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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27강. 거룩한 땅이 요구하는 사람 (레 19:1-37)

by coroa 2021. 11. 12.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레 19: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36-37절.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7.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27강. 거룩한 땅이 요구하는 사람 (레 19:1-37)

-.정낙원 목사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본문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레위기를 주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서 온전한 사람으로 선한 일을 행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대상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신앙의 첫 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구원 받은 성도라고 한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우려서 듣고 행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

 

첫 마디가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고 합니다.

내가 너희를 구원 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들어도 되고 안 들어도 되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반드시 들어야 하는 의무입니다.

 

선(先) 구원, 후(後) 순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내 말을 듣게 하려고 구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구원을 믿음이라고 한다면 순종은 행함입니다.

믿음과 행함이 하나이듯이 구원과 순종이 하나입니다.

 

이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훈육하는 것과 같습니다.

부모이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고 자식이기 때문에 부모의 잔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남에게는 잔소리 하지 않습니다.

 

가족이기 때문에 잔소리를 하고 가족이기 때문에 잔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잔소리를 통해서 온전한 사람으로 자라갑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잔소리하는 것은 혹여 라도 밖에 나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그러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살라는 것입니다.

남에게 피해를 주면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일은 해야 하고 저린 일은 하지 말라는 식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단순하게 말씀에 순종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이 자라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끊임없는 간섭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히 12:6-13절.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 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 하심이니라 하였으니 7.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비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8.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 아들이 아니니라 ~ 11.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12.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13.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간섭당하는 아이 입장에서는 부모의 잔소리가 아픔 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잔소리가 사랑이고 생명입니다.

그래서 참 아들은 징계가 있고 사생아에게는 징계가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 아들인고로 하나님으로부터 징계를 당하는 것입니다.

잔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징계가 당시에는 아프지만 그 아픔이 우리로 하여금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우리의 발을 곧은길로 가게하고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거룩으로의 초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고 합니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내가 너희를 거룩케 하려고 구원을 했다”고 하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나는 너희의 여호와” 라는 말씀이 무려 16번이나 나옵니다.

어떤 명령을 하시고서는 어김없이 “나는 너희의 여호와” 라고 하십니다.

“나는 너희 여호와” 라고 강조하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의 여호와니라”(2,3,4,10,12,14,16,18,25,28,30,31,32,34,36,37=16)

 

“여호와” 라는 말은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이는 내가 너희를 구원했다는 뜻입니다.

너희는 내 것이라는 뜻입니다.

 

다른 말로 너희들은 내 새끼라는 말입니다.

내가 피 흘려서 낳은 자식이라는 뜻입니다.

내 새끼들이기 때문에 부모 망신시키지 않기 위하여서 잔소리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왜 피를 흘려서 너희를 구원 했느냐?

거룩한 백성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으라는 말은 나는 이러한 인간을 원한다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또한 내가 너희를 이런 인간으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나는 너희를 거룩케 하는 여호와라는 말은 내가 너희를 거룩케 만든다는 뜻입니다.

너희를 거룩한 인간을 만들고자 애굽에서 건져냈다고 합니다.

거룩을 강조하는 것은 너희가 거룩한 인간이라야 내가 유업으로 주는 거룩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갈 수가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거룩한 땅입니다.

 

거룩한 땅은 비거룩 한 자는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 땅의 사람들 풍속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만약 그 땅 사람들의 풍속을 본받으면 그 땅이 토하여 낸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그 땅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말씀을 광야 생활의 시작 단계에서 하시는 것입니다.

앞으로 40년 동안 가나안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으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은 가나안 땅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인간을 만드는 훈련 기간입니다.

 

그래서 출애굽을 하나님의 장자 만들기라고 합니다.

장자는 아버지 집을 유업으로 이어갈 자들입니다.

아버지 집을 유업으로 이어 가려면 아버지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광야 40년은 아버지의 마음을 알아가는 기간입니다.

그래서 시내산 위에 계시던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 안으로 내려오신 것입니다.

이제부터 내가 너희에게 거룩을 가르치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이 성막에서 일어나는 각종 제사입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구원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가?

이는 참 하나님의 아들이 죽어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낳아지는 방식으로 됩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성도들을 ‘양자’ 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키실 때 어린 양의 피로 죽음에서 구원을 하셨습니다.

출애굽 한 자들은 모두가 어린 양의 피로 낳아짐을 입은 자들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신약으로 오면 예수그리스도 나타납니다.

예수그리스도로 낳아진 자들이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자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린 양의 피로 낳아진 자들에게 요구하십니다.

너희들은 이제부터 내 아들들이니까 나를 닮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마음을 품고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거룩으로의 초대입니다.

 

거룩이라는 말은 “카도쉬” 라고 하는데 “구별되다” “분리되다” 라는 뜻입니다.

 

구별해서 부르셨고, 분리를 시키셨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시작이 기존으로부터의 단절입니다.

이를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것은 너희는 구별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서 언약의 후손들을 땅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하늘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산이 있는 광야로 인도 하신 것입니다.

 

시내 산에 당도 하고 보니까 그 산 위에 하나님이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세를 산 위로 올라오게 하여서 율법을 주십니다.

율법 속에는 하나님께서 바라는 인간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 산 위는 거룩한 곳입니다.

수직적인 서 있는 시내 산을 수평적으로 옆으로 눕히면 바닥은 광야가 되고 산 꼭대기는 가나안 땅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시내 산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시내 산 위는 천국을 상징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시내산 위나 가나안 땅이나 천국이나 같은 의미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백성들은 시내산 아래서 모세가 받아온 율법 속에 있는 성막의 설계도를 근거하여서 1년 동안 성막을 짓습니다.

성막이 완성 되자 하나님께서 성막에 강림하십니다.

이는 시내 산 위에 계시던 하나님이 이스라엘 진중으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백성들과 함께 동행 하시겠다는 뜻입니다.

 

성막이 완성 되자 하나님은 온 회중을 성막 주위로 부르시고 모세에게 성막에서 드려지는 각양의 제사 제도를 알려 주시고 아론의 가족들을 지명하여 부르시고 제사장 가문으로 삼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백성들에게 거룩을 가르치라고 레위기를 주십니다.

 

레위기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지침서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하여 너희는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합니다.

너희들이 장차 들어가서 살아갈 땅도 거룩한 땅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너희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가르칩니다.

거룩한 땅에서 살아가려면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삶은 십계명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십계명을 한마디로 사랑이라고 정의해 주셨습니다.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아래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은 십계명을 해석해 놓은 것입니다.

 

먼저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을 합니다.

 

1-2절.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2절.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하나님은 먼저 모세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백성들에게 알려 주라고 하십니다.

“너희는 거룩하라 나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 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거룩해야 하는 이유는 나 여호와가 거룩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니까 당연히 그의 백성들도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과 살려면 거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당연한 말씀입니다.

 

거룩이 뭐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십계명이 적힌 두 돌 판은 하나님에 관한 것과 이웃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사랑도 순서가 있습니다.

먼저 하나님과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먼저 부모를 공경하고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3절.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2절. “너는 센 머리 앞에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30절.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왜 부모 공경이 먼저인가요?

이는 모든 거룩의 근원은 부모를 의식하고 살아가는 것으로부터 출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부모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를 공경하는 것과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같은 위치에 두신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은 나를 존재케 하는 근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입니다.

부모는 우리의 생명의 주인입니다.

낳아주신 부모는 하나님과 같은 것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여호와의 안식일을 지키는 것과도 같습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시고 쉬신 날입니다.

그런데 이 날을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천지 창조를 기념하는 것으로 지키라고 하지 않고 출애굽 한 것으로 지키라고 합니다.

 

신 5:15절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그러므로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를 명하여 안식일을 지키라 하느니라”

 

천지창조와 이스라엘의 구원을 동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 하셨듯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창조 7일의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는 것은 천지를 창조하신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 하셨다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입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을 존재케 하신 근원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바로 부모와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면서 너희가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를 안식일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안식일은 쉬는 날이 아닙니다.

여호와 하나님께 경배하는 날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듯이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날입니다.

그래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 여호와의 성소를 공경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너희가 정녕 이 사실을 안다고 하면 여호와 하나님을 애굽에서 신을 섬기듯이 섬겨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4절. “너희는 헛것을 위하지 말며 너희를 위하여 신상들을 부어 만들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2절.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라는 것은 애굽 식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애굽은 모든 신을 형상화 하여서 섬겼습니다.

신을 형상화 한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애굽은 우상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이게 한 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은 인간들 생각으로 만든 것입니다.

 

왜 보이지 않는 신을 보이는 것으로 만들까요?

죄인은 보지 못하고는 믿을 수가 없는 법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 안에 있는 신을 형상화 하여서 섬기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인간들의 본능 속에는 하나님을 찾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형상화 하여서 가까이 두고자 한 것입니다.

애굽의 신들은 인간들의 필요에 의하여 만들어진 것입니다.

 

인간들은 자기 유익을 위하여 신을 찾습니다.

신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형상화 하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을 자기 유익으로 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거래하려고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분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존재하시는 분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자기 소원을 들어 달라고 하는 것은 주객이 전도가 된 불경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언약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은 언약을 위하여 존재하는 민족이라는 뜻입니다.

언약이 먼저이고 백성이 나중입니다.

언약이 백성을 존재케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 앞에 나올 때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오라고 합니다.

 

그것이 화목제를 드릴 때 그 제물을 즉시로 먹고 나중에 먹으려고 남겨두지 말라고 합니다.

 

5-8절. “너희는 화목제 희생을 여호와께 드릴 때에 열납 되도록 드리고 6. 그 제물은 드리는 날과 이튿날에 먹고 제 삼 일까지 남았거든 불사르라 7. 제 삼 일에 조금이라도 먹으면 가증한 것이 되어 열납 되지 못하고 8. 그것을 먹는 자는 여호와의 성물 더럽힘을 인하여 죄를 당하리니 그가 그 백성 중에서 끊쳐지리라”

 

화목제는 감사 제사입니다.

감사는 깨달음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으면 즉시로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제물을 남겨두지 말고 즉시 먹으라고 하는 것은 감사를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여일(如一)하지 않습니다.

사람이란 간사스러워서 하나님의 은혜를 금방 잊어버립니다.

조석(朝夕)으로 변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감사하는 일은 즉시로 하고 나중으로 미루지 말라는 것입니다.

 

제물을 사흘까지 남겨 둔 것을 성물을 더럽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욕되게 하는 것은 죄라고 합니다.

 

만약에 제물을 사흘씩이나 남겨두면 성물을 더럽히는 것으로 간주하여서 그 백성 중에서 끊어지게 된다고 경고를 하신 것입니다.

강한 어조로 경고하는 것은 은혜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나를 존재케 하는 근원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께 감사하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감사치 못하는 자는 멸망하는 짐승과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감사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위로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아래로는 이웃과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그 이웃들과 나누라고 하십니다.

 

9-10절. “너희 땅의 곡물을 벨 때에 너는 밭모퉁이까지 다 거두지 말고 너의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며 10.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3-34절. “타국인이 너희 땅에 우거하여 함께 있거든 너희는 그를 학대하지 말고 34. 너희와 함께 있는 타국인을 너희 중에서 낳은 자 같이 여기며 자기같이 사랑하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객이 되었더니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곡물을 벨 때는 다 베지 말고 밭모퉁이는 조금 남겨 두라고 합니다.

떨어진 이삭도 줍지 말고 과실도 다 따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들을 위하여 남겨 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타국인을 통해서 이스라엘도 타국인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도 애굽에서 타국인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타국인으로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로 가나안 땅에 들어와서 땅을 분깃으로 얻어서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사는 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농사를 지어서 추수를 하게 되면 맏물을 먼저 하나님 앞에 드리면서 지난 일을 추억하라고 하십니다.

 

신 26:1-11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사 얻게 하시는 땅에 네가 들어가서 거기 거할 때에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그 토지 모든 소산의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취하여 광주리에 담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그것을 가지고 가서 3. 당시 제사장에게 나아가서 그에게 이르기를 내가 오늘날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고하나이다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주리라고 우리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렀나이다 할 것이요 4. 제사장은 네 손에서 그 광주리를 취하여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단 앞에 놓을 것이며 5. 너는 또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아뢰기를 내 조상은 유리하는 아람 사람으로서 소수의 사람을 거느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거기 우거하여 필경은 거기서 크고 강하고 번성한 민족이 되었더니 6. 애굽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우리를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중역을 시키므로 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8.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9. 이곳으로 인도하사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셨나이다 10. 여호와여 이제 내가 주께서 내게 주신 토지 소산의 맏물을 가져 왔나이다 하고 너는 그것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두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경배할 것이며 1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네 집에 주신 모든 복을 인하여 너는 레위인과 너의 중에 우거하는 객과 함께 즐거워할지니라”

 

모세는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너희는 가나안에 들어가서 농사를 짓고 나면 수확한 첫 열매를 광주리에 담아서 제사장에게 가져가서 이렇게 고백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원래 땅이 없는 백성으로서 유리방황 하는 민족이었는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 땅에 들어와서 이렇게 땅을 얻고 귀한 농사를 지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농산물의 첫 것을 하나님에게 드리면서 이것은 우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라고 고백을 하라고 합니다.

그런 후에 그것으로 맛난 음식을 만들어서 온 동네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과 타국인들까지 다 초청하여서 잔치를 베풀라고 합니다.

 

너희가 농사를 지어서 얻어진 곡물들은 너희 것이 아니고 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밭의 소산물을 다 거두지 말고 조금 남겨두어서 타국인에게 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타국인을 두고서 너희도 이 땅에서 타국인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치 말라고 합니다.

 

11-18절. “너희는 도적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하지 말며 12. 너희는 내 이름으로 거짓 맹세함으로 네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3. 너는 네 이웃을 압제하지 말며 늑탈하지 말며 품군의 삯을 아침까지 밤새도록 네게 두지 말며 14. 너는 귀먹은 자를 저주하지 말며 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15. 너희는 재판할 때에 불의를 행치 말며 가난한 자의 편을 들지 말며 세력 있는 자라고 두호하지 말고 공의로 사람을 재판할지며 16. 너는 네 백성 중으로 돌아다니며 사람을 논단하지 말며 네 이웃을 대적하여 죽을 지경에 이르게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17.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책선하라 18.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이웃은 곧 내 몸과 같습니다.

이웃 입장에서 보면 나도 이웃입니다.

나도 이웃에게는 이웃인 것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곧 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말라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이웃과 남으로 살았지만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백성들은 모두가 어린 양으로부터 낳아진 한 형제들인 것입니다.

 

이웃도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여호와로부터 구원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에게 악을 행하거나 해를 끼치는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의 공동체입니다.

 

이를 신약식으로 말하면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합니다.

나와 이웃은 그리스도의 몸에 붙어 있는 지체들입니다.

이웃에게 악을 행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의 몸을 헤치는 것이 되므로 죄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웃에게는 속이지도 말고, 거짓말 하지도 말고, 장애자라고 놀리지도 말라고 합니다.

인간의 조건으로 차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인간의 외모로 판단하는 것은 모두가 긍휼로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장애인을 조롱하는 것이야 말로 영적인 장애자인 것입니다.

육적인 장애 보다 영적인 장애가 더욱 더 크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돌아다니면서 남을 이러쿵 저러쿵 험담도 하지 말고, 재판 할 때 가난하다고 봐주고 부자라고 두둔하지 말고, 서로 서로 내 몸이라고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일을 시켰으면 노임을 미루지 말고 즉시 즉시 주어서 먹고 살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애굽에서는 너와 내가 남남으로 따로 따로 살았지만 출애굽 한 너희들은 어린 양 안에서 한 날 한 시에 태어난 한 형제이므로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애굽에서 살던 것처럼 이웃을 남처럼 대하면서 살지 말라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짐승처럼 남에 것도 빼앗고 살았습니다.

자기 힘으로 살았기 때문에 빈부격차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것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땅도 하나님이 분배해 주시고 농사도 하나님이 지어주십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고 살게 해 주시니까 움켜잡는다고 해서 남는 것도 아니고 손을 펴서 나누어준다고 해서 손해되는 것도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욕심 부리지 말고 더불어서 서로 나누면서 살아가라고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거룩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두 종류가 서로 섞이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19절. “너희는 내 규례를 지킬지어다 네 육축을 다른 종류와 교합시키지 말며 네 밭에 두 종자를 섞어 뿌리지 말며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지며”

 

육축을 다른 종자와 교합하지 말고,

밭에 두 종자를 섞어서 뿌리지 말고,

두 재료로 직조한 옷을 입지 말라고 합니다.

 

거룩이란? 구별이고 분리라고 하였습니다.

반대로 타락이란? 구별된 것을 다시 합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혼합하는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모양으로 창조를 하셨습니다.

두 가지가 하나로 섞인다는 것은 창조 질서를 훼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한 생명의 질서를 교란하는 것은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행위입니다.

 

두 종류를 섞지 말라는 것은 혼합주의를 경계하라는 말입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풍속을 본받지 말라는 말씀에 비추어 보면 그 땅 백성들과 하나 되지 말라는 것이기도 합니다.

 

빛과 어둠이 하나 될 수가 없고,

진리와 비진리가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또한 언약의 후손이 비언약의 후손들과 하나 되어서도 안 됩니다.

 

두 종류의 짐승과 교합하는 것은 영적인 의미로 신자와 불신자가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방인과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도 같습니다.

결혼이란? 순수한 혈통을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가문의 혈통을 순결하게 이어가기 위함입니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과 혼인을 하여서 홍수 심판을 일으켰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언약의 후손을 말하고 사람의 딸은 비언약의 후손을 말합니다.

언약과 비언약은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둘이 섞이는 것을 타락이라고 합니다.

타락은 심판을 불러 오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믿지 아니하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고후 6:14-18절.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17.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18.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신자와 불신자는 생명이 다릅니다.

생명이 다르므로 존재 양식도 다릅니다.

존재 양식이 다르니까 살아가는 가치관도 다릅니다.

 

신자와 불신자는 서로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고 가치관이 다르고 지향하는 바가 다르기 때문에 같이 멍에를 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저희 중에서 따로 나와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고린도 교회 안에 일부 성도들이 구원의 의미를 모른채 고린도 지역의 문란한 생활을 그대로 즐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밭은 영적인 의미로 교회를 상징합니다.

 

밭에 두 종류의 씨를 뿌리는 것은 교회 안에 이방 사상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이를 두고 밭에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마귀는 교회 안에 혼합 주의로 진리를 훼손하는 일을 합니다.

 

하늘의 말과 땅의 말이 섞이면 홍수를 이룹니다.

인본주의와 신본주의가 섞이면 비진리로 홍수가 일어납니다.

하늘의 물과 땅의 물이 합하면 홍수가 나고 홍수가 나면 생수가 사라집니다.

 

하늘에서 쫓겨난 뱀이 그 입에서 강물을 토하여서 여자의 후손들을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계 12:13-17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14.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 15.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 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하되 16. 땅이 여자를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17.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뱀은 혀가 둘로서 두 가지 말을 합니다.

하늘의 말과 땅의 말을 섞어 버립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도적질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실 때에 마귀가 찾아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예수님을 시험 하였습니다.

마귀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의 유익된 쪽으로 해석하도록 미혹을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귀에게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마귀는 거짓 종들을 가지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시키는 일을 합니다.

예수 믿으면 세상에서 잘되고 복 받고 잘 산다 라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유익으로 왜곡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 말씀을 인간의 유익을 얻는 수단으로 도용을 하고,

하늘에 속한 자는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가는 것으로 해석을 합니다.

육적 해석과 영적 해석을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자연히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는 하나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육에 속한 자는 짐승이고 영에 속한 자는 사람입니다.

짐승과 사람이 교합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럼 네피림이라는 괴물이 나옵니다.

 

노아의 때에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들의 딸들이 서로 혼인을 하여서 낳은 자들이 바로 괴물인 네피림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서 혼합주의 말씀들이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인간의 의로 영웅주의가 발호하면서 네피림 신자들로 가득한 것입니다.

 

옷은 영적으로 의(義)를 상징합니다.

 

두 가지 직조된 옷을 입지 말라는 것은 두 가지 의를 쫓지 말라는 뜻입니다.

율법의 의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의는 하나 될 수가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에 일부 교인들이 할례를 행하는 것을 보고서 성령으로 시작하였다가 육체로 마친다고 경고 하였습니다.

 

거룩이란? 순수성을 지키는 것입니다.

거룩을 성적인 순결로 말하는 것은 신앙이 하나님과 우상이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신약에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께 간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으로 성도가 세상 것을 쫓아가는 것은 간음인 것입니다.

 

희년 전에 종의 신분에 있는 여종과는 음행하지 말라고 합니다.

 

20-22절. “무릇 아직 속량도 되지 못하고 해방도 되지 못하고 정혼한 씨종과 사람이 행음하면 두 사람이 형벌은 받으려니와 그들이 죽임을 당치 아니할 것은 그 여인은 아직 해방되지 못하였음이라 21. 그 남자는 그 속건 제물 곧 속건제 수양을 회막 문 여호와께로 끌어 올 것이요 22. 제사장은 그의 범한 죄를 위하여 그 속건제의 수양으로 여호와 앞에 속죄할 것이요 그리하면 그의 범한 죄의 사함을 받으리라”

 

어떤 집에 여자 아이가 집안의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종으로 팔려서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그 여종은 이미 정혼을 한 몸입니다.

아직까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정혼자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희년(禧年) 제도가 있어서 종이라 할지라도 희년이 되면 원래의 상태인 자유자로 놓아 주어야 합니다.

이스라엘은 같은 동족끼리는 종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레위 25:39-46절. “네 동족이 빈한하게 되어 네게 몸이 팔리거든 너는 그를 종으로 부리지 말고 40. 품군이나 우거하는 자같이 너와 함께 있게 하여 희년까지 너를 섬기게 하라 41. 그 때에는 그와 그 자녀가 함께 네게서 떠나 그 본족에게로 돌아가서 조상의 기업을 회복하리라 42. 그들은 내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바 나의 품군인즉 종으로 팔리지 말 것이라 43. 너는 그를 엄하게 부리지 말고 너의 하나님을 경외하라 44. 너의 종은 남녀를 무론하고 너의 사면 이방인 중에서 취할지니 남 녀 종은 이런 자 중에서 살 것이며 45. 또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의 자녀 중에서도 너희가 살 수 있고 또 그들이 너희 중에서 살아서 너희 땅에서 가정을 이룬 그 중에서도 그리 할 수 있은즉 그들이 너희 소유가 될지니 46. 너희는 그들을 너희 후손에게 기업으로 주어 소유가 되게 할 것이라 이방인 중에서는 너희가 영원한 종을 삼으려니와 너희 동족 이스라엘 자손은 너희 피차 엄하게 부리지 말지니라”

 

희년이 되면 자유의 몸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비록 사정에 의하여 종노릇을 하지만 종 취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에 의하여 구원을 입은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모두가 여호와 하나님의 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동족을 종으로 삼는 자는 하나님께 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묻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동족은 종으로 삼지 말고 이방인을 종으로 삼으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종과 이방인의 종은 다릅니다.

이스라엘의 종은 한 혈통이지만 이방인 종은 다른 혈통입니다.

한 혈통을 한 형제이지만 다른 혈통은 남입니다.

그러므로 한 형제가 비록 사정에 의하여 종으로 왔지만 엄히 부리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은 종의 신분이지만 정한 때가 되면 자유인으로 놓아 주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지금 종이라고 해서 주인이 마음대로 겁탈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종과 음행을 하면 죄를 묻겠다고 합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과목을 심고 그 열매는 할례 후에 먹으라고 합니다.

 

23-25절. “너희가 그 땅에 들어가 각종 과목을 심거든 그 열매는 아직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되 곧 삼 년 동안 너희는 그것을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 먹지 말 것이요 24. 제 사 년에는 그 모든 과실이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25. 제 오 년에는 그 열매를 먹을지니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 소산이 풍성하리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과목을 심으면 보통 삼 년이 되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나 삼 년째 열리는 열매는 할례 받지 못한 것으로 여겨서 먹지 말라고 합니다.

 

할례는 사람에게 행하는 것이지 열매에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과목에서 난 열매를 할례라고 하는 것은 그 과목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과목으로 의역 하여서 말하는 것입니다.

 

왜 삼 년째 열리는 열매는 할례를 받지 않은 것이라고 할까요?

 

3년과 4년과 5년의 의미를 예수님의 사역으로 적용하시면 이해가 쉽습니다.

예수님이 3년 동안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 40일 동안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셨습니다.

그리고 50일째가 되어서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복음을 전하면서 3년 동안 과목을 심었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동안 무덤에 계셨습니다.

이 때는 아직까지 구원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제자들에게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3년째 할례 받지 못한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40일 동안 세상에 계셨습니다.

이것은 4 년째 맺은 열매와 같이 거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것이므로 먹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신 후에 마리아가 예수님을 손으로 만지려고 하자 만지지 못하게 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아직까지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만지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 열매로서 하나님께 드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첫 열매는 하나님이 잡수셔야 하는 것입니다.

 

초실절이 되면 첫 열매를 하나님께 먼저 드립니다.

하나님께 드리기 전에는 먹어서는 안 됩니다.

첫 것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하나님께 먼저 드린 후에 먹도록 하였습니다.

예수님은 초실절의 첫 열매입니다.

그러므로 4 년째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것이므로 먹지 말라고 한 것입니다.

 

5 년째 열매는 먹으라고 합니다.

이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5 년째 열매가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들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가 할례 받은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으로 거듭 난 자들의 것만 받으십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는 종이고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종의 것은 받지 않고 아들의 것만 받으십니다.

 

종은 옛 언약으로 드리고 아들은 새 언약으로 드립니다.

옛 언약은 자기 의로 드리는 것이고,

새 언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옛 언약인 율법으로 드려지는 예배는 받지 않으십니다.

새 언약으로 드려지는 예배만 받으십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이 5 년째 열매인 할례 받은 하나님의 아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은 이방인과 다른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습을 벗어 버리고 새로운 피조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서 이방인의 신앙적인 풍속을 쫓아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26-31절. “너희는 무엇이든지 피 채 먹지 말며 복술)을 하지 말며 술수를 행치 말며 27. 머리 가를 둥글게 깎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치 말며 28. 죽은 자를 위하여 너희는 살을 베지 말며 몸에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29. 네 딸을 더럽혀 기생이 되게 말라 음풍이 전국에 퍼져 죄악이 가득할까 하노라 31. 너희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며 그들을 추종하여 스스로 더럽히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고기를 피 채 먹지 말라고 합니다.

피는 생명을 상징합니다.

고기는 노아 홍수 후에 주어진 것입니다.

노아가 방주에서 나와서 정결한 짐승을 잡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흠향하시고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언약을 세우십니다.

그러면서 고기를 양식으로 주시면서 피는 절대로 먹지 말라고 합니다.

고기를 먹게 하신 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을 기억케 하기 위함입니다.

흠 없는 제물의 피 흘림으로 용서 받고 산다는 것을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피는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 어떤 피도 먹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피를 먹지 못하게 하신 것은 흠 없는 제물이 대신 피 흘려주심으로 용서 받고 살고 있음을 깨닫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복술과 술수를 하지 말라고 합니다.

복술은 점치는 것이고,

술수는 사람의 정신을 혼미케 하는 일종의 최면을 거는 것입니다.

이는 신앙생활을 무당 푸닥거리 하듯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 말라고 합니다.

신접한 자와 박수는 귀신과 교통을 하여서 각양의 이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자들입니다.

 

이 시대 기복주의 신비주의를 쫓아가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자기들이 본 것을 의지하여서 거짓 것을 믿게 하는 자들입니다.

신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느 시대나 말씀으로 자기 백성들을 인도 하셨습니다.

마귀는 이를 잘 알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어떤 현상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거짓 선지자들을 일컬어 표적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종말에 거짓 선지자들이 많이 일어나서 거짓 표적과 기사로 많은 사람들을 미혹 한다고 하였습니다.

 

그 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는 자들은 신기한 표적들을 쫓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에게 사단의 역사를 따라서 거짓 것을 믿게 하여서 심판을 받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살후 2:9-12절. “악한 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10.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11.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12.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인간들이 복술 하는 자와 술수를 행하는 자와 신접한 자와 박수를 찾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길흉화복을 좌우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인간의 생사화복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피조물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피조물은 그것이 길한 일이든 흉한 일이든 창조주의 뜻에 순응을 하면 됩니다.

이 말은 범사에 하나님을 의식하고 살아가라는 뜻입니다.

성도에겐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복술이나 술수는 모두가 하나님을 잊게 만드는 행위 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에게 죄란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나님을 잊은 채 이 세상에서 터를 닦고 성공해서 잘 살고자 하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아담은 늘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빨리 에덴동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의 삶의 자세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을 잊게 만들었습니다.

아담은 마귀의 미혹으로 하나님을 잃어버리게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까 세상에 집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건 죄가 가중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를 둥글게 깍지 말고 몸에 문신도 새기지 말라고 합니다.

머리를 둥글게 깎는 것은 이스마엘의 후예들인 아랍인들이 그들의 신을 섬기는 것에서 유래가 되었습니다.

이방인들은 일월성신을 섬겼습니다.

하늘의 별자리를 숭배하는 자들이 그 별자리의 형태를 본 따서 머리에 새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몸에 문신을 새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방인들은 몸에 신과 교접하는 것을 새기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것이 문신입니다.

문신은 일종의 부적(符籍)과 같은 것입니다.

 

이방종교에서는 신에게 정성을 드릴 때에 몸에 피를 흘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이 자기 몸을 칼로 그어서 피를 내면서 기도한 것은 인간의 정성을 신에게 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정성을 받지 않으십니다.

죄인에게서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의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그 땅의 원주민들처럼 하나님께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건을 사고 팔 때에는 공평한 저울을 사용하라고 합니다.

이는 남을 속여서 이익을 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35-37절. “너희는 재판에든지 도량형에든지 불의를 행치 말고 36. 공평한 저울과 공평한 추와 공평한 에바와 공평한 힌을 사용하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37. 너희는 나의 모든 규례와 나의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저울을 속인다는 것은 불의의 이(利)를 취하려는 탐욕입니다.

애굽에서는 자기 힘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탐욕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을 하나님이 공급해 주는 것으로 살았습니다.

가나안은 광야의 완성된 지점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것으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탐심은 자기 힘으로 살고자 할 때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나안에서는 탐심을 부릴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가나안에서는 남을 속여 가면서 불의로 이를 취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문자적인 의미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말씀 앞에서 우리가 과연 이러한 말씀대로 살아 갈 수가 있느냐를 물어 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이 추상같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그 말씀대로 살아내지를 못한다고 한다면 그림의 떡인 것입니다.

 

율법은 쌍무(雙務) 언약입니다.

누구라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죽임을 당합니다.

그런데 구약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가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면서 계약을 어기고 맙니다.

 

이에 모세가 돌 판을 깨트리고 그걸 갈아서 물에 타서 백성들에게 마시게 하면서 계약 파기를 선언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약속대로 삼천 명을 죽입니다.

 

이 때 모세가 자기 생명을 담보로 중보 합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생명을 담보로 이스라엘을 용서해 주십니다.

그리고 처음 것과 똑 같은 내용을 담은 돌 판을 주어서 성막에 보관토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성막에서 흠 없는 제물로 희생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이는 백성들로 하여금 자신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게 하고,

그럼에도 살고 있는 것은 흠 없는 제물의 희생 안에서 살고 있음을 깨닫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그럼 신약을 사는 우리들은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해서 우리의 실존을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과연 하나님 말씀대로 살 수 있느냐 입니다.

 

거룩이 뭐냐?

십계명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십계명 정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럼 과연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 할 수 있느냐 입니다.

 

사랑은 하나님께 속하였습니다.

이 말은 우리에게는 사랑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은 우리 것으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랑이 아니고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자면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십계명이 담고 있는 사랑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러면 먼저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있느냐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웃을 사랑하기 이전에 먼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담겨진 본 뜻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나 우리가 동일한 성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구약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하였다고 한다면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럼 오늘 본문을 구약적으로 해석하여서는 안 됩니다.

신약적으로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옛 언약은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이지만,

새 언약은 예수님께서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는 율법의 요구대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케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완성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가 다 이루었다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를 믿는 것이 율법을 지킴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대할 때 항상 하나님의 입장에서 이해를 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말씀을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왜 주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지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고 죄를 고발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를 사도 바울은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깨어진 십계명을 다시 주신 것은 십계명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고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스라엘의 실존을 고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고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고발하기 위하여 지킬 수도 없는 말씀을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나는 이런 사람을 원한다고 정답으로 알려 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너희가 가나안에 들어가서 이러한 삶을 살기를 바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뜻대로 사느냐 안 사느냐에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고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원한다는 정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정답 앞에 우리 자신들을 세워야 합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온전하게 지키는 사람을 원하십니다.

그런데 십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죄가 없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죄 아래서 난 자들은 십계명을 온전하게 지켜 낼 수가 없습니다.

 

십계명은 우리의 의지와 각오로 지켜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가 없습니다.

이게 죄인의 한계성입니다.

이 사실을 구약 이스라엘을 가지고 시험을 하신 것입니다.

죄인은 하나님께서 아무리 곁에서 도와주어도 안 된다는 것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안다고 말씀대로 살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왜? 안 되는 것일까? 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 아래 거하여야 합니다.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죄인의 한계성을 십계명을 가지고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발하는 이유는 항복 하라는 것입니다.

상한 심령으로 하나님께 ‘두 손 들고 도와주세요’ 라고 도움을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음을 깨달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가지고 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안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존재이유입니다.

구약은 실패의 역사입니다.

 

인간이 이루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든 백성들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구원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고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성도들이 혜택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럼 성도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넋 놓고 있으란 말이야?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의 몸을 가지고 예수로부터 받은 생명들을 쏟아내는 일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가지고 십자가 사건을 재현케 하십니다.

예수님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죽었는데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하나님께서 우리 몸을 가지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려고 성령을 보내 주신 것입니다.

 

이게 성령의 은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은 은사로 살았는데 이웃이 혜택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을 살았는데 결과적으로 이웃이 혜택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구약식으로 율법대로 밭에 곡식을 다 베지 않았는데 가난한 자들이 혜택을 보게 된 것입니다.

율법대로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증거하지 않았더니 이웃들이 득을 보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산 것이 결과적으로 이웃 사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속에서 이러한 소원들을 두고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 하신 후에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신 것입니다.

우리 몸으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을 그려 가시는 것입니다.

 

성도의 몸은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이웃에게 나누어주게 하십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 할 때 이웃 사랑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죽은 그 자리에서 피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를 따르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정과 욕심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는 삶을 살아가도록 성령의 간섭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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