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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강해

♣(성경강해)119강. 유월절과 예수님의 죽음 (요 19:12-18)

by coroa 2022. 2. 5.

하늘빛사랑 https://blog.daum.net/day7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19강. 유월절과 예수님의 죽음 (요 19:12-18)

-.정낙원 목사

 

요 19:12-18절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가로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 13 빌라도가 이 말을 듣고 예수를 끌고 나와서 박석 히브리말로 가바다 이란 곳에서 재판 석에 앉았더라 14 이 날은 유월절의 예비일이요 때는 제 육시라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보라 너희 왕이로다 15 저희가 소리 지르되 없이 하소서 없이 하소서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가로되 내가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랴 대제사장들이 대답하되 가이사 외에는 우리에게 왕이 없나이다 하니 16 이에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저희에게 넘겨주니라 17 저희가 예수를 맡으매 예수께서 자기의 십자가를 지시고 해골(히브리말로 골고다)이라 하는 곳에 나오시니 18 저희가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 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오늘은 유월절과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이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보기로 합시다.

알다시피 유월절은 구약의 7대 절기 중에 첫 번째 절기입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설 날과 같습니다.

 

설 날이란? 새해 첫 날을 말합니다.

유월절도 이스라엘에게는 새해 첫 날입니다.

이는 유월절을 기점으로 출애굽 한 이스라엘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 모든 장자가 죽어질 때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에서 살아난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유월절을 기점으로 출애굽을 합니다.

그동안 애굽에 종살이 하던 것으로부터 해방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로 말하면 광복절과 같은 날입니다.

종에서 이제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종의 삶을 마감하고 이제부터 자유인으로서 새로운 인생이 시작이 됩니다.

하나님은 이 날을 대대로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유월절을 기점으로 애굽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가나안으로서의 긴 여정이 시작이 됩니다.

또한 유월절은 모든 절기의 시작이 됩니다.

유월절을 시작으로 하여서 무교절 초실절 그리고 오순절을 지나서 나팔절과 속죄일과 장막절을 지키게 됩니다.

 

이 모든 절기는 예수그리스도를 모형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도의 인생 전체를 축약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우리 성도들의 모형이므로 우리 또한 유월절을 시작하여 장막절에 이르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절기에 대하여서는 블로그에 올려진 “절기 특강”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오늘은 예수님과 유월절의 연관 관계를 큰 틀에서만 탐사해 보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유월절이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주는 영적 의미는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영적 의미를 알아야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나의 유월절이 되어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보내셨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님의 피로서 자기 백성들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육신으로서의 모든 인생의 정점(頂点)은 십자가에 죽음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자기 백성들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건 마치 구약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서 죽음에서 건짐을 받은 것과 같아요.

 

그러므로 유월절 속에는 창세전 언약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유월절이 구약 이스라엘의 절기가 아니라 우리의 절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 이야기가 된단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 했습니다.

왜? 창조 했느냐?

목적이 있어서 창조 했습니다.

 

목적이 창조를 낳은 것입니다.

창조란? “~ ~ 으로 말미암았다” 라는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그러니 만물은 어떤 원인에 의해서 결과가 나타났다는 말입니다.

 

우리도 만물 속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어떤 원인에 의하여 창조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어떤 원인, 즉 목적에 의하여서란 말입니다.

 

그 원인이 뭔고 하니 창세전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기 전에 먼저 이 세상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을 작정 하셨습니다.

해야 할 일이란? 바로 “아들의 나라” 를 만드는 것입니다.

아들을 만유의 주가 되게 하는 일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고 또 들어야 하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경을 푸는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중요한 말씀입니다.

 

그럼 창세전 언약이 어떤 내용인지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엡 1:3-7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편의상 6절과 7절을 바꾸어서 읽으세요.

그럼 내용의 흐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가 될 것입니다.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전에 있었던 일을 보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전 언약이 너무도 황홀하여서 “찬송하리로다!” 감탄을 하면서 시작을 합니다.

어떤 내용인가 하니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이란? 하나님 나라의 복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이를 그의 나라와 그의 의라고 하였습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어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죄인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복인 것입니다.

이건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에 속한 일입니다.

 

어떻게 죄인이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가요?

이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낳아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어머니가 물과 피를 쏟고 아이를 낳듯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쏟고 자기 백성들을 낳아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낳아진 자들이 천국에서 살아갈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일컬어 “아들의 나라”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아들을 통해서 낳아진 자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뜻입니다.

그 아들이 누구인가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천국을 “아들의 나라” 라고 했지요.

나라란? 국가를 말합니다.

그럼 국가의 삼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하겠지요.

 

국가의 삼대 요소가 뭡니까?

 

국민(國民)과,

국토(國土)와,

주권(主權)입니다.

 

백성이 있어야 하고!

땅이 있어야 하고!

임금의 다스림이 있어야 합니다.

 

임금은 예수님입니다.

땅은 천국입니다.

백성은 구원 받은 성도입니다.

이 세 가지 요소가 다 갖추어진 곳을 천국이라고 합니다.

 

창세전에는 아직까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이므로 백성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백성을 만들기 위하여 역사라는 이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낳아지는 토양인 것입니다.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하면 창세전 언약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만들어집니다.

천국에서 살아갈 백성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낳아진 자들입니다.

 

이걸 그림으로 그려 보세요.

하나님이 창세전에 자기 백성들을 예정합니다.

즉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합니다.

그리고 녹명이 된 자들을 이 세상에 보냅니다.

이 세상은 죄 아래 놓였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이 아들을 예수라는 이름으로 보냅니다.

아들이 세상에 오셔서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일을 하게 됩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담고 있는 내용이 뭔가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대신하여서 십자가에서 피를 쏟습니다.

그럼 자기 백성들은 예수님의 피로서 죄사함을 얻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피 뿌림으로 죄사함 받은 자들이 천국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을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 백성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예수의 피로 죄를 씻겨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으로 그려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을 언제 작정하셨나요?

창세전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역사는 창세전에서부터 시작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창세전 언약을 바탕으로 일을 해 가십니다.

 

이걸 구약 시대에는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 그 후손과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방 나라에 객으로 보냈다가 다시 찾아옵니다.

찾아오는 과정에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살아나게 됩니다.

그리고 광야에 나와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양과 염소의 재판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양과 염소를 심판 하시면서 각자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이들이 들어갈 나라는 이미 창세로부터 예비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양들이 들어갈 나라와 염소들이 들어갈 나라를 창세전에 이미 예비해 두시고서는 양과 염소를 창조 하신 것입니다.

마치 야곱과 에서처럼 각자의 운명을 담고 이 세상으로 보내어진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게 하십니다.

 

이 세상이 그러해요.

이들을 창세기 1장 2-3절에서는 빛과 어둠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빛과 어둠은 빛의 아들과 어둠의 아들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는 빛에 속한 자와 어둠에 속한 자가 섞여 있습니다.

이를 예수님께서 오셔서 갈라냅니다.

빛에 속한 자는 빛에 나라인 천국으로 들여보내고,

어둠에 속한 자는 어둠에 나라인 지옥으로 들여보냅니다.

이걸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걸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건져 내는 것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애굽은 세상과 같습니다.

세상 속에 하나님의 백성과 이방 백성이 섞여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 모세를 보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끄집어내서 양속의 땅으로 데리고 갑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쉬운 예로,

이 세상의 역사는 한 편의 드라마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 언약이라는 드라마를 그려가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드라마의 내용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양과 염소처럼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가 갈라짐을 당하게 됩니다.

이걸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심판하는 분을 주(主)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일컬어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유의 주”가 되는 드라마를 찍고 계신 것입니다.

여기에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이 동원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나 믿지 않는 자나 다 예수님의 주되심에 동원이 되고 있습니다.

마귀도 천사들도 다 예수님이 주가 되는 일에 엑스트라로 사용이 되는 것입니다.

스님도 무당도 물론 목사도 사용이 됩니다.

그래서 만물이 다 주를 위해서 존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도 독자적으로 사는 자들이 없습니다.

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에 있습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모두가 예수님의 주 되심에 동원이 된 배우들입니다.

어떤 이들은 예수님 편에 서 있고 어떤 이들은 마귀 편에 서 있습니다.

불신자는 악역을 담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둘 사이에 늘 충돌이 일어납니다.

 

이 이야기를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니까 구약의 이스라엘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구원을 해내시는지를 보여주는 시청각 교제와 같습니다.

 

우리는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이 세상이 어떻게 다스려져 가는지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세상 전체를 축약하고 있습니다.

모든 인간들의 모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속에서도 두 민족이 공존해 있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자들과 약속으로 난 자들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표면적 유대인이 있고 이면적 유대인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고 해서 다 이스라엘이 아니고 그 속에 약속으로 난 자들이 있다고 한 것입니다.

이 둘은 항상 충돌을 합니다.

영으로 난 자와 육으로 난 자의 충돌이고 하나님의 백성과 마귀의 백성의 충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지고 온 세상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인류의 해 시계”라고 하는 것입니다.

육적으로 맞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육적 이스라엘을 가지고 세상을 다스려 가는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을 일컬어 그림자라고 합니다.

여기서 구약이라 함은 육적 이스라엘을 말합니다.

육적 이스라엘 속에서 일어나는 일은 그림자입니다.

장차 일어날 영적 이스라엘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림자란? 실체를 전제하고 있는 말입니다.

실체가 누구인가요?영적 이스라엘입니다.

 

그래서 구약에도 이스라엘의 조상이 나오는 것입니다.

누구인가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은 육적 이스라엘의 조상이면서도 택하심을 입은 입장에서는 믿음의 조상도 되는 것입니다.

이 믿음의 조상이 신약에 오면 예수님이 실체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장 1절에서 신약의 대문을 활짝 열면서 뭐라고 하는가요?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그리스도의 세계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끝에 예수그리스도가 있습니다.

구약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신약의 조상인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그림자인 것입니다.

 

예수님도 영적 이스라엘의 조상입니다.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 백성의 조상이 아브라함이었다면,

신약에서는 하나님 백성의 조상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의 아브라함은 그림자로서 예수그리스도라는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시청각 교제인 것입니다.

구약을 그림자라고 하는 것은 곧 구약에 일어나는 모든 것은 장차 신약에서 일어나는 모형적인 사건들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도 모형이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형이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모든 신앙적인 일들도 모형이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다루어 가는 모든 것도 신약의 성도들을 다루어가는 모형입니다.

 

그럼 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떤 방식으로 죄에서 거룩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불러내는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어떻게 어둠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불러내는지 살펴봅시다.

이 일을 유월절에 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예수님의 죽으심을 유월절과 연관하여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으심과 구약의 유월절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유월절과 연계 시켜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서 벌리신 일입니다.

하나님이 총 감독이 되어서 드라마를 찍고 계신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서 이제 예수가 십자가에 죽어야 할 장면을 찍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유월절에 맞추어서 죽게 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바로 구약에 예언이 된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이기 때문입니다.

 

유월절이란? 구약 이스라엘이 종살이하던 애굽으로부터 탈출한 한 날입니다.

종에서 해방을 맞는 날입니다.

압박과 설음에서 해방이 된 날입니다.

신약식으로 말하면 죄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성경은 애굽을 죄와 사망의 나라로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한다는 것은 죄 아래 가두어져 종노릇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 아래 가두어진 백성들을 빼내는 일을 하십니다.

언제 빼내셨는가 하면 유월절에 빼냈습니다.

어떻게 빼내셨는가 하면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빼내셨습니다.

 

그러니 구약 이스라엘이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온 인류 속에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미리 보여주는 리허설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을 가지고 장차 신약에서 일어날 일들을 미리 예행연습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모두가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나온 자들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합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을 어린 양의 피로 생겨난 민족입니다.

어린 양의 피가 죽음에서 살아나게 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희생으로 죄인들이 살아난 것입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성경 전체 구석구석에 심겨져 있습니다.

이건 창세전 언약이야기입니다.

성경을 어디를 보아도 창세전 언약이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곧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죄인이 살아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 어느 곳에서도 흠 없는 제물의 희생으로 죄인이 살아가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 곳곳에 피가 흐르듯이 모든 성경에 예수님 이야기도 혈관처럼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에덴동산에서부터 있었습니다.

범죄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입혀준 사건이 곧 예수님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범죄한 아담의 수치를 가리기 위하여 흠 없는 제물이 희생당하였습니다.

이건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 그림입니다.

 

노아 시대를 보세요.

홍수가 끝나고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제일 먼저 한 일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이었습니다.

어떻게 제사를 드렸는가 하면 정결한 제물을 잡아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제사를 흠향하셨습니다.

 

그리곤 다시는 물로는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말은 곧 이 세상은 흠 없는 재물의 희생 때문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이나 선인에게 햇빛을 주시고 비를 주시는 것은 모두가 노아 언약 때문입니다.

노아 언약의 핵심은 곧 정결한 제물이 부정한 자를 위하여 희생 제물이 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노아 언약 속에도 창세전 언약이 배태(胚胎)되어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세전 언약이 흠 없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죄인이 구원을 받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언약 속에는 창세전 언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 창세전 언약을 예수님이 완성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언약 속에는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모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죽음은 그림자이고 예수님의 죽으심이 실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죽는 날을 구약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하던 때인 유월절에 맞추어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로부터 구원 받는 일이 일어나게 됩니다.

영적인 출애굽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들이 이미 창세전에 언약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대로 일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시나리오대로 일을 하신다는 말은 일이 순서적으로 진행이 되어간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일이 진행되어가는 과정에는 반드시 “정한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정한 때도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어떻게 다스려 가는지를 보여 주셨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일컬어 언약의 후손이라고 합니다.

어떤 언약의 후손입니까?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이에요.

그럼 아브라함 언약이 무엇인지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15장입니다.

 

창 15:1-20절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 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땅을 애굽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먼저 언약이 어떤 상황 속에서 체결이 되는지를 봅시다.

하나님이 이상 중에 나타나십니다.

이상이란? 환상을 말하는데 성경에서 환상은 곧 묵시와 같습니다.

 

묵시 속에서 보여주는 일이란?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지금 아브라함 언약은 묵시에 속한 창세전 언약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일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묵시 언약의 성격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님과 하신 언약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아브라함이 이상 중에 맺은 언약도 예수님의 언약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을 통해서 창세전 언약을 탐사해 봅시다.

 

언약을 세우자면 언약 대상자가 있어야 합니다.

창세전에 언약을 세우실 때 누구와 누구랑 세우셨나요?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창세전 언약을 세우실 당시에는 아들 하나님이 말씀으로 계셨어요.

 

말씀으로 계셨다는 것은 아버지를 대신하여서 일을 하시는 분이란 말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이 말씀이신 하나님을 앞세워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이신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을 보면 잘 나와 있어요.

 

요 1:1-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고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태초는 창세기의 태초와 다른 태초입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역사 바깥의 세상인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요한복음의 태초는 시간 바깥의 세상을 말하고,

창세기의 태초는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태초입니다.

그러니까 요한복음의 태초는 공간적 태초 즉 하나님 나라를 말하고!

창세기의 태초는 공간적 태초에 계시던 하나님이 언약 하신 것을 이제 역사라는 곳에서 일을 시작 하시려는 것을 말합니다.

 

시간 바깥에 계시던 하나님이 언약을 하실 때는 아직까지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입니다.

이 때는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만 있었습니다.

그 시나리오를 바탕으로 만물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이게 아브라함 언약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도 태초와 같아요.

아직까지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후손과 땅에 관한 언약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을 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엘리에셀 이라는 종만 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후사를 주겠다고 하시자 아브라함은 그냥 여기 있는 엘리에셀을 후사로 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하나님을 못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니다 내가 아들을 주겠다고 하십니다.

지금은 하나도 없어요.

하지만 언약 속에는 하늘에 별과 같이 많은 후손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제 그 언약에 의하여 후손들이 생겨 날 것입니다.

 

이건 창세전 언약과 같아요.

아버지와 아들 간에 창세전 언약을 새우실 때도 언약 백성이 없었어요.

이제 그 언약에 의하여 하늘에 별처럼 생겨날 것입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언약은 곧 창세전 언약의 그림자와 같은 것입니다.

이러면 아브라함은 장차 오실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 속에는 예수님이 세우실 새 언약이 씨눈처럼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언약에 따라서 약속의 자녀를 주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의 자녀들은 철저하게 언약하신대로 그 일정에 맞추어서 진행이 되도록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 일정이 먼저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러다가 정한 때가 되어서 나오게 됩니다.

 

13-14절을 보세요.

 

13-14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이방의 객이 되어 사백 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럼 아브라함 후손들은 이 언약대로 사백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어 종살이를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간섭을 하세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바탕으로 간섭하시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스라엘은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이방의 객이 되고 맙니다.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애굽에서 종노릇을 하게 됩니다.

언제까지 하느냐 하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의 때”까지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하실 때 그 후손들이 이방에서 객으로 살 것이라고 합니다.

이방에서 객으로 산다는 것은 이방의 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죄의 종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러다가 해방이 되어서 나오게 되어요.

 

이 약속을 위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됩니다.

알다시피 요셉이 총리로 있을 때는 이스라엘은 애굽의 주류로 살았습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다 누리고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요셉이 죽고 난 후 쿠데타가 일어나 갑자기 정권이 바뀌게 됩니다.

 

출애굽기 1장을 봅시다.

 

출 1:8-11절 “요셉과 그의 모든 형제와 그 시대 사람은 다 죽었고 7 이스라엘 자손은 생육이 중다하고 번식하고 창성하고 심히 강대하여 온 땅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일어나서 애굽을 다스리더니 9 그가 그 신민에게 이르되 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이 우리보다 많고 강하도다 10 자, 우리가 그들에게 대하여 지혜롭게 하자 두렵건대 그들이 더 많게 되면 전쟁이 일어날 때에 우리 대적과 합하여 우리와 싸우고 이 땅에서 갈까 하노라 하고 11 감독들을 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게 하여 그들로 바로를 위하여 국고성 비돔과 라암셋을 건축하게 하니라”

 

요셉에게 우호적이었던 왕조가 무너지고 새로운 왕조가 들어섭니다.

새로 들어선 왕조를 일컬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라고 합니다.

이는 이스라엘에게 적대적이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루아침에 주류에서 비주류로 전락하고 맙니다.

마치 충신이 하루아침에 역모로 몰려서 역적이 되고 만 것입니다.

주인에서 객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급기야 모든 부귀영화는 다 사라지고 고역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이름 하여 종살이가 시작 된 것입니다.

 

이건 죽을 일이에요.

이 모두가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의 수순에 의한 것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은 알 턱이 없지요.

그동안 등 따습고 배부르게 살다 보니 아브라함 언약에는 관심도 없었어요.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경천동지 할 일이 발생하고 만 것입니다.

마치 조선시대 때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자리에 있던 영의정이 갑자기 역적으로 몰려서 가산을 적몰당하고 처자식들은 노비로 잡혀가는 신세가 되고 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그 꼴입니다.

풍전등화와 같아요.

인생의 암흑기가 도래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그 동안 찾지 않던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여기에 인간의 본질이 그대로 녹아져 있습니다.

인간은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나는 종자들이에요.

그리고 어려우면 하나님을 찾아요.

 

죄인들은 철저하게 자기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인간들에겐 배부름은 곧 하나님과 멀어지는 지름길이 되는 것입니다.

이건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향하여서 모세가 예언을 했어요.

 

신명기 31장을 봅시다.

 

신 31:16-2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 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18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지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노래를 하나 지어서 부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 노래 내용이 의미심장합니다.

너희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배부르고 등 따스우면 하나님을 배도한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너희를 이방에 객이 되도록 하신다고 합니다.

 

이건 예언이에요.

반드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속성을 너무도 잘 아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어떤 종자들인가 하면 등 따습고 배부르면 하나님을 떠나는 족속들이에요.

그래서 모세가 내가 비록 눈으로 안 보아도 다 안다고 합니다.

상상하는 바를 안다고 합니다.

 

인간에겐 배부름이 하나님을 떠나게 되는 단초가 되는 것입니다.

배부름이 화(禍)를 자초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눈만 뜨면 배부름을 좇아가고자 합니다.

이는 곧 인간들은 하나님을 떠날 수밖에 없는 종자들이란 말입니다.

 

지금 모세가 이 노래를 지어서 부르게 한 자들이 애굽에서 배부름으로 하나님을 떠났던 그 후손들이에요.

모세는 지금 애굽에서 나와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자들에게 너희도 결국에는 너희 조상들처럼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 같아서는 이런 노래를 들으면 오기가 발동해서라도 난 절대로 안 떠날 거야! 라고 해야 함에도 실상은 그렇지 못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본성을 이길 인간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본성은 틈만 나면 하나님을 떠나고자 해요.

 

이걸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집요하게 폭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구약의 이스라엘은 우리의 자화상인 것입니다.

우리도 그 길을 답습하고 있어요.

지금 우리가 그렇게 살고 있잖아요.

 

우리는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고 합니다.

그래서 역사에서 교훈을 얻자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의 증거는 인간은 역사를 반복하는 자들이지 결코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자들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인간 자체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죄가 인간들을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죄는 항상 몸뚱이를 챙기는 식으로 역사를 해요.

그런데 그 몸뚱이를 좇아가는 것이 좋아 보여요.

매력적으로 보인단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은 넓다고 했어요.

그래서 사람들이 그 길을 선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멸망의 길이에요.

 

역사 속에서는 멸망으로 가는 것은 항상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럽게 있어요.

이게 우리들이 우리 몸뚱이를 챙기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모세가 뭐라고 하던가요?

세상에서 성공하여 잘 먹고 잘 살게 되면 하나님을 떠난다고 했지요.

맞아요.

인간은 잘 먹고 잘 살면 하나님을 떠나게 되어 있어요.

 

그러니까 세상 적으로 잘난 것이 보암직하고 탐스러운 것이지만 실상은 죽는 길인 것입니다.

이것은 세상에서의 성공하는 것과 부함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고 인간은 몸뚱이 편한 것을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몸뚱이 편한 것을 목적으로 신앙생활을 하지 말란 말입니다.

 

에덴동산에 보면 먹으면 죽는 과실이 있지요.

이름하여 선악과입니다.

선악과를 보는 순간 빠져 들고 말아요.

 

왜? 그런가요?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환상적이에요.

그런데 그 환상이 결국은 죽음으로 끌고 가요.

 

이 세상은 환상이에요.

 

환상이란? 미혹한다는 말이에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이 미혹해요.

거기에 복이 있는 줄 미혹한단 말입니다.

그러므로 육에 속한 자들은 다 그 환상에 미혹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세상에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것들은 모두가 마귀적인 것이라고 했어요.

세상은 우리의 눈을 사로잡을 것들로 가득해요.

그런데 그것이 모두가 실체가 아니고 환상이란 말입니다.

세상 자체가 철거가 될 것들이잖아요.

그러므로 실체가 아니고 환상인 것입니다.

 

실상은 하늘에 있어요.

이 세상에는 실상이 없어요.

모두가 사라질 허상이에요.

그런데 그 허상들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워요.

 

그래서 인간들이 빠져드는 것입니다.

돈 많으면 행복 할 것 같지요.

그러나 그 반대에요.

 

돈을 편리함은 줄 수 있어도 행복은 주지 못해요.

돈 때문에 원수가 되고 돈 때문에 병이 들어요.

돈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어서 나를 괴롭히게 되어요.

돈 때문에 부모 자식 간에 다툼이 일어나고 형제간에 싸움이 일어나요.

 

인간들 눈에는 돈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러운 선악과인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눈만 뜨면 돈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돈이 결국에는 폐인을 만들어 버려요.

그래서 성경은 돈을 일만 악의 뿌리라고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재앙은 돈으로부터 비롯된다고 증거해 주고 있어요.

인류는 돈 때문에 망하고 돈 때문에 죽고 죽이는 일을 해 왔어요.

 

그런데 그 돈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단 말입니다.

환상적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불나방처럼 그 환상을 좇아가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저 돈! 돈! 돈! 하다가 돌아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돈을 하나님과 같은 반열에 두고서 주인이라고 했어요.

우린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요.

그런데 그 돈이 하나님을 배도하게 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배도의 역사는 시절을 좇아서 늘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도 일어났고!

가나안에서도 일어났어요.

 

이스라엘은 모든 인간을 대표하고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이스라엘 속에 나도 포함되어 있어요.

 

그러므로 이스라엘을 욕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이스라엘임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도 등 따습고 배가 부르면 하나님을 떠나요.

우리 몸뚱이가 그렇게 끌고 가게 되어 있어요.

 

멀리서 찾지 마시고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세요.

조금 먹고 살만 하면 신앙생활을 개판으로 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망하는 길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망하게 하고 의지할 것이 없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그걸 사랑으로 보지 않아요.

도리어 저주라고 원망하고 있어요.

하지만 하나님은 언약을 위해서 우리를 세상에서 붙잡을 것이 없도록 간섭을 하십니다.

 

지금 먹고 살만 합니까?

등 따습고 배부르니 천국도 귀찮고 하나님이 우습게 보이지요.

모세의 노래가 안 들리지요.

하나님 말씀이 귓등으로 들리지요.

 

조금 기다리세요.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하나님이 휘몰아 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찾게 하실 것입니다.

이것도 단 여러분이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으면 말입니다.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았으면 이런 일들이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자기 몸뚱이 편한 것을 이길 장사는 단 한 사람도 없어요.

모든 인간은 몸뚱아리의 종으로 살아요.

그래서 눈만 뜨면 육신의 편안함을 추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추구하는 문명이나 과학도 결국엔 인간을 편하게 해 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어요.

죄가 그렇게 끌고 가는 것입니다.

죄가 인간의 육신을 위한 삶을 살게 만들어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좇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한 행복은 이러한 것으로부터 벗어 날 때 주어집니다.

행복은 땅의 것에 있지 않고 하늘의 것에 있어요.

하나님은 하늘에 복을 주시지 땅에 복을 주시지 않아요.

땅에 것을 복이라 한 적이 없어요.

 

마귀는 땅에 것을 준다고 하고 예수님은 하늘에 것을 준다고 합니다.

거짓선지자들은 땅으로 끌고 가고 참 선지자는 땅을 떠나게 해요.

땅에 가치로 살지 말고 하늘에 가치로 살게 해요.

그러니 참 선지자들이 말은 항상 찌르는 칼처럼 아픈 겁니다.

 

인간이 꿈꾸는 유토피아도 환상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그 환상을 깨트리는 식으로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실상은 하늘에 있다고 알려주세요.

 

알다시피 인간의 창조 목적은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죄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것을 잊게 하고 자기 몸뚱이를 위하여 살게 만든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의 후손이에요.

그런데 애굽에서 잘 살 때는 아브라함 언약에 관심이 없었어요.

그저 몸뚱이 편한 것만 추구했어요.

 

그러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간섭하기 시작을 합니다.

어떻게 간섭하는가 하면 너희는 너희 몸뚱이 하나 챙기고 살아가는 민족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살아가야 하는 민족이라는 것을 알게 하십니다.

 

어떤 방식으로 알게 하는가 하면 몸뚱이를 불편하게 함으로서 합니다.

몸뚱이가 불편해지자 비로소 그동안 잊고 살던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왜? 찾습니까?

자기 몸뚱이 편하게 해 달라고 찾는 겁니다.

 

언약을 위해서 찾는 것이 아니고 자기 몸을 위해서 찾아요.

이게 인간이에요.

죄인답지요.

그래요.

 

죄인이란? 자기 밖에 모르는 종자들이에요.

그러나 하나님은 이러한 죄인을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간섭을 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간섭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예뻐서가 아니에요.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에요.

우리가 예뻐서가 아니에요.

창세전 언약 때문에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위하여 구원을 했다고 하지 않고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위하여 구원을 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을 위해서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간과하지 마세요.

이걸 놓치게 되면 우리도 이스라엘처럼 자기 몸뚱이 건사하는데 예수를 이용하게 되어요.

그럼 신앙의 주객이 전도가 되고 맙니다.

하나님은 예수를 위하여 구원을 했는데 우리는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이용한단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것이 죄라고 고발하는 식으로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이름 하여 고난인 것입니다.

 

고난 속에 집어넣고서는 어그러진 구원관을 바로 잡아 주시는 일을 하십니다.

암튼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이스라엘을 간섭하시기 시작을 합니다.

 

출애굽기 2장을 봅시다.

 

출 2:23-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이스라엘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면서 부르짖습니다.

이스라엘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하나님께 부르짖었다는 말은 평안 할 때는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평안하게 잘 살 때는 하나님이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등 따습고 배가 부를 때는 하나님을 잊고 살았어요.

그러다가 어려움을 당하자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결국 어려움이 하나님을 찾는 촉매가 된 것입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고난으로 다스려간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당함이 내게 유익이라고 하였어요.

고난을 인하여 주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고난을 통해서 그동안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애굽 시대 인간이나 지금 이 시대 인간이나 그 본성은 똑 같아요.

모두가 한 아담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본성이 오고 오는 세대 속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도 평안하면 하나님을 찾지 않아요.

그러다가 힘들고 어려우면 하나님을 찾아요.

찾아서 하는 말이 왜? 날 힘들게 하느냐고 따져요.

아니~ 잘 살 때는 코빼기도 안 보이다가 힘들면 나와서 따져요.

왜? 날 힘들게 하느냐고 지랄을 떨어요.

 

입이 삐뚤어져도 말은 바로 하라고 하였듯이 아니~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라고 한다면 왜? 잘 살 때는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모르고 입 싹 닦고 있었나요.

잘 살 때는 왜? 감사하지 않았나요.

 

흔히들 잘되면 자기 탓이고 못 되면 조상 탓이라고 하는 말과 같아요.

잘 살 땐 하나님을 몰라라 하고서는 살기 어려우니 하나님께 왜? 날 살기 어렵게 하느냐고 책임을 하나님께 떠넘기잖아요.

 

이 얼마나 이기주의입니까?

이게 인간이에요.

모든 인간들의 본성입니다.

 

이처럼 인간에게 있어 하나님(신)이란? 자기 소원을 들어주는 수호신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은 자기 필요에 의하여 신을 찾는 행위를 합니다.

이를 성경은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이게 죄에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은 고난 속에서 자신들에게 일어나는 이러한 모든 일들이 결국에는 언약을 위하여 일어난 사건임을 알게 됩니다.

 

아브라함 언약에 아브라함 후손들이 사대 만에 언약의 자리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언약의 자리로 돌아온다는 말은 원래의 곳으로 돌아오는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 가나안에서 맺었어요.

애굽에서 가나안은 보이지 않는 세상이에요.

 

애굽을 세상이라고 한다면 가나안은 천국의 모형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담고 있음이 됩니다.

창세전 언약을 모형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뭔가요?

아버지와 아들 간에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하나님 나라에서 맺었어요.

 

이건 아브라함이 가나안에서 언약을 맺은 것과 같아요.

애굽에서 가나안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있어요.

아브라함 언약이 자기 후손들이 사대 만에 돌아온다고 했어요.

 

그럼 우리도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돌아갈 때가 있습니다.

즉 구원 받을 때가 있다는 말입니다.

이 때는 하나님이 정하세요.

 

그래서 성경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하였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자기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때를 하나님이 정하신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그 정한 계획표대로 일을 하십니다.

그 계획표가 언약이에요.

 

구약 이스라엘도 이 계획표대로 다스립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을 나 올 때는 일컬어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 12:40-41절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지 사백 삼십년이라 41 사백 삼십년이 마치는 그 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

 

“마치는 그 날”이란? “복역의 때가 끝나는 그 날”이란 말입니다.

마치 죄수가 감옥에서 형벌의 때를 사는데 그 정한 형기를 다 마치고 출소하는 그 날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살이 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감옥에서 형을 사는 것과 같아요.

이제 그 형기를 마치고 출소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 출소의 시기가 아브라함 언약에 정하여져 있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그 언약의 때를 맞추어서 이스라엘을 고난 가운데 몰아넣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은 그동안 하나님을 몰라라 하던 자들을 하나님을 찾게 됩니다.

그럼 하나님은 언약대로 집행을 하십니다.

결국 너희들은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운명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마찬가지에요.

다 예수를 믿는 때가 있어요.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믿어지게 해 주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다 정한 때에 따라서 믿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믿고 어떤 사람은 늦게 믿을 수가 있어요.

 

마치 드라마에 출연하는 배우가 출연하는 시점이 각기 다르듯이 성도들마다 예수를 믿는 시기가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암튼 하나님은 정한 때에 맞추어서 일을 하십니다.

 

갈라디아 4장을 봅시다.

 

갈 4:1-7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유업을 이을 아들이 있어요.

그런데 잠시 종노릇 하게 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다 뜻한바가 있어서 종노릇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서 종에서 해방을 시킵니다.

이제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게 합니다.

어떻게 아들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는가 하면 “아들에 영”을 보내서 돌아오게 합니다.

아들에 영을 받으면 이젠 종으로 살지 않고 아들로 살아갑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도 다 때가 있다고 하였지요.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아들에 영이 임할 때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아들에 영을 보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어요.

그 때가 되면 아들에 영이 오세요.

 

이걸 사도행전 2장에서 보여 주셨어요.

 

행 2:1-4절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2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3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하지요.

“이미 이르매” 란 말은 그 때가 되었다는 말이에요.

오순절 날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오순절이 무슨 날인고 하니 성령이 오시는 날이에요.

이걸 하나님은 7대 절기 속에다가 약속을 해 놓았어요.

이 절기는 예수님을 말해요.

절기 속에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담아 놓았어요.

 

오순절은 유월절과 무교절과 초실절을 지나고 50일 째가 되는 날이에요.

유월절은 예수님의 죽음을 상징하고!

무교절은 예수님의 무덤 속에 계신 것을 말하고!

초실절은 예수님의 부활을 말해요.

 

그러니까 오순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난 후 50일 째 되는 날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시고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 하셨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에 성령이 오십니다.

이 날이 바로 오순절이에요.

 

그래서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실 때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했지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바로 성령이에요.

성령이 오신 것은 예수가 믿어지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이 믿어지게 하시려고 성령이 오신 것입니다.

 

예수는 성령이 아니고서는 믿을 수가 없어요.

예수는 인간의 힘으로 믿지 못해요.

성령이 믿어지게 해 주셔야지만 믿을 수가 있어요.

지금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우리의 실력이 아니고 다 성령께서 믿어지게 해 주셔서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믿는 것은 자랑 할 것이 아니고 감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우리를 율법 아래서 은혜 아래로 빼내 주세요.

이렇게 율법 아래서 은혜_ 아래로 빼내심을 입는 것을 종에서 해방이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에서 아들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을 아들에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시면 아들이 되어요.

아들은 우리가 애쓰고 노력하여서 얻어 내는 것이 아니에요.

아들에 영이 오면 저절로 아들이 되어요.

 

그런데 그 아들에 영을 우리 쪽에서 오라 가라 할 수가 없어요.

아들의 영은 예수님이 죽으셔야 오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하나님의 시간표에 의하여 일어납니다.

 

예수님의 죽으심도 다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 시간표가 바로 유월절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코자 오셨습니다.

어떻게 구원하는가 하면 자신의 죽음으로 합니다.

 

이건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통해서 보여주셨어요.

출애굽은 곧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 받는 것입니다.

그럼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어떻게 합니까?

 

하나님께서 애굽에 모든 장자들을 죽이십니다.

장자들을 죽인다는 것은 모두 다 죽인다는 뜻입니다.

이건 장차 온 세상이 멸망 할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세상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해 내는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서 어린 양이 죽는 것으로 하십니다.

이걸 “유월절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애굽에 장자들이 죽을 때 살아날 길을 알려 줍니다.

그 길은 어린 양의 피를 집의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라고 합니다.

문설주와 인방이란? 쉬운 말로 문의 가로 세로를 말합니다.

이건 십자가를 상징해요.

 

결국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는 것은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구약 시대 자기 백성들을 어린 양의 피로서 죽음으로부터 구원하신 것을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예수님이 죽는 날을 유월절에 맞추어서 일어나는 것은 예수님의 죽음이 곧 구약의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가 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지금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서 예수라는 희생양을 죽이시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예수님께서 유월절 만찬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떡을 주시면서 예수님의 살이라고 하셨고!

포도주를 주시면서 예수님의 피라고 합니다.

 

그냥 피라고 하지 않고 죄사함을 얻게 하는 피입니다.

이 피는 곧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바 “새 언약의 피”라고 하셨습니다.

새 언약이라 함은 옛 언약을 바탕으로 하는 말입니다.

 

옛 언약에서는 짐승의 피를 뿌렸지만 새 언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를 뿌립니다.

이렇게 예수의 피를 뿌려서 자기 백성이 구원을 받는 것을 이미 창세전에 미리 계획이 된 일입니다.

 

베드로전시 1장을 봅니다.

 

벧전 1:18-20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잘 보세요.

어디에서 구원을 받는가요.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이 되었다고 하지요.

 

이스라엘의 조상들의 유전이 뭔가요?

율법 신앙이에요.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고 하나님의 백성 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백성에서 짤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율법 지킴을 신앙의 근간으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으면 이방인으로 취급했어요.

 

실제로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는 세리와 창기들은 유대인으로 취급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는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율법대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세리와 창기들과 차별성을 두고서 나는 저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한다고 했어요.

결국 율법 지킴으로 유대인과 비유대인으로 나누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반칙이에요.

유대인은 율법 지킴과 상관없이 아브라함 언약으로 주어져요.

아브라함 언약에는 하나님의 백성은 율법 지킴으로 주어지거나 선민이 유지되는 것이 없어요.

그냥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주어지는 것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도 조건 없이 언약으로 주어지는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유지되는 것도 언약으로 유지되는 것입니다.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아브라함 언약은 은혜 언약인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도 아브라함이 지켜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지켜 내세요.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어요.

아브라함은 그냥 구경만 했어요.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이 지나 갔다는 말은 하나님이 쪼개어진 고기처럼 죽는단 말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의 죽음으로 아브라함 언약이 지켜진다는 뜻입니다.

신약식으로 말하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언약이 주어지고 지켜지는 것입니다.

이걸 은혜 언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새 언약도 은혜 언약이고 모형인 아브라함의 옛 언약도 은혜 언약이에요.

구약 이스라엘도 은혜 언약 안에 있고 신약의 성도도 은혜 언약 안에 있어요.

은혜는 반드시 법을 통해서 드러나요.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 율법을 주었어요.

 

왜? 주었는가 하면 은혜를 드러내고자 주셨어요.

너희가 법대로 하면 반드시 죽어야 하는데!

그럼에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은 어린 양의 죽음 때문이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로 생겨난 민족입니다.

은혜로 생겨난 민족입니다.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되어요.

 

이 사실을 기억케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자기 꼬라지를 보라는 겁니다.

내가 과연 살 자인가?

아니면 죽어야 할 자인가? 보라는 것입니다.

 

율법을 제대로 본 자는 당연히 나는 죽어 마땅한 자라는 고백이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셔서 유대인들의 신앙을 보니까 이와 정 반대의 신앙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율법 지킨 것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랑하고 있단 말입니다.

은혜가 아니라 행위를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걸 망령된 행실이라고 합니다.

 

망령된 행실이란? 개판으로 살았다는 말이 아니에요.

그와 반대로 너무도 반듯하게 살았어요.

망령된 행실이란? 언약을 가리는 것을 말해요.

자기의 반듯한 행실로 하나님의 은혜를 날아가게 만든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망령된 행실을 세리와 창기들처럼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은혜 언약을 떠나 있는 것을 망령된 행실이라고 해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망령된 자에요.

 

새 언약 아래서는 옛 언약식 신앙을 고수하는 것이 죄이고 망령된 행실이에요.

한마디로 예수의 피로 의가 주어진다는 것을 안 믿는 것이 죄란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지라고 하는 것이 죄에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서 의로워지라는 것이 바로 조상들의 유전이고 망령된 행실인 것입니다.

율법 신앙을 붙잡고 있는 것이 망령된 행실이에요.

 

예수님이 오셨을 때 온 유대인들이 이러한 신앙에 갇혀 있었어요.

율법 지킴을 신앙으로 붙잡고 있단 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율법으로부터 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율법이 빠져 있는 망령된 자들을 예수님이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십니까?

자기 피를 뿌림으로 하십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담당해 주심으로서 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을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의문에 쓴 증서란? 율법을 말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자기 몸으로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러한 시실을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완성 하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율법 지킴으로부터 자유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시킴으로서 조상의 유전인 율법 신앙으로부터 출애굽을 시키신 것입니다.

율법 신앙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은 영적으로 출애굽 하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베드로는 우리가 우리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을 얻은 것은 흠 없고 보배로운 어린 양의 피로서 한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이미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바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것이 지금 말세에 우리에게 알리어졌다고 합니다.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나신바 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이 곧 말세입니다.

 

말세란? 세상 끝이란 말입니다.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로 새로운 세상이 열렸어요.

구약이 끝나고 신약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유월절을 기점으로 새로운 날의 시작을 삼으신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달력이 민간력과 성력이 있어요.

 

민간력은 음력(달)이고 성력을 양력(태양)이에요.

원래 애굽에서는 민간력만 있었어요.

그런데 출애굽을 하면서 성력이 하나 더 생긴 겁니다.

이것이 유월절을 기점으로 생긴 겁니다.

 

민간력과 성력은 6개월의 차이가 있어요.

민간력의 7월을 성력의 1월을 만들었어요.

쉬운 말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사용하던 달력으로 7월 달에 출애굽을 하는데 이 때를 새로운 달력인 성력의 1월로 정한 것입니다.

 

이게 유월절을 기점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유월절로 새로운 이스라엘이 탄생했다는 말입니다.

죄와 사망 아래 있던 이스라엘이 의와 영생의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신약식으로 말하면 율법 아래 있던 자들이 은혜 아래로 옮겨진 것입니다.

 

유월절이 뭔가요?

애굽에서 난 장자는 다 죽고 어린 양의 피로서 살아난 날이잖아요.

어린 양의 피로서 살아난 자들은 이제 새로운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래서 애굽에서 사용하던 달력을 버리고 새로운 달력을 쓰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의 십자가로 새로운 시대가 열렸어요.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바뀌었어요.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에요.

새로운 피조물은 새 언약을 적용받아요.

그럼 새로운 피조물은 새 언약으로 살아야 합니다.

 

옛 언약으로 살면 안 되어요.

그건 망령된 행실이에요.

그럼 예수가 헛 죽은 것이 되어요.

 

새 언약에서 죄란? 옛 언약을 붙잡는 것입니다.

옛 언약이 뭔가요?

율법 지킴이에요.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뭐라고 했나요?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한 것은 우리 조상들의 망령된 행실에서 구원했다고 했잖아요.

망령된 행실이 뭐라고 했나요?

조상들의 유전 신앙이라고 했잖아요.

조상들이 유전 신앙이란? 바로 율법 지킴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은 내가 뭘 하여야 한다는 신앙이라고 한다면!

신약은 내가 무엇을 믿을까 의 신앙이에요.

행함에서 믿음으로 바뀐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내가 책임질 것이 있었어요.

그러나 신약에서는 내가 책임질 것이 없어요.

예수님이 대신 책임져 주세요.

이걸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걸 믿으라고 성령을 보내주신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성도는 이 믿음으로 살아가요.

그러므로 성령을 받은 성도는 예수님이 행한 것을 신앙으로 내어 놓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이러한 일을 하셨습니다” 라고 합니다.

이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천국에서 구원받은 성도들이 어린 양에게 세세토록 찬양을 하지요.

 

이게 창세전 언약의 피날레에요.

창세전 언약의 정점에는 그 피로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이 있어요.

그리고 살아난 자들은 그 은혜를 찬미하는 것으로 그림이 마감이 되는 것입니다.

 

찬미란? 감사하는 것입니다.

 

교회에 봉사하는 것도 찬미이고!

은혜에 감사하여 연보하는 것도 찬미이고!

구제와 형제 사랑하는 것도 찬미에요.

그러므로 감사로 행하는 모든 것이 찬미의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면 그 은혜가 너무도 커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이러한 현상들이 일어났어요.

너무 기쁘고 감사하여서 날마다 모이고 교회에다 연보하고 떡을 떼면서 서로 섬기고 사랑했어요.

천국 생활을 한 것입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이러한 마음이 있는가 확인해 보세요.

또한 이러한 일들을 감사함으로 행하고 있는지 달아 보세요.

 

교회로 모이는 것이 기쁘고!

은혜로 봉사하고 충성하며!

구원 받음에 감사함으로 연보하고!

천국백성 된 것이 기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 점검해 보세요.

예수가 그 안에 있는 자는 기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복음 안다고 말하지 말고 이러한 것이 내 안에서 감사로 기쁨으로 나타나는지를 보세요.

이러한 것이 없다면 당신은 잎만 무성하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에요.

물 없는 샘이고, 비 없는 구름이에요.

거짓이고 귀신의 믿음이에요.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억지로 하려고 하지 마세요.

그럼 아나니아 삽비라가 되어요.

중요한 것은 복음이 진정으로 나로 하여금 세상의 가치를 초월케 하느냐 입니다.

세상의 가치가 초월이 될 때 찬미의 제사가 드려지게 되어요.

 

찬미의 제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피로서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이 진정으로 믿어지는 성도들에게는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믿어지는 성도는 무슨 일을 행하여도 은혜로 해요.

과거에는 법으로 했지만 이제는 그 은혜가 너무도 크고 감사하기 때문에 기쁨으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찬미를 하게 하시려고 예수님이 지금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가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율법으로부터 빼내시려고 자기 몸을 율법의 대속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출애굽은 율법으로부터 빠져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그 율법으로부터 출애굽 시키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그 유월절에 맞추어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창세전 언약이라는 시나리오의 정한 때인 유월절에 맞추어서 예수님을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서 희생 제물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으로 삼아 버린 것입니다.

 

유대인의 왕에 대하여서는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창세전에 하신 그 언약을 예수님께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역사 속에서 성취하신 것을 봅니다. 또한 믿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실체라는 것을 깨닫고 믿어지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유월절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피를 바르고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이기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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