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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복음 강해

♣(요한복음강해)1강. 태초부터 계신 말씀의 하나님 <요 1:1-5>

by coroa 2022. 6. 25.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강. 태초부터 계신 말씀의 하나님 <요 1:1-5>

-.정낙원 목사

 

요 1:1-5=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5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창조되었으므로 본능적으로 하나님을 의식하며 살아가게 되어있습니다.

이러한 본능이 다급한 일을 당하게 되면 자연적으로 신(神)을 찾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죄인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죄인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자기를 도와주는 하나님입니다.

성경은 인간을 도와주는 신(神)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성경으로 계시하신 하나님과는 다른 하나님입니다.

 

사람들이 알고 있는 하나님은 착한 자에게는 상(賞)을 주시고, 악한 자에게는 벌(罰)을 내리시는 상선벌악에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착한 사람을 보면 복(福)을 받을 것이라고 하고, 악한 사람에겐 화(禍)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종교는 이런 이해의 바탕 위에서 세워졌기 때문에 착한 삶을 살아야 할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서 인간들에게 착한 삶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을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을 심판한 것은 그들의 삶을 기준으로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느냐 안 믿느냐로 했습니다.

이는 인간들이 생각하는 하나님과 전혀 다른 모습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이전에 하나님에 대한 옳은 이해가 먼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기 식으로 섬기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 하나님은 난 널 모른다고 합니다.

 

마 7장 21-23=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께서 종말에 이런 일들이 나타날 것을 미리 말씀해 주셨습니다.

자기 딴에는 열심과 정성으로 하나님을 섬겼는데 하나님은 난 너희들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바로 자기 식으로 하나님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생활은 열심의 문제가 아니라 앎이 우선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앎이 없는 열심은 나중에 모래 위에 지은 집처럼 다 무너지고 맙니다.

우리가 성경을 배우는 것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어떻게 세상을 다스리시고 계시는지를 올바로 알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요 1:1-2절에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 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말씀이 계시니라”’ 고 함으로서 말씀되시는 하나님이 또 다른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성부(聖父) 하나님을 지칭하고 말씀 되시는 하나님은 성자(聖子) 하나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말씀이신 하나님과 또 다른 하나님이 즉 두 하나님이 계시다고 합니다.

신앙생활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라면 말씀이신 하나님을 몰라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말씀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이기 때문입니다.

말씀되시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 분이 역사 속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요 5:17-22절에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모든 심판권(다스림)을 맡기셨다” 고 합니다.

 

실제 인간의 역사 속에 뛰어들어서 일하시는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일을 하신다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요 1:3절에서는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고 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고 말씀해 주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창세기에서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곧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하게 보아야 할 것은 성경의 시작을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 하시니라고 운을 떼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곧 말씀되신 성자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일을 하고 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고자 함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이야기는 말씀이신 성자 하나님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 간과치 말아야 할 것은 말씀으로 창조가 된 세상은 말씀 안에서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말씀은 하나님과 피조물을 연결해 주는 통로와 같습니다.

 

이러한 상태를 중보자라고 합니다.

이는 성부 하나님과 피조물 사이에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이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중보자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를 연결해 주는 분이라는 말입니다.

 

피조물들은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 성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피조물인 인간은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을 떠나서는 성부 하나님을 만날 수가 없고 또한 성부 하나님은 반드시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을 통해서만 피조물을 만나주시는 것임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빌립이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여 달라고 하느냐 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하고 계심을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피조물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중보자로 세상에 오신 말씀되시는 성자 하나님이 누구신가를 아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 속에 성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말씀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을 아는 자라야 진짜 하나님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조물의 지혜로는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는 것이 인간에겐 문제입니다.

성경은 말씀이신 하나님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사실을 알려주시는 분이 성령이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오신 성자 하나님은 오직 성령께서 알려 주셔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도 요 1:33절에서 자신도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몰랐는데 성령께서 예수님이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어서 알게 되었다고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14절에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 안에 아버지의 영광이 충만하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왜? 그토록 예수님만 믿어야 할 것을 주장하고 있는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성부 하나님이 보내신 그 말씀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떠나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요 14:6절에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수가 없느니라”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는 유일한 길이고,

이 법칙은 성부께서 세워놓으신 절대로 변하지 않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며,

이러한 진리를 아는 것이 생명이라고 합니다.

 

생명이란? 그냥 생물학적 의미에서의 살아있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요 17:3절에선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라”

 

그런데 요1:4절에서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라고 하면서 육신이 되어 오신 그 말씀되시는 성자 예수님 속에 생명이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 안에 아버지의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고전 15:45절에서 예수님을 “살려주는 영” 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생명이란? 예수님께서 살려주는 생명이라야 진짜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즉 말씀이신 예수님이 거듭나게 해 주신 생명을 가진 자라야 진짜 생명의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반대로 예수님의 말씀과 상관이 없는 생명은 가짜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생명은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서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묻습니다.

너! 예수가 준 생명이 있어!

너! 예수한데 뭐 받은 것 없어! 라고

 

말씀으로 오신 예수님을 떠나서는 생명을 얻지 못하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제쳐놓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모두가 사기이고 거짓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이라는 것은 그 말씀이 어떤 역사를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생명의 반응이 일어납니다.

 

이를 일컬어 말씀이 살아 운동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한 것은 창조하시는 분이 계셨다는 말입니다.

그 창조하는 분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을 요한복음은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의 말씀으로 오신 분임을 아는 자는 예수님의 말씀을 경홀히 여길 수가 없습니다.

말씀은 곧 예수님이며 예수님은 곧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예수님 속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몽땅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생을 가진 자는 예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에 모든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참 신앙과 거짓신앙은 말씀이신 예수님에 대한 반응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참 신앙과 거짓신앙을 분별하는 방법도 무엇을 증거하느냐 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받은 것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거듭난 자는 예수님의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기 때문에 예수님을 증거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것을 내어놓는 자는 영생을 받은 자이고 자기 것을 내어놓는 자는 영생이 없는 자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가진 자는 예수님의 것을 자랑하지만 예수님의 생명이 없는 자는 자기 것을 자랑하게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자랑하는 자가 진정한 할례 당이라고 합니다.

즉 거듭난 사람이란 뜻입니다.

나는 누구를 자랑하고 무엇을 자랑하고 삽니까?

 

예수님이십니까?

아니면 열심 있는 자기 자신입니까?

예수님을 자랑치 않는 자는 가짜입니다.

 

천국을 일컬어 아들의 나라라고 합니다.

사도요한은 밧모 섬에서 성령에 감동으로 천국을 보았는데 그곳은 온통 어린양 되신 예수님만 찬양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땅에서 예수님만 자랑하고 사는 성도는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셈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천국이 여기 있다 저기 있다 말하지 않고 너희 안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천국에 들어가 있지 않으면 나중에 천국에 간다는 것은 사기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그대가 성도이고 세상을 이긴 챔피언입니다.

 

부디 예수님만 자랑하는 재미로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예수 안에서 예수의 생명으로 예수의 사람으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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