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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47강. 나팔절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레 23:24-25)

by coroa 2021. 12. 18.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7강. 나팔절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레 23:24-25)

-.정낙원 목사

 

 

 

만물이 주께로 나와서,

주로 인하여 존재하다가,

주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주가 만물 가운데 충만으로 계십니다.

그 주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시는 일들을 한 민족을 선택해서 보여주십니다.

그 민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신약에서는 교회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계시사적 민족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펼쳐가는 창세전 언약을 구약시대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서 보여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일컬어 인류의 해 시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역사가 인류의 운명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바탕으로 주어진 것도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증거인 것입니다.

 

우리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배우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역사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우리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나를 성경 속의 인물들과 하나로 보아야 합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이야기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객관적 진리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앙은 객관적 진리가 주관화 되는 것입니다.

성경 속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 할 때 성경은 하나님의 계시가 되어서 우리에게 전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책 속에서 얻어진 지혜는 말쟁이가 되게 하지만,

경험적으로 얻어진 지혜는 삶으로 풀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성경 속의 이야기가 나의 삶으로 풀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절기를 주신 것은 기념케 하기 위함입니다.

 

기념이란? 경험된 사건을 현재화 시키는 것입니다.

조상들이 경험한 것은 자녀들이 동일하게 경험케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경험을 현재화 시키지 못하면 퍼포먼스가 되고 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사실입니다.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그 이야기를 성령께서 성경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성령은 성경 속에 담아 놓은 십자가를 성도들에게 실제로 적용을 시키십니다.

그럼 성경 속의 이야기가 나의 삶으로 풀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 성경 속의 하나님이 “나의 주시오 나의 하나님”이 되는 것입니다.

 

7대 절기 역시 실제이야기입니다.

그럼 7대 절기가 우리의 신앙으로 풀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절기 속에 담겨진 의미가 나의 신앙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는 일입니다.

이를 이스라엘의 7대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각각의 절기 속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 하실 일들이 세분화 되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분이십니다.

이는 항상 계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항상 역사 속에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일하셨고,

지금도 일을 하고 계시며,

장차에도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들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는 뜻입니다.

 

이미 구원을 하셨고,

현재 구원을 이루어가고 계시며,

장차 구원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세 가지 텀(과정)으로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7대 절기도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 세 텀으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에서는 창조 사역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을 보면 세 텀(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갈라내는 것이고,

둘째는, 채우는 것이고,

셋째는, 안식하는 것입니다.

 

창조의 세 과정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이 세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예수님의 삼직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시는 삼직의 일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시간 속에서는 순서적으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이 과거 현재 미래 세 과정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는, 죄와 사망에서 갈라지는 구원을 받았고,

현재는, 하늘에 신령한 것으로 채우는 구원을 받고 있으며,

미래는, 천국에서 안식케 되는 구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를 7대 절기에서는 봄, 여름, 가을 절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선지자로 하신 과거적 사역을 말하고,

여름 절기는, 부활 후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제사장으로 하시는 현재적 사역을 말하고,

가을 절기는, 장차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미래적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고,

여름 절기로는, 칠칠절(오순절)과 넉 달 농사 기간이 있고,

가을 절기로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이 있습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선취적으로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대인들의 남자는 의무적으로 매년 삼 차 봄 여름 가을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도록 하신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것은 가을 절기에 속한 나팔절입니다.

 

칠칠절을 지낸 후에 가을 절기인 7월 1일 나팔절까지는 넉 달 동안 공백 기간이 있습니다.

넉 달은 농사를 짓는 시기입니다.

이 때 지어진 열매는 가을 절기인 나팔절에 추수가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칠칠절 후 넉 달 동안 곡식 농사를 지었지만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죄인들을 구원하는 농사를 지으시는 것입니다.

구원 농사는 성령으로 지어집니다.

 

그래서 구약의 칠칠절이 신약의 성령강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 강림 후 넉 달 동안 새로운 이스라엘이 창조가 되는 일이 시작 됩니다.

구약은 혈통으로 생겨났지만 신약은 성령으로 생겨납니다.

이를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언약적으로 보면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서 예수님의 초림까지 2000년은 육적 이스라엘의 시대였습니다.

이를 옛 언약 시대라고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나고 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시기까지 2000년은 영적 이스라엘의 시대입니다.

이를 새 언약 시대라고 합니다.

 

성령 강림 이후 예수님 재림 때까지는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시기입니다.

그러므로 칠칠절 후 넉 달 농사 기간은 이방인들의 구원 농사 기간이 되는 것입니다.

영적 이스라엘의 농사기간인 것입니다.

 

넉 달 농사가 끝나면 7월 1일 나팔절이 되면 예수님이 재림을 합니다.

그렇다면 구약의 칠칠절 이후 나팔절까지 넉 달 농사 기간은 신약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예수님이 재림하기까지 일어나는 일들이 되는 것입니다.

 

넉 달 동안 예수그리스도의 구원 농사를 다 지으면 나팔절에 추수를 하여서 곡식은 곡간으로 들이고 가라지는 불에 태우는 일을 하게 됩니다.

유월절을 시작하여 넉 달 농사까지가 예수님의 과거 사역과 현재의 사역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팔절 이후에 일어나는 가을 절기들은 장차 이루어질 미래 사역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는 사역 중에 남은 것은 이 땅에 다시 재림하여서 천년동안 자기백성들 속에서 왕노릇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영적으로 성도들 안에서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성령 안에서 영적으로 천국을 누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은 영적인 것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년동안 왕노릇 하는 것이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7대 절기 속에서 초막절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7대 절기는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들을 담아 놓은 것입니다.

유월절에서부터 오순절은 실제로 역사 속에서 이루어졌고 넉 달 농사는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나팔절 이후 속죄일과 초막절도 역사 속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7대 절기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절기의 약속대로 라면 예수님은 나팔절이 되면 호령과 천사장의 나팔소리로 강림하셔야 합니다.

유월절부터 넉 달 농사까지 완벽하게 이루어졌으면 나머지 남아 있는 절기들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식언치 않는 분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절기를 주신 분은 하나님입니다.

절기 속에는 하나님의 의지가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절기를 주신 것은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난 반드시 절기대로 일을 할 것이라고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하나님 자신에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는 절기대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나팔절이 되면 반드시 오게 되어 있습니다.

봄 절기가 구원의 시작이라고 하면 가을 절기는 구원의 완성지점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성도들에게는 최고로 기쁘고 즐거운 날입니다.

그러나 복음을 거역한 자들에게는 엄청난 저주의 날이 됩니다.

예수님의 재림으로 추수당하는 곡식은 창고에 들어가지만 가라지는 불에 태움을 입게 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재림은 구원과 심판이 동시적으로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이제부터 나팔절 절기를 통하여서 계시하신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은 어떻게 감추어져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참고적으로 봄 절기와 여름 절기인 유월절에서 넉 달 농사까지는 이미 성취되어진 것을 바탕으로 살펴보았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터 나팔절 이하 전개가 되는 속죄일과 초막절 가을 절기는 앞으로 이루어질 절기들이므로 단정적인 해석을 금하고 이렇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유추해서 해석을 합니다.

성경 속에 계시가 된 것들을 가지고 퍼즐을 맞추어갈 것입니다.

 

이는 교만으로 앞서가는 해석을 하는 어리석음을 피하고자 함입니다.

혹시라도 하나님의 뜻을 그르칠까 두려운 마음에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범주 안에서 상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나팔절은 가을 절기로서 7월 1일에 지켜졌습니다.

 

레 23:24-25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칠월 곧 그 달 일일로 안식일을 삼을지니 이는 나팔을 불어 기념할 날이요 성회라 25. 아무 노동도 하지 말고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라”

 

사도행전 2장을 보면 천하각국에서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오순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운집해 있었습니다.

이 때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났습니다.

성령 강림은 은밀하게 일어난 것이 아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일어났습니다.

이는 만인들 앞에 이제부터 성령의 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공포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성령의 충만을 입고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알리기 시작을 합니다.

베드로가 설교를 하자 삼천 명이 회개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많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을 사도행전에서는 날마다 하나님께서 구원 얻는 무리들을 더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구분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라고 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 교회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 한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사도들로부터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고서 기쁜 마음으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남아서 복음을 듣기도 하였지만 대 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에디오피아 내시는 자기 나라로 돌아가는 길목에 빌립을 통하여서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들은 자기의 집으로 돌아가서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또한 생업에 열중을 하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육적으로는 곡식을 심고 거두는 농사짓는 일을 하였지만,

영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복음 전하는 일을 하였던 것입니다.

이를 넉 달 농사라고 합니다.

 

오순절 후 나팔절이 되기까지 넉 달 동안은 특별한 성회가 없었습니다.

월삭과 안식일 날에만 성회로 모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가을 절기가 되면 또 다시 매 년 삼차에 걸쳐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마지막 순례의 길을 나서게 됩니다.

 

백성들은 나팔절이 오기 전에 추수를 다 마칩니다.

그럼 제사장은 성전 꼭대기에서 온 종일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는 성회의 나팔인 것입니다.

 

성회란? 거룩한 모임이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은 나팔 소리가 나면 넉 달 동안 지은 농산물 중에서 가장 좋은 극상품을 구별하여서 성전으로 가지고 가서 하나님(제사장)에게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에 불려지는 나팔 소리를 소망하면서 농사를 지었습니다.

이는 나팔 소리와 함께 한 해의 일을 마무리하고 새로운 해가 오기까지 긴 겨울 안식의 절기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나팔 소리는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나팔 소리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 소리가 어떻게 울리느냐에 따라서 행동을 달리 하였던 것입니다.

나팔 소리에 따라 움직임을 달리 하였습니다.

 

나팔 소리는 일종의 하나님의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팔 소리로 소통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특별한 일이 있을 때는 항상 나팔을 불어서 알린 것입니다.

 

①. 예배를 알릴 때 불었고,

②. 여행의 출발을 알릴 때 불었고,

③. 국가의 전쟁을 알릴 때 불었고,

④. 백성을 소집 할 때 불었고,

⑤. 정기적 명절을 알릴 때 불었고,

⑥. 년 중 새 달의 시작을 알릴 때 불었고,

⑦. 특별한 희생제물이 바쳐지는 제사 때 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두 가지 나팔이 있습니다.

 

양각 나팔(쇼파르)과,

은 나팔(하쪼쯔라)이 있습니다.

 

양각 나팔은 주로 성회나 희년을 알릴 때 백성을 성전으로 불러들일 때 불었고,

은 나팔은 주로 행군할 때나 아니면 전쟁에 출정 할 때와 같이 급박할 때 불었습니다.

 

은 나팔은 강하고 날카롭고,

양각 나팔은 은은하고 부드러웠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멀리 있어도 양각 나팔 소리인지 은 나팔 소리인지 구별을 하여서 행동을 하였던 것입니다.

 

민 10:1-10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은 나팔 둘을 만들되 쳐서 만들어서 그것으로 회중을 소집하며 진을 진행케 할 것이라 3. 두 나팔을 불 때에는 온 회중이 회막 문 앞에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요 4. 하나만 불 때에는 이스라엘 천부장 된 족장들이 모여서 네게로 나아올 것이며 5. 너희가 그것을 울려 불 때에는 동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고 6. 제 이차로 울려 불 때에는 남편 진들이 진행할 것이라 무릇 진행하려 할 때에는 나팔소리를 울려 불 것이며 7. 또 회중을 모을 때에도 나팔을 불 것이나 소리를 울려 불지 말 것이며 8. 그 나팔은 아론의 자손인 제사장들이 불찌니 이는 너희 대대에 영원한 율례니라 9. 또 너희 땅에서 너희가 자기를 압박하는 대적을 치러 나갈 때에는 나팔을 울려 불찌니 그리하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를 너희 대적에게서 구원하리라 10. 또 너희 희락의 날과 너희 정한 절기와 월삭에는 번제물의 위에와 화목제물의 위에 나팔을 불라 그로 말미암아 너희 하나님이 너희를 기억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은 나팔을 하나 불 때는 족장들이 회막 문 앞으로 모였고,

은 나팔 두 개를 불 때는 회중들이 모였습니다.

 

나팔을 단번에 부느냐,

아니면 울려 부느냐에 따라서도 백성들의 움직임이 달랐습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나팔 소리를 분별 할 수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성을 소집 할 때는 그냥 한번 “빵” 하고 불지만,

전쟁이나 급박한 일이 나면 “빵 ~ ~ 빵~ ~빵” 하면서 울려 불었습니다.

전쟁시에도 싸우라는 소리인지 후퇴하라는 소리인지 나팔 소리로 소통을 하였습니다.

나팔은 한마디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하나님의 지시를 나타내는 싸인과 같은 것입니다.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 소리는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는 비밀의 소리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멀리서도 제사장이 부는 나팔 소리만 듣고도 모이라는 소리인지 도망가라는 소리인지 분간을 하였던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은 나팔이든 양각 나팔이든 백성들을 불러 모을 때 불렀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겐 나팔 소리는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는 소리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 소리가 나면 일손을 멈추고 지시에 따를 준비를 하였습니다.

 

나팔절은 민간력으로서 새로운 해의 시작 달입니다.

 

나팔절(로쉬 하산나)은 “새롭게 된다” 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팔절을 “신년절(新年節)”이라고도 부르는 것입니다.

신년절이란 새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나팔절이 되면 전국 각지에서 새해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 12월 31일 자정이 되면 전국에서 송구영신을 알리는 타종을 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두 가지 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민간력과 종교력이 있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나라가 음력과 양력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정월 14일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유월절이 일어난 그 달을 새해로 지키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한 백성들은 유월절을 새해로 하는 달력을 종교력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원래 조상으로부터 사용하던 달력이 있었습니다.

원래 각 국가와 민족들마다 자기들이 사용하는 달력이 있습니다.

이를 민간력이라고 합니다.

 

나팔절은 민간력으로 새해 첫 날입니다.

 

민간력과 성력은 7달 차이가 납니다.

종교력으로는 유월절이 새해 첫 달이지만,

민간력으로는 7월이 새해 첫 달이 되는 것입니다.

 

새해 첫 달이라는 말은 새로운 세상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유월절도 새로운 세상이지만, 나팔절도 새로운 세상인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에서 살아난 것도 새로운 시작이지만,

나팔절에 추수가 되어서 곡간에 들어가는 것도 새로운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절기가 7달로 끝이 납니다.

이는 창조 7일과 같은 것입니다.

창조 7일 속에는 역사 전체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창조 7일을 살게 하셨습니다.

그것이 엿새 동안 일하고 7째 날에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 세상에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엿새를 살다가,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감이 없는 일곱째 날을 역사 속에서 안식으로 살아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창조 7일은 역사 속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두 세계로 나타납니다.

첫 번째 세계는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세계이고,

두 번째 세계는 일곱째 안식하는 날로서 이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감이 없는 곳입니다.

이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천국에는 하나님이 친히 원초적인 빛으로 계시기 때문에 피조물의 빛인 해와 달의 비췸이 필요가 없는 곳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 7일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대 절기 속에 담아서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7대 절기가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유월절부터 넉 달 농사까지는 초림에 속한 것이고 나팔절부터는 재림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으로 주어진 구원은 영적인 것이지만,

예수님의 재림으로 주어지는 구원은 몸의 구속으로 누리게 되는 실제적인 것입니다.

몸의 구속으로 누리는 실제적 구원은 천년왕국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천년왕국에서 누리는 구원도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창조 7일 속에서 일곱째 날 안식의 날인 것입니다.

천년왕국이 끝이면 역사에서 탈 역사로 창세전 하나님 나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초막절 후에 이 세상 바깥 하나님 나라에서 여덟째 날 대 성회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7이라는 숫자는 안식의 숫자입니다.

 

7일마다 안식일을 지냈고,

7년마다 안식년으로 지내다가,

7 안식년을 7번 지난 49년 그 다음 해를 희년으로 지켰습니다.

 

7 안식년의 7번을 지난 해 즉 50년을 희년이라고 합니다.

 

레 25:8-12절.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9.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10.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11. 그 오십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이스라엘의 절기가 유월절로 시작을 하여서 나팔절로 마감을 합니다.

유월절은 1월이고 나팔절은 7월입니다.

이스라엘은 7달을 사는 민족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역사는 유월절에 출애굽으로 시작을 해서 나팔절에 가나안에 들어가서 초막절을 지키게 되면 모든 것을 마치고 쉬게 되는 희년이 된다는 것입니다.

 

희년은 종에서 해방이 되어서 자유자로 살아가는 새로운 인생의 시작이 되는 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을 새로운 해의 시작으로 지냈습니다.

그래서 나팔절은 희년의 성격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희년이 되면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노예에서 해방이 되고,

모든 빚을 탕감 받게 되고,

잃어버린 기업을 다시 찾게 됩니다.

 

희년은 모든 것으로부터 면제 받는 해입니다.

그 희년이 나팔절 가을 절기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나팔절을 학수고대하면서 살았던 것입니다.

비록 사정에 의하여 남의 집에서 종으로 살았지만 이 날을 소망하면서 살았습니다.

 

희년이 되면 전국방방곡곡에서 나팔 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이는 자유를 선포하는 소리입니다.

나팔절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와 함께 매였던 종들은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에도 나팔절과 같은 의미의 동일한 사건이 일어나야 합니다.

 

나팔 소리는 신약적인 의미에서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에는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이 되는 복음이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육신의 장막을 벗고서 이 세상으로부터 영원히 벗어나는 해방의 소리인 것입니다.

 

두 가지 의미의 희년이 있습니다.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희년과,

죄와 사망의 나라에서 빠져나가는 희년이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의 종에서 해방을 받는 것은 신약에서 죄인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과도 같습니다.

 

죄인이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맞이하는 것도 구원이고,

성도가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 나라로 가는 것도 구원입니다.

 

예수님의 피로서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은 영적 구원이고,

예수님의 재림으로 천국으로 가는 것은 몸의 구속을 받는 실제적인 구원입니다.

 

예수님이 이 두 가지 구원을 다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은 두 가지 희년을 몰고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도 희년을 몰고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성경을 읽으십니다.

그 내용이 이사야 선지자가 말한 희년에 관한 것입니다.

 

눅 4:16-21절.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이사야 선지자는 장차 주의 성령으로 오시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자기 백성들을 포로 된 자를 자유케 하고,

눈먼 자들을 보게 하고,

억압당하는 자들을 놓아주는 희년을 선포해 주실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이사야의 예언이 오늘날 너희들 귀에 응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이 바로 나팔절의 희년을 이루어주시기 위하여 오신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율법 아래서 종노릇하던 자들에게 천국 복음을 선포하였던 것입니다.

 

회당 속에 종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안식일임에도 안식을 누리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종으로 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서 종노릇하고 있던 자들에게 종에서 해방이 되는 희년의 소식을 전해 주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나팔 소리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초림도 희년을 몰고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죄와 사망에서 해방을 하는 영적인 희년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율법에서 해방시켜주는 희년을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의 요구를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완성하셨다는 것입니다.

 

장차 재림 하시는 예수님도 희년을 몰고 오십니다.

절기상으로 예수님은 나팔절에 재림을 하십니다.

알다시피 나팔절은 희년의 소식을 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재림의 소식도 희년을 알리는 나팔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마 24:30-31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살전 4:16-17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팔 소리로 강림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중으로 끌어 올려지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나팔절에 제사장이 성전 꼭대기에서 나팔을 불어 백성들을 예루살렘 성전으로 불러 모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는데 그 공중이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그래서 자던 자들이 썩지 아니할 몸으로 살아나고 살아 있는 자들도 홀연히 새로운 몸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늘로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나팔절이 되면 옛 것은 지나고 새 것이 됩니다.

나팔절이 새로운 해를 몰고 온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이 되면 이 세상을 떠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새로운 세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매였던 종들이 나팔절을 소망하고 살았듯이,

우리 성도들도 주의 재림을 소망하고 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장차 올 이 영광을 보고서 현재의 고난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 간에 장차 주께서 강림하신다는 소식으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 날은 세상의 수고를 마치고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천국에서 안식하는 때입니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도 보았습니다.

 

계 10:7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사도 요한은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에 올라갔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일곱째 나팔이 울려 불게 될 때에 이 세상은 끝장이 나고 성도들은 약속대로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알려 주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자신이 성령의 감동으로 보았던 나팔절의 모습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사자들에게 보내서 성도들에게 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천사장들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신다는 것은 나팔절의 실상으로 오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사셨고 성경대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성경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7대 절기도 한 치의 오차 없이 그대로 지켜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이 되면 예수님이 반드시 오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믿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강림 하실 때마다 나팔 소리가 났습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역사 속에서 나팔절에 일어날 일들을 예표적으로 많이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출애굽 하여서 시내산에 당도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림하십니다.

이 때 나팔 소리 가운데서 강림하셨습니다.

 

출 19:16-19절. “제 3일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진중 모든 백성이 다 떨더라 … 18. 나팔 소리가 점점 커질 때에 모세가 말한 즉 하나님이 음성으로 대답하시더라 19.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 꼭대기에 강림하시고 그리로 모세를 부르시니 모세가 올라가매”

 

이스라엘 백성들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면서 한 번도 하나님을 만나 보지 못하였습니다.

이야기로만 들었지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하자 시내산에서 나타나 보여주십니다.

나팔 소리 가운데 강림을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팔 소리 가운데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올라오게 하십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대표하여서 올라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성도들이 공중으로 이끌려 올라가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나팔 소리에는 구원과 심판 두 가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종에게는 해방이 되는 기쁨의 소리이지만,

종을 붙잡고 있던 자들에게는 종을 풀어주어야 하는 심판의 소리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팔 소리는 구원의 소식이기도 하지만 심판의 소식이기도 합니다.

 

마치 유월절 어린 양으로 살아난 이스라엘에게는 기쁨이었지만,

장자가 죽어간 애굽의 바로에게는 슬픔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은 해방의 날이지만 애굽의 바로에게는 죽음의 날이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는 날에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성도들에게는 구원의 소리이지만 마귀에게 속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저주의 소리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떤 이에게는 생명이 되지만 어떤 이에게는 사망이 됩니다.

어떤 이는 예수 때문에 구원을 받고,

어떤 이는 예수 때문에 저주를 받게 됩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 때문에 저주를 받았고,

세리와 창기들은 예수님 때문에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철옹성과도 같은 여리고 성이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울려 퍼지는 나팔 소리는 이 세상에게는 여리고 성을 무너뜨린 나팔 소리처럼 들려지게 됩니다.

이 사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나팔로 이 세상은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합니다.

말라기 선지자는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유황불로 심판하는 날입니다.

 

욜 2:1-2절. “시온에서 나팔을 불며 나의 성산에서 호각을 불어 이 땅 거민으로 다 떨게 할찌니 이는 여호와의 날이 이르게 됨이니라 이제 임박하였으니 2. 곧 어둡고 캄캄한 날이요 빽빽한 구름이 끼인 날이라 새벽빛이 산꼭대기에 덮인 것과 같으니 이는 많고 강한 백성이 이르렀음이라 이 같은 것이 자고 이래로 없었고 이후 세세에 없으리로다”

 

말 4:1절.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라 그 이르는 날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여호와의 날이란? 하나님이 세상에 강림하시는 날입니다.

성도에게는 기쁘고 복된 날이지만 복음을 배척하고 성도들을 핍박하던 자들에게는 저주로 심판을 받는 형벌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동안 길이 참으신 하나님께서 분노를 한꺼번에 쏟아 부으시는 것입니다.

이를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대접 심판이라고 합니다.

대접 속에 담긴 재앙들을 확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심판을 창세 이래로 이러한 심판은 없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심판하는 모습으로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소돔 고모라를 유황불 심판하는 것으로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여리고 성이 일곱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리는 것으로도 보여주었습니다.

 

수 6:4-5절. “제사장 일곱은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 것이며 5.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여리고 성의 무너짐은 장차 나팔절에 일어날 종말의 심판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겐 승리의 나팔 소리였지만,

여리고성 사람들에겐 심판의 소리였던 것입니다.

 

여리고 성은 철옹성과 같았습니다.

철옹성과도 같은 여리고 성이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린 것은 장차 이 세상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강림하시는 예수님에 의하여 무너질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고고학자들의 말을 빌리면 여리고 성의 성벽은 2중벽으로서 외벽이 두께가 2미터나 되고,

내벽의 두께가 4미터나 되는 도합 6미터의 벽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높이가 각 10미터로서 당시로서는 그 어떠한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가 없는 난공불락의 견고한 성이었다고 합니다.

 

여리고 성은 무너질 수 없는 성이라고 합니다.

여리고 성 사람들은 여리고 성이 무너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서 종말을 잊은 채 먹고 마시고 쾌락을 탐미하면서 흥청망청하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어떤 것으로도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고 있던 여리고 성이 제사장들이 부는 나팔 소리에 무너져 내렸습니다.

 

여리고 사람들은 성 밖에서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면서 여리고 성을 돌 때에 비웃었습니다.

제사장들은 7일 동안 나팔을 불면서 매일 매일 경고를 하였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나팔 소리에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역시도 나팔 소리에 여리고 성이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들이 믿고 안 믿고 와는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무너지게 하겠다고 약속하신대로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무너지게 하신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종말의 심판은 인간의 불신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소돔 고모라 사람들도 그러하였고,

애굽의 바로 왕도 애굽이 망할 것이라고 믿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고 다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말씀도 그 누구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말씀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마 24:1-2절. “예수께서 성전에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나팔절에 예수님이 재림을 하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공중에서 재림한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지금은 과학의 시대입니다.

모든 것을 과학적으로 접근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이성을 바탕으로 한 과학적 접근으로 이해를 하고자 합니다.

 

과학적 사고로는 예수님이 공중에서 구름을 타고 온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구름타고 예수님이 오신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것은 상징이지 실제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사람을 정신 나간 사람으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살펴본 절기는 상징이 아니라 실제였습니다.

 

유월절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무교절도 예수님의 무덤 속에서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초실절도 예수님의 부활로 실제로 이루어졌으며,

칠칠절도 성령 강림으로 실제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넉 달 농사 2000년 동안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가을 절기들로 반드시 실제로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

 

남은 절기는 나팔절입니다.

속죄일과 초막절은 나팔절이 일어나면 따라서 이루어지는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절기를 실제 사건으로 일어난 것으로 보았다고 한다면 이제 남은 가을 절기도 역시도 실제적인 것이지 상징이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진 이야기는 영화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이야기입니다.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도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몰고 오는 새 하늘과 새 땅도 실제입니다.

천국도 실제이고 지옥도 실제입니다.

 

성경이 이스라엘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모두가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먼 하늘나라에 뒷방 영감님처럼 계신 분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우리와 희노애락을 함께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제로 믿는 것입니다.

성경을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이 아니고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실제여야 합니다.

취미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실제여야 합니다.

 

성경은 모두 일어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노아의 홍수도 실제 사건이고,

소돔 고모라가 유황불에 심판 당한 것도 실제이고,

애굽이 열 가지 재앙으로 멸망을 당한 것도 실제이고,

제사장들의 나팔 소리에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도 실제이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고 무너진 것도 실제입니다.

 

이스라엘도 실제이고,

모세도 실제 인물이고,

엘리야도 실제 인물이고,

다윗 왕도 실제 인물이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도 실제이고,

예수님의 부활도 실제이고,

오순절 성령 강림도 실제 일어난 이야기입니다.

 

성경이 역사 속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일하심이 실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재림도 실제인 것은 자명한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긴 자들이 있었습니다.

선지자들이 목이 터져라 외친 말을 귓등으로 들었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종말에 대하여 말씀을 하시니까 제자들이 의아해 합니다.

설마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사실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럼에도 제자들은 믿을 수가 없어서 묻습니다.

그런 일이 언제 일어나고,

그리고 예수님이 오실 때 어떤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지 그 징조를 좀 말씀해 주십시오 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종말의 여러 징조들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24:3-8절.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5.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종말이 되면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일어나고,

난리와 난리에 소문들이 들리게 되고 민족과 나라 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종말의 징조라고 하신 것들은 역사 이래로 늘 있어 왔던 것들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출현하는 것도 옛날부터 있었고,

천재지변도 옛날에도 일어났으며,

전쟁도 인류역사가 생기고부터 늘 있어 왔던 일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종말을 외치면 광신자라고 따돌렸습니다.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노아의 외침을 노망난 늙은이의 헛소리라고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 시대처럼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며 사고팔고 하는 일에 정신이 팔려 있을 그 때에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나팔 소리와 함께 강림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마 24:30-31절.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31.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마 24:35절.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마 24:42-44절.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예수님은 천지가 없어지더라도 예수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예수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지니까 약속을 믿으라고 합니다.

 

하지만 농담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이 약속은 헛소리가 아니고 실제라고 말하였습니다.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고 자신이 친히 들은 것이라고 합니다.

 

벧후 1:14-18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지시하신 것같이 나도 이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15.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나의 떠난 후에라도 필요할 때는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 16.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강림하심을 너희에게 알게 한 것이 공교히 만든 이야기를 좇은 것이 아니요 우리는 그의 크신 위엄을 친히 본 자라 17. 지극히 큰 영광 중에서 이러한 소리가 그에게 나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실 때에 저가 하나님 아버지께 존귀와 영광을 받으셨느니라 18. 이 소리는 우리가 저와 함께 거룩한 산에 있을 때에 하늘로서 나옴을 들은 것이라”

 

어느 시대이고 항상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는 사람과 농담으로 여긴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재림을 공교히 만든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은 조롱하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조롱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액면 그대로 믿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고 믿지 않는 자들로부터 조롱을 당하여 왔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약속이 믿어지는 사람은 복 된 자입니다.

하늘로부터 울려 퍼질 그 나팔 소리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복된 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보처럼 우직하게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영적인 상태는 어느 시대이고 동일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예수님의 재림 때의 모형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진 것은 요한계시록에서는 장차 예수님 재림 때 음녀가 멸망당할 것으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그 때가 되면 산으로 도망가라고 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예수님의 승천 후 70년에 로마의 디도 장군에 의하여 무너졌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창고에는 성전 지붕을 금으로 입히려고 엄청난 양의 금을 보관하였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면서 그 금이 흘러내리면서 돌과 돌 사이에 박혀서 그 금을 캐낸다고 예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고 완전히 초토화 되었던 것입니다.

 

절대로 무너져 내리지 않을 것 같았던 그 화려한 예루살렘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덧놓이지 않을 것이라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완전히 무너져 내렸습니다.

예루살렘은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멸망은 외식 종교의 멸망을 보여주는 계시사적인 사건인 것입니다.

성전을 금으로 입힌 것은 정금 같은 믿음으로 우리의 심령 성전을 지으라는 것입니다.

건물에 금을 입히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금 이 시대 목사와 교인들은 성전을 짓는답시고 수많은 돈을 쏟아 붓고 예루살렘 성전처럼 미석으로 꾸미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목사들이 교인들의 고혈을 짜내서 교회로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성전을 짓는다고 수많은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교인들의 피로 무너질 성전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거짓 종교가 진짜처럼 행세를 했듯이 지금도 거짓 신앙이 진짜로 행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의인 아벨의 피부터 사가랴의 피가 흘러넘친다고 하셨듯이 이 시대도 교회마다 성도들의 피로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모두가 자기 조상들의 일들을 답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은 유대교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를 일컬어 외식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예루살렘 성전에서 일어나는 율법 신앙을 회칠한 무덤과 같은 외식신앙이라고 하였습니다.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지금 이 시대 교회의 모습은 예수님 초림 당시의 예루살렘 성전의 판박이입니다.

영적 상태가 그 모습을 그대로 닮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저주하였던 그 모습 그대로를 교회들이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마다 각종 종교적인 행사와 천사의 말과 같이 달콤한 말을 하지만 그 속에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이 시대는 예수님의 십자가가 담론(談論)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의 신앙이 동호회 모임처럼 취미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의 이익을 주고 받는 비즈니스장이 되었고,

교회의 모임은 동호회원들끼리 사귐을 갖는 놀이터가 되고 말았습니다.

 

겉은 뻔지르르 한데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들만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마다 세상의 물질적 가치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지적대로 교회도 목사도 교인들도 회칠한 무덤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종말을 추수하는 때입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갈라지는 때입니다.

지금은 진짜와 가짜가 갈라지고 있는 때입니다.

 

마 13:47-50절.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50.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예수님께서 종말을 그물 속에 들어온 고기들 중에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갈라내는 때라고 하셨습니다.

그 속에 예수의 생명이 있으면 좋은 고기이고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나쁜 고기입니다.

 

신앙은 속일 수가 없습니다.

이는 안에 있는 것이 겉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이 추구하는 가치관을 보면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 속에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으면 세상을 쫓아가고,

그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화상이 그려져 있으면 하늘로 나아갈 것입니다.

 

예수라고 하여서 다 예수가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적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성경적 예수는 우리를 죄와 사망으로부터 빼내시고, 이 세상에서 빼내시는 예수입니다.

 

예수는 땅에 것을 주시려고 오지 않았습니다.

하늘에 것을 주시려고 오신 분입니다.

성경적 예수는 우리를 위하여 피 흘려주신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나팔절에 재림을 하시는 예수는 피 뿌린 옷을 입고 오시는 것입니다.

 

계 19:13-16절.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왜 피 뿌린 옷을 입고 오시는가요?

이는 내가 바로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피를 흘리신 그 예수라는 것입니다.

나팔절에 재림 하시는 예수님은 골고다에서 피 흘려주신 그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자들을 데리러 오시기 때문입니다.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 하면 비웃음을 당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증거하는 일을 수치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야기를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들이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이야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워진 교회를 인간들의 놀이터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교회의 모임은 취미 생활이 되었고,

목사들의 설교는 인간들의 인격수양을 위한 강좌 코너가 되었고,

교회를 문화 공간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심판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늙은이로부터 젊은이들로 심판이 시작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녔다고 하는 교인들의 신앙은 화석화 되어서 단단한 반석이 되었습니다.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곡을 해도 울지 않는 강퍅한 심령이 되고 말았습니다.

오래 교회를 다닌 사람들일수록 마치 늙은 정치인들처럼 능구렁이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를 오래 다닐수록 강퍅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이 외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역사 이래로 항상 하나님께 속한 자들은 교회에서 죽임을 달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도 늙은 종교꾼들이 예수를 죽었듯이,

예수님의 재림 때도 교회 안에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은 신앙이 늙은 자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이야기하는 자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예수님의 재림의 그림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당시에도 극심한 타락이 있었습니다.

말라기 선지자를 끝으로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 침묵을 하셨습니다.

그러다가 세례 요한을 엘리야로 보냈습니다.

 

세례 요한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으로 와서 백성들의 신앙을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백성들의 마음을 예수그리스에게 돌이키게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종말에도 세례 요한 같은 종들이 일어납니다.

이들을 두 증인이라고 합니다.

 

계 10:7-11절. “일곱째 천사가 소리 내는 날 그 나팔을 불게 될 때에 하나님의 비밀이 그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이루리라 8. 하늘에서 나서 내게 들리던 음성이 또 내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가서 바다와 땅을 밟고 섰는 천사의 손에 펴 놓인 책을 가지라 하기로 9. 내가 천사에게 나아가 작은 책을 달라 한즉 천사가 가로되 갖다 먹어버리라 네 배에는 쓰나 네 입에는 꿀같이 달리라 하거늘 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어버리니 내 입에는 꿀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11. 저가 내게 말하기를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하더라”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먼저 작은 책을 먹이십니다.

작은 책은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들에게 다시 예언을 하라고 합니다.

다시 예언을 하라는 말은 과거에 한 일들을 반복하여서 하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초림 때 세례 요한이 하였던 그 일을 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이 흑암의 때에 혜성같이 나타나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을 외식하는 자들을 향하여 외치면서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종말에 작은 책을 먹은 두 증인들도 세례 요한처럼 외칩니다.

 

추수할 때가 되면 농부는 곡식이 여물게 하려고 논에서 물을 빼냅니다.

 

파종 할 때는 논에 물을 대지만 추수 때는 논에 물을 빼냅니다.

이는 곡식이 단단하게 여물어 가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를 장성한 자들이라고 합니다.

장성한 자들은 단단한 것을 먹습니다.

그래서 종말에 나타날 두 증인들은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외치게 되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이 외치면 듣는 자와 듣지 않는 자 두 반응이 나타나게 됩니다.

이건 마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난 후 베드로와 요한이 외친 말씀을 듣고 어떤 자는 가슴을 치면서 우리가 어찌할꼬! 회개하는 자들이 있었는가 하면, 어떤 자들은 이를 뿌드득 뿌드득 갈면서 화를 내고 대적한 자들이 있었던 것과 같은 모습들이 일어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마음들이 반석처럼 굳어 있습니다.

그래서 강한 말씀들을 주어서 깨트리게 하는 것입니다.

 

종말의 종들은 추수하는 종들입니다.

추수하는 종들은 날카로운 이한 낫을 들고 있습니다.

씨를 뿌릴 때는 호미를 들고 일을 했지만 추수를 할 때는 날카로운 낫을 들고 일을 합니다.

그래서 종말에는 아이 밴 자들도 화가 있다고 하고 젓을 먹이는 자들도 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어미 뱃속에 있는 아이는 율법 아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율법은 흑암입니다.

 

구원이란? 흑암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 동안 흑암 중에 있었습니다.

뱃속에 흑암 중에 있던 아이는 엄마가 피와 물을 쏟는 죽음을 통해서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으시고 율법 아래서 죄와 사망에 종노릇하던 자들을 구원한 것과 같습니다.

 

젖을 먹이는 것도 율법 신앙을 말합니다.

젖은 어린 아이가 먹는 것입니다.

장성한 자는 단단한 것을 먹습니다.

율법은 젖으로서 종들이 먹는 것이고,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아들들이 먹는 것입니다.

 

강한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이를 종말의 소식을 담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추수 복음은 장성한 자들이 듣는 복음입니다.

 

나팔절에 불려지는 소리는 강력한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의 일곱 나팔 소리가 모두 재앙의 소리인 것입니다.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만물이 나팔절의 징조들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나팔절은 종말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종말의 징후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는 천재지변으로 그 생명이 다해 간다는 것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은 그 악독이 노아의 때와 같이 관영해지면서 종말의 징후들을 쏟아내고 있는 것입니다.

문화와 예술은 추한 퇴폐와 타락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시대는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일들이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 값보다 짐승의 목숨 값이 더 비싼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인간들 스스로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돈이라면 부모도 죽이고 자식도 죽이는 세상입니다.

자기 밥그릇 앞에서 으르렁 거리는 짐승들처럼 인간들은 돈 앞에서 서로 죽고 죽이는 짐승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교회 안에 뱀의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세상 가치로 엄몰이 되어 있습니다.

교회나 교인이나 물질적 가치에 매몰되어 있습니다.

돈이 신이 되고 말았습니다.

 

목사들은 세상 것으로 영혼들을 사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인들은 돈을 위하여 예수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백대로 그들의 신은 배요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이를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때를 말세에 고통을 당하는 때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말세 중에서도 그 끝인 지말입니다.

예수님이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 하실 때가 가까운 때입니다.

그럼 성도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님은 주인을 기다리는 종들처럼 깨어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 25:14-30절.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16.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17. 두 달란트를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 18. 한 달란트 받은 자는 가서 땅을 파고 그 주인의 돈을 감추어 두었더니 19.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20. 다섯 달란트 받았던 자는 다섯 달란트를 더 가지고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다섯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다섯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2. 두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내게 두 달란트를 주셨는데 보소서 내가 또 두 달란트를 남겼나이다 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하고 24. 한 달란트 받았던 자도 와서 가로되 주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25.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받으셨나이다 26. 그 주인이 대답하여 가로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7.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두었다가 나로 돌아 와서 내 본전과 변리를 받게 할 것이니라 하고 28.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어라 29.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30.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데로 내어 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주인이 먼 곳을 떠나면서 종들에게 각각의 재능에 따라서 달란트를 맡깁니다.

 

어떤 종에게는 금 5 달란트를 맡겼고,

어떤 종에게는 2 달란트를 맡겼고,

어떤 종에게는 1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금 1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을 합니다.

당시 노동자 1일 일당이 1 데나리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금 1 달란트는 노동자 6000일 분의 일당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습니다.

요즘 화폐 가치로 노동자의 일당을 5만원으로 계산을 해서 금 1 달란트는 3억에 해당하는 큰 돈인 것입니다.

 

5 달란트를 받은 종은 15억을 받았고,

2 달란트를 받은 종은 6억을 받은 것이고,

1 달란트를 받은 종은 3억을 받은 것이 됩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거금을 맡긴 것은 그들의 믿음을 달아보기 위함입니다.

믿음은 주인이 없어 보아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떠난 것입니다.

 

주인이 떠나자 종들에게서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납니다.

 

어떤 종은 주인이 없어도 열심히 일을 하는데,

어떤 종은 주인이 없으니까 게으름을 피운 것입니다.

 

주인이 집을 비운 것은 결국 종들의 신앙을 달아보기 위함인 것이었습니다.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열심히 일하는 종은 은혜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하고,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자 게으름을 피운 종은 율법 아래 있는 자를 말합니다.

 

여기서 주인은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심과 재림의 사이가 2000년이라는 간극이 있어야 하는 것은 성도들의 신앙을 달아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믿자 말자 즉시로 천국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이 세상에 두게 하신 것은 이 세상 속에서 각자의 신앙을 확인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미래를 현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도들 안에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성도는 예수님의 임재를 항상 느끼면서 미래의 천국을 현재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교인들이 있습니다.

 

은혜 아래서 살아가는 자들과 법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있습니다.

은혜로 살아가는 자들은 주인을 늘 의식하고 살았던 종들처럼 열심히 일을 합니다.

그러나 법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주인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깨어 있으라고 합니다.

주인이 밤에 올지 새벽에 올지 모르니까 항상 깨어서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주인이 올 때 자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맡겨주신 사명 잘 감당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맡은 종들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가 주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하다가 매를 맞아가면서도 내가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가 없다고 하면서 증거하였습니다.

핍박이 예수를 증거하는 일을 막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나팔을 부는 것입니다.

바울은 나팔 소리가 분명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지 않으면 어떻게 전쟁을 준비하느냐고 하였습니다.

 

고전 14:8절.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나팔 소리는 복음입니다.

올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고 올바른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파수꾼은 올바른 나팔 소리를 들려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백성들이 움직입니다.

 

겔 33:3-4절. “그 사람이 칼이 그 땅에 임함을 보고 나팔을 불어 백성에게 경고하되 4. 나팔 소리를 듣고도 경비를 하지 아니하므로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 피가 자기의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백성들은 나팔 소리를 분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 나팔 소리가 도망을 가라는 소리인지,

모이라는 소리인지,

아니면 깨어나라는 소리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나팔절의 소리는 깨어나라는 소리입니다.

성도에게는 잠에서 깨우는 기상 나팔 소리로 들리게 될 것입니다.

 

고전 15:51-52절.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교회 안에 나팔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주의 강림을 준비하라는 나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지났습니다.

깨우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교회 안에 두 가지 소리가 있습니다.

 

잠을 자게 하는 소리가 있고,

잠을 깨우는 소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떠나게 하는 소리가 있고,

세상에 빠지게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지금은 교회 안에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이 난무합니다.

 

분명한 복음의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내가 지금 행하는 신앙이 성경적인지를 점검해 보아야 합니다.

나의 신앙은 관념은 아닌지,,,

 

주인이 돌아 올 때가 가까이 왔습니다.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실 날이 가까이 왔습니다.

주인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고 있습니다.

 

만물이 소리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면서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기도하라는 것은 약속을 믿고 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재림의 날짜를 계산하려고 하지 마세요.

예수님은 재림의 날짜를 알게 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마 24:36절.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 1:6-7절.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 알 바 아니요”

 

살전 5:1절. “때와 시기에 관하여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 ”

 

예수님께서 재림의 날짜를 알려 주시지 않은 것은 참 신자와 거짓 신자를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아들과 종을 가려내기 위함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아들이고,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종입니다.

 

아들의 영을 받은 성도는 주인이 있으나 없으나 늘 주인을 의식하고 살아가지만,

종의 영을 받은 자들은 주인이 눈에 보이면 하는척하고 주인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 게으름을 피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성도는 아들로서 살아가고,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은 자들은 종으로 살아갑니다.

 

아들로 살아가는 자는 감사와 기쁨으로 찬송하면서 살아가지만,

종으로 살아가는 자들은 수고와 슬픔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은 항상 오늘 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충성된 종은 주인이 오는 날짜를 의식하지 않습니다.

늘 주인을 의식하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나팔절은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진 자들에게는 축복의 날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당하는 저주의 날인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영적으로 이미 나팔절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을 영적으로 경험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이니,,,,

 

영적으로 경험하는 그 나팔절이 이제 실제적으로 임할 날이 멀지 않았습니다.

믿음 안에서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서 주인을 기다리시길 바랍니다.

소망으로 믿음으로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그럼 주인이 와서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 즐거움에 참예 하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 잔치 날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계 22:20절.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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