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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44강. 이제 되었다 (계 16:17-21)

by coroa 2021. 7. 25.

 

 

44강. 이제 되었다 (계 16:17-21)

-.정낙원 목사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이는 이 세상은 종말을 행하여 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종말이 가까워지면 질수록 만물은 종말의 징후들을 드러낼 것입니다.



마치 요람에서 무덤까지입니다.

아이가 태어나서 자라서 늙고 병들어서 죽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늙으면 온 몸에 종말의 징후들을 드러냅니다.

이는 생명의 기운이 점점 쇠잔해 가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도 그러합니다.

엊그제 저녁에 기도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건물이 우당탕 하고 흔들리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울산 앞 바다에서 지진이 일어나서 그랬다고 합니다.

온 나라에서 감지가 되었다고 방송마다 앞 다투어서 보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지진을 종말의 징조로 말씀 하셨습니다.

지구가 각양의 천재지변으로 종말이 되어간다고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 몸이 늙으면 눈도 흐려지고 기력도 없고 이빨도 빠지고 피부에는 검버섯이 생기는 것과도 같습니다.

몸이 죽을 때가 되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세상은 종말을 치달을수록 악의 극치를 보여주게 됩니다.

죄가 편만하여 온 세상을 뒤덮어서 인간들이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죄에 대한 부끄러움을 모르게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종말로 갈수록 인간들은 인간성을 상실하고 짐승처럼 변해가는 것입니다.

사람이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가 되었는데 종말이 되면 자기 밖에 모르는 극도의 이기주의로 변하여 자기 밥그릇을 지키기 위하여 남을 헤치는 짐승 으로 변해가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그러한 때입니다.

성도들은 이러한 사회의 징후들을 보고 때를 가늠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합니다.

맞습니다.



지금은 기도 할 때입니다.

지금은 정신 바짝 차리고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세상이 악해 질수록 교회도 타락합니다.

세상의 타락과 교회의 타락은 같이 갑니다.



그래서 종말의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귀신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뱀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을 둔갑이 되어서 전해지고 있습니다.

교인들이 하나님 말씀 보다 뱀의 말을 더 좋아합니다.



뱀은 사십일을 주리신 예수님을 찾아 와서 자기에게 절만 하면 주겠다고 하던 것들을 가지고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뱀이 예수님에게 제안하였던 것들이 무엇인가요?



이 세상의 부와 명예와 권세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입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땅에 것들입니다.



마귀는 인본주의 사고로 성경을 해석하여 신앙을 고상한 인격수양하는 것으로 전락시켜 놓았습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이 되라고 인간들의 의를 장려하고 있습니다.

교인들로 하여금 신앙의 기준을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되는 것으로 착각하게 만든 겁니다.

좋은 사람 착한 사람 되는 것이야 장려하여야 하는 일이지만 그건 신앙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에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인간은 선을 행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죄아래서 태어나는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바라는 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잘못된 신앙은 인간의 가치를 부추겨서 자기 의 쌓기에 열중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교회라는 조직을 지키는 종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 입에서 자기들 교회를 자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자랑할 것은 예수그리스도이지 교회가 아닙니다.

어느 목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 속에 숨어져 있는 죄악성을 고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여야 합니다.

인간은 위선의 천재들이에요.

그 위선의 가면을 말씀으로 벗겨 내서 너도 추한 죄인임을 자각케 만들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앞에 무릎을 끓게 하여야 합니다.



긍휼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거짓 종들이 인본주의 사고로 인간들이 악을 고발하기는커녕 도리어 인간의 가치를 부추겨서 자기 의를 쌓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땅에 가치로 덮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계시록 13장에서는 이렇게 인간의 가치를 부추기고 세상의 가치를 쫓아가는 자들을 일컬어 사단의 종이라고 하고 땅에 거하는 짐승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놈들이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땅에 것으로 미혹하여서 땅에 붙잡아두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은 그들이 말을 따르지 않으니까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늘에 속한 성도들이 죽임당하는 곳입니다.

성경에서는 세상을 교회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바가랴의 아들 사가랴의 피가 이 성 중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이란? 예루살렘 성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교회가 예수에게 속한 성도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왜 죽일까요?

듣기 싫은 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처럼 너희들은 틀렸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11장을 보면 두 증인들이 나오지요.

이들이 어디에서 죽임 당하던가요?

교회입니다.



이들을 누가 죽였나요?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입니다.

이는 거짓 선지자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땅에 거하는 자들이 두증인이 죽자 서로 예물을 보내면서 축하하고 있습니다.

이는 두 증인들은 교회 안에서 이 세상에 가치를 쫓아가고 있는 땅에 거하는 자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죽임을 당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나그네들이 무덤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첫째는, 예수님처럼 하늘에 말을 하다가 죽임당하여야 하는 곳이니까 무덤이고,

둘째는,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어야 하는 곳이므로 무덤인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 안에서 두 가지 죽음을 경험하게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내가 말씀 앞에 옛 사람이 죽임 당하여야 하고,

둘째는, 땅에 거하는 자들로부터 타살을 당하여야 합니다.



성도들의 이 땅에서의 삶이란 이래 저래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고단한 삶을 정리케 해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정리하느냐 하면 이 세상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심으로 정리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의 멸망 소식을 천사들에게 주어서 세상에 있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늘에 있는 성전의 하나님 보좌로부터 큰 음성이 납니다.



“가로되 다 되었다”고 합니다.



“가로되 다 되었다” 라는 말은,

“이제 시작하라” 는 뜻입니다.

이는 마지막 결제가 떨어진 것입니다.



무얼 시작하라고 합니까?

세상을 멸망시키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멸망 시킬 일곱 대접을 쏟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의 죄악을 기억하시고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잔을 쏟아버리라고 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전령들이 일제히 소리칩니다.

번개와 음성과 뇌성이 발합니다.



하늘에 전령들이 소리치자 땅에 지진이 일어나고 큰 성이 세 갈레로 갈라지고 만국의 성들도 다 무너져 내립니다.

섬도 사라지고 산악도 온데 간데 없어집니다.

하늘에서 한 달란트나 되는 우박이 사람들 위에 떨어지니까 박제가 되어 버립니다.



창세 이후로 이러한 재앙은 없다고 합니다.

한 달란트는 시대마다 그 중수가 달랐습니다.

지식백과를 찾아보니까 각 시대마다 나라마다 달란트의 비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한 달란트는 26kg,

로마의 한 달란트는 32.3kg,

이집트의 한 달란트는 27kg ,

바벨론의 한 달란트는 30.3kg이었다.

신약시대에 사용된 달란트는 58.9kg이었다고 합니다.



사도 요한이 계시록을 쓸 당시로 하면 대략 60kg입니다.

그러니까 60kg짜리 우박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박에 맞아 사람이 박제가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60kg짜리 우박이 떨어진다는 것은 마치 요즘 지구 종말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혜성이 지구에 충돌해서 지구가 멸망한다는 이야기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어쩌면 그럴 런지도 모르지요.

항상 인간의 상상이 현실화 되어서 나타났으니까요?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장차 일어날 일들을 공상 과학 영화로 미리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러니까 대 부분의 영화가 현실성과 동떨어진 황당무계한 이야기들로 가득차 있지요.

그런데 그 황당무계 한 일들을 인간들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이 시대 인간들은 인간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되지 못하는 일들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짐승이 되었고,

살기 좋았던 지구는 이제는 살기 힘든 지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인간이든 지구이든 스스로 종말이 왔음을 고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처음 시작 할 때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닫을 때는 하나님이 분노가 가득해서 맹렬한 진노를 끌어 부으면서 창조된 세상을 쓸어버리십니다.



왜 쓸어버리시는가요?

이는 처음 창조된 모습이 아니란 뜻입니다.

인간들이 망가뜨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을 이젠 꼴도 보기 싫으니까 치우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랑의 하나님인줄 알았는데,,

진노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이건 에덴동산에서 익히 보았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사정없이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았습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죄를 싫어하는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죄인은 사랑치 않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아는 사랑과 다릅니다.

인간들은 사랑의 하나님이라면 지옥도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지옥도 다 사라져야 한다고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기 때문에 지옥은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들의 오해는 사랑을 잘못 이해하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반드시 미움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과 미움은 한 짝입니다.

서로를 드러내는 짝입니다.



이걸 공의라고 합니다.

공의란? 상 줄 자에게는 상을 주고 벌 줄 자에게는 벌을 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후서 1장을 봅시다.



살후 1:1-12=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는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데살로니가인의 교회에 편지하노니 2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3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바울은 믿음을 지키다가 고난당하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냅니다.

너희가 믿음으로 살면서 갖가지 고난을 당하였는데 이는 장차 안식으로 갚아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장차 하나님이 주시는 안식이 어떠한 것인지 알게 하려고 이 땅에서 환란을 당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잠시 환란 당하는 것으로 인하여 낙망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공의의 하나님이시니까 반드시 너희의 억울함을 갚아 주신다고 합니다.

장차 예수님께서 오시면 너희들을 환란 받게 하는 자들은 환란으로 갚아주고 환란 당한 너희들은 안식으로 갚아주실 것이니까 그 소망으로 살라고 합니다.



천국과 지옥은 짝입니다.

천국은 지옥을 경험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국 백성들을 먼저 이 세상이라는 지옥에 던져 놓으시는 겁니다.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나타났습니다.

구원을 하시려고 먼저 구원을 받아야 하는 구조 속에 밀어 넣은 것입니다.

이 역설을 아셔야 실족하지 않습니다.



낮과 밤이 서로를 드러내는 조화이듯이 천국과 지옥도 조화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하신 것입니다.

천지란? 하늘과 땅을 말하는데 이는 천국과 지옥을 뜻합니다.



왜 서로 상반된 세상을 만드시고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할까요?

이는 서로 상반된 것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구원을 받는 자와 구원 받지 못하는 자로 나누어져 있는 것입니다.



이를 구약에서는 이스라엘과 이방인으로 말해주었고,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인과 적그리스도 인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항상 하나님께 속한 자들과 사단에게 속한 자들 간의 전쟁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신약에 와서는 교회 안에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와 적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로 나타나게 됩니다.



이방인들은 이미 심판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관심사에서 제외 되어 있습니다.

교회 안에 이방인이 바로 적그리스도 세력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의 전쟁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본문에서 하나님이 맹렬한 진노를 퍼붓는 대상도 광의적인 의미에서 온 세상을 말하지만, 영적인 의미에서는 교회 안에 진치고 있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입니다.

이들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을 환란에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핍박케 한 자들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의 성격을 성도들의 기도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계시록 6장을 보면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께 기도하지요.

빨리 자기들의 원수들을 갚아 달라고 합니다.

이 기도가 금 대접에 담겨서 하나님 보좌로 올라가서 하나님의 결제를 끌어내서 성도들을 괴롭힌 마귀의 세력들을 응징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곱 대접의 심판이 하늘에 있는 증거의 장막인 성전이 열리고 그 속에서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지고 나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심판을 대접으로 말하는 것은 모두 다 쏟아 붓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하나도 남김없이 다 쏟아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어떤 식으로 부어지는가 하면 역 창조의 방식으로 부어집니다.

처음 하늘과 땅이 두루마리가 말리듯이 사라지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창조가 무에서 유로 나타나듯이 마치 두루마리를 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면 멸망은 유에서 무로 되돌리는 방식인 즉 두루마리를 감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걸 오늘 본문에서는 지진이 나고 성이 무너지고 산악이 온데 간데 없고 인간들이 한 달란트 나 되는 우박에 맞아서 박제가 되는 것으로 비유하여서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이 무너지고 산악이 온데 간데 없어진다는 것은 완전한 파멸을 말합니다.



60kg 짜리 우박이 하늘에서 사람에게 떨어졌다고 생각해 보세요.

가루가 되겠지요.

이런 우박이 어디 한 두 개 떨어지나요?



온 세상에 떨어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그러니 온 성이 무너지고 산악이 간데없어진다고 하는 겁니다.

이것은 지구의 완전한 멸망을 상징하는 말입니다.



예전에 과학자들이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 어찌 될까 라는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 때 과학자들이 주장은 혜성이 지구에 떨어지면 엄청난 열 에너지로 인하여 그 주변은 완전히 재가 된다고 합니다.



지구 종말의 영화를 보면 행성이 지구에 충돌하면 지구가 가루가 된다는 내용들을 담고 있지요.

이러한 것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인류 역사에 시계 추에 따라서 인간들에게 그때 그때 적절한 지혜들을 주어서 그러한 영화들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 스스로가 지구의 종말을 상상하고 영화로 간접적으로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사회현상론이라고 합니다.

종말의 징후들을 사회 전반에 모든 모습을 통해서 드러내게 하신다는 뜻입니다.



종말이 되면 정치 경제 문화 예술 할 것이 없이 사회전반에 종말 징후군들을 보입니다.

가장 확실한 징조가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는 모습들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명을 경시하는 짐승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인간들이 분노 조절능력을 상실해서 사람 죽이는 것이 무슨 게임하는 것처럼 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만도 못한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사회전반에 나타나는 모든 구조가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 속에 감추인 악을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하여서 노골적으로 드러내서 폭력과 급격한 타락 문화를 꽃 피우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일들을 이제는 사회 전체가 용인하고 있어요.

문화와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죄에 대한 감각을 잃어버리게 만든 것입니다.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렸어요.

그러니까 사회 전반에 죄악이 관영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로 말씀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를 죄악이 관영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사회 전반에 죄악이 충만하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죄에 대한 감각을 상실하였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사람을 죽여도 이것에 죄 잘못인지를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지금 과격 무장단체들이 벌리는 일들을 보세요.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고도 자랑스러워해요.

그런데 그러한 집단에 젊은이들이 몰려 든다는 것입니다.

왜 젊은이들이 열광합니까?

이는 인간 내면에 숨어 있는 악의 광기를 합법적으로 그대로 발신 시킬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입니다.



죄는 폭력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최초에 가인이 아벨을 죽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이고도 잘못을 하나님께 전가 시킵니다.

이게 죄인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죄의 모습이 종말이 되면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유기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간섭이 유기 당하면 인간의 내면에 잠자고 있던 악이 봇 물 터져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장을 봅시다.



딤후 3:1-5=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바울은 말세의 인간상을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누구의 말도 안 듣고, 감사가 없고, 조급하고, 사나운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나타나면 괴물입니다.

자기 사랑으로 가득차서 자기 마음에 안 맞으면 누구라도 죽이는 그런 괴물이에요.



바울은 이걸 지금 디모데 목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교회 안에 사단에게 매인 자들이 수두룩하다는 말입니다.



사단은 파괴하는 자에요.

이들이 특징이 폭력적이에요.

그래서 바울은 혹시 교회 안에 이러한 자들이 일어나거든 성도들로 하여금 그들과 사귐을 갖지 말고 돌아서게 하라고 당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거울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타락은 세상의 타락을 비추어주는 거울과 같은 것입니다.

이는 세상의 가치가 그대로 교인들로 하여금 교회 안에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종교가 세상 가치를 멀리하고 종교 본연의 수도정진을 하면 세상이 온기가 돌아요.

그러나 종교가 세속적 가치를 쫓으면 세상이 차가워져요.

그러므로 종교의 타락과 세상 타락은 같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 종교는 세속화 되었어요.

돈의 가치로 매몰 되었습니다.

모든 종교가 영혼들을 돈으로 사고 팔고 있어요.



이 시대 종교는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되었습니다.

돈 있는 자들이 종교 안에서 기득권층으로 자리 잡아서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의 곡두각시 놀음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을 가진 자가 신이에요.

오죽하면 돈은 귀신도 부린다는 말을 할까요?

이는 돈이라면 종교도 그 어떤 것도 다 한다는 말입니다.

종교는 영혼의 가치를 최고로 여겨야 하는데 이제는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타락한 곳이 교회에요.

예수님 초림 당시에 교회를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듯이 종말에도 동일합니다.

굴혈이란 떼거지들이 모이는 소굴이란 말입니다.

교회에 강도들이 우굴 거리고 있다는 말입니다.



목사도 강도이고 교인들도 강도에요.

모두가 지향하는 바가 같기 때문입니다.

무얼 얻고자 합니까?

돈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매매하는 곳이라고 하였지요.

매매란? 사고판다는 말입니다.

거래를 한단 말입니다.



교인들은 돈으로 신을 사고, 목사들은 돈을 받고 신을 파는 겁니다.

교인들은 복을 달라고 하고, 목사들은 복을 주겠다고 합니다.

신이 돈에 따라 춤을 추고 있는 겁니다.



예수님이 초림 때 가장 경건하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저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어요.

이 말은 매사에 돈을 얻고자 하는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경건도 돈을 얻고자 하는 쑈인 겁니다.

이걸 외식이라고 합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돈의 위력이 하나님 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목사들도 돈에 환장을 했지만 교인들도 동일합니다.

모두가 돈이 주는 안락함에 취해 있습니다.



이 모습이 계시록 17장 18장의 음녀의 모습이에요.

목사들이 돈으로 영혼을 사고팔고 있는 겁니다.

이걸 음행의 포도주를 마시고 있다고 합니다.



말이 목사이지 삯꾼들이에요.

목사라는 타이틀을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짐승입니다.

그래서 양의 탈을 쓴 노략질 하는 이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제일 먼저 거짓 목사들인 땅의 짐승들을 잡아서 유황불 속에 던진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 날이 속히 임하고 있어요.



지금은 사회 모든 전반에 말세의 징조들을 보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종말에 일어나는 징조들을 보고서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고 깨어 있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하나요?

주의 말씀이 우리 안에서 달음질하여서 이 세대를 본받지 못하게 하십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게 하십니다.



우리의 의지가 아니라 주의 열심히 우리 안에서 일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예수님이 계신 성도들은 세상의 가치를 쫓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종말의 교회 모습을 아시아의 일곱 교회로 말씀 하실 때 맨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이 어떠합니까?



요한계시록 3장을 봅시다.



계 3:14-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까지 이 역사 속에 나타나는 교회를 총칭하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영적으로는 어느 시대이고 적용이 되어요.

하지만 교회사를 연대기 적으로 보면 일곱 교회는 각 시대 상을 담고 있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교회와 운명을 함께 하기 때문에 일곱 교회 중에서 맨 마지막에 나타나는 라오디게아 교회는 역사의 마지막 때 나타나는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래서 라오디게아 교회를 종말 교회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모습이 어떤가요?

주님께서 “네 행위를 아노니” 라고 합니다.

행위란? 삶을 말합니다.

신앙생활이 어떻다고 합니까?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고 미지근하다고 하지요.

그래서 입에서 토하여 내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니란 말입니다.

교회도 아니고 세상도 아니란 말입니다.



왜 이런가요?

두 물이 합하여서 그래요.

그래서 하나님이 역겨워서 확 토해내고 싶다고 합니다.

꼭 이 시대 교인들의 신앙생활 모습과 같습니다.



지정학적으로 라오디게아 지역은 물이 없어서 윗 지역 두 곳에서 물을 공급해서 사용하였어요.

두 곳으로부터 물을 공급하는데 한 쪽은 온천수를 끌어 왔고 다른 한 쪽은 찬물을 끌어다가 서로 합해서 사용했어요.

두 물이 합하여서 하나의 수로로 공급하다가 보니까 미지근한 물이 되어서 도착을 한 것입니다.

이걸 그대로 먹으면 구토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끓여서 먹던가 아니면 아주 차갑게 해서 마시던가 하였습니다.



이건 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커요.

종말의 교회가 두 물이 섞여서 증거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 시대 교회 안에는 하늘에 말과 땅에 말이 섞여서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이 혼합되어서 증거가 되고 있어요.

인본주의와 신본주의가 혼합이 되어서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것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신자인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불신자와도 같아요.

말하는 걸 보면 신자인데, 사는 걸 보면 불신자입니다.

입술로는 천국, 천국 하는데 실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이 땅의 일락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 실제로는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을 보세요.



17절입니다.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지요.

이는 물질의 가치로 배를 채우고 있다는 뜻입니다.

세상 것으로 배불러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진단은 어떤가요?

정반대입니다.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고 합니다.

한마디로 눈 뜨고 못 봐주겠답니다.



눈은 멀었지요.

거기다가 발가벗고 있어요.

가련하고 볼 수가 없어요.

마치 발가벗고 무덤가에 거하는 거라사 광인처럼 그래요.



심령들은 피폐하여서 가난하고 신앙들이 곤고해요.

그런데도 나는 부자라 부요하고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성도는 하늘에 것으로 만족하여야지 땅에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되어요.



땅에 것으로 만족하면 땅 사람이지 하늘에 사람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사람들은 하늘에 것으로만 만족 할 수가 있어요.

하늘에 것이란 바로 하나님의 말씀과 은혜에요.



하늘에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은혜를 받지 못하면 죽어요.

가만있지를 못해요.

그래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돈을 드려서라도 말씀을 찾아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나 땅에 속한 사람들은 땅에 것으로 배부름을 얻기 때문에 말씀을 버리고 돈을 구하게 되어요.

서로 상이하지요.

하늘에 사람은 돈을 버리고 말씀을 사는데, 땅에 사람들은 말씀을 버리고 돈(떡)을 사고자 합니다.

이건 서로의 소속과 가치관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떡으로 사는 사람은 교회에 와서도 떡을 구하고,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말씀을 구합니다.

말씀을 쫓아가는 성도들은 두 가지 합한 물을 못 마셔요.

땅에 물을 싫어해요.

하늘에 물만 먹어요.



하늘에 속한 성도는 말씀에 귀함을 알기 때문에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하고 재산을 팔아서 그 밭을 사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일에 삶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땅에 속한 사람들은 세상이 주는 육신의 달콤한 쾌락에 빠져서 신앙을 버립니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이 세상 것으로 인하여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면서 어떤 짓을 하였나요?



20절입니다.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돈으로 배가 불러서 전부 예수님을 문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예수를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할 자들이 돈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교인들 속에서 쫓겨나 버렸어요.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는 식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인들이 신앙 모습입니다.

교인들 속에 돈이 주인이에요.



예수는 돈을 얻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목사들은 그 돈을 주겠다고 합니다.

유유상종인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매매하는 곳이 되어 버렸어요.

그래서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요는 반드시 타락을 몰고 왔어요.



신명기 31-32장입니다.



신 31:16-2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 17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 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 18 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 19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 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지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22 모세가 당일에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쳤더라”



신 32:12-18= “여호와께서 홀로 그들을 인도하셨고 함께 한 다른 신이 없었도다 13 여호와께서 그로 땅의 높은 곳을 타고 다니게 하시며 밭의 소산을 먹게 하시며 반석에서 꿀을, 굳은 반석에서 기름을 빨게 하시며 14 소의 젖 기름과 양의 젖과 어린 양의 기름과 바산 소산의 수양과 염소와 지극히 아름다운 밀을 먹이시며 또 포도즙의 붉은 술을 마시우셨도다 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지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지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16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17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18 너를 낳은 반석은 네가 상관치 아니하고 너를 내신 하나님은 네가 잊었도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경계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들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배가 부르면 필시 언약을 어기고 이방신을 음란히 섬기고 하나님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배가 부르고 나니까 하나님께 제사하지 않고 마귀에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얼굴을 숨기고 그들을 징치할 것이라고 합니다.

이 사실을 노래로 지어서 알려 주라고 합니다.

그러한 일을 당할 때 이 노래가 증인이 것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타락이 언제 일어나느냐?

등따습고 배부를 때입니다.

이 말은 인간은 본시 자기 배를 위하여 사는 자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어느 시대이고 인간들은 떡 주는 자를 신으로 섬겼습니다.



이건 애굽에 신입니다.

바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시고 사람이 사는 것은 떡이 아니라 말씀이라고 합니다.

이는 자기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라고 알려 줍니다.



그래서 떡에 가치로 사는 애굽에서 광야로 빼내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산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이를 알게 하려고 하늘에서 만나를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대로 이스라엘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합니다.

가나안에서 먹고 살만 하자 하나님의 언약을 버리고 떡을 주는 이방신을 음란히 섬깁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 교회의 모습입니다.



우린 과거 가난하고 어려울 땐 주야로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했습니다.

교회의 모임이 삶에 의미였고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돈이 손에 쥐어지면서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등따습고 배 부르자 하나님을 밀어내기 시작했습니다.



교회의 발길이 뜸해지기 시작합니다.

돈이 주는 안락함에 취하여 이제는 땅에 코를 박고 땅이 주는 달콤함에 취하여 내가 누구인지를 잃어버렸습니다.



예수님이 재물과 하나님을 두 주인이라 했습니다.

그러면서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했습니다.

왜 재물을 하나님과 같은 주인의 반열에 올려놓은 건가요?



이는 이 땅에 제물을 주관하는 자가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과 함께 마귀에게 이 세상을 넘겨주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죄인들을 땅에 것으로 다스리고 있는 겁니다.



이 세상 것을 한마디로 하면 떡이에요.

마귀는 이 떡으로 예수님도 시험했습니다.

이는 예수를 믿는 성도들도 이 시험을 당하게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봅시다.



눅 4:1-13=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성령에게 이끌리시며 2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더라 이 모든 날에 아무 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 날 수가 다하매 주리신지라 3 마귀가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돌들에게 명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기록하기를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였느니라 5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8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9 또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여기서 뛰어 내리라 10 기록하였으되 하나님이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너를 지키게 하시리라 하였고 11 또한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시리라 하였느니라 12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말씀하기를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13 마귀가 모든 시험을 다 한 후에 얼마 동안 떠나리라”



잘 보시면

예수님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었을 때 마귀가 찾아왔습니다.

이게 엄청 중요합니다.



마귀는 성령이 없는 자는 시험하지도 않아요.

이미 자기 수중에 들어 있는데 뭘 시험하겠어요.

그들은 그냥 마귀가 주는 것으로 자족하고 있어요.

마귀의 품에 안겨서 쿨쿨 잠자고 있어요.



그러나 성령 충만 한 자들은 마귀의 표적이 되어서 시험을 당하지만 안 속는 것입니다.

마귀는 성령 충만 한 자들에게 다가와서 세상 것으로 미혹하는 겁니다.

마귀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은 것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미혹하는 것은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 미혹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자기백성들을 대표하여서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그럼 마귀가 예수님을 무엇으로 어떻게 미혹하는지를 봅시다.



예수님은 지금 사십일을 굶었습니다.

사십일을 굶은 사람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떡입니다.

이건 이 땅에서 태어난 자들의 보편적인 사고입니다.



마귀는 지극히 인간적 입장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떡을 주겠다고 합니다.

모든 인간들은 거절 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떡을 먹어야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산다고 하시면서 단호히 거절합니다.



그러자 마귀는 세상의 부귀영화를 줄 테니 자기에게 절을 하라고 합니다.

세상에서 성공한 자로 만들어 사람들로부터 우러러 봄을 받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주 너의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마귀는 다시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지라고 합니다.



그럼 천사들이 받아 줄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초월적 존재로 즉 영웅호걸로 만들어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신앙은 우리의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을 자기를 들어내는데 이용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모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것이므로 자기에게 절을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자들에게 준다고 합니다.

이는 마귀는 나는 이 세상 신이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 것으로 땅에 속한 자들을 땅에 붙잡아두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예수님은 떡을 먹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말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부자가 되고 성공하여 부귀를 누리면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하는지 그 의미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여기서 마귀가 교회를 어떤 방식으로 신앙을 변질 시킬 것인지를 알수가 있습니다.

마귀는 교회 안에서 땅에 것으로 미혹한다는 것입니다.

마귀의 작전대로 이 시대 교회는 돈으로 미혹 당하였습니다.



이 시대 교회는 돈의 가치를 최고로 두고 있습니다.

돈 앞에서 목사이든 교인이든 다르지 않습니다.

짐승입니다.

모두가 육신을 배부르게 하는 돈을 쫓아가고 있습니다.

마귀의 작전은 대 성공하였습니다.



교회사를 보면 어느 시대이고 교회의 타락은 풍요로울 때 나타났습니다.

구약이든 신약이든 동일합니다.

그래서 계시록 13장에서 땅에서 올라온 짐승들이 교회 안에서 땅에 것으로 땅에 속한 자들을 미혹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두 증인들은 이렇게 땅에 거하는 자들의 죄를 고발하다가 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두 증인들과 같은 종들은 이 세상 것을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모두가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므로 사랑하지 말라고 합니다.



떡을 주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이므로 그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다가 육에 속한 자들로부터 이단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이 예수님을 전부 문 밖으로 쫓아낸 것은 그들 속에 누가 자리 잡고 있다는 말인가요?



마귀에요.

마귀가 왕 노릇하고 있는 겁니다.

무엇으로 왕노릇 하는가요?

돈입니다.



돈은 이 세상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돈 맛을 아는 목사들은 땅에 것으로 교인들을 사로잡아서 그 영혼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거짓 목사들을 누가 따르는가 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 따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는 절대로 따르지 않아요.

예수님의 양은 예수님의 음성을 아는 고로 땅에 속한 목사들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양이 염소가 되고 염소가 양이 되는 법은 없어요.

애초부터 염소는 염소로 지음을 받았고 양은 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다만 둘이 섞여 있을 뿐입니다.

섞여 있다가 복음이 떨어지면 각자의 본질을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는 이미 창세전에 정해졌어요.

예수님 앞에서 그들의 정체가 드러나게 되어 있어요.

복음을 전해 보면 극명하게 드러나요.



복음은 땅에 속한 자를 하늘에 속한 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에요.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천국 복음은 하늘에 속한 자만 듣게 되어 있어요.

예수님은 천국 복음으로 하늘에 속한 자를 찾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속한 종들은 하늘에 말로 하늘에 속한 자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천국 복음을 전한 이유도 하늘에 속한 자들을 찾아내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에 속한 자들을 예수 앞으로 끌고 오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십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의 영적 상태는 동일해요.

어느 시대이고 종말의 영적 상태는 동일해요.



노아의 때도 그랬어요.

노아의 때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도 성전이 강도들이 우굴거리는 소굴이 되었습니다.

모두가 돈으로 미쳐 있었어요.

그래서 예수님은 돈의 가치가 지배하는 강도의 굴혈인 예루살렘 성전을 확 뒤집어엎고서 나오신 것입니다.



이 모습이 종말에도 동일하게 나타나요.

그 모습이 바로 이 시대 라오디게아 교회의 모습 속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 마음속에는 돈이 지배하고 있어요.

돈이 신이에요.



그러다 보니까 마음들이 전부 돈에 가치로 가득차 있는 것입니다.

교회나 교인들이 세속적인 가치관인 자본주의 원리로 채워져 있으니까 모든 가치의 기준이 물량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는 돈 놓고 돈 먹기 식의 야바위판이 되어 버렸어요.

큰 교회는 돈이 차고 넘치고 작은 교회는 돈이 없어요.

어리석은 부자처럼 곡식 창고를 새로 짓듯이 큰 교회는 더 갖겠다고 자기들의 왕국을 더 크게 넓게 지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작은 교회들은 큰 교회를 부러워하고 자기도 큰 교회들을 따라 잡겠다고 개 발에 땀나듯이 뛰는 겁니다.



복음에 가치로 살지 않으면 큰 교회나 작은 교회나 도낀 개낀입니다.

지향하는 바가 같으면 동질이에요.

그들의 신은 배고 땅에 일을 생각하는 십자가의 원수들입니다.

이것은 물량적 기준으로 큰 교회는 틀렸고 작은 교회는 옳다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가치를 추구하느냐 입니다.



큰 교회라도 땅에 가치로 두지 않고 성도들을 하늘로 끌고 가면 옳은 교회이고,

작은 교회라도 땅에 가치를 가지고 교인들을 땅으로 끌고 가면 귀신의 처소인 틀린 교회입니다.

반대로 작은 교회라도 하늘에 가치로 성도들을 끌고 가면 옳은 교회이고,

큰 교회라도 땅에 가치로 교인들을 끌고 가면 귀신의 처소인 틀린 교회인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진노의 일곱 대접을 쏟아 버리는 것입니다.

일곱 대접이 온 세상에 쏟아지는 것입니다.

어디로 피할 수가 없어요.



첫째가 그 대접을 땅에 쏟고,

둘째가 그 대접을 바다에 쏟고,

셋째가 그 대접을 강과 물 근원에 쏟고,

넷째가 그 대접을 해에 쏟고,

다섯째가 그 대접을 짐승의 보좌에 쏟고,

여섯째가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고,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아버립니다.



이건 완전한 멸망을 말합니다.

이제 그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이제 되었다" 하고서는 마지막 결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이 시대 나타나는 천재지변은 예고편이에요.

마치 큰 비가 오기 전에 작은 비가 내리는 것과 같아요.

작은 비가 내리는 것은 큰 비가 온다는 징조입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을 이기고 기도 할 때 작은 구름 한 조각을 보고서 큰 비가 내린다고 예언하였듯이 이 시대 나타나는 종말의 징후들은 곧 하나님의 큰 심판이 쏟아진다는 전조인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고 화산이 폭발하고 홍수가 나고 쓰나미가 일어나는 것은 지구가 나 이제 폭발할 것 같아 라고 하면서 내 수명이 다 되었다고 소리치는 징후들이입니다.

세상 끝이 다 되었다는 싸인인 겁니다.



성도는 만물을 통하여서 하나님 음성을 들을 줄 알아야 해요.

하나님은 만물을 가지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들의 타락된 삶의 사회적 현상으로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지구만 종말의 징후들을 토해내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들도 종말의 징조들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타락된 삶을 통해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도 금수만도 못한 짓을 하는 인간들의 행태를 보고 말세라고 하잖아요.



맞아요.

말세에요.

세상 끝이 가까이 왔어요.



그럼 어찌해야 하나요?

우리의 고향인 하늘나라로 돌아갈 준비를 하여야지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면서 하루하루를 종말론적 삶을 살아야 하겠지요.

퇴근 시간이 가까이 오고 있어요.



그럼 어찌 합니까?

하던 일 정리하고 집에 갈 준비를 하여야지요.

지진이 말을 하네요.

얘들아 떠날 준비하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곧 오신다고 알려주라고 합니다.

제발 감각 없는 자처럼 살지 말고 깨어나세요.

성경을 머리에 외우는 것이 신앙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살아야 해요.

그게 신자입니다.



하나님이 심심해서 사도 요한을 천국으로 불러서 이런 말씀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이기 때문에 교회에 편지로 보낸 것입니다.

곧 닥칠 일이기 때문에 이 말씀을 편지로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전해주라고 하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편지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들립니까?

소돔 고모라처럼 멸망한다는 이 소식을 어떻게 듣습니까?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으로 들립니까?

아니면 롯처럼 사실로 받습니까?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주님의 외침을 농담으로 듣지 마시길 바랍니다.

성경에 귀를 기우리세요.

성경을 상고하세요.

성경 속에 나타난 믿음의 선진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제발 좀 확인하세요.



어느 목사의 말을 듣지 마세요.

그 누구의 말도 듣지 마세요.

오직 성경 속에 믿음으로 살았던 선진들이 말만 들으세요.



내 신앙이 성경이 말하는 것과 같은지 다른지 확인해 보세요.

말로는 복음 복음 하면서 행동은 반 복음적인 일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로는 천국 천국 하면서 몸뚱이는 땅으로 향하고 있지는 않는지,,

말로는 예수 예수 하면서 하는 짓거리는 마귀 짓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스스로 속지 마세요.

영적 나르시즘에 빠져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매너리즘에 빠져 있지는 않은가요?



예수님은

성경대로 오셨고

성경대로 죽으셨고

성경대로 부활하셨고

성경대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만물이 소식을 보내 오고 있습니다.

주님이 곧 오신답니다.

그러니 깨어나라고 합니다.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있지 말라고 합니다.

어떤 놈들이 옷을 벗겨 수치를 드러내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너진 단들을 수축하십시오.

신앙의 형식을 버리지 마세요.

형식이 무너지면 내용도 날아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자들의 습성을 본받지 말고 그 날이 가까울수록 더욱 더 모여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은 형식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 속에 내용을 차곡차곡 쌓아야 합니다.



기도하는 일도 회복하시고,

찬송 부르는 일도 회복하시고,

교회에 봉사하고 헌신 하는 일도 회복하십시오.



교회에 모여서 감사하고 찬송하는 것이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의 모임이 기뻐야 합니다.

짐이 되면 안 됩니다.

말씀 듣는 일이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이 냉랭합니까?

우십시오.

하나님께 매 달리십시오.

은혜를 달라고 구하십시오.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하십시오.



잃어버린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야 합니다.

성경대로 믿으시고,

성경대로 신앙생활 하십시오.

성경을 상고 하십시오.


자긍하지 말고,

자만하지 말고,

자족하지 마세요.



신앙의 자긍, 자만, 자족은 금물입니다.

교만은 넘어짐의 앞잡이요 패망의 선봉임을 아십시오.



이대로는 안 됩니다.

벌거벗은 몸으로는 안 됩니다.



주님 품으로 파고드십시오.

주님 은혜주세요.

날 도와주세요. 라고 외치십시요.



소경거지 바디메오처럼 다윗의 자손 나사렛 예수여 나를 도와주소서,

외치십시오.

보기를 원합니다.

듣기를 원합니다.



기도하세요.

기도하지 않는 것은 죄입니다.



주님이 곧 오십니다.

우리를 데리러 오십니다.

오고 계시는 소리가 안 들리시나요.

만물의 소리가 들려 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세상 끝이 다다랐다고 만물이 말을 하고 있는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도록 귀를 열어 주옵소서. 징조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옵소서. 이제 다 되었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듣지 않고 진심으로 받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들처럼 믿음의 잠에서 깨어나게 하시고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기도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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