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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40강. 흠 있는 예물을 드리지 말라 (레 22:17-33)

by coroa 2021. 12. 6.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40강. 흠 있는 예물을 드리지 말라 (레 22:17-33)

-.정낙원 목사

 

레위 22:20-25절. “무릇 흠 있는 것을 너희는 드리지 말 것은 그것이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21. 무릇 서원한 것을 갚으려든지 자의로 예물을 드리려든지 하여 소나 양으로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열납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22. 눈먼 것이나 상한 것이나 지체에 베임을 당한 것이나 종기 있는 것이나 괴혈병 있는 것이나 비루먹은 것을 너희는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단 위에 화제로 여호와께 드리지 말라 23. 우양의 지체가 더하거나 덜하거나 한 것은 너희가 낙헌 예물로는 쓰려니와 서원한 것을 갚음으로 드리면 열납되지 못하리라 24. 너희는 불알이 상하였거나 치었거나 터졌거나 베임을 당한 것은 여호와께 드리지 말며 너희 땅에서는 이런 일을 행치도 말지며 25. 너희는 외방인에게서도 이런 것을 받아 너희의 하나님의 식물로 드리지 말라 이는 결점이 있고 흠이 있는 것인즉 너희를 위하여 열납되지 못할 것임이니라”

 

우리가 성경을 베우는 것은 구원을 받고자 함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려고 배우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신약의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도들에게는 구약 이스라엘은 은물 교육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을 그림자라고 하고 신약을 실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너희는 애굽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애굽 사람처럼 살아가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충돌이 일어나고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 충돌과 갈등을 어떻게 해소해 가는지를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거룩한 백성이 된 자들이 날마다 이루어가는 거룩에 관한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지침서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 제사장을 선택해서 거룩한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로서 교육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21장과 22장은 제사장이 지켜야 하는 규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21장에서는 제사장의 신분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고,

22장에서는 제사장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로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22장 전반부에서는 성물을 먹을 수 없는 부정한 자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하나님 앞에 흠 있는 예물을 드리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흠 있는 예물은 받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물을 먹는 것은 하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 것과 같은 것이고,

제사장이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은 제사장들의 삶을 말합니다.

제사장은 백성들을 대표하는 자들이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단번에 주어진 거룩을 말하고,

레위기는 날마다 이루어 가는 거룩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단번이 이룬 거룩은 아이가 출생하는 것과 같고,

날마다 이루어가는 거룩은 아이가 어미의 젖을 먹고 자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아이를 낳는 것은 장성한 자로 자라감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자람이 없는 아이는 부모에게 재앙입니다.

그건 결코 기쁨이 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 있던 자들을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시킨 것은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게 하고자 함입니다.

광야는 가나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곳입니다.

광야는 어린아이들을 교육하는 것과 같이 훈련을 받는 곳입니다.

 

훈련은 실전을 위한 것입니다.

훈련을 올바로 받지 않으면 실전에 응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훈련은 실전처럼 실전은 훈련처럼 하라고 합니다.

 

거룩한 백성이기 때문에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를 신약에서는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땅에 지체를 죽이고 위엣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경건에 이르는 연습이라고 합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통해서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이를 영적 예배라고 합니다.

삶을 예배라고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예물은 거룩함을 입은 백성들의 삶인 것입니다.

성도들의 삶 자체가 예물인 것입니다.

구원 받은 자가 세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위해 살아가는 것이 구약적으로 흠 없는 예물인 것입니다.

 

육체의 흠이란? 부정한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부정한 삶은 이방인의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이 광야에서 애굽의 가치를 쫓아가다가 징벌을 받았습니다.

 

고전 10:1-12절.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 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 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6.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 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7.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기록된바 백성이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논다 함과 같으니라 8.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간음하다가 하루에 이만 삼천 명이 죽었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간음하지 말자 9.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10.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11. 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출애굽한 백성들에게 있어 흠이란?

애굽적 신관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고,

애굽의 음식을 그리워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애굽에서와 같이 금송아지를 만들어서 섬기다가 3000명이나 죽임을 당하였고 애굽에 음식을 달라고 하다가 메추라기를 먹고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또한 가는 길이 험하다고 원망을 하다가 불 뱀에 물려서 죽었고 이방 여인들과 간음을 하다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우상 숭배하고 간음하고 탐욕을 부리고 원망하는 것이 흠인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이방인들이 즐겨하는 것들입니다.

이방인들의 삶이 곧 하나님 앞에서 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흠 있는 예물은 받지 않겠다는 것은 애굽적 가치로 살아가는 자는 만나주시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당한 일들을 거울이라고 하였습니다.

신약의 고린도 교회에 구약의 사건을 거울로 말하는 것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한 일들이 신약의 교회 안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경계로 기록을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넘어질까 조심하라는 것은 구약의 사건을 가볍게 보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건 남의 이야기가 아니란 말입니다.

신약의 성도들도 얼마든지 넘어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들이 왜 넘어졌는지를 똑똑히 보고 너희는 넘어지지 않도록 싸우라는 것입니다.

 

구약의 제사장들이 드리는 예물은 신약에서는 성도들의 삶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흠을 신약적인 의미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눈먼 것은 영적 소경으로 비진리를 쫓아가는 것을 말하고,

상한 것은 이방인의 부패하고 타락한 삶을 말하고,

피부에 나는 종기나 병들은 아름답지 못한 삶을 말하고,

지체에 더하거나 덜한 것은 믿음에 합당하지 못한 결격사유가 있는 삶을 말하고,

불알이 상하거나 치어서 터친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삶을 온전하게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으로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영적으로 보면 그렇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흠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아름답지 못한 삶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가 있습니다.

흠 있는 예물을 드리지 말라는 것은 너희는 다른 사람이니까 이방인들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엡 4:17-24절.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너희는 행하지 말라 18.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21.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 같이 너희가 과연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 진대 22.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23.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애굽의 풍속을 쫓지 말고 이방인의 삶을 따라가지 말라는 것은 신앙생활이란 세상 사람과 다른 모습으로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에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자가 있다고 하면 그는 흠 있는 예물로 간주하고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겠다고 하셨습니다.

그 땅이 그런 자를 용남하지 않고 토해낸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구원에서 잘려 나간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어떻게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살아 갈 수가 있느냐 라는 책망의 소리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삶을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는 신분론적인 면에서는 하나님의 호적에 올려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수준론적인 면에서는 죄와 싸워야 할 자들입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아 가야 할 자들인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싸움인 것은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몸은 가나안 땅과 같습니다.

우리 옛 사람이 원주민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 예수그리스도가 새로운 주인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옛 주인과 새 주인이 우리 몸을 서로 차지하기 위하여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싸운다고 합니다.

육신의 소욕이 이기면 우리 몸은 이방인의 삶을 쫓아가게 되고,

성령의 소역이 이기면 우리 몸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육신의 소욕이 이기면 육신의 탐욕으로 살아가고,

성령의 소욕이 이기면 감사와 찬송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한 것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그 은혜에 감사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흠 없는 예물이 되지만 그 은혜에 감사치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흠 있는 예물이 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감사로 행하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 받은 그 은혜가 너무도 고마워서 사랑으로 행하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감사와 사랑이 빠진 것은 흠 있는 예물로서 하나님은 받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랑이 없는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는 받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고전 13:1-3절.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하나님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만 받으십니다.

즉 예수그리스도의 것으로 행하는 것만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천사의 말을 해도, 순교를 해도, 구제를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두 가지 예배가 있습니다.

 

법으로 드려지는 예배가 있고,

은혜로 드려지는 예배가 있습니다.

 

예배는 삶입니다.

 

율법으로 드리는 예배는 억지로 행하는 삶이고,

은혜로 드려지는 예배는 감사로 행하는 삶입니다.

 

하나님은 즐겨내시는 자를 사랑한다고 하셨습니다.

즐겨 낸다는 것은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헌신을 말합니다.

자발적인 헌신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달을 때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자발적인 헌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를 율법으로 드려지는 예배라고 합니다.

율법으로 드려지는 것은 흠 있는 예물입니다.

 

하나님은 억지로나 인색함으로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마음에도 없는 것을 억지로 하는 것을 외식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구약 이스라엘의 신앙이 그러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들이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한다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율법으로 배웠다는 것입니다.

 

율법 신앙을 외식이라고 하는 것은 감사함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하나님은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두려워서 하는 것에는 감사와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법으로 나아오는 자를 받지 않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의 문을 닫으면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해서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였습니다.

 

말 1:6-14절.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나 만군의 여호와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아들은 그 아비를, 종은 그 주인을 공경하나니 내가 아비일찐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가 주인일찐대 나를 두려워함이 어디 있느냐 하나 너희는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 하는도다 7. 너희가 더러운 떡을 나의 단에 드리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를 더럽게 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주의 상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말함을 인함이니라 8.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눈 먼 희생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며 저는 것, 병든 것으로 드리는 것이 어찌 악하지 아니하냐 이제 그것을 너희 총독에게 드려보라 그가 너를 기뻐하겠느냐 너를 가납하겠느냐 9.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는 나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기를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 하여 보라 너희가 이같이 행하였으니 내가 너희 중 하나인들 받겠느냐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내 단 위에 헛되이 불 사르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너희 중에 성전 문을 닫을 자가 있었으면 좋겠도다 내가 너희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너희 손으로 드리는 것을 받지도 아니하리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 12. 그러나 너희는 말하기를 여호와의 상은 더러웠고 그 위에 있는 실과 곧 식물은 경멸히 여길 것이라 하여 내 이름을 더럽히는도다 13.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가 또 말하기를 이 일이 얼마나 번폐스러운고 하며 코웃음하고 토색한 물건과 저는 것, 병든 것을 가져 왔느니라 너희가 이같이 헌물을 가져오니 내가 그것을 너희 손에서 받겠느냐 여호와의 말이니라 14. 떼 가운데 수컷이 있거늘 그 서원하는 일에 흠 있는 것으로 사기하여 내게 드리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니 나는 큰 임금이요 내 이름은 열방 중에서 두려워하는 것이 됨이니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더러운 떡을 하나님의 단에 예물로 드렸다고 합니다.

병들고 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식으로 말하면 흠 있는 것들인 것입니다.

이를 눈 먼 희생으로 드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전 문을 닫았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강도의 굴혈이 된 성전을 쓸어버리셨습니다.

성전 문을 닫아 버린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약 교회의 율법 신앙을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로 표현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으로 자기 치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것을 겉은 화려하지만 그 속은 썩은 것으로 가득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사람의 영광을 구하였고,

상석에 앉아서 사람들의 칭찬을 받았고,

신앙을 자기 유익을 얻는 수단으로 이용하였고,

속으로는 탐욕이 가득하면서 겉으로는 아닌 척 하면서 살았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을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외식은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이를 말라기 선지자는 절기의 똥이라고 하였습니다.

 

똥이란 양분이 빠져버린 쓰레기입니다.

 

절기 지킴은 있는데 정작 그 절기가 담고 있는 내용이 없는 것입니다.

절기 속에 담겨질 내용은 은혜와 감사와 찬송입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율법 교회는 그 알맹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외식으로 가득한 구약 교회를 폐하시고 신약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신약 교회는 은혜로 세워졌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교회는 감사와 찬송이 넘쳤습니다.

자발적으로 행하는 헌신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예수님께서 재림 할 때가 가까이 오자 은혜로 세워진 신약의 교회가 구약교회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이를 요한계시록에서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맨 마지막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계 3:14-22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 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문 밖으로 쫓아내었습니다.

세상 것으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세상 것들로 가득 채워져 있어서 예수님이 계실 공간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들이 마음속에서 예수님을 다 몰아 내 버린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흠이 가득한 것입니다.

그래서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아서 먹을 수가 없어서 입에서 토하여 내친다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처럼 열매는 없고 잎만 무성한 무화과나무와 같은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발가벗은 것이라고 합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다 벗어던지고 발가벗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의 의라는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입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상태를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율법 신앙에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 의에 취하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자랑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발가벗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버리고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만든 치마를 입고 있다는 뜻입니다.

즉 인간들의 의로 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의로 선생 노릇하는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이라고 일갈하셨습니다.

바리새인의 신앙은 내용이 없는 껍데기 신앙이었습니다.

의와 인과 신이 빠진 것이었습니다.

 

신앙의 형식은 내용을 담는 그릇입니다.

 

내용이 없는 형식은 열매가 없는 잎만 무성한 나무입니다.

율법은 형식이고 은혜는 내용입니다.

율법은 밥그릇이고 은혜와 사랑은 밥입니다.

 

하나님은 율법 속에 은혜와 사랑을 담고자 하였습니다.

은혜와 사랑이 담겨지지 않은 율법은 속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아이 밴 자들과 젖 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 것입니다.

 

마 24:19-20절.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로다 20. 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아이 밴 자들이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구약의 율법 신앙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젖먹이는 자는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히브리서에서는 어린 아이라고 하였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로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이루신 십자가 도인 단단한 식물을 먹어야 하는데 아직도 율법적 신앙에 머물러 있으면 어찌 하느냐 입니다.

 

히 6:1-2절.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신앙은 생명의 자람과 같습니다.

어린아이로 출발하여서 장성한 자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은 장성한 신부들을 데리러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에 아이 밴 여자들이나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단단한 식물을 먹여야 할 때에 젖을 먹이는 자는 거짓 선지자인 것입니다.

은혜 시대에 율법 신앙을 가르치는 것은 불의가 되고 미혹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께서 재림 하시는 때가 겨울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이 겨울이 되지 않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겨울은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계절입니다.

겨울은 모두가 얼어붙고 죽어 있는 시기입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와 멀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은 뜨겁고 죽은 신앙은 차갑습니다.

산 자는 뜨겁고 죽은 자는 차갑습니다.

예수그리스도 그 안에 모시고 살아가는 성도들은 살아 있어서 따뜻하고 감사가 넘치고 생명의 향기를 풍기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라오디게아 교회처럼 예수그리스도를 문 밖으로 내어 쫓은 자들은 죽은 신앙으로서 차갑고 부정적이고 냉랭하며 사망의 향기를 풍기고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때를 고통을 당하는 말세의 때라고 하였습니다.

 

딤후 3:1-5절.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3.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4. 배반하여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종말에 고통당하는 때를 일컬어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마음속에 돈을 사랑함으로 가득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으로 가득한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이름만 신자이지 실제로는 불신자와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모두 병든 상태인 것입니다.

 

신앙은 뜨겁고 따뜻해야 합니다.

차가운 건 죽은 신앙입니다.

아무리 천사의 말을 하고 크고 비밀한 것을 말한다 하여도 차가운 것은 죽은 자입니다.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는 차갑고,

은혜로 경험으로 알아진 예수는 뜨겁고 따뜻합니다.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는 정죄와 비판을 쏟아내지만,

은혜로 경험으로 알아진 예수는 술람미처럼 나도 향을 토하여 내듯이 감사와 찬송과 사랑을 토하여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시대는 영지주의가 창궐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배고 젖을 먹이는 율법주의도 화가 있지만,

지식으로 알아진 예수로 앉은뱅이나 중풍병자들처럼 손과 발은 움직이지 못하고 입만 나불거리는 영지주의자들도 화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는 믿는 자를 찾아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극심한 타락의 때입니다.

마치 엘리야 시대에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다른 신으로 섬기던 때와 같은 때입니다.

예수를 세상에 복을 주는 바알로 섬기고 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7000명이 숨겨져서 보이지 않았듯이 이 시대도 참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성도들을 찾아보기 힘이 드는 때입니다.

흠 없는 예물로 드려지는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을 찾아보기 어려운 때입니다.

 

이사야의 선지자의 말처럼 병들어서 머리에서 발끝까지 성한 곳이 없는 때입니다.

 

사 1:4-6절.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진 백성이요 행악의 종자요 행위가 부패한 자식이로다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멀리하고 물러갔도다 5.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 6. 발바닥에서 머리까지 성한 곳이 없이 상한 것과 터진 것과 새로 맞은 흔적뿐이어늘 그것을 짜며 싸매며 기름으로 유하게 함을 받지 못하였도다”

 

인류의 역사는 시대 말에는 항상 극심한 타락으로 나타납니다.

 

노아의 때가 그러하였습니다.

구약 교회의 종말인 예수님의 초림 때가 그러하였습니다.

신약 교회의 종말인 예수님의 재림 때도 이러한 타락은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 시대의 교회를 상징하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성령께서 말씀하시기를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열심을 내라는 말은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돌아가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삶입니다.

삶으로 나타나지 않는 것은 거짓입니다.

신앙이 믿음이라고 한다면 삶은 행함입니다.

 

믿음과 행함은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믿음이 나무라고 한다면 행함은 열매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귀신의 믿음이고,

귀신의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 마귀는 신앙을 도를 깨닫는 것으로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귀에게 미혹을 당하면 성경적 지식을 알면 그것이 마치 신앙의 전부인 줄 알게 됩니다.

이를 영지주의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상은 초대교회로부터 항상 있어 왔습니다.

 

산 자에게 있어서 삶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산 자가 움직이는 것은 본능적인 것이고 필연적인 것입니다.

살아 있는 신앙도 그 내용을 삶으로 토하여 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그 안에 새겨진 그림이 삶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가이사의 화상이 그려져 있으면 삶이 세상 것으로 그려지게 되어 있고,

그 안에 하나님이 그려져 있으면 삶이 하늘에 것으로 그려지게 되어 있습니다.

 

스스로의 삶을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나는 어떤 그림을 그리면서 살아가고 있는가요?

 

우리를 구원 하신 것은 아들이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 8:29-30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성령은 아들의 영으로 오셨습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예수님은 육신으로 오셔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가셨습니다.

그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의 아들이 된 성도들도 예수님과 같은 운명으로 살아가도록 인도함을 받게 됩니다.

 

성령이 그렇게 인도해 가십니다.

그래서 성도는 이 땅에서 예수님과 같이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는 자세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성도의 구원을 여자가 해산하는 것으로 말한 것은 성도의 신앙생활이 날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고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고 하늘로 살아나야 합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살아나야 합니다.

그리 할 때 흠 없는 예물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추수 때가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예물로 드려지고 있습니까?

 

흠 있는 자로 하나님 앞에서 버려짐으로 살고 있는지,

흠 없는 예물로 하나님 앞에 드려짐으로 살고 있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끝을 로마서와 히브리서의 말씀으로 맺겠습니다.

 

로마서 12장

 

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히브리서 12장

 

15.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또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러움을 입을까 두려워하고

16.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마라나타!

주님이 곧 오십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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