 교회를 상징하고 물은 율법을 뜻합니다.

이것은 구약의 교회가 주는 율법이라는 물은 우리에게 생명을 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목마름만 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늘 곤고하고 힘이 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의 수가성에 있는 야곱의 우물을 찾아간 것은 구약 교회를 찾아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거기에 목말라 하는 자기 백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하늘의 생수를 주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은 여인에게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수를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자 그 여인은 그런 생수가 있다고 하면 빨리 달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을 흘러넘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 생수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후 부활 하여서 승천을 하시면 주어질 것입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예수가 바로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살려 주실 메시야임을 알고 동네 사람들에게 알립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이 그 여인을 추수를 하였다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을 추수하여서 양식으로 잡수신 것입니다.

이를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하신 말씀의 진의인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만나면 추수를 당합니다.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던 자에게 성령이 부어지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은혜 아래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님을 만나면서 추수가 되고 새로운 사람으로 바뀌었습니다.

 

새로운 신랑을 만난 것입니다.

여자는 남편을 만나게 되면 새로운 인생이 시작이 됩니다.

친정을 떠나 시집으로 호적이 옮겨지게 됩니다.

이제는 시집의 사람이 되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과 예수를 남편으로 말했습니다.

 

롬 7:1-4절.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율법이 사람의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2.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났느니라 3.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찌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4.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이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율법은 옛 남편이고 예수님은 새 남편이라고 합니다.

율법이라는 남편에게 벗어나서 예수라는 남편에게 시집을 왔다고 합니다.

수가성 여자는 율법이라는 남편을 버리고 예수라는 남편에게 시집을 온 것입니다.

 

율법이라는 남편과 살 때는 법 아래서 옴짝달싹 못하면서 살았습니다.

두려움으로 숨을 죽이고 살았습니다.

율법 아래서 남편을 수시로 갈아치우고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은 창기로 살았습니다.

 

창기는 죄인 중에서도 괴수입니다.

죄인 중에서도 괴수이다 보니까 백주 대낮에는 사람들을 만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도 없는 시간인 정오에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율법 아래선 창기라는 직업 때문에 정죄를 받아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녔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아무도 없는 한 낮 태양이 내리쬐는 가장 뜨거운 점심시간에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그런 그를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찾아가신 것입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바로 사마리아 여인입니다.

 

우리는 죄와 사망 아래서 곤고하게 살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이 찾아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 죄와 사망에서 해방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을 찾아가서 먼저 감추고 싶은 죄를 고발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여러 남자를 거쳐 온 것은 여자에게는 가장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그런데 그 수치를 예수님이 고발하신 것입니다.

그러자 여인은 대뜸 예수님이 선지자임을 직감합니다.

 

율법 아래서는 죄가 고발당하고 나면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서는 반드시 율법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여자는 어느 성전에 가서 제사를 드려야하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조금 있으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할 때가 온다고 합니다.

 

여자가 그 때가 언제이냐 물으니 예수님께서 내가 가서 성령을 보내 줄 텐데,

그럼 네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생수처럼 흘러넘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받으신다고 합니다.

그 예배는 성령이 오면 이루어지게 된다고 합니다.

 

성령이 오면 구약식 예배를 드리던 시대는 끝이 나고 새롭게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도래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다는 것을 그 여인뿐만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뜬금없이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하게 된다는 농사 이야기를 들고 나오신 것입니다.

아니, 사마리아 여자가 구원을 받는 일과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한다는 농사이야기와는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요?

 

제자들은 의아해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이방여자인 사마리아 여자를 구원하심으로서 이방인에게 구원의 문이 열리는 사건을 시청각 교재로 사용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온 세상으로 구원의 문이 활짝 열리게 된다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이방인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면 이방인도 구원을 받는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구약은 유대인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혈통적 이스라엘만 하나님의 선민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의 조건을 철폐를 시켜버렸습니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끊어버리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민족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제는 인간의 혈통으로 하나님의 선민이 되는 시대가 끝이 난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시대가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인간들의 육적 조건은 사라집니다.

그 누구라도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오로지 예수를 믿느냐 아니냐 로만 판단을 하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자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로운 백성의 출현을 알리는 신호탄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자를 시청각 교제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를 율법에서 추수한 것입니다.

 

추수는 곡식이 잘 익어야 합니다.

예수님 눈에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목말라 하는 사마리아 여자는 너무도 잘 익은 곡식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자기가 죄인인줄 모릅니다.

죄를 지적해 주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율법을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죄를 고발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이 오해를 한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영생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긴 것입니다.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나와서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이 율법이 뭐라고 하더냐고 되묻습니다.

그러자 율법사는 율법의 세목들을 열거하면서 자기는 다 지켰다고 합니다.

 

율법을 빠짐없이 다 지켰음에도 영생을 얻지 못하였다는 것은 율법 지킴 속에는 영생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율법 지킴 속에 구원의 능력이 들어가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자신들이 율법 지킨 것을 자랑하였습니다.

율법을 열심히 지켰음에도 영생을 얻지 못하여서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물으면서 율법 지킨 것을 자랑하고 있다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율법을 주신 목적은 죄를 고발하고자 함입니다.

 

율법은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고 합니다.

 

갈 3:19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무슨 말인고 하니 죄를 지었기 때문에 율법이 더하여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지 않았으면 율법은 필요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죄를 지적하는 일을 하는 것이니까 죄가 없는 곳에는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려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죄를 범하자 너희가 왜? 죄인인가를 드러내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원래 필요 없었는데 인간이 범죄하자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은 지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죄를 들추어내는데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롬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이 죄를 들추어내서 모든 입을 막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다 죽었어! 라고 사형선고를 내리기 위하여 준 것입니다.

율법은 지키라고 준 것이 아니라 너희는 하나님 말씀을 거역한 죽을 놈들이라는 것을 알려 주려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율법을 열심히 지켰다고 자랑하였습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은 개 취급하였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으라고 주신 율법으로 유대인들은 자신들을 의인이라고 치장을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건 율법 안 지킴이 되는 것입니다.

 

누가 율법을 가장 잘 지킨 사람이냐!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입니다.

수가성 여자와 같이 예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인줄 아는 사람이 율법을 잘 지킨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을 잘 지켰다고 자랑하는 바리새인들은 지옥에 가라고 하셨고 율법으로 자기가 죄인임을 알고 탄식하던 세리와 창기들은 천국으로 가라고 하신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모르는 바리새인들은 익지 않은 곡식이고,

율법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세리와 창기들은 잘 익은 곡식인 것입니다.

 

수가성 여자처럼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이야말로 잘 익은 곡식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눈에는 사마리아 여자는 너무도 잘 익은 곡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추수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자를 잡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나에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하신 것입니다.

 

수가성 여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물동이를 내 던지고 동네로 들어가서 외칩니다.

여보시요!

내가 메시야를 만났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러 나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밭을 봐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다” 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이 추수가 됩니다.

 

성령이 오시면 잘 익은 곡식들이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가 여기 사마리아 여인을 추수한 것처럼 너희들도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을 추수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요 4:36-38절.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온 천하에 다니면서 넉 달 동안 농사를 지어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처럼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들을 추수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뿌려 놓은 곡식들을 거두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천국 복음을 전하면 그 말씀을 듣는 자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창세전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인 것입니다.

 

성령이 부어지면 여기저기서 내가 죄인이었군요! 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이 임하여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여기저기서 회개하는 사람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행 2:36-41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찌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37.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 41.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 날에 제자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실제로 오순절 성령 강림 후에 베드로가 십자가 도를 증거하자 천하만국에서 올라온 사람들 중에서 성령이 증거하는 말씀을 듣고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민족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교회인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추수를 당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모인 곳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율법 아래서 추수가 됩니다.

이는 죄와 사망의 법 아래서 의와 생명의 법 아래로 옮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3천명이 죽었고, 성령 강림 일에는 3천명이 살아났습니다.

 

모세가 칠칠절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을 때는 금송아지를 만들고 우상숭배 하던 사람이 삼천 명이나 죽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칠칠절인 오순절에는 성령이 강림함으로서 율법 아래서 죽었던 자들이 삼천 명이나 살아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율법 아래서는 죽었는데 성령이 임하고서는 살아난 것입니다.

이로보건데 율법은 죽이는 것이고 성령은 살리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율법 아래서 죽은 자들이 살아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추수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칠칠절 이후 넉 달 농사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나팔절 때까지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려내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를 넉 달 농사라 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하여 이제부터 새로운 시대가 열렸습니다.

옛 언약은 지나갔고 새 언약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름하여 은혜시대입니다.

구약을 율법 시대라고 하고 신약은 은혜시대라고 합니다.

 

성령 강림으로 구약은 종말을 맞이한 것입니다.

율법 시대가 막을 내린 것입니다.

율법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던 시대는 끝이 났습니다.

 

율법 외에 다른 의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가 통용되는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롬 3:21-22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22.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몰고 온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차별이 없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구원의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칠칠절 추수 때 밭 모퉁에 남겨진 곡물은 이방인에게 주신 양식입니다.

 

칠칠절 추수 때에는 객을 위하여서 밭에 곡물을 다 베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레 23:22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밭 모퉁이에 남겨진 이삭은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남겨둔 것입니다.

가난한 자와 객은 이방인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오순절 성령강림이 일어나고 난 후에는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마치 수로보니게 여인이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얻어먹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개들이 먹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개 같은 이방인들에게 구원의 은혜가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돌 감람나무가 참 감람나무에게 접붙임 당한 것으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롬 11:17절.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 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롬 11:11절.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 나게 함이니라”

 

우리는 원래 이방인으로서 구원과는 상관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에 미치게 된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만약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지 않았다면 이방인에게 돌아올 구원이 없었습니다.

즉 주인이 상에서 부스러기를 떨어뜨리지 않으면 개가 먹을 것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는 원 자손들 중에 얼마를 배역하게 하심으로서 그 자리를 비게 만들어서 개 같은 이방인인 우리에게 구원의 자리가 돌아오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 사실을 감람나무 접붙임의 비유로 말하면서 하나님께서 원가지 얼마를 꺾어서 이방인들을 접붙였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이 복음을 배척하게 한 것은 이방인들을 구원키 위한 하나님의 지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눈을 가려서 예수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 중에 엄위에 거하는 자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은혜로 이방인들을 접붙여 놓은 것입니다.

이 얼마나 감격하고 감사할 일이 아닌가요.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라고 탄복하고 있었던 것이다.

 

롬 11:33절.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우리는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에게 어떤 잘남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인 긍휼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방인에게 경고를 합니다.

너희들도 잘라나간 유대인들처럼 엄위에 거하면 가차 없이 잘려나가게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가지도 잘라냈는데 이방인들이야 오죽 잘 잘라내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그러나 잘난 척하지 말고 겸손하게 은혜 아래 거하고 살아가라고 충고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왜 잘라 나갔는지를 알라는 것입니다.

법에 거하면 언제든지 잘려나간다는 것을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잘라 나간 것은 하나님의 의인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거부하고 인간의 의인 율법에 의를 고집하였기 때문입니다.

 

롬 10:1-3절.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유대인들은 율법의 의를 가지고 자랑하였습니다.

율법 지킨 것을 가지고 의로운 척 교만을 떨었습니다.

율법으로는 하나님의 의를 만들 수가 없는데도 유대인들은 율법 지킴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자기들 의로 천국을 침노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님을 보내셔서 유대인들을 넘어지게 만드신 것입니다.

그대로 두면 율법의 의로 천국을 참노 할 것 같아서 예수님을 보내서 넘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자리에 은혜와 긍휼로 이방인을 채워 놓으신 것입니다.

 

롬 9:30-33절.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33. 기록된바 보라 내가 부딪히는 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방인들은 율법에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로 구원이 되었습니다.

인간의 조건이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 거하라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려 나간 유대인들처럼 인간의 의를 붙잡지 말라고 합니다.

 

언젠가는 이방인이 유대인들 때문에 궐이 난 것이 메워지면 다시 원위치로 돌아갈 것입니다.

 

롬 11:25절.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유대인들의 넘어짐으로 난 궐이 이방인들의 충만한 수로 채워지면 다시 원가지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햇빛이 비취게 될 것입니다.

 

롬 11:30-31절.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에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만약에 이방인들이 믿음에 거하지 않고 자기 의에 사로잡히면 여지없이 꺾이게 됩니다.

그래서 자긍치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가장 무서운 것이 자긍입니다.

교만입니다.

스스로 잘난 척 하는 것입니다.

 

롬 11:18-22절.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 ~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바울이 자긍하지 말라는 것은 율법의 의를 붙잡지 말라는 뜻입니다.

즉 인간의 행위를 자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구원을 얻게 된 것은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그 긍휼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발생이 된 것입니다.

예수그리그도의 십자가 안에 거하는 것이 긍휼의 자리에 거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떠나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이를 양자라고 합니다.

양자는 본래는 아들이 아니었는데 아들로 여겨주심을 입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본질상 진노의 자식인 우리들을 하나님의 아들로 양자를 삼아 주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이 양자가 되게 한 원인입니다.

이 원인을 걷어 내면 안 됩니다.

원인을 걷어내는 순간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양자가 거할 자리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할 때는 풍성한 은혜와 긍휼을 받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떠나면 진노가 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노아의 가족이 방주 안에 있을 때는 진노의 비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잘난 척 하고 방주 밖으로 나오면 여지없이 진노의 비를 맞게 됩니다.

우리는 노아와 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방주 되신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는 그 어떤 정죄와 심판으로부터 보호를 받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떠나면 정죄와 삼판을 당하게 됩니다.

 

넉 달 농사는 성령의 은혜로 구원을 하는 시기입니다.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믿게 해 주심으로서 구원을 얻게 되는 때입니다.

넉 달 농사 기간에 성령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은 절대로 자기 행위를 의지하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이 시대 많은 교회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버리고 율법에 의를 붙잡고 있습니다.

믿음을 버리고 인간의 행위를 붙잡는 구약시대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자랑하지 않고 자신들의 열심과 충성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엄위에 거하다가 잘려나간 유대인들의 신앙을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바울의 경고처럼 이방인들이 자긍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이방인의 때가 거의 찼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의 의로 자긍하다가 꺾임을 당하였는데 그 전철을 지금 이 시대 이방인 교회들이 밟고 있는 것입니다.

 

그토록 바울이 자긍치 말라고 경고 하였음에도 그 경고를 귓전으로 흘러 보내고 인간의 의로 자긍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곧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내렸던 강퍅함을 이방인에게 돌리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방인에게 내리셨던 긍휼을 거두셔서 그 긍휼을 유대인에게 내리실 것입니다.

 

지금은 넉 달 농사가 끝나가는 시기입니다.

 

2천 년 전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넉 달 농사는 시작되었습니다.

2천년 동안 온 세상에 넉달 농사가 지어졌습니다.

이제 곧 추수할 때가 다가옵니다.

추수한 곡식들을 곡간에 들일 때가 다가오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시대의 징조를 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종말의 징후들이 만물 가운데 충만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처럼 죄악이 관영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 푹 빠져 있습니다.

즉 성도들이 세상과 짝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마다 세상적 가치관으로 가득채워져 있습니다.

교회들이 예수님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과 같이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대한 인본주의 신앙이 쓰나미처럼 교회를 엄습하여 있습니다.

교인들은 종교적 유희를 즐기고 있습니다.

교인들 마음속에 예수의 화상을 없고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는 것입니다.

이를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는 예수를 문 밖으로 쫓아낸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알곡과 쭉정이가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분명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의한 자는 점점 더 불의한대로 나아가고 거룩 된 자는 점점 더 거룩 된 자로 나아가게 된다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은 진짜와 가짜가 갈라지는 때입니다.

스스로가 신앙의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때입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알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과연 어떤 열매를 맺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절기를 통하여서 때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분명하게 약속 하셨습니다.

가심 그대로 다시 오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절기를 통하여서 계시하셨던 주님이라면 나팔절이 되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베드로는 이 사실을 알았기에 만물에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면서 기도 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이 말을 무겁게 받아 들여야 합니다.

 

믿음은 장차 일어날 일을 현재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믿음 안에서 넉 달 농사를 지어가야 합니다.

 

넉 달 농사 기간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하는 기간입니다.

 

넉 달 농사 기간은 은혜의 사람으로 강건하게 자라가야 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넉 달 농사가 끝이 나면 나팔절이 됩니다.

나팔절이 되면 신랑이 신부를 데리러 오십니다.

그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신부로 단장을 하고 잘 익은 과실처럼 익어 있어야 합니다.

 

과실이 맛나게 익어가기까지는 때로는 강한 햇빛으로 때로는 비바람을 맞아 가면서 맛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신앙도 넉 달 농사 기간 동안에는 수많은 아픔과 고난을 겪게 됩니다.

 

믿음의 수고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가지고 나팔절에 오시는 신랑을 기다리며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익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넉 달 농사 기간에 해야 하는 일들입니다.

 

넉 달이 차기까지,,,,,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