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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45강.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 (계 17:1-7)

by coroa 2021. 7. 30.

 

 

45강.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 (계 17:1-7)

-.정낙원 목사

 

 

 

계시록 17-18장은 음녀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음녀의 심판은 일곱 대접 심판 속에 포함이 된 것입니다.

16장에서 보여준 큰 성 바벨론의 심판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 16장을 강해 할 때 큰 성 바벨론의 심판 모습을 보았습니다.

큰 성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또 중수가 한 달란트 즉 약 60kg이나 되는 우박이 쏟아져서 사람들을 박제 하듯 하고 세상을 가루로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재앙들은 구약 시대 애굽에 내려진 열 가지 재앙을 담고 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보호 하시고 출 애굽을 시키셨습니다.

이와 같이 종말에도 재앙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보호 하시고 출 세상을 시키실 것입니다.



일곱 대접 심판은 이 세상을 끝장내는 심판입니다.

그러므로 음녀의 모습은 종말에 하나님을 배도하고 타락한 교회와 이 세상 모두를 동시적인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음녀란? 어원적인 의미로는 다른 남자와 간음하는 여자를 말합니다.

하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사는 모든 자들을 말합니다.

여기엔 교회와 세상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음녀를 타락한 교회와 동시적으로 이 세상 전체를 동시적으로 심판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신 말씀입니다.

그럼 음녀도 곧 교회에 관한 이야기란 뜻입니다.

일차적으로는 교회 이야기로 보아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1절에는 “큰 음녀”가 있고,

5절에는 “땅의 음녀들”이 있습니다.



큰 음녀가 땅의 임금들 즉 땅의 음녀들이 어미라고 하는 걸 보아서 큰 음녀는 국가 권력을 상징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이 쓰여질 그 당시적 배경으로 보면 큰 음녀는 온 세계를 식민지화 하여서 다스리고 있는 패권 국가인 로마라 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땅의 임금들은 로마의 황제의 비호 아래서 호가호위하며 살던 속국의 왕들을 말하고 땅의 음녀들은 로마의 시녀로 전락한 종교 집단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는 국가적인 개념이고, 땅의 음녀들은 그를 추종하는 각 나라에 흩어져 있는 종교적인 세력들을 의미합니다.



오늘은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이 누구인지 이 시대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살펴보기로 합시다.



요한계시록은 구약을 배경으로 써 있습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용어들은 구약적 배경을 이해하고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음녀도 구약적 배경을 깔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큰 음녀를 비밀이라고 하면서 큰 바벨론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바벨론은 남쪽 유다를 멸망시킨 나라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은 이미 망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큰 음녀를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큰 음녀가 바벨론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포로로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 상황으로 로마는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큰 음녀를 드러내고 놓고 로마라 할 수가 없으니까 비밀로 바벨론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종말에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증거하는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나타납니다.



누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가 하면 항상 형제라고 하는 자들이 핍박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을 자기 동족들이 죽인 것처럼 종말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들을 교회라는 이름을 가진 자들이 죽이게 됩니다.



왜 죽이는가 하면 마치 예수님이 유대교 율법신앙에 동조하지 않아서 죽임을 당하였듯이 종말에도 참 성도들이 큰 음녀인 타락한 교회의 인본주의 신앙과 혼합주의 가르침에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형제 싸움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음녀가 누구인지 그 의미부터 살펴봅시다.



구약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남편으로 말하고 이스라엘은 아내로 묘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이 우상 숭배를 하면 음행하였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 하는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 하셨습니다.



그것이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붙여서 완전히 멸망시키는 것으로 나타났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하였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여기서 잘 보면 똑 같이 불순종하고 타락하였는데 북쪽 이스라엘은 완전히 흔적없이 멸망을 시켜 버리고 남쪽 유다는 이방 나라에 팔려가서 70년 종살이 하게 하였다가 다시 돌아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북쪽 이스라엘과 남쪽 유다를 달리 대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겉으로는 동일한 야곱의 12 아들로서 같은 이스라엘인 것 같지만 하나님은 라헬의 후손과 레아와 몸종의 후손들을 달리 대우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기에 영적 이스라엘과 육적 이스라엘의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잘 이해하여야 하는 것은,

이스라엘 속에 이스마엘처럼 육으로 난 자가 있고, 이삭처럼 약속으로 난 자가 있습니다.

육적 이스라엘이 있고, 영적 이스라엘이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아담의 집안에 가인과 아벨이 있었듯이,

아브라함 집안에도 이스마엘과 이삭이 있고,

이삭의 집안에도 에서와 야곱이 있고,

야곱의 집안에도 야곱의 사랑을 입은 라헬이 낳은 자녀와 사랑을 입지 않은 레아와 몸종들이 낳은 자식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나중에 국가로 나타날 때는 배도하여 완전히 멸망당한 북쪽 이스라엘과 타락했다가 하나님으로부터 징벌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온 남쪽 유다가 있습니다.



하나는 육에 속한 자이고,

다른 하나는 영에 속한 자들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가지고 신약에 일어날 표면적 교회와 이면적 교회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을 기능적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대하는 자가 있고,

법으로 대하는 자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을 달리 대하십니다.



육에 속한 자들은 법으로 대하였고,

영에 속한 자들은 은혜로 대하셨어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동일한 죄를 지었는데도 어떤 자들은 저주를 받아서 죽고,

어떤 자들은 징계를 당하고 다시 회복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치 광야에서 모세를 대적하던 고라 일당처럼 땅이 갈라져서 지옥으로 떨어진 자들이 있는가 하면, 동일하게 모세를 원망하고 불평하다가 불 뱀에 물려서 죽어가다가도 놋 뱀으로 살려낸 자들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똑 같이 죄를 지었는데도 하나는 법으로 대하여서 저주해 버리고, 다른 하나는 은혜로 대하여서 징계하고 돌이키게 하는 일들을 하십니다.

은혜로 대하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법으로 대하는 자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입고 사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살아가는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거기서 거기에요.

신자라고 착하게 살고, 불신자라고 악하게 살지 않아요.

둘 다 죄 짓고 사는 것은 오십보 백보입니다.



신자도 죄 짓고 불신자도 죄 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신자와 불신자를 달리 대하십니다.

신자는 은혜로 대하시고, 불신자는 법으로 대하세요.

이게 비밀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불신자들 앞에서 미안한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자신은 모두에게 사랑의 빚진 자라고 하였듯이 우리도 말 할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천국 가는 그 이면에는 다른 하나는 지옥으로 가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난 천국 간다” 라고 마냥 좋아할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물론 구원 받음은 감사하고 찬송하여야 해요.

하지만 불신자들 앞에서는 그러면 안 되어요.



나만 구원 받아서 미안하다는 자세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그들에게 나누어주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도는 세상 속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뿜어내는 자로 살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구원은 자랑하는게 아닙니다.

감사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조금 힘들게 살아도 불평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욕을 먹어도 같이 욕할 수가 없고,

때린다고 같이 맞받아서 때릴 수가 없는 겁니다.

왜냐하면, 우린 구원을 받았고 저희는 구원 받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제들로부터 버려짐을 당하여도 그들을 욕하고 불평 할 수가 없어요.

이는 자신은 아버지로부터 엄청난 편애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형제들은 싸구려 옷을 입는데, 자기는 색동옷을 입었어요.

과장해서 말하면 형제들은 보리밥을 먹는데 요셉은 흰 쌀밥을 먹었어요.

그래서 요셉은 자기를 버린 형제들을 용서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왜 이러한 말을 하느냐 하면 음녀의 심판 속에서도 구원 받는 성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교회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겉으로 나타난 모습은 타락한 음녀의 모습이지만 모두가 다 저주의 심판을 받는 것이 아니고 그 속에서 구원 받는 무리들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17-18장은 음녀의 심판이야기입니다.

타락한 교회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도 담겨 있는 것입니다.



18장을 보세요.



계 18:2-4=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교회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어요.

그런데 그 속에 자기 백성이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이건 하나님이 끄집어내어 준다는 말입니다.

마치 소돔고모라가 멸망 할 때 하나님이 롯을 끌어냈듯이 종말에도 일곱 대접의 심판 속에서도 은혜로 끄집어냄을 당하는 성도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이 엘리야 시대의 남은 자들처럼 은혜로 남겨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위로가 되고 소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17-18장의 음녀의 심판 속에서도 두 가지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일차적으로는 하나님을 배도하고 타락한 교회의 심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이건 저주의 심판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그치지 말고 우리의 신앙 이야기로도 보아야 합니다.



적용면에서는 모든 성경은 우리의 신앙 이야기입니다.

우리도 음녀처럼 살고 있어요.

그러므로 음녀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타락한 음녀를 가지고 우리에게 “너 조심해” 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상황적으로는 예수님이 재림 직전에 나타날 타락한 교회인 적그리스도와 그 세력을 말해주고 있어요.

그래서 큰 음녀를 큰 성이라고 하면서 어떤 장소라고 하며 또한 바벨론이라고 하면서 국가적인 세력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용면에서는 영적으로 우리의 신앙으로 이해하여야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증인들을 박해하는 세력들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그럼 우리는 음녀의 심판 이야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는 음성으로 들어야 해요.

그리하여 가던 길에서 돌이키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음녀는 땅에 것으로 사치하고 연락하고 살았어요.

우리도 그러고 있잖아요.



그럼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어이쿠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경고하고 있구나! 하고 세상 것으로 사치하고 연락하던 것으로부터 돌이키고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야~! 내가 이래서 안 되겠구나!

정신 차려야지! 하고 예수님의 재림을 생각하고 땅에 가치로 살지 말고 하늘에 가치로 살아가는 것으로 돌이켜야 하는 것입니다.



이걸 18장 4절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이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들이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이 육에 속한 자들을 두들겨 패면서, 영에 속한 자들에게 빨리 도망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일한 심판도 육에 속한 자는 저주의 재앙이 되지만, 영에 속한 자들에게는 돌이키게 하는 형벌적 징계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설명할게요.



남편은 아내가 음식을 못해도 이해하고,

살림을 잘 못해도 이해하고,

일을 못해도 이해해요.



그러나 한 가지 용서하지 못하는 것은 외간 남자와 사통하는 것입니다.

내 여자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긴 것을 보면 남자는 돌아버려요.

질투심으로 앙갚음을 합니다.



사랑의 이면에는 질투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정의하기를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도 질투의 하나님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질투를 배경에 깔고 있어요.



질투 없는 사랑은 없어요.

사랑과 질투는 서로 짝이에요.

사랑하기 때문에 질투가 일어나요.



그러니까 질투도 사랑의 한 속성인 것입니다.

질투가 강하다는 것은 그만큼 사랑이 깊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깊으니까 질투도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을 보세요.



하나님이 누구랑 싸우던가요?

이스라엘입니다.

사사기를 보세요.

사사시대가 대략 400년이에요.

그런데 400년 내내 하나님과 전쟁을 하는 역사였어요.



언제 싸웁니까?

타락할 때에요.

이방신들을 쫓아 갈 때에요.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이 하나님이 잘못하면 버리지 않고 두들겨 패면서 끝까지 간섭한다는 것입니다.

이건 죄인 입장에서는 축복이면서 저주에요.

잘못해도 버려지지 않으니까 축복이지만,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간섭하니까 저주인 겁니다.

지독한 사랑이고, 지독한 질투인 것입니다.



신앙의 타락이란? 간음과 같아요.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것은 간음이에요.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음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이스라엘의 타락에 역사에요.

하나님의 질투로 인하여 멸망당하는 역사에요.

그게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완전히 멸망을 당하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종살이 하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쪽 이스라엘은 멸망을 받았고 남쪽 유다는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쪽 유다의 멸망은 저주의 개념이 아니고 언약에 의한 징계를 말하는 것입니다.

말을 안 들으니까 교도소로 보내서 정신 차리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자식들이 말은 안 들으면 때리면서 온갖 욕을 하는 것과 같아요.

나가 죽으라느니,

호적에서 판다느니,

이젠 부모 자식 간에 인연을 끊자고 하는 것과 같아요.



이건 버릴 수가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반어법으로 그만큼 사랑한다는 말이에요.

아이들은 부모의 이 심정을 몰라요.

나중에 시집가고 장가가서 자기 자식을 낳아서 키우면서 역설적으로 말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구약 이스라엘에게 하신 저주는 저주가 아니고 버릴 수가 없는 사랑을 반어법으로 하신 말씀이에요.

여기서 이스라엘이란 북쪽과 남쪽 구분하지 않고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야곱의 12 아들로 형성된 이스라엘 전체를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 조건으로 하나님 백성이 된 것이 아니에요.

아브라함 언약 때문에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도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세운 겁니다.

그래서 아브람 언약은 하나님이 지켜내는 것입니다.

그럼 이스라엘을 존재케 하는 아브람 언약을 어떤 식으로 채결하였는지를 살펴봅시다.



창세기 15장입니다.



창 15:1-21=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 4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가라사대 하늘을 우러러 뭇 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7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 8 그가 가로되 주 여호와여 내가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9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를 위하여 삼년 된 암소와, 삼년 된 암염소와, 삼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 10 아브람이 그 모든 것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아니하였으며 11 솔개가 그 사체위에 내릴 때에는 아브람이 쫓았더라 12 해질 때에 아브람이 깊이 잠든 중에 캄캄함이 임하므로 심히 두려워하더니 13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18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19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20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21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이 아브람을 찾아 온 것입니다.

그리고 언약을 맺습니다.

언약의 내용은 땅과 후손에 관한 것입니다.



땅이란? 육적으로는 가나안 땅을 말하지만 영적으로 천국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후손은 육적 이스라엘을 말하지만, 영적으로는 예수 안에서 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언약을 하나님이 홀로 이루어 내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서 쪼갠 제물 사이로 하나님이 홀로 지나가신 것입니다.



왜 쪼갠 고기 사이로 하나님 홀로 지나갑니까?

이는 아브람과 한 언약을 여호와 하나님이 자기 목숨을 걸고 지켜내시겠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되면 아브람 후손들은 하나님의 열심으로 구원을 이루어내신다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하시는가 하면 창세전 언약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4-7=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창세전에 하나님이 어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어떤 계획입니까?

자기 백성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겁니다.



어떤 식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나요?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하십니다.

이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이 살아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살아난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이들이 천국에서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창세전에 하나님이 계획한 일입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람 언약도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해서 나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홀로 자기 목숨을 걸고 지켜내시는 것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을 할 때 온 애굽에 장자들이 죽어지는 재앙 속에서도 이스라엘은 어린 양이 대신 죽어줌으로서 이스라엘의 장자들이 살아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하여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가에서 비파와 수금으로 새 노래를 부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요한계시록에서는 구원 받은 성도들이 천상의 유리 바닷가에 서서 부르는 새 노래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계 15:1-4=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하나님이 사도 요한에게 마지막 재앙을 담고 있는 일곱 천사의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이건 이 세상의 종말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유리 바닷가에서 모세의 노래 곧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 것입니다.



왜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라고 합니까?

이는 모세를 통하여 일어난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은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는 것과 같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세 시대에는 어린 양의 피로 죽음으로부터 이겼고,

종말에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 짐승으로부터 이기고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의 노래이고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모세의 노래와 어린 양의 노래를 누가 부르는가요?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입니다.



이것은 음녀로부터 이기고 벗어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멸망 속에서도 구원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18장에서는 음녀로부터 나오는 자들이 있음을 증거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갔다가 돌아온 자들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구약 이스라엘을 바벨론에게 멸망시켰나요?

이는 언약을 어겼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28장의 모세 언약을 보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아 이방에 팔리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저주는 형벌적 의미의 징계를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멸망시키기 전에 예레미야를 보내서 너희가 이방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모세 언약에 의한 것이니까 순순히 잡혀 가라고 합니다.

가서 정한 때까지 벌을 순순히 받으라고 합니다.

그 기간이 70년입니다.



70년 후에 해방 시켜서 다시 고토로 돌아오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구약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멸망을 시키고 종살이 시킨 것은 형벌인 것입니다.

이건 바벨론이라는 교도소에 가두었다가 만기 출소를 시키는 것과 같습니다.

이 모습은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하다가 출애굽 하는 것과 같습니다.



다니엘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가서 예레미야 서책을 읽다가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다름 아닌 이스라엘의 해방에 관한 내용입니다.

지금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은 70년이 되면 해방이 됩니다.



그런데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70 이레가 되면 이스라엘이 해방 받는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육적 이스라엘의 해방은 예표적인 것에 불과하고 실제 하나님이 작정한 해방은 온 세상의 영적 이스라엘인 성도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70년 종살이 후 해방이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 올 때 자신은 돌아오지 않고 바벨론에서 머물러 살다가 임종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70년 종살이 하다가 해방 받는 것은 예표적인 것이므로 예루살렘에 돌아가나 안가나 큰 의미가 없기 때문에 돌아오지 않고 이방나라에서 산 것입니다.



이는 영적으로 예루살렘이나 이방나라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에 있으나 이방 나라에 있으나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육적 이스라엘도 예수로 구원 받고 이방인도 예수로 구원을 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이스라엘 땅에 있든 이방 나라에 있든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언약의 후손들은 반드시 구원을 해 내시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을 이걸 안 것입니다.

장소적 예루살렘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그래서 모두가 해방 되어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도 다니엘은 이방 나라에 머물렀던 것입니다.

다니엘은 하나님께서는 언약대로 일하신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한 것입니다.

지금도 언약을 알면 다니엘처럼 어떤 환경에서도 평안으로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민족입니다.

언약이 그들을 이끌고 다닙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아브라함과 언약한 그 정한 때까지 애굽에서 종살이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하신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하여 가나안에서 살던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기근이 들게 하여서 애굽으로 이주케 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 한 것은 언약에 의하여 일어난 것이며 그 언약의 때가 차면 해방이 될 것입니다.



아브람 언약은 정한 때가 있습니다.

그 때가 되면 하나님은 종에서 해방을 시켜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킬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을 권념하셨더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장을 봅시다.



출 2:23-25= “여러 해 후에 애굽 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그 언약을 기억하사” 라고 하지요.

이는 언약하였던 정한 때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권념하셨더라고 하는 겁니다.



권념이란? 기억하여서 일을 진행하신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구원도 이와 같습니다.

창세전에 언약하신 그 때가 되어서 구원을 이루어내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 역사도 정한 때가 있습니다.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시작하였으면 끝이 있어야 하겠지요.

끝을 내려면 끝을 내려는 당위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로 창조가 된 세상이 “하나님이 보시기에 싫어졌더라” 는 것으로 변해 있어야 해요.

하나님이 꼴도 보기 싫어져야 해요.

그래야 끝장을 내지요.



그 모습이 바로 교회의 타락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교회가 타락하지 않으면 심판하지 않아요.

타락하기 때문에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의 심판은 반드시 교회의 타락이 선행 되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 교회를 타락시키나요?

마귀의 세력입니다.

마귀의 세력이 교회에 들어와서 타락케 해야 합니다.

어떻게 교회를 타락케 하는가 하면 땅에 것으로 타락케 만들어요.



교회는 하늘에 가치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땅에 것으로 미혹하여서 교인들로 하여금 땅에 것을 쫓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게 오늘 본문에서 음녀가 부요와 사치로 세상에 푹 빠져서 왕 노릇하면서 사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부요로부터 와요.



신명기 32장을 봅시다.



신 32:13-18=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기름진 것으로 먹이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수룬이 먹어 배부르고 살이 찌니까 여호와를 발로 찼다고 합니다.

자기를 구원한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들이 여호와께 제사하지 않고 마귀에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게 간음이고 음행입니다.

음녀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질투하여 그들을 진노하신 겁니다.

이게 바로 바벨론에 멸망하고 포로로 잡혀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신약의 교회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럼 구약 이스라엘을 보면 신약의 교회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다루어가시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 때의 모습 속에는 그 시대상이 담겨져 있어요.

또한 교회의 영적 상태도 알 수가 있습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하나님의 산에서 양 떼를 치던 모세가 애굽을 방문한 것은 예수님이 이 세상에 방문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출애굽 속에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모습이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이나,

예수님 초림 때 육적 이스라엘에서 영적 이스라엘로 출 이스라엘 하는 것이나,

예수님 재림 때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출 세상 하는 것이나 동일해요.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대목은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방문 하실 때는 항상 극심하게 타락 할 때라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어두울 때라는 것입니다.

최초로 하나님이 이 세상을 방문하는 사건이 창세기 1장에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을 봅시다.



창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십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타락의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속에 있습니다.



이건 도무지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라 볼 수 없을 정도입니다.

뒤죽박죽되어 있습니다.

어둠이고 무질서합니다.

이건 타락을 말해요.



이럴 때 하나님 말씀이 ‘가라사대’ 하면서 떨어집니다.

하나님 말씀이 어둠 속에서 빛을 불러냅니다.

그러자 흑암 속에서 빛이 툭하고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어둠의 세력이 빛을 붙잡고 있다가 내어 놓은 것입니다.



이건 무덤이 열리는 것과 같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어 놓는 것과 같습니다.

이게 바로 출애굽의 모습입니다.



애굽을 일컬어 어둠의 나라라고 합니다.

어둠의 나라에 언약의 후손인 빛의 아들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서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내라고 합니다.



모세가 애굽의 바로에게 가서 이스라엘을 내어 놓으라고 한 것은 창세기 1장 3절에 하나님의 말씀이 흑암에게 빛을 내어 놓으라고 한 것과 같아요.

영적 의미는 동일해요.



그러니까 창세기 1장 3절의 하나님의 말씀이 흑암에 방문하여 빛을 불러낸 것이나,

모세가 애굽에서 고역으로 인하여 신음하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한 것이나 영적으로 같아요.

이건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 지진이 일어나고 바위가 터지고 무덤이 열리고 자는 자들이 일어나서 거룩한 성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방문 할 때의 모습이 흑암 중에 있을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어둠에 속한 음녀들 속에서 빛에 아들들을 불러내서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빼내실 것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을 방문 할 때는 항상 영적으로 흑암이 깊음 중에 있을 때입니다.

즉 타락의 절정을 이룰 때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단의 세력으로부터 우겨쌈을 당하고 있을 때입니다.



예수님 초림 때 구약 교회는 타락의 극치를 달리고 있었습니다.

신앙이 외식으로 가득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정의한 구약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모두가 양을 잡아먹는 이리 떼들이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빛을 본다고 하였던 것입니다.

마치 창세기 1장 2-3절의 모습과 같은 겁니다.

예수님은 초림 때 율법주의라는 흑암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약 교회 속에서 빛을 불러낸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12 제자로 나타났습니다.

12 제자는 구약의 12 지파를 상징합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이스라엘이 생겨난 것입니다.

이제 12 제자를 통해서 신약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구원을 받은 새로운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이를 영적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창세전에 언약한 구원 받기로 한 그 무리들인 것입니다.



성경을 연대기 적으로 말하면 이 세상 역사가 2000년 주기로 전환점을 맞이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아담부터 아브라함까지 약 2000년이라고 하고,

아브라함부터 예수님 초림 때까지를 2000년이라고 하고,

예수님 초림부터 예수님 재림 때까지를 2000년이라고 합니다.



물론 아구에 꽉 맞춘 연대기는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큰 틀에서 보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이를 토대로 말하면 지금 이 시대가 예수님의 재림 때가 임박한 때입니다.

그만큼 이 시대 영적 상황으로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웠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타락은 곧 세상 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시대 교회가 어둠의 세력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 비유를 보면 신랑이 올 때 모두가 잠을 자고 있습니다.

교회들이 영적으로 쿨쿨 잠자고 있습니다.



잠을 잔다는 것은 영적 어둠을 말하고 신앙의 타락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초림도 영적으로 어둠일 때이고 예수님의 재림 때도 영적으로 어둠일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 구약 교회는 강도의 굴혈이었지만,

예수님의 재림 때는 신약의 교회는 음녀가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짝하여서 세상 것으로 푹 빠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타락한 교회를 세상의 부와 사치로 치렁치렁 몸을 감고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여 있는 음녀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봅시다.



계 17:1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중 하나가 음녀가 받아야 하는 심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앞선 16장에서 보여준 심판을 확대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16장에서는 큰 틀에서 온 세상의 심판을 말한다고 한다면,

17-18장에서는 온 세상 속의 타락한 교회의 심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음녀는 타락한 교회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음녀가 아니고 “큰 음녀”라고 합니다.

여기서 “크다” 라는 말은 온 세상을 장악하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큰 세력”이라는 말입니다.

이건 5절을 보면 잘 알 수가 있습니다.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1절은 “큰 음녀”가 나오고,

5절에서는 “땅의 음녀들”이 나옵니다.

큰 음녀를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고 합니다.



그래서 큰 음녀가 많은 물 위에 앉았다고 하는 겁니다.

많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입니다.



15절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큰 음녀는 단수이고,

땅의 음녀들은 복수입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가 수많은 음녀들을 품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음녀를 큰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은 나라를 이루고 있다는 뜻입니다.



큰 음녀가 어디에 있나요?

많은 물 위에 앉아 있지요.

많은 물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큰 음녀는 온 세상을 다 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온 세상의 이념과 사상과 종교를 다 아우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세상의 모든 종교를 다 통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는 세상의 모든 종교를 품은 집단이면서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이게 누굴까요?

이 시대 세계 종교 통합을 외치고 있는 WCC와 같은 적그리스도 세력이면서 국가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나라가 어디인가요?

로마 카톨릭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단수(單數)로서 “큰 음녀”이고,

그의 사상을 동조하고 따르는 자들은 복수(複數)로서의 “땅의 음녀들”인 것입니다.

이 시대 로마 카톨릭은 온 세상 종교를 다 품은 큰 음녀 노릇을 하고 있어요.

어째서 큰 음녀가 로마 카톨릭인지에 대하여서는 다음 시간 일곱 머리 열 뿔을 할 때 상세하게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간단하게만 짚어보고 갑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슨 일을 하나요?



계 17:6절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계 18:24절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 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습니다.

이는 성도들을 죽이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증거하는 성도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피가 이 성 중에 모였다고 하지요.

이 성은 큰 바벨론을 말하는데 예수님 초림 식으로 말하면 타락한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셔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바라가의 아들 사가랴의 피가 이 성 중에서 호소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재림 때는 큰 음녀가 있는 성에 성도들의 피가 가득합니다.

이는 성도들을 핍박하는 국가와 단체란 뜻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 초림 때 타락한 구약 교회인 예루살렘처럼 종말의 음녀도 타락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종말의 타락한 교회인 음녀는 예수님의 십자가로 세워진 교회를 핍박하는 세력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음녀를 이스라엘을 핍박하고 멸망시킨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표지는 예수님의 십자가입니다.

참 된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의롭게 되는 것은 증거합니다.

그런데 큰 음녀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은 예수의 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을 증거하는 성도들을 죽이고 있습니다.



이는 곧 큰 음녀와 그 세력들은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WCC는 모든 종교에는 구원이 있다고 합니다.

카톨릭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과 WCC의 사상에 동조하는 세력들은 모두가 땅의 음녀들입니다.

이들은 종교 다원주의를 외치는 자들입니다.

카톨릭은 종교 다원주의를 외치고 있습니다.

WCC와 같은 적그리스도 세력은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카톨릭의 구원관은 모든 종교의 구원관과 일치합니다.



여기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름하여 성도들입니다.

교회 안에 참 성도들이 그건 아니라고 합니다.

구원의 길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큰 음녀의 사상을 동조하고 따르는 많은 땅의 음녀들이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성도들을 죽이게 되는 것입니다.

가짜 교회가 진짜 교회를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육적 신자가 영적 성도를 핍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2-3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보면 교회마다 참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사단의 회”라고 합니다.

“자칭 유대인”이라고도 합니다.



자칭 유대인이란? 유대인이 아니면서 유대인인 척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가 아니면서 성도인 척 한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아니면서 교회인 척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자들을 일컬어 “양의 탈을 쓴 이리” 라고 합니다.

겉은 양인데 그 속은 이리입니다.

겉모습은 교회인데 그 속은 마귀입니다.

이걸 광명의 천사로 위장한 사단의 종이라고 합니다.



큰 음녀와 많은 음녀들은 겉모습은 교회이지만 사단의 회인 겁니다.

이 시대 겉모습은 교회인데 그 속을 들여다보면 각종 우상으로 가득한 교회가 어디인가요?

카톨릭이고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교회들입니다.



적그리스도란?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리스도를 대적할까요?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죽으심을 헛되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왜 죽었습니까?

자기 백성들의 죄 때문입니다.

자기 백성의 어떤 죄입니까?

예수님 초림 때 유대인의 죄는 인간의 행함으로 의로워지려는 율법 신앙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기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율법은 죄를 고발하는 것입니다.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율법 앞에 서면 죽어야 하는 죄인이라는 것을 고발당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것은 너희는 다 죽어야 할 자들이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여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는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을 지켜야 하는 의미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가 율법대로 살지 못한 죄값을 대신하여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걸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6장을 봅시다.



마 26:26-28= “저희가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을 주시며 가라사대 받아 먹으라 이것이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 또 잔을 가지사 사례하시고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눅 22:19-20= “또 떡을 가져 사례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며 가라사대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 20 저녁 먹은 후에 잔도 이와 같이 하여 가라사대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의미를 떡과 포도주로 가지고 설명을 합니다.

자신이 십자가에서 죽는 것은 자기 백성들이 죄사함을 얻게 하려고 하는 죽음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이 죄가 사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걸 “새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이것은 옛 언약에서는 짐승의 피로 죄사함이 주어졌지만, 이제는 예수님의 피로 죄사함이 주어진다는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새 언약의 피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 피로 하나님과 새로운 언약을 맺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심판하십니다.

누구든지 예수그리스도의 피를 믿는 자는 죄 없다고 여기심을 받고 살게 되지만, 예수의 피로 죄사함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런데 큰 음녀와 땅의 음녀들은 예수의 피로 죄사함이 주어진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선행으로 구원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큰 음녀의 세력들이 오직 예수의 피로서만 구원이 주어진다고 말하는 성도들을 죽이고 예수를 증거하는 증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우리가 행할 의는 없습니다.

오로지 예수그리스도가 이루신 의를 믿을 뿐입니다.

새 언약 안에서는 우리 의로 사는 것이 아니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삽니다.

이걸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이 너희들 율법 지켰어! 안 지켰어! 라고 닦달을 하였지만,

신약에서는 너 예수 믿어! 안 믿어! 를 묻고 있습니다.

신약에서는 예수 믿으면 율법을 지킨 것이 되고, 예수 안 믿으면 율법을 안 지킨 것이 됩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따라가면 예수님이 나옵니다.

그래서 새 언약 하에서는 예수 믿는 것을 의로 여기고 율법을 완성한 자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믿어야 하는 믿음의 대상으로 두지 않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본받아야 할 대상으로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에서는 선행이 많은 자들은 성인으로 추대하여서 신의 자리에 앉히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인들에게 기도를 한다는 것은 곧 그들이 신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카톨릭의 사상는 불교의 사상처럼 인간이 신이 되는 것으로 가르쳐지고 있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예수를 믿는 믿음의 자리에 인간의 선행을 두고 있습니다.



예수 믿음에 방점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알다시피 율법(하나님 말씀)은 예수를 믿으라고 주신 것인데도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하나님 말씀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갈라디안 주의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의 피에 인간의 율법 지킴을 옳은 신앙이라고 가르치는 갈라디안 주의식의 신앙을 단호하게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이라고 했습니다.

누구든지 이러한 것을 가르치는 자는 하늘로서 온 천사라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는 것은 구약식 신앙입니다.

신약식 신앙은 예수님이 우리 대신에 하나님 말씀을 다 지키셨으니 우리는 그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삽니다 라는 것입니다.



결국 신앙의 싸움은 예수를 믿을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 말씀대로 살 것인가? 의 싸움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참 성도들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고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선이 나올 수가 없다고 하면서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만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라고 합니다.



여기에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예수를 본받자고 합니다.

예수를 메시야로 보지 않고 본받을 스승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의 죽음을 자기 백성들의 죄를 위하여 죽은 대속의 죽음이 아니고 부패한 정치권력과 싸우다가 세상의 권력자들로부터 죽임을 당한 사회 개혁자의 죽음으로 치부해 버린 것입니다.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예수를 사회정의를 구현하는 지도자로 보는 겁니다.

그래서 교회는 약자들 편에 서서 불의와 대항하여 좋은 사회를 만들어야 하는 사회정의를 외치는 집단이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그 바탕에는 카톨릭의 교리인 인간 존엄 사상인 인본주의가 깔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신교 안에서 교회정의를 부르짖는 자들과 카톨릭에서 좋은 세상 만들자고 하는 자들 간에 연대가 이루어지고 연합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결국에는 WCC와 같이 종교 통합하는 집단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음녀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피로서만 의롭게 된다고 하는 자들을 핍박함으로서 예수님에게 속한 교회가 아니고 마귀에게 속한 교회임을 스스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이히 여기는 것입니다.

어떻게 교회라는 이름으로 예수의 증인들인 성도들을 죽일 수 있느냐? 라는 것입니다.

이건 타락이고 음행인 것입니다.



큰 음녀에게 이름이 있습니다.



5절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그 이마에 “큰 바벨론”이라고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소속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도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이는 어린 양에게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음녀의 이마에는 바벨론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이는 “바벨론에게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바벨”이라는 말은 “하늘의 문” 또는 “신의 문”이라는 뜻이고,

“바벨론”은 “혼란케 한다” “어지럽히다” “미혹케 한다” 라는 뜻입니다.

직역해서 의인화 하면 “하나님 나라를 들어가는 길을 어지럽히는 무리”라는 뜻입니다.



십자가 도를 가리는 세력이라는 뜻입니다.

신앙을 타락케 하고 하나님을 배도케 한다는 뜻입니다.

무엇으로 타락케 하고 배도케 할까요?



이것이 최초로 인간의 힘으로 하늘에 닿고자 하는 바벨탑 사건으로 나타났습니다.

바벨탑이 세워진 곳은 함 자손으로서 최초의 영웅인 니므롯이 사는 시날 평지입니다.

바벨이나 바벨론은 모두가 바벨탑에서 기원된 이름입니다.



알다시피 함은 노아의 아들로서 저주 받은 민족의 조상입니다.

함은 은혜를 입고서도 그 은혜를 망각한 배도자입니다.

함은 최초의 배도한 적그리스도의 모형으로 나타난 인물입니다.



성경은 항상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음에도 배도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종말에도 배도하는 자를 적그리스도라고 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라 함은 그리스도를 대적한다는 뜻입니다.



홍수 후에 흩어진 인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져 버리고 하나로 뭉쳐서 인간의 힘으로 하늘나라에 올라가고자 시도를 한 것이 바벨탑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바벨론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지칭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배도하고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모두가 음녀입니다.



큰 음녀는 단수적인 의미로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의 본산이고,

땅의 음녀들은 복수적인 의미에서 적그리스도 세력들을 따르는 타락한 거짓선지자들과 그 교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큰 음녀를 의인화 하면 적그리스도이고, 땅의 음녀들은 거짓선지자들입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는 큰 음녀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말하고, 땅의 음녀들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으로 말합니다.



인간들이 언제 하나님을 배도하는가요?

힘을 가질 때입니다.

예수 밖에 있는 자들은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합니다.

이게 바벨 사상입니다.

이걸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인본주의란? 인간의 가능성을 바탕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의나 인간의 힘이나 인간의 지혜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 인간의 가능성을 바탕으로 하게 되면 바벨탑을 쌓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게 예수님의 초림 당시에 율법 신앙으로 나타났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고자 하였습니다.

노아 홍수 후의 바벨탑 신앙이 예수님 초림 당시에는 율법주의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인간의 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를 깨트려버렸습니다.

이건 마치 노아 홍수 후에 인간들이 하늘에 닿고자 하여서 쌓은 바벨탑을 하나님이 강림하여서 허물어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러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큰 성 바벨론과 음녀는 교회 안에 나타나는 인본주의 신앙을 말하고 있음이 됩니다.



성경은 교회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구약 교회를 하나님의 신부라고 하였고, 신약 교회를 예수그리스도의 신부라고 합니다.

교회가 하나님의 신부로서 여자입니다.

그럼 성경이 말하는 음녀란 타락한 교회라는 것을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럼 음녀가 무엇으로 치장하고 어떤 모습으로 있는지 살펴봅시다.



3-4=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 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성령이 요한은 광야로 데리고 나가서 음녀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마치 산꼭대기로 데리고 가서 산 아래를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산 위에서 내려다보니까 도시의 더러움들이 한 눈에 보이듯이 성령이 광야로 데리고 가서 예루살렘을 보여주는데 가관인 것입니다.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

붉은 빛 짐승은 계시록 12장과 13장에 나오는 용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음녀가 용의 등에 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음녀의 소속이 용(마귀)에게 속하여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음녀가 타고 있는 붉은 빛 짐승의 몸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가득합니다.

참람 된 이름이란? 하나님을 대적하는 우상 신들의 이름이라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교회 안에 거짓 신들로 가득 차 있는 것입니다.

이걸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계 18:2-3절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큰 성 바벨론을 일컬어 귀신의 처소라고 하지요.

각종 더러운 영들로 가득한 곳이라고 합니다.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먹고 음행하였다고 합니다.



음행의 포도주란? 포도주로 음행한다는 뜻입니다.

포도주는 복음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음행케 하는 복음입니다.

이는 복음으로 세상 쾌락을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사치라고 합니다.



계 18:3절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잘 보세요.

그 음행의 포도주로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다고 합니다.

이는 큰 음녀가 가르치는 사상으로 온 세상의 교회들이 다 타락 하였다는 뜻입니다.

땅에 것으로 치부하고 땅에 것으로 사치한 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땅에 것을 쫓아가는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하였습니다.



빌립보서 3장을 봅시다.



빌 3:18-19=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이 울면서 당부합니다.

한 두 번이 아니고 여러 번 하였다고 합니다.

왜 여러 번 할까요?

말을 해도 안 듣기 때문입니다.



무슨 말을 합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이 땅에 것을 쫓아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예수 이용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왜 그런가요?

이는 예수님은 우리를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게 해 주시려고 십자가를 지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의 세력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이 땅에 부귀영화를 이루고자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저들은 땅에 일을 생각하는 자이고 멸망의 자식이라고 합니다.

그들의 신은 배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몸뚱이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곧 자기 몸뚱이가 신이란 말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요한계시록에서는 땅에 거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마귀의 종자이고 적그리스도 세력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의 손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그래서 종말에도 참 성도들은 이 세상에 영광을 구하고자 하는 자들로부터 이단 소리를 듣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큰 음녀와 그를 따르는 땅의 음녀들이 왜 땅에 것으로 사치하고 치부하는가요?

이는 그들의 근본이 땅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기운으로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땅에 속하였기 때문에 하늘에 복음을 가지고서도 땅에 것으로 치부하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소속은 땅입니다.

그러므로 땅에 말로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는 것입니다.

무엇으로 미혹하는가 하면 땅에 것으로 합니다.

이름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로 합니다.

이 세 가지를 한마디로 하면 떡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와서 떡으로 미혹했어요.

그것도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이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구약이든 신약이든 인간은 떡을 좇아갔어요.



그래서 마귀는 항상 떡으로 사람들을 미혹했어요.

예수님도 떡으로 미혹하고자 하였어요.

근데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면서 마귀의 제안을 거절합니다.



예수님이 떡을 거절하였다고 하여서 떡을 안 먹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예수님이 살아가는 의미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는 이유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떡에 가치로 살던 사람이 말씀에 가치로 사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는 떡을 생명으로 여기지만, 하늘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 말씀을 생명으로 여깁니다.

그러니까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는 살아가는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교회의 소속은 하늘입니다.

하늘에 것을 소망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땅에 것으로 미혹합니다.



교회의 타락이란? 땅에 것을 움켜잡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의 타락도 마찬가지로 땅에 것을 좇아가는 것입니다.

땅에 것을 추구하는 것은 음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4장에서는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한 것입니다.

이러면 적그리스도 세력들의 정체를 알 수가 있겠지요.

왜냐하면 적그리스도 세력은 땅에 것으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교회는 땅에 것으로 가득합니다.

교인들에게 땅에 것을 주어서 땅을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돈에 가치 세상 가치로 살게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뱀을 저주할 때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흙이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뱀은 항상 땅에 붙어서 땅에 기운을 먹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뱀의 후손들은 이 세상 기운으로 사는 자들입니다.

뱀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인본주의로 전락시켜요.

인간 입장에서 해석하게 해요.



인간 입장에서 해석하게 되면 모든 성경은 이 땅에 이야기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럼 결국 인간의 본능인 육신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으로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혹당하면 땅에서 사치하게 되고 일락을 좇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음녀의 모습이 어떠한가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있습니다.



계 17:4절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그 당시 로마의 황제가 입고 고관대작들이 입는 옷입니다.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은 사치의 대명사와 같아요.

붉은 색 옷은 부요와 권세를 상징합니다.

사극을 보면 왕이나 지위가 높은 사람일수록 붉은 색 옷을 입지요.



음녀가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었다는 것은 신앙으로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를 누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신앙으로 세상 속에서 권력 집단이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는 종교가 정치를 한다는 말입니다.

종교이면서 정치하는 집단이 어딘가요?

로마 카톨릭이에요.



18절을 보면 큰 음녀가 누구인지 알 수가 있습니다.



18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여자는 큰 음녀를 말합니다.

근데 이 여자를 일컬어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고 합니다.

큰 성이란? 나라란 말입니다.



종교를 정치로 하는 나라가 어디인가요?

이 세상에서 딱 하나 있습니다.

로마 카톨릭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각 나라마다 대사를 파견하고 있습니다.

대사를 파견했다는 것은 국가란 말입니다.

겉으로는 교회이면서 실제로는 국가에요.

그래서 큰 음녀라고 하면서도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로마 카톨릭은 세상의 부와 권력을 다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타락한 교회를 세상 나라 중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적그리스도의 나라를 대표한 바벨론과 동의어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의 나라를 대적하는 나라에요.

타락한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계시록은 타락한 교회의 멸망을 세상 멸망과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타락은 곧 세상의 타락이고, 세상의 타락은 교회의 타락이에요.



하나님의 관심사는 교회에요.

교회가 세상 속에 있기 때문에 교회와 세상의 운명은 같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은 교회를 위한 엑스트라에요.



이 세상 역사는 교회의 역사와 같이 가고 있어요.

그러므로 교회의 타락은 곧 세상의 타락을 보여주는 자화상이 되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교회와 세상이 하나가 되어서 타락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한 세상 나라의 대표적인 나라로 큰 성 바벨론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음녀인 큰 성 바벨론의 비밀은 다음 시간 일곱 머리 열 뿔에 대하여 공부할 때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영분별의 은사를 주셔서 이 시대를 분별하고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교회의 영적 상태를 볼 수 있는 영안을 열어서 이 시대 교회를 보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지금 바로 가고 있는지 늘 말씀 앞에서 점검받게 하시고 돌이켜 회개하는 마음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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