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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45강. 칠칠절과 성령 강림 (레 23:15-22)

by coroa 2021. 12. 14.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5강. 칠칠절과 성령 강림 (레 23:15-22)

-.정낙원 목사

 

Simple KeySound 제작자 블로그
레 23:15-22절.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세어서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16.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17.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개를 가져다가 흔들찌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 18. 너희는 또 이 떡과 함께 일 년 되고 흠 없는 어린 양 일곱과 젊은 수소 하나와 수양 둘을 드리되 이들을 그 소제와 그 전제와 함께 여호와께 드려서 번제를 삼을찌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며 19. 또 수염소 하나로 속죄제를 드리며 일 년 된 어린 수양 둘을 화목제 희생으로 드릴 것이요 20. 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를 삼을 것이요 이것들은 여호와께 드리는 성물인즉 제사장에게 돌릴 것이며 21. 이 날에 너희는 너희 중에 성회를 공포하고 아무 노동도 하지 말찌니 이는 너희가 그 거하는 각처에서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니라 22.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밭 모퉁이까지 다 베지 말며 떨어진 것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절기 속에 담긴 예수그리스도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 오셔서 하실 일들을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역사 속에서 하실 일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에서 건져내는 일입니다.

이를 구약에서는 7대 절기 속에 담아 놓았습니다.

 

7대 절기는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를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각의 절기 속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 하실 일들이 세분화 되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절기는 세 텀으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는 죄인을 구원하는 일이 세 가지 텀(과정)으로 이루어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창조 사역을 보면 세 텀(과정)으로 이루어집니다.

 

첫째는, 갈라내는 것이고,

둘째는, 채우는 것이고,

셋째는, 안식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세 부분으로 구원하실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는 죄와 사망에서 갈라내는 일을 하시고,

둘째는 하늘에 것으로 채우는 일을 하시고,

셋째는 다 채워지면 천국에서 안식케 하는 일을 하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예수님을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세 부분으로 구속 사역을 하실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 현재 미래적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과거적 사역으로는, 초림 때 육체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는 선지자 사역을 말합니다.

이는 단번에 이루셨습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으로 보면 갈라내는 것입니다.

 

현재적 사역은, 부활하신 후에는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셔서 도우시는 제사장 사역을 하시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현재 속애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 중에서 채우시는 사역입니다.

 

미래적 사역은, 장차 재림하신 후에는 성도들을 천년왕국으로 데리고 가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시는 사역을 말합니다.

이것은 미래에 일어날 일들입니다.

이는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으로 보면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시고 안식하는 사역을 말합니다.

 

이를 7대 절기에서는 봄, 여름, 가을 절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하신 과거적 사역을 말하고,

여름 절기는, 부활 하신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하시는 현재적 사역을 말하고,

가을 절기는, 장차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에서 왕으로 다스리는 미래적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봄 절기로는, 유월절, 무교절, 초실절이 있고,

여름 절기로는, 칠칠절(오순절)과 넉 달 농사 기간이 있고,

가을 절기로는, 나팔절, 속죄일, 초막절(장막절)이 있습니다.

 

이 모든 절기가 1년 속에 들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일생이 1년 속에 다 축약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만물은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1년 주기로 순한을 하는 것입니다.

 

역사가 1년 주기로 순환을 한다는 것은 1년 속에 역사 전체가 응축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서 역사가 7000년이라고 한다면 그 7000년이 1년 속에 함축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1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곧 역사 전체에서 일어나는 일들인 것입니다.

 

인생을 생노병사(生老病死) 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일생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이를 4 계절로 풀이하면 봄에 태어나서 여름에 늙어가고 가을이면 병이 들어서 겨울이면 죽는다는 것입니다.

 

죽음을 안식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인생은 태어나서 한평생 병마(病魔)와 싸우다가 안식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1년 사계절이 우리의 인생인 것입니다.

1년은 사계절로 구분이 되어서 순환을 합니다.

계절(季節)이라는 말은 마디마디로 잘라져 있다는 뜻입니다.

 

1년이 마디마디로 잘라져 있다는 것은 마디마디마다 각각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는 뜻입니다.

7대 절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절기마다 각각 담고 있는 영적인 의미가 다릅니다.

 

7대 절기가 봄, 여름, 가을로 구분이 되어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이 봄, 여름, 가을처럼 구분이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봄 절기도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로 구분이 되어 있는 것도 각각의 절기가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봄 절기는 예수님의 육체적 사역을 담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육체로 하시는 일도 마디마디처럼 구분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이 담고 있는 의미가 다른 것입니다.

 

유월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말해준다고 하였고,

무교절은, 예수님께서 사흘 동안 무덤 속에 계신 것이라고 하였고,

초실절은,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을 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남자는 의무적으로 매년 삼 차에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켰습니다.

 

출 23:14-17절. “너는 매 년 삼 차 내게 절기를 지킬찌니라 15. 너는 무교병의 절기를 지키라 내가 네게 명한대로 아빕월의 정한 때에 칠일 동안 무교병을 먹을찌니 이는 그 달에 네가 애굽에서 나왔음이라 빈 손으로 내게 보이지 말찌니라 16. 맥추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밭에 뿌린 것의 첫 열매를 거둠이니라 수장절을 지키라 이는 네가 수고하여 이룬 것을 연종에 밭에서부터 거두어 저장함이니라 17. 너의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찌니라”

 

삼 차란? 봄 절기 여름 절기 가을 절기를 말합니다.

 

봄 절기로는 무교절(유월절, 초실절)이고,

여름 절기로는 맥추절(칠칠절, 오순절)이고,

가을 절기는 수장절(장막절, 초막절)을 말합니다.

 

무교절 속에는 유월절과 초실절이 함께 담겨져 있고,

맥추절 속에는 넉 달 농사도 함께 담겨져 있고,

수장절 속에는 나팔절과 속죄일도 함께 담겨져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일은 예수님께서 성육신으로 오셔서 역사 속에서 다 하십니다.

 

무교절은 이미 하셨고,

맥추절은 지금 하고 계시며,

수장절은 장차 하실 것입니다.

 

무교절 사역은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셨고,

맥추절 사역은 부활 하신 후 성령으로 오셔서 성도들 안에서 지금도 하고 계시고 있으며,

수장절 사역은 재림하여서 천년왕국에서 만왕의 왕으로 다스리는 일을 장차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일에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동참토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남자는 반드시 일 년 세 차례씩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도록 율법으로 규정해 놓았습니다.

 

매년 3차 봄과 여름 가을 절기에 이스라엘의 남자들은 의무적으로 동참케 하신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에 동참을 시키기 위함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백성들의 몸에 새기기 위함인 것입니다.

 

모든 절기는 예수그리스도를 계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스라엘의 남자는 의무적으로 일 년 삼 차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일 년 내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신앙고백 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너희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매 년 삼차에 걸쳐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절기를 지키는 것의 목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삶은 일 년 삼 차에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예배를 드리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마치 성도들이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나그네와 행인은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돌아갈 집은 하늘나라 아버지입니다.

 

광야에서는 성막을 중심으로 12 지파가 둘러 진치고 살았습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각 지파별로 땅을 분배 받아서 흩어져 살게 됩니다.

하지만 광야에서 성막을 중심으로 살던 그 시절을 기억케 하려고 일 년 삼 차는 반드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오게 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 예루살렘 성전은 아버지 집과 같은 곳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늘 예루살렘을 그리워하면서 살았습니다.

백성들은 절기가 가까워오면 설렘과 흥분의 마음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일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소망하는 것이 그러하여야 합니다.

이것이 주일 날 교회로 모이는 것으로 기념토록 하신 것입니다.

교회는 아버지의 집과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엿새 동안 세상에서 각처에 흩어져서 일을 하다가도 주일이 되면 설레는 마음으로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주일에 교회에 오는 아버지 집으로 가는 날입니다.

그래서 그냥 날이 아니고 주의 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모든 절기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이 되었는데 그것이 주께서 부활 하신 날 속으로 귀속이 되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의미에서 주의 날에 교회로 모이는 것이 절기 지킴이 되는 것입니다.

주의 날에 모여서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께 예배하는 것이 절기의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살펴볼 칠칠절은 여름 절기에 속하였습니다.

여름 절기는 실제적으로는 칠칠절 하나이지만 그러나 칠칠절 이후 7월 1일 나팔절 사이에 넉 달 농사 기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여름 절기를 칠칠절과 넉 달 농사 기간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칠칠절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초실절을 끝으로 봄 절기가 끝이 났습니다.

초실절이 끝나면 모두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리고 50일이 지나면 여름절기인 칠칠절을 지키고자 다시 예루살렘으로 올라옵니다.

 

칠칠절이라는 말은 7안식일을 일곱 번 지난 후에 드린다고 해서 칠칠절이라고 합니다.

50일 째라고 하여서 ‘펜테코스트’(pentecost) 라고도 부릅니다.

‘펜테코스트’(pentecost)는 '5'를 뜻하는 헬라어 '펜테'에서 파생된 말로 '50번째의 날(축제일)'이라는 뜻입니다.

 

칠칠절을 다른 말로 오순절(五旬節)이라고도 합니다.

오순절은 10일 단위가 5번째가 되는 날이라는 뜻입니다.

한 달을 3 등분을 해서 상순 중순 하순이라고 합니다.

 

1-10일까지를 상순(上旬)이라고 하고,

11-20일까지를 중순(中旬)이라고 하고,

21-30일까지를 하순(下旬)이라는 합니다.

 

여기서 10단위를 순(旬)이라고 합니다.

칠칠절을 초실절 이후 10단위가 5순(旬)이 지난 절기라 하여서 오순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봄 절기인 초실절을 마치고 각자 고향으로 돌아가서 50일 동안 열심히 농사를 짓습니다.

 

칠칠절이 되면 봄 농사에서 얻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립니다.

그래서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을 맥추절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처음 익은 보리 열매를 드리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어린 양의 죽음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해방 되는 날이고,

무교절은 홍해바다는 건넌 날입니다.

초실절은 가나안에 들어가서 첫 곡식을 하나님께 드리는 날입니다.

 

홍해바다는 죽음의 바다입니다.

무교절이 홍해를 건넌 것을 기념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죽음의 바다에서 나온 자들이 광야에서 비파와 소고로 하나님께 찬양을 한 날은 초실절과 같은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로 보면 출애굽 하여서 나온 광야는 가나안과 같은 곳입니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서 광야에 나온 것은 가나안에 들어간 것과도 같은 의미가 되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의 부활로 구약의 성도들이 무덤에서 나와 거룩한 성으로 들어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절기마다 예수님과의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하였습니다.

 

유월절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담고 있었고,

무교절은, 예수님의 무덤 속에 계심을 담고 있었고,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담고 있습니다.

 

그럼 칠칠절도 예수님과 연관이 있어야 합니다.

칠칠절은 초실절 후 50일째 지키는 절기입니다.

초실절이 예수님이 부활 하신 날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럼 예수님께서 부활하시고 난 후 50일째가 되는 날이 칠칠절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난 후 50일째는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을까요?

이를 알면 칠칠절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 수가 있어집니다.

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칠칠절에 행하여지는 것을 알 필요가 없습니다.

칠칠절에 드려지는 제사 속에 그 의미가 녹아져 있기 때문입니다.

 

칠칠절에는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렸습니다.

 

칠칠절에는 보리를 추수하여서 새 소제로 떡 두덩이를 만들어서 요제로 드립니다.

 

레 23:15-17절. “안식일 이튿날 곧 너희가 요제로 단을 가져온 날부터 칠 안식일의 수효를 채우고 제 칠 안식일 이튿날까지 합 오십 일을 계수하여 새 소제를 여호와께 드리되 너희 처소에서 에바 십분 이로 만든 떡 두 개를 가져다 흔들지니 이는 고운 가루에 누룩을 넣어서 구운 것이요 이는 첫 요제로 여호와께 드리는 것이며…제사장은 그 첫 이삭의 떡과 함께 그 두 어린 양을 여호와 앞에 흔들어 요제로 삼을 것이요”

 

민 28:26절. “칠칠절 처음 익은 열매 드리는 날에 너희가 여호와께 새 소제를 드릴 때에도 성회로 모일 것이요 아무 노동도 하지 말 것이며”

 

새 소제란? 새 것이라는 뜻입니다.

새로 수확한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곡식은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새 소제를 의인화 하면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을 말합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난 이스라엘은 더 이상 애굽의 사람이 아닙니다.

어린 양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린 양의 피로 광야에 나온 사람은 새로운 사람 즉 새 소제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난 자들은 홍해 바다를 건너서 광야로 나왔습니다.

이 때 중다한 잡족들도 한 무리가 되어서 나왔습니다.

이들도 어린 양의 피로서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렇게 되면 광야에 나온 사람들은 이스라엘과 이방인 두 부류가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서 살아난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어린 양 안에서 새로운 민족이 생겨난 것입니다.

둘이지만 하나인 것입니다.

 

광야에 나온 백성들은 이스라엘과 이방인이 어린 양 안에서 하나가 된 것입니다.

광야에서는 더 이상 혈통의 의미는 사라진 것입니다.

오로지 어린 양의 피 안에서 새롭게 태어난 자들만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떡 두덩이로 만든 새 소제인 것입니다.

 

칠칠절의 떡 두덩이는 하나는 이스라엘을 상징하고,

다른 하나는 어린 양의 피로서 언약의 후손으로 편입이 된 중다한 잡족들인 이방인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칠칠절에 떡 두덩이를 하나님께 요제로 드린 것은 이스라엘과 중다한 잡족들을 바친 것이 되는 것입니다.

 

요제란? 살아났다는 뜻입니다.

칠칠절에 새 소제로 만든 떡 두덩이를 요제로 드리는 것은 어린 양 안에서 새롭게 한 형제로 태어난 새로운 사람들로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살아나서 홍해를 건너 광야로 나온 자들은 어린 양 안에서 하나님의 약속 안에 들어온 새로운 언약의 후손들인 것입니다.

 

구약의 칠칠절은 신약의 오순절입니다.

 

모든 절기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칠칠절의 새로운 소제로 드려진 떡 두덩이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소제로 하나님께 드려질 두 민족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50일째가 되면 두 민족이 예수 안에서 하나가 되는 새로운 민족이 생겨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순절 상령 강림으로 일어났습니다.

 

칠칠절에 드려진 새 소제를 신약적 의미로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초실절의 첫 열매가 되셔서 살아나셨습니다.

그리고 50일 후에 새로운 민족이 생겨나는 일이 발생 하였습니다.

오순절에 성령의 강림으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되어서 새로운 민족으로 생겨난 것입니다.

 

칠칠절은 초실절 50일째 지켜졌습니다.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하신 날입니다.

그럼 예수님의 부활 후 50일째에 칠칠절과 같은 일들이 어떻게 일어나게 되었는지를 살펴봅시다.

 

예수님께서는 부활 후 40일을 이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행 1:1-5절.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는 무릇 예수의 행하시며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심부터 2. 그의 택하신 사도들에게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저희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4.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5.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부활 하신 예수님은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면서 제자들에게 나타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합니다.

아버지께 약속하신 것은 다른 보혜사인 성령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 40일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을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합심하여서 기도하였습니다.

그러자 열흘 후에 오순절 날에 성령이 강림하는 사건이 일어납니다.

 

행 2: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 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후 열흘 만에 약속대로 예수님은 성령을 제자들에게 보내 주셨습니다.

이 날은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 50일째가 되는 날입니다.

절기상으로는 초실절 후 50일째인 칠칠절인 것입니다.

 

구약의 칠칠절이 신약에서는 성령 강림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칠칠절과 오순절 성령 강림은 1500여년 간극이 있습니다.

구약의 칠칠절은 사진이고, 신약의 성령강림은 실제입니다.

 

칠칠절은 약속이고, 오순절 성령강림은 실상입니다.

1500년 전에 보여 주신 그림이 실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1500년 전에 그림으로 그려준 칠칠절이 1500년 후에 실제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령 강림은 제자들이 기도해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요즈음 오순절 계통의 성령 운동을 운운하는 자들은 오순절 성령 강림은 120문도가 기도해서 일어난 사건이므로 지금도 기도를 하면 성령이 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성령 강림은 1500년 전에 이미 약속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에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구한 것입니다.

 

성령은 인간이 달라고 기도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성령받기를 간절히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비 성경적인 무속적 행위인 것입니다.

성령의 오심은 모두가 하나님의 약속에 의해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구하는 것이지 우리의 요구를 관철 시켜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두 가지 성령의 사역이 있습니다.

 

엔(in) 성령과 에피(out) 성령이 있습니다.

이는 성령이 두 분이라는 말이 아니고 성령의 사역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일하는 것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엔(in) 성령은 성도 안에 내주(內住)하는 성령이고,

에피(out) 성령은 성도 밖에서 일하시는 성령입니다.

 

엔(in)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하는 성령이고,

에피(out)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데 은사로 주어지는 성령입니다.

 

성도 안에서 내주하는 엔(in) 성령은 약속의 자녀들에게만 임하는 성령입니다.

이를 아들의 영(靈)이라고 합니다.

아들의 영은 하나님의 아들로 인(印) 쳐 주는 성령이십니다.

그러므로 엔(in) 성령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만 임합니다.

엔(in) 성령은 한번 오시면 떠나가지 않고 영원토록 성도 안에서 내주를 하십니다.

 

엔(in) 성령은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인 것입니다.

엔(in) 성령은 우리가 구한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엔(in) 성령을 위하여서는 구할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대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에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되어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언약의 후손들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엔(in) 성령에 의하여 거듭난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것입니다.

엔(in)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로 이미 옮겨졌습니다.

 

구원은 창조와 같습니다.

창조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엔(in) 성령은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는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를 일컬어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엔(in) 성령은 부모가 자녀를 낳는 것과 같습니다.

자녀는 부모가 낳아주는 것이지,

자녀가 요구해서 낳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성도는 어린아이처럼 태어났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이를 돕는 분이 바로 에피(out) 성령이십니다.

 

에피(out) 라는 말은 바깥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밖에서 돕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를 성령의 능력이고 은사라고 합니다.

 

에피(out) 성령은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역사를 하십니다.

에피(out) 성령은 신자나 불신자나 상관하지 않고 역사를 합니다.

 

구약에서는 발람 선지자에게 역사하였습니다.

발람은 모압 왕 발락으로부터 뇌물을 받고서 이스라엘을 저주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발람을 감동케 하여서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이스라엘을 축복 하였던 것입니다.

 

에피(out) 성령은 신약에서는 제자들에게도 역사를 하였습니다.

이 때는 오순절 성령이 아직 임하지 않은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12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복음을 전하게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가는 곳마다 권능을 행하면서 귀신을 쫓아내고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였습니다.

제자들이 돌아와서 기쁨으로 말할 때 예수님은 사단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고 합니다.

이때 가룟 유다도 그 일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가룟 유다에게 에피(out) 성령을 주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사용을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7장을 보면 종말에 예수님 앞에서 가룟 유다와 같은 자들이 많이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마 7:21-23절.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종말에 많은 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와서 자신들이 행한 일들을 자랑합니다.

이들은 주의 이름으로 많은 일들을 행하였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병도 고치고 많은 주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면서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불법을 행한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양의 탈을 쓴 이리 라고 하였습니다.

 

이리란 거짓 선지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은 예수를 이용하여서 자기 영광을 취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열매로 나무를 알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그 날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서 자기가 행한 일들을 자랑하다가 불법을 행한 자들이라고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이들은 에피(out) 성령으로 능력을 행한 것입니다.

 

에피(out) 성령은 내주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에 따라서 겉으로 왔다 갔다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을 입어’ 라고 합니다.

‘입어’ 라는 말은 옷을 입고 벗듯이 왔다 갔다 한다는 것입니다.

 

에피(out) 성령은 구하여야 합니다.

에피(out) 성령은 예수님께서 구하고 찾고 두드려라 그리하면 아버지께서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눅 11:9-13절.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10.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11. 너희 중에 아비 된 자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12.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13.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성도는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이를 영에 속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육으로서는 영의 일을 알 수도 없을뿐더러 영의 일을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엔(in)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에게 에피(out) 성령을 주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돕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구하여야 하는 것은 에피(out) 성령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에게 각양의 은사들을 주어서 영적인 일들을 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해 주시는 것일 수도 있고 교회와 성도들을 섬기게 하는 능력일 수도 있습니다.

 

에피(out) 성령의 은사에는 직임적인 것과 능력적인 것과 사역적인 것과 성품적인 것이 있습니다.

 

직임적인 것은 선지자나 사도와 교사와 목사와 같은 것이고,

능력적인 것은 병고침이나 각종 능력을 행하는 것이고,

사역적인 것은 교회 안에서 구제하고 섬기고 가르치는 것이고,

성품적인 은사는 사랑과 온유와 겸손과 자비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위하여 사도와 교사와 목사라는 직분자들을 세워주셨습니다.

 

엡 4:7-12절.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8.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9.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 10.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성도들의 신앙의 유익을 위해서 각 사람에게 다른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고전 12:4-11절.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5. 직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6. 또 역사는 여러 가지나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니 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8. 어떤 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 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 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예수님은 교회를 섬기게 하시려고 각양의 섬기는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롬 12:3-13절.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4.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9.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10.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11.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12.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13.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예수님은 성도들에게 그리스도의 성품적인 은사들도 주셨습니다.

 

갈 4:22-26절.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에베소서의 은사는 교회 안에서 사역을 하는데 필요한 직임적인 것이고,

고린도전서의 은사는 복음을 증거하는데 필요한 능력적인 것이고,

로마서의 은사는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는데 필요한 사역적인 것이고,

갈라디아서의 은사는 개인의 신앙에 있어서 필요한 성품적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에피(out) 성령에 속한 것들입니다.

특히 갈라디아서의 성품적 은사들은 하나님의 자녀에게 나타나는 속성과 같은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성품인 유전인자와 같은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성품적인 은사를 성령의 열매라고 하는 것은 생명이란 성령의 도우심으로 더 웅숭깊게 자라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은 엔(in) 성령과 에피(out) 성령이 동시적으로 임한 사건입니다.

오순절의 성령 강림 사건은 이미 1500년 전에 칠칠절이 되면 성령이 오시기로 작정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올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버지께 가면 구약의 절기를 통하여서 약속했던 대로 성령을 보내 줄 터이니 떠나지 말고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미 이르매” 라는 말은 “약속한 그 날”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반드시 그 날이 되면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오심으로 새로운 민족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생겨난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새 소제라고 합니다.

 

절기 속에는 세 번의 추수가 있습니다.

 

초실절의 추수와 칠칠절의 추수와 나팔절의 추수가 있습니다.

초실절의 추수는 예수님이 부활을 하실 때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이고,

칠칠절의 추수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서 일어나는 이방인의 구원이고,

나팔절의 추수는 나팔절에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일어나는 모두의 구원입니다.

 

나팔절에 일어나는 추수는 세상 마지막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탈출하는 추수입니다.

실제적인 구원의 추수는 초실절과 칠칠절의 두 추수입니다.

이를 룻기에 보면 보리 추수와 밀 추수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추수는 성도의 구원을 예표합니다.

 

초실절에 하는 추수는 보리 추수이고,

칠칠절이라는 오순절에 하는 추수는 밀 추수입니다.

 

초실절 추수는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이루어지고,

오순절 추수는 성령 강림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초실절의 보리 추수는 유대인 구원을 상징하고,

초실절 후 50일째인 오순절의 밀 추수는 이방인 구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칠칠절에는 누룩을 넣어서 만든 떡 두덩이를 새 소제로 드렸습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하는 것은 무교절의 떡은 누룩을 넣지 않았지만 칠칠절의 떡은 누룩을 넣어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누룩은 두 가지 상반된 의미가 있습니다.

 

나쁜 의미로는 죄를 상징하고,

좋은 의미로는 복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무교절의 누룩은 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떡에 누룩을 넣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칠칠절의 누룩은 복음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칠칠절에 새 소제로 드려지는 떡에는 누룩을 넣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천국을 비유하실 때 가루 서 말 속에 숨겨진 누룩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복음이 누룩처럼 온 세상으로 번져나갈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피조물들이 창조가 되었습니다.

이들을 통하여서 온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 나가게 됩니다.

이들이 바로 누룩을 넣은 떡들인 것입니다.

 

떡 두덩이란? 유대인과 이방인 두 민족을 말합니다.

하지만 한 가루로 만들어진 떡입니다.

그러므로 한 민족인 것입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몸이 깨어져서 만들어 낸 성도를 말합니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함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된 것입니다.

 

엡 3: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엡 2:18절.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전 12:13절.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성령 강림 이후에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새 사람이 된 사람은 새로운 신앙생활을 하여야 합니다.

 

지금까지 유대교식으로 지켜져 오던 신앙을 버려야 합니다.

유대교는 율법신앙입니다.

율법 신앙은 날과 달과 절기와 안식일이나 먹고 마시는 것들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 신앙은 시간과 공간에 매여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을 완성하였습니다.

성령이 오기 전까지는 율법이 말하는 문자대로 지켜야 했습니다.

정한 날에 정한 공간에서 드렸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다 이루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성령 안에서는 율법의 요구를 십자가에서 완성하신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칠칠절 이후에는 신앙이 의식에서 믿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구약에서 지켜져 오던 성전이나, 안식일이나, 각종 제사를 지키는 것들은 폐하여졌습니다.

 

이제는 특별한 장소와 특별한 날을 지키면 구약으로 돌아가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헛되게 하는 것이므로 악한 것이 되어 하나님으로부터 징벌 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골 2:14-17절.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 정사와 권세를 벗어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 10:28-29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 세 증인을 인하여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29.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예수님의 십자가 후 성령이 강림 하신 후에 구약 식으로 절기를 지키게 되면 하나님은 아들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돌리는 자로 간주하여서 용서치 않겠다고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직도 구약 식으로 어떤 장소를 고집하거나, 어떤 날을 지켜야 한다거나, 어떤 사람을 따르게 하면 거짓이 되고 비 진리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믿어지게 하십니다.

그래서 성령 받기 전의 제자들 모습과, 성령을 받고 난 후의 모습이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울입니다.

 

사도바울은 성령을 받고 난 후 이젠 구약식 예배를 깨트리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구약 식으로 지키는 것이 예수그리스도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성전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제물이고,

예수그리스도가 날이고 절기이고,

예수그리스도가 예물인 것입니다.

 

초실절 후 50일째 성령 강림이 일어난 것은 구약 시대에는 출애굽 후 50일째가 되는 날에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는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조상들의 구전(口傳)으로 전해주는 하나님만 알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애굽식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를 모세가 시내 산에 올라가 율법을 받을 동안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여호와라고 불렀던 것을 보아서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약속에 의하여 생겨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불러내시고 언약을 맺으십니다.

언약의 내용이 언약의 후손들이 이방에서 객으로 살면서 종살이를 하다가 4대만에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모세를 애굽으로 보내서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들을 약속의 땅으로 데리고 오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약속으로 일해 가시는 하나님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스라엘은 430년 동안 애굽에서 살았습니다.

모세로부터 출애굽 하는 백성들은 모두가 애굽에서 태어난 애굽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 턱이 없습니다.

 

가나안 땅에서 살려면 약속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그 땅에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광야로 불러내시고 시내 산으로 인도하여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주시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이는 새로운 하나님에 대하여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약속하셨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시내 산에서 율법으로 알려 주시고자 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을 주시기 전에 백성들에게 물어봅니다.

지키면 복을 받고 어기면 저주를 받게 된다고 알려 주십니다.

이에 백성들이 지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짐승의 피를 뿌리면서 누구든지 약속을 어기면 짐승처럼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언약을 피로 체결을 하였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약속을 가지고 시내산에 올라갑니다.

그런데 산 아래 있는 백성들은 모세가 보이지 않자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맙니다.

이는 계약을 어김이 됩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3천명을 죽이십니다.

결국 율법이 죄 아래 가두고 죽이는 일을 하고 만 것입니다.

율법이 없었으면 우상숭배를 해도 죄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우상숭배가 죄가 아니라는 말이 아니고 죄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상숭배가 죄라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율법으로 우상숭배는 죄라고 규정을 해 버린 것입니다.

율법이 가입함으로서 우상숭배가 죄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율법으로 인하여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었고 죽임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에게 율법을 가지고 너희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고발을 하였던 것입니다.

 

율법은 범법함으로 인하여 더하여 준 것입니다.

 

갈 3:24절.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을 빌어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범법함이라는 말은 죄를 지었다는 뜻입니다.

범법함으로 율법이 주어졌다는 것은 죄 때문에 율법이 주어진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은 죄를 드러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율법이 일을 하는가 하면 약속의 자손이 오시기까지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오시면 율법이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예수 안에서 완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율법을 지킴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구원을 이루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구원자를 기다리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으로 죄를 고발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롬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입을 막고 하나님의 심판 아래 가두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그 누구도 구원을 받은 자들이 없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죄인임을 알고 구원자를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갈 3:23-24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율법 아래 가두어진 바 되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오고 나면 율법에서 해방이 됩니다.

그 믿음이 바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였다는 것을 믿어지게 해 주시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율법은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받을 때는 3천명이 죽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한 날에는 3천명이 살아났습니다.

 

율법이 죽인 자들을 성령이 살려 내신 것입니다.

그래서 칠칠절에 두 떡덩이를 요제로 드린 것입니다.

 

요제란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의 칠칠절인 율법은 죽이는 일을 하였지만,

신약의 칠칠절인 오순절에는 성령이 살리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율법으로 알아진 하나님과 성령이 알게 해 주시는 예수님은 다릅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알던 하나님과 출애굽을 한 후 광야에서 율법을 통하여서 알아진 하나님은 달랐습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이 율법을 통하여서 전혀 다른 하나님을 알았듯이 신약에서도 성령을 통하여서 전혀 다른 메시야를 알게 됩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메시야를 고대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는 이스라엘을 세계열강들 속에서 최강국이 되게 하여서 세계를 지배하게 해 주는 정치적인 메시야였습니다.

 

다윗의 영광을 재현 시켜줄 메시야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기다린 메시야는 광야에 계신 예수님을 찾아와서 세상 부귀영광을 주겠다고 하는 마귀이며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은 적그리스도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정치적인 메시야로서 육(애굽)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님께서 진짜 그리스도로 오셨음에도 자신들이 육적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아니었기 때문에 죽여 버린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죽임으로서 과거 애굽에서 나올 때 시내 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에 우상으로 알았던 하나님을 섬긴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으로 알고 있는 그리스도나 애굽에서 알고 있는 하나님이나 동일합니다.

 

이것은 성령이 임하기 전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모두 도망을 친 것입니다.

이는 제자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물과 배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자 과거에 버렸던 그물과 배를 다시 장만하여서 고기를 잡았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역시 유대인들이 알고 있던 메시야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기 잡는 직업 대신 예수라는 직업을 택한 것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고기를 잡아서 먹고 살았지만,

예수를 만나고 난 후에는 예수를 통해서 먹고 살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알고 있던 메시야관이 육적으로 알고 있던 메시야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하신 메시야는 전혀 다른 메시야입니다.

하나님이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는 인간의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주실 분이 아니고 인간의 죄와 사망에 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야입니다.

 

제자들은 삼년 반 동안이나 예수님과 동거동락을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을 몰랐습니다.

이는 육으로는 예수님을 알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메시야는 성령이 오셔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아버지께서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때까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전혀 다른 메시야를 알려 주실 것입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신 아들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셨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에게 종속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거쳐서 오시게 된 것입니다.

 

성령은 아들을 증거키 위하여 보내심을 받았기 때문에 아들만 증거하십니다.

그래서 오순절 날 성령을 받은 사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이외는 결코 증거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고전 2:2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사도 바울은 십자가 지신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지 않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만약에 자신을 포함해서 그 누구라도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으라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이 오기 전에는 나를 위하여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성령이 오고 난 후에는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위하여 내가 부르심을 입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 마귀는 거짓 영으로 미혹하는 일을 합니다.

성령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성도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증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난 자들은 이제부터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과 싸우는 자로 세상에 보내어지게 됩니다.

 

진짜 성령과 가짜 성령은 오직 십자가로만 분별할 수 있습니다.

 

진짜 성령인지 가짜 성령인지는 무엇을 증거 하는지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을 빙자하여 육신에 일을 생각하는 자는 다 거짓 영에 사로잡힌 자들입니다.

즉 교회 부흥을 외치거나 기복 신앙을 외치거나 병 고침이나 기적을 행하는 것으로 이용한다면 그것은 성령의 이름을 가장한 거짓 영인 것입니다.

 

복음 증거의 현장에서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들이 일어나지만 그것은 모두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는 차원에서 일어나는 표적입니다.

성령이 행한 표적은 반드시 시선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사도들은 여출일구하게 십자가 도만 증거 하였습니다.

 

성령은 신기한 능력을 행하기 위하여 오신 분이 아닙니다.

성령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 하기 위하여 오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말하지 않는 것은 모두가 거짓 영에 사로잡힌 증거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고후 5:17절.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전 것은 지나갔다고 합니다.

이전에 내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 아래서 태어납니다.

죄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을 위하여 살도록 주장합니다.

그래서 신을 섬겨도 자신을 위해서 섬기는 것입니다.

이를 우상숭배 신앙이라고 합니다.

 

죄 아래서 태어나는 인간은 본성적으로 우상숭배자로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칠칠절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아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그러므로 칠칠절의 새 소제로 드려진 자들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자기 인생이 차압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상숭배적 본능을 가진 자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해서 산다는 것은 인간적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자기를 위해 살지 말고 자기를 살려주신 예수를 위해서 살아가도록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성도는 자기 인생이 없습니다.

 

고후 5:15절.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대신하여 사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의 영으로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칠칠절의 오순절 성령을 받은 자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로 살아가도록 간섭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이제는 자기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다고 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가 안에서 사는 자는 자연히 그리스도를 증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갈 2:20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칠칠절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민족이 출현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의 조건은 사라지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겨난 민족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를 교회라고 합니다.

 

교회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겨난 새로운 가족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새로운 가족입니다.

부모도 형제도 친구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건 마치 구약의 출애굽 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생겨난 새로운 가족들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께서 땅에 족보를 끊어내고 하나님의 족보에 올려주신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은 하나 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임하고 난 후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이라는 담이 헐어져 버렸습니다.

 

한 성령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입니다.

너와 나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 새 소제가 되어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된 것입니다.

떡 두덩이인 것입니다.

‘예수’ 라는 누룩이 들어간 떡인 것입니다.

 

예수라는 누룩이 들어간 성도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몸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마음을 새롭게 하여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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