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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성경강해)58강.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계 22:6-15)

by coroa 2021. 11. 8.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58강.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계 22:6-15)

-.정낙원 목사

 

계 22:6-15절 “또 그가 내게 말하기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자라 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결코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7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8 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 저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성경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약속을 하십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역사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므로 성경 속의 약속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반드시 이루어 내십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도 있고 현재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있고 장차 이루어질 것들도 있습니다.

모든 약속은 하나님이 지켜내십니다.

약속을 다른 말로 예언이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이란? 요한계시록에 기록이 된 모든 내용을 말합니다.

광의적으로는 모든 성경을 말합니다.



인봉하지 말라는 것은 기록된 대로 모든 것이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것을 역사 속에서 실제로 이루시겠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사건화 되어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말씀을 지킨다는 것은 말씀이 실제로 사건화 되어서 나타나는 것을 믿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약속이 뭔가요?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이 세상을 떠나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게 됩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신앙입니다.



믿지 않는 자들은 성경의 이야기를 허황된 것처럼 듣고 농담으로 여깁니다.

인간들 입장에서는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고 이 세상을 멸하시고 자기백성들을 천국으로 데리고 간다는 소리를 동화 속 이야기처럼 헛튼 소리로 들릴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성도는 사실로 믿습니다.



술람미와 예루살렘 여자들을 비교해 보세요.

예루살렘 여자들 입장에서는 술람미가 솔로몬 왕을 기다린다는 것은 미친 짓처럼 보일 것입니다.

솔로몬이 미쳤다고 당신 같은 거지를 사랑하고 왕비를 삼아 준다고 하겠느냐?

비웃으면서 비아냥거리고 조롱하였습니다.

그러나 술람미는 솔로몬과의 사랑을 진실로 믿었고 다시 데리러 온다는 약속을 의심치 않고 사실로 믿었습니다.



솔로몬이 오기까지 예루살렘 여자들이 말이 맞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술람미의 믿음대로 솔로몬은 술람미를 데리러 왔고 왕비로 삼았습니다.

예루살렘 여자들은 이성으로 생각하였고 술람미는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우리는 흔히 믿음 장이라고 합니다.

믿음으로 살았던 사람들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 11장을 시작하면서 뭐라고 하나요?



히브리서 11장을 봅시다.



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2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합니다.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믿음은 장차 주어지는 것을 실제로 믿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장차를 현재화 하여서 살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장차의 일은 아직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맛보게 하여서 실제로 여겨지게 합니다.

선진들이 이로서 증거를 얻었다고 하지요.



증거란? 장차 이루어질 것은 현재에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선취적 삶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장래 일어날 일을 미리 앞당겨서 맛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마치 화장품의 샘플을 미리 체험하고 본 상품을 이해하듯이 믿음이 바라는 것들을 미리 맛보게 하고 경험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국을 보지 못하였지만 믿는 것은 믿음이 실제로 여기지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여기지는 사람은 실제 천국을 소망하고 살아갑니다.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고낭당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핍박을 받는다고 하여도 낙심치 않고 그 나라를 소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입술로는 천국을 말하나 실제 삶이 천국을 향하는 것이 아니면 관념이고 허상입니다.

그건 스스로 속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천국 백성으로 사는 사람에게 주어집니다.

이 땅에서 천국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세상에 물질적 가치로 살지 않고 하늘에 영적 가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를 나그네와 행인의 삶이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이 땅에서도 천국으로 살고 죽어서도 천국에 가겠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천국을 야속하신 적이 없습니다.

그건 자기들이 지어낸 천국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예수로 인하여 버려짐을 당한 자들을 위하여 준비가 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살아갈 바기 백성들에게 믿음을 주어서 이 세상은 허상이고 지나가는 것이고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다는 것을 믿어지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받은 성도는 이 세상 가치로 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비록 삶이 고달프고 힘들더라도 술람미처럼 신랑의 약속을 굳게 믿고 장치 주어지는 영광을 생각하면서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라는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역사 속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유한한 것들입니다.

이 세상에는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부귀영화도 유한하고 권세도 유한합니다.

즐거움도 유한하고 아픔도 유한합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것을 실상으로 믿고 사는 자들은 어리석은 자들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은 드라마에 출연한 배우들과 같습니다.

드라마에서는 왕의 역할을 밑을 수가 있고 신하의 역할을 밑을 수가 있습니다.

드라마에서 왕이라고 하여서 드라마 밖에서도 왕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드라마는 허상이고 드라마 밖이 실상입니다.

드라마가 끝이 나면 실상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를 안다면 드라마 속에 왕의 인생을 올 인하는 것이 아니라 드라마 밖의 인생에 올인을 하여야 합니다.



부자와 나사로를 보세요.

부자와 나사로는 이 세상 속에서 드라마를 찍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는 이 세상을 드라마라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나사로는 이 세상이라는 드라마 속에서 거지 역할을 맡은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나사로는 이 세상에서의 삶은 드라마 속의 이야기이고 허상임을 알았습니다.

그러므로 나사로는 거지라고 낙심하여서 울고불고 하지 않은 것입니다.

역사 속의 드라마가 끝이 나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갔습니다.



부자는 허상을 실상인줄 알고 착각하고 살다가 지옥으로 갔고,

나사로는 실상은 하늘에 따로 있음을 알고 이 땅에서 거지로서의 삶은 잠시 지나가는 허상으로 여기면서 장차 갈 곳을 소망하고 살다가 천국으로 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속한 것은 다 유한한 것들입니다.



영원한 것은 이 세상 바깥 하나님 나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것으로 인하여 희비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실상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봅시다.



히 11:3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는 뜻입니다.

보이는 세계가 있고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니다.

보이는 세계를 역사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묵시라고 합니다.



보이는 세계를 이 세상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세계를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은 창세전 언약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이 세상은 창세전 언약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창세전 언약을 이 세상에서 펼쳐 보이십니다.

그런데 창세전 언약은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도 시작과 끝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도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태어나는 것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우리의 구원도 시작하였으니 끝이 있는 것입니다.



지금은 역사의 끝이 다 다른 때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끝이 다가오고 있는 때입니다.

세상 끝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이를 만물들이 각양의 징후들을 통해서 그 끝이 다 되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지난 6월 22일에 영국의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 박사는 빠르면 30년이고 늦으면 100년 안에 지구의 종말이 다가 올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스티븐 호킹 박사는 지구의 끝이 다다랐다고 하면서 인류가 살 수 있는 길은 빨리 우주에 새로운 해성으로 이사를 가야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그만큼 지구가 사람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상실하였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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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을 전문 그대로 옮깁니다.



지구 종말 30년 안에 지구 떠나야 해



최인준 기자 입력 : 2017.06.22 03:04 / 스티븐 호킹 / AP 연합뉴스



스티븐 호킹, 인류에 또 경고 "현대판 노아의 방주 만들어야"



"소행성 충돌과 인구 증가, 기후변화 등으로 인간이 더 이상 지구에 살 수 없게 될 겁니다.

3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합니다."

세계적인 천체 물리학자인 스티븐 호킹(75· 사진)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20일(현지 시각) 노르웨이에서 열린 천체 우주과학 축제인 스타무스 페스티벌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영국 BBC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호킹 박사는 이날 연설에서 "지구가 사람이 살기 어려울 정도로 파괴되는 건 시간문제" 라며,

"화성과 달에 식민지를 세우고 그곳에 노아의 방주처럼 보관 시설을 세워 지구 동식물의 종(種)을 보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킹 박사는 그동안 각종 연설과 방송 인터뷰에서 인류의 생존이 위협받고 있다고 말해왔다.

지난달 진행한 영국 BBC 다큐멘터리 녹화에서도 "100년 안에 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했다.

지구를 대신할 새로운 터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하며 인류에게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 지구 환경에 대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호킹 박사는 이번 연설에서 이전보다 구체적인 '지구 탈출 일정'도 제시했다.

호킹 박사는 "우주 선진국들이 주축이 돼서 2020년까지 우주인을 달에 보내고,

30년 안에 달에 식민지를 세워 인류가 살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2025년까지는 사람을 화성에 보내고 50년 내 전초기지를 세워야 한다"고도 했다.

호킹 박사는 지구와 비슷한 행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태양계 밖 다른 행성계를 찾아 떠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는 지난해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과 함께 지구에서 4.3광년(1 광년은 빛이 1년 가는 거리로 약 9조 4600억㎞) 떨어진 별인 알파 켄타우리로 우표만 한 우주선을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6/22/201706220023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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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킹 박사는 지구의 미래가 밝지 않다고 합니다.

이 시대 지구의 환경은 다양한 재앙의 징후들을 안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죽음의 그늘들이 검버섯처럼 몸에 번지듯이 지구도 늙으면 환경에 다양한 징후들을 쏟아낸다는 뜻입니다.

이걸 종말론적 징조라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도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 하신 종말의 징조를 보면 천재지변은 물론이거니와 극심한 배도현상과 사회적으로는 민족과 민족이 나라와 나라가 엄청난 갈등과 반목으로 싸우게 되고 사람들은 사랑이 식어져서 서로가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인간성을 상실한 사나운 짐승이 되어 간다고 하였습니다.



지금이 그러한 때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이러한 일을 늘 있어 왔습니다.

그 때는 부분적으로 일어났지만 지금은 온 세계에 편만하게 퍼져서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은 문명과 과학의 발달로 지구는 한 동네처럼 되었습니다.

외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옆 동네에서 일어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옆 동네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산불처럼 금방 번져서 우리 동네로 밀려들어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예언들이 다 이루어지고 있는 때입니다.

예전에는 성경 속 이야기가 상징으로만 보였던 것들이 이제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습니다.

말씀이 실제화 되고 있습니다.



어제 밤 TV 뉴스에서는 미국과 스웨덴에서는 인간의 몸에 생체 칩을 심어서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보도 하였습니다.

오른 손에 생체 칩을 심어서 카드 결제에서부터 지하철이든지 시장의 마켓에서 물건 값을 치르고 각종 로그인 인식까지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이젠 카드나 통장이 필요가 없는 때가 되었습니다.

몸에 생체 칩을 하나만 심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몸이 카드입니다.

카드처럼 도용당할 이유도 없어졌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에서 말하던 666짐승표가 실제적인 모습으로 드러나고 있는 때입니다.

이제는 성경 해석도 과거처럼 666은 상징이라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종교적으로 이용하여서 이마나 오른 손에 새기면 상징으로만 여기던 666 짐승표가 실제로 드러나게 됩니다.

지금은 아니더라도 장차는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지금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상징들이 실제로 드러나고 있는 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고 하지요.

이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지면 요한계시록의 모든 내용들이 사건화 되어서 실제로 드러나게 된다는 말입니다.



그동안 상징으로 보았던 것들이 실제로 나타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천년 왕국도 상징으로만 보았는데 이제는 실제로 보아야 합니다.

지금은 모든 성경이 실제로 드러나는 때이니까 천년 왕국도 상징으로 또는 영적으로 보아서는 안 되고 실제로 보아야 합니다.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는 것은 책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언약이 완성 지점에 가까이 왔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은 95년경에 기록이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을 처음 시작 할 때 요한계시록의 성격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예언의 말씀은 “반드시 속히 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장차 될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적이 아니고 실제로 될 일입니다.

상징이 아니고 실제입니다.

이는 우리의 구원도 영적이 아니고 실제이고 천년 왕국도 상징이 아니고 실제라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이 기록이 되면서부터 예언은 시작이 되었습니다.

예언은 시작과 끝이 있으므로 점진적으로 확대되면서 심층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언을 다른 말로 하면 언약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역사의 시간에 따라서 언약은 구체적으로 성취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을 보시면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다고 합니다.

이것은 농담이 아니고 사실이라는 뜻입니다.

가벼이 여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주신 이가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왜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라고 할까요?

이는 종말에 이 예언의 말씀을 외치는 종들은 선지자적 사명을 가지고 외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구약을 보면 두 종류의 선지자가 있습니다.

궁중선지자와 광야 선지자가 있습니다.

궁중선지자는 선지 학교에서 배워서 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광야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신에 감동을 입은 자들입니다.



광야의 선지자들은 돌발적으로 나타납니다.

백성들의 신앙의 위기 때에 나타나서 세례요한처럼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있을 때 나타나서 말씀 안으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선지자가 나타났다는 것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나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강력한 말씀으로 언약 안으로 돌아오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선지자들을 보낸다는 것은 강력한 회개 운동이 일어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통해서 종말의 교회 모습을 라오디게아 교회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신약의 전 교회 시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신약 교회의 시작인 초대교회를 상징하고 있으며,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교회 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을 봅시다.



계 3:14-22절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신앙 모습은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란 뜻입니다.

믿는 것도 아니고 안 믿는 것도 아닌 상태입니다.

이러한 상태를 예수님은 초림 시에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걸 외식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라오디게아 교회는 스스로 자고하고 있습니다.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교만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스스로 신앙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판단은 냉엄합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발가벗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를 모두 문 밖으로 쫓아냈다고 합니다.

이건 예수님의 초림 때 바리새인들의 모습과 동일합니다.



바리새인들은 스스로의 의에 취하여서 자고하고 있었습니다.

외식으로 가득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에서 떨어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세례요한을 선지자로 보냈습니다.



세례요한은 손에 강력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도끼를 들고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그것이 유대인의 왕인 헤롯왕을 책망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왕은 백성을 대표하는 자입니다.

왕이 타락하였다는 것은 온 백성 모두가 타락하였다는 증거입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헤롯왕의 잘못을 강하게 책망을 한 것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가 무엇으로 자고합니까?

무엇으로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합니까?

이는 자기 의이고 세상 것입니다.

예수의 의를 입고 있어야 하는데 자기 의로 치장하고 있으니 발가벗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배부름을 얻어야 하는데 세상 것으로 배부름을 얻고 있으니 예수님은 마음에서 다 내어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으로는 재림하는 예수님을 맞이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보내는 것입니다.



선지자들을 보내서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히고 마음속에 있는 세상 임금을 몰아내고 예수그리스도를 모셔 들이도록 합니다.

이들이 바로 종말의 선지자인 두 증인들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구약의 배경을 바탕으로 기록이 된 것입니다.

이는 구약의 종말 때나 신약의 종말 때나 영적 상태는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영적으로는 동일합니다.

예수님 초림 때 구약 교회의 모습은 외식이었습니다.

교회가 강도의 굴혈이 되었습니다.

매매하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 모습은 구약 내내 있어 왔던 모습들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제사장들이 권력을 삼아서 백성들의 고혈을 짜내서 자기 배를 불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이게 요한계시록 17-18장에서는 음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음녀가 성도들의 영혼을 사냥하면서 자기 배를 불리고 부와 사치로 연락을 하면서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교회에 선지자들을 보내서 전쟁을 하는 것입니다.



구약 교회의 종말 때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오셔서 선지자 역할을 하였습니다.

세례요한과 예수님은 두 증인과 같습니다.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선지자 역할을 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보면 두 증인들이 나옵니다.

두 증인을 일컬어 선지자라고 합니다.

두 증인들이 어디에서 외칩니까?

교회입니다.



왜 교회에 선지자를 보냅니까?

이는 교회가 하나님을 떠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과 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두 증인들이 엘리야처럼 일을 하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과 싸웁니다.



두 증인이 엘리야의 심정과 능력으로 보내심을 입었다는 것은 종말의 교회가 엘리야가 사역 할 때와 같이 타락하였다는 뜻입니다.

엘리야 시대 이스라엘의 신앙은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던 시대입니다.

바알과 아세라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떡으로 미혹하여서 바알을 하나님으로 둔갑을 시켜서 섬기게 하였습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이 땅의 신입니다.

바알은 풍요의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입니다.

풍요와 다산은 인간들이 쫓아가는 것들입니다.

풍요와 다산을 한마디로 하면 떡입니다.



이 시대 교회가 떡을 사고파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예수에게 떡을 달라고 오고 목사들은 떡을 주겠다고 합니다.

목사와 교인이 예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땅의 떡으로 매매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름하여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인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 거짓 선지자들도 지금처럼 다른 하나님(예수) 다른 언약(복음) 다른 영을 전하였습니다.

요즈음 식으로 말하면 복 주는 예수를 가르친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마다 거짓 목사들이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가르치고 있고 교인들은 그 소리를 복음으로 듣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이 가르치는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가 전하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그것이 갈멜산 전투로 나타났습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이스라엘의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이것은 언약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그러자 하늘에서 불이 내려서 엘리야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고 거짓 선지자들이 전하는 바알은 가짜 하나님이라는 것으로 드러내셨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을 간섭하는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언약이 뭔가요?

땅과 후손에 관한 언약입니다.

그 땅이 어디에 있나요?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입성하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하늘에 있는 한 성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이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하늘에 있는 성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그 하늘에 있는 성이 바로 새 하늘과 새 땅인 천년 왕국입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하나님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하늘에 있는 성을 유업으로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성이 바로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천국이고 천년 왕국입니다.

그런데 이 시대 엘리야 시대 때에 거짓 선지자들이 백성들을 땅에 떡으로 미혹하여서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게 하였듯이 지금도 거짓 목사들이 세상 영광으로 성도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버리고 세상 떡을 쫓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 거짓 목사들이 마귀의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 와서 세상 것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세상에서 성공하여야 한다는 논리로 접근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거짓 목사들이 예수 믿으면 잘 살아야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가 그렇게 가난하게 살면 하나님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된다고 하면서 언약을 떠나 세상의 떡을 쫓아가게 하고 있습니다.



거짓 목사들은 떡 주는 예수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해 주려고 오신 분으로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교인들이 세상 문제를 들고 예수님에게 나와서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천년 왕국은 관심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에 관심이 없습니다.

오로지 세상의 떡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떡이 육신의 안락함을 주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돈이면 귀신도 부리는 시대입니다.

사람의 목숨도 사고파는 시대입니다.

돈이면 다 되는 시대입니다.

교회가 돈을 섬기고 있습니다.

돈이 하나님입니다.

교회가 예수님 초림 때처럼 강도의 굴혈이 되고 말았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소속은 땅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은 떡으로 백성들을 미혹하여서 땅을 벗어나지 못하게 합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으로 땅에 묶어 두는 일을 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은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들을 보냅니다.



초림 때에는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엘리야의 심정으로 오셔서 구약 교회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빼내시고 구약 교회를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마치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의 손에서 백성들을 빼내고는 거짓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로 데리고 가서 몽땅 몰살을 시켜 버린 것과 같습니다.

이것이 종말에는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시면 적그리스도 세력들을 몽땅 붙잡아서 무저갱 불 못에 가두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주의 길을 예비하는 종들을 보냅니다.

이들이 두 증인들이고 종말의 선지자들입니다.

두 증인들이 외칩니다.

보라 주께서 속히 임한다고 합니다.

그럼 주의 백성들을 돌이킵니다.



이를 일컬어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로 믿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복을 받은 자들은 요한계시록의 모든 말씀들을 액면 그대로 믿습니다.

과거에는 상징으로 보았지만 이제는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으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과학자들이 지구의 종말을 외치고 생체 칩을 오른 손에 심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하나님께 그동안 인봉된 예언의 말씀들을 이제는 사실로 드러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자들은 복을 받은 자들이고 안 믿는 자들은 보여 주어도 안 믿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을 불의한 자는 불의하게 살고 의로운 자는 의로 산다고 하는 것입니다.



본문을 봅시다.



10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 되게 하라



인봉하지 말라는 것은 다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이걸 믿는 자도 있고 농담으로 여기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를 의로운 자는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거룩 되게 한다고 합니다.

믿는 자는 예수님의 재림으로 몰고 오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천년 동안 왕 노릇 하면서 살아가는 것을 소망으로 기다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성경이 다 응해 가는 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성경이 응해져 가는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도 믿고 천년 왕국도 믿습니다.

믿어지는 사람은 불의에서 떠나 의로 살게 되고,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은 불의를 그대로 행할 것입니다.



무엇이 불의이고,

무엇이 의입니까?



불의를 알려면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의 아닌 것은 다 불의가 되기 때문입니다.

의와 불의를 의인화 하면 예수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되고,

가치관으로 따지면 의는 하늘에 가치로 사는 것이고 불의는 세상 가치관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늘에 가치는 말씀으로 살아가는 것이고 땅에 가치는 떡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의와 불의를 누구에게 속하였느냐로 판단합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면 죄인이라도 의로운 자이고,

적그리스도에게 속하였으면 세상의 윤리 도덕적으로 착한 사람일지라도 불의한 자입니다.



의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의입니다.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으로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자로서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불의란?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 불의입니다.

그러므로 불의를 행한다는 것은 세상에 속하여서 이 땅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무엇이 더러움이고,

무엇이 거룩함입니까?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하여서 약속을 믿음으로 하늘에 가치로 살면 거룩함이고,

적그리스도에게 속하여서 약속을 믿지 않고 땅엣 것으로 살면 더러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는 하늘에 속하였고,

적그리스도는 땅에 속하였습니다.

예수그리스에게 속한 자들은 하늘의 가치로 살고,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은 땅의 가치로 살아갑니다.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의 말씀이 떡으로 변질이 되면서부터입니다.

타락은 예수님이 우리의 배를 불리게 해 주려고 오신 분으로 생각하면서부터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가난한 자들을 배부르게 해주고 부자 만들어 주는 것으로 생각하면 타락합니다.

예수가 땅의 것을 채워주는 신으로 전락하면 타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땅에 것을 주는 예수를 다른 예수라고 하고,

땅에 복을 준다고 하는 소리를 다른 복음이라고 하고,

인간의 가치를 챙겨준다고 하는 것이 다른 영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4장을 봅시다.



마 4:1-11절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가서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라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제일 먼저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습니다.

잘 보시면 성령께서 예수님을 마귀에게 시험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이 마귀로부터의 시험을 이겨야 자기 백성들을 마귀로부터 구원해 내는 메시야로서의 사명을 감당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구약의 마지막 주자이면서 신약의 첫 주자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의 끝이면서 신약의 시작이 됩니다.

구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끝이 나고,

신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부터 시작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그리스도는 구약의 마지막 사람이면서 신약의 첫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신구약 모든 하나님의 백성의 대표로 마귀에게 시험을 받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실패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구약의 맨 마지막 주자로 보내서 구약의 실패를 만회케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이겨야 구약의 백성들을 이긴 자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마귀가 예수를 시험하는 세 가지 문제는 온 인류가 당하는 시험입니다.

마귀가 내민 세 가지 시험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첫째로 돌로 떡을 만들라고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기적을 행하는 영웅호걸이 되어서 자기 이름을 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세상의 모든 권세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 이 땅에 천국을 만들라는 것입니다.



이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한마디로 말하면 떡입니다.



왜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을 마귀의 시험으로부터 할까요?

이는 마귀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 것으로 시험을 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망한 것은 떡 때문이었습니다.

엘리야 시대에 백성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긴 것은 바알이 땅에 떡을 주기 때문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입니다.

바알은 남편이고 아세라는 아내입니다.

바알은 물질을 주는 풍요의 신이고 아세라는 다산의 신입니다.

인간들이 신에게 바라는 복은 다산과 풍요였습니다.

마귀는 풍요와 다산으로 백성들을 자기 수중에 붙잡아 두었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아담은 에덴동산 밖으로 내어 보내고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하십니다.

그리곤 저주 받은 땅을 뱀에게 줍니다.

뱀은 땅의 신으로서 떡을 가지고 흙으로 난 자들을 다스립니다.

흙에서 난 자들은 떡으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흙으로 난 자들은 자연히 떡을 주는 신을 섬기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광야로 나와서도 애굽의 음식을 잊지 못하는 것은 애굽의 음식이 육신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만나를 먹으면서도 본능적으로 애굽의 음식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우리가 교회에 와서도 세상 것을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떡으로 실패했습니다.

이게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입니다.

그래서 구약 교회의 마지막 모습을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습니다.



강도의 굴혈이란? 떡을 위하여 모인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떡을 얻고자 도적질을 한 것입니다.

교회로 모이는 자들도 떡을 위하여 모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 아버지 집은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들이 매매하고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하시면서 구약 교회를 저주하시고 나오신 것입니다.

그것이 구약 교회의 멸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은 새로운 이스라엘을 만드셨습니다.

그것이 신약 교회입니다.

예수님이 신약 교회의 시작이고 머리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예수님을 마귀에게 데리고 가서 시험을 보게 하신 것입니다.



마귀는 구약 이스라엘을 넘어뜨린 문제지를 가지고 예수님을 시험하였습니다.

마귀는 당연히 예수도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십일을 굶주린 예수에게 떡 줄까 그럽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합니다.

마귀가 어쭈구리 하면서 살짝 당황합니다.



그리곤 두 번째 문제지를 내어 놓습니다.

내가 널 세상의 영웅으로 만들어 줄게! 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나 영웅 되고 싶은 생각이 없어!

너 앞으로 사람들에게 하나님 가지고 영웅 만들어 준다는 소리 하지 마!

하나님은 우리를 영웅 만들어 주시는 분이 아니니까 그딴 걸로 시험하지 마! 그럽니다.



마귀가 많이 당황하면서,

어라! 이 놈 봐라!

그럼 넌 이건 거절 못할 것이다! 라고 하면서 마지막 문제지를 내어 놓습니다.

모든 인간들이 동경하는 세상의 모든 영광인 천하만국의 모든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만 하면 이걸 다 줄게! 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싫어!

나 그 딴것 필요 없어!

난 세상 부귀영화 얻고자 이 세상에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왔어!

내 소원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것이야!

그게 뭔 줄 아니!

내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주어서 이 땅으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이야!

그러니 앞으로 내 백성들에게 이딴 걸로 시험하지 말고 꺼져! 그러는 겁니다.



그러자 마귀가 나 살다 살다 떡 싫어하고 세상 부귀영화 싫어하는 인간은 처음 보았네!

별 희한한 인간이 다 있네!

뭐 저런 인간이 있느냐! 라고 하면서 떠나갑니다.



예수님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본격적으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떡으로 살던 자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자들로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약에서는 광야 40년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모세가 구약의 광야 40년 결산을 어떻게 말하는지 보고 갑시다.



신명기 8장을 봅시다.



신 8:1-20절 “내가 오늘날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으리라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3 너를 낮추시며 너로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너로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4 이 사십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릍지 아니하였느니라 5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도를 행하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곳은 골짜기에든지 산지에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들의 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10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옥토로 네게 주셨음을 인하여 그를 찬송하리라 11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지어다 12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13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14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15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 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물을 굳은 반석에서 내셨으며 16 네 열조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 17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열조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그들을 섬기며 그들에게 절하면 내가 너희에게 증거하노니 너희가 정녕히 멸망할 것이라 20 여호와께서 너희의 앞에서 멸망시키신 민족들 같이 너희도 멸망하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소리를 청종치 아니함이니라”



모세는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광야 40년을 걷게 하신 것은 이 사실을 가르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들어가서 얻을 땅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땅이기 때문입니다.



너희들 생각해 봐라!

40년 동안 굶었느냐?

아니지 않느냐,

헐벗었느냐?

아니잖아,

따뜻하게 입고 살았잖아,

하나님이 다 먹이고 입히고 하지 않았느냐,



왜 그런 줄 아느냐?

너희들이 들어가서 살아갈 땅이 그런 땅이기 때문이야!

가나안은 너희 노력으로 살아가는 땅이 아니고 하나님이 살게 해 주는 땅이야.

그러니까 거기에 가서는 무조건 순종하면 돼,

그럼 하나님이 다 알아서 먹이고 입히고 해 주실 것이니까,

광야 40년 동안 그걸 가르친 거야,



그러니 가나안에 들어가거든 광야에서처럼 징징거리지 말고 살어,

만약에 거기 가서도 광야에서처럼 떡 안준다고 징징거리면 진짜 혼이 나,

내가 하는 말 귓등으로 듣지 말고 잘 새겨서 들어,

하나님이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준 것은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니까,



만나가 어디까지 인도하였나요?

가나안까지 인도하지요.

가나안에 들어가니까 만나가 그쳤어요.

그래서 만나를 양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 16장을 봅시다.



출 16:1-4절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엘림에서 떠나 엘림과 시내산 사이 신 광야에 이르니 애굽에서 나온 후 제 이월 십오일이라 2 이스라엘 온 회중이 그 광야에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여 3 그들에게 이르되 우리가 애굽 땅에서 고기 가마 곁에 앉았던 때와 떡을 배불리 먹던 때에 여호와의 손에 죽었더면 좋았을 것을 너희가 이 광야로 우리를 인도하여 내어 이 온 회중으로 주려 죽게 하는도다 4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



출애굽 한 백성들이 애굽의 음식을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하늘에서 만나를 비같이 내려서 양식으로 주십니다.

그러면서 이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행하는지 안하는지를 시험하겠다고 하십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이때는 아직까지 율법을 받지 않았습니다.

율법은 출애굽기 32장에 가서야 받습니다.



지금은 율법이 없는 때에요.

그런데 만나를 주시고는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을 하겠다고 합니다.

왜 만나를 주시고는 이들이 율법을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 시험을 하겠다고 하시는가요?

이 말은 만나가 율법의 역할을 한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두 가지 기능이 있습니다.

첫째는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입니다.

둘째는 죄를 고발하는 역할입니다.

만나가 이 두 가지 역할을 했어요.



만나가 이스라엘을 가나안까지 인도 하였어요.

가나안에 들어가자 만나가 그치지요.

이것은 만나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이끌고 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만나 때문에 죄가 고발을 당하였어요.



모세는 만나를 가지고 율법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바울은 율법은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어요.

그럼 구약의 만나가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은 영적인 의미에서 보면 율법이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명히 광야 40년 동안 만나를 먹고 살았습니다.

이러한 면에서는 만나는 그들을 살게 하는 밥이었고 음식이었어요.

그런데 만나가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일을 했어요.



이러면 만나는 음식이 아니라 약속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약속의 말씀을 좇아서 들어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만나 속에는 두 가지 영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을 봅시다.



요 4:31-34절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님께서 수가성 여인을 찾아 갑니다.

이때가 정오입니다.

그러자 제자들이 동네에 가서 음식을 사 가지고 옵니다.

동네에 가서 빵을 사 가지고 온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드리니까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그게 뭡니까?

그러자 예수님이 내 양식은 아버지의 뜻을 행하며 그 일을 온전히 이루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은 아버지께서 이끌어 준 자들을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이라는 이 세상으로부터 빼내서 하늘에 있는 아버지 나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에게 양식이란?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이처럼 양식이란 먹고 배부름을 주는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일을 하게 하는 힘인 것입니다.

만나를 하늘의 양식이라고 하는 것도 만나가 하늘로 이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광야에서 하늘이란 가나안 땅입니다.



예수님은 만나를 자기 자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만나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어째서 예수님이 만나 역할을 했는가요?

이는 만나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였듯이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구약의 만나를 가지고 자기 자신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나는 하늘로서 온 산 떡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자기 살과 피를 먹으면 그 안에 생명이 있고 영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의 살과 피를 마신 자들은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는 우리의 먹거리가 아니에요.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길라잡이에요.

이 말은 예수님은 우리의 굶주림을 해결하러 오신 분이 아니란 뜻입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하늘나라로 인도하고자 오셨어요.



그런데 마귀는 예수를 인간의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먹거리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떡 주는 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에서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둔갑시켜서 하나님은 이 땅에 풍요와 다산을 주는 신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님을 떡 주는 하나님으로 섬기게 된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어느 시대이고 떡으로 사람들을 미혹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교회가 떡 주는 예수를 가르치고 있어요.

이들이 땅에 소속이 된 뱀의 후손으로서 적그리스도 세력들이고 거짓 선지자들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얘들아 너희들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하셨어요.

그러자 제자들이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합니까? 라고 묻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이에요.



예수는 떡을 주는 자가 아니라 자신의 살과 피를 주어서 하늘나라로 데리고 가는 일을 해요.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이 세상에서 성공한 자가 되고자 함이 아니에요.

이 세상을 떠나고자 함입니다.

하늘나라로 가고자 함입니다.



그런데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거짓 선지자들은 예수님을 이 땅에 천국을 만들어 주는 분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인들이 예수 앞에 나와서 떡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게 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배부름을 주는 떡이 아니고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양식인데 말이죠.

그런데 거짓 목사들은 예수를 떡 주는 분으로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떡과 양식은 달라요.

떡은 음식으로서 배부름을 주는 것입니다.

떡은 육신에게 필요한 것이에요.

떡은 땅에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양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인도하세요.

양식으로 힘을 얻어서 이 세상을 떠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양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가게 하는 능력이고 힘인 것입니다.



마치 엘리야가 힘들어 할 때 천사가 숯불에 구워준 떡을 먹고 사십일 사십야를 달려서 하나님의 산으로 가는 것과 같아요.

엘리야는 숯불에 구운 떡의 힘으로 하나님의 산으로 달려갔어요.

숯불에 구운 떡은 배부름을 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산으로 이끌고 가는 힘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이라고 하는 것도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말씀에 이끌려서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으로 왔듯이,

우리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이끌려서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숯불에 구운 떡을 먹이고 강도의 굴혈인 구약 교회를 떠나 성령으로 세워지는 신약 교회로 나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부활 하신 예수님이 숯불에 구워 주신 떡은 음식이 아니고 양식이에요.

새 날을 맞이하게 하는 양식인 것입니다.

그래서 조반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타락합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떡 주는 분으로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떡은 이 세상에 정착케 만들어요.

등 따습고 배불러서 예수 잘 믿는 사람은 없어요.

사람은 먹고 배부름을 얻게 되면 눕고 싶고 자고 싶어요.

그래서 떡을 가지게 되면 예수를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으로 세워진 교회에는 말씀을 주시고,

언약으로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떡을 주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들이 무얼 하나요?

떡으로 미혹하잖아요.

떡으로 가야 할 곳을 잊게 하잖아요.



마귀는 예수에게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떡으로서 증명해 보이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마귀에게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하셨어요.

이는 사람이 사는 이유는 배부름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데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최종 지점이 어디인가요?

하나님 나라입니다.

역사 속에서는 천년 왕국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 자들을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 짐승과 그 우상에게 절하지 않고 그 이마와 오른 손에 짐승표를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목베임을 받은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살자면 적그리스도를 경배하여야 해요.

적그리스도에게 경배를 해야 떡을 먹을 수가 있어요.

그런데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성도들은 적그리스도가 주는 떡을 먹지 않아요.

자연히 굶주림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고난도 없이 잘 먹고 잘 살면서 예수를 믿고 천국에 가면 얼마나 좋겠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아요.

천국에 가는 자들은 이 땅에서 버림 당하게 하였어요.



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된다고 할까요?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았기 때문에 떡 보다 말씀을 쫓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실력이 좋아서 말씀을 쫓아가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떡 보다 말씀을 쫓아가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이게 복이에요.



그래서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을 받은 성도들은 불의와 더러움을 떠나 의와 거룩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불의와 더러움은 인간들의 어떤 나쁜 행실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윤리 도덕적인 그런 차원의 말씀이 아니에요.



적그리스도를 따라가면 불의이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면 더러움이에요.

떡 주는 예수로 믿으면 불의이고 세상과 짝하고 살면 더러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런 자들을 일컬어 개들이고 술객들이고 행음자들이고 살인자들이고 우상 숭배자들이라고 합니다.



세상의 떡을 복이라고 가르치는 자들이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들이에요.

이들은 성 밖에서 있어요.

이는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천년 왕국에 들어 갈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각 사람에게 일한대로 갚아 준다고 하지요.

이건 행한 대로 갚아 준다는 인과응보를 말하는 것이 아니에요.

각 사람이 살아온 길로 인도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를 떡 주는 신으로 쫓아간 사람은 예수로 배부름을 주겠다고 하는 적그리스도가 있는 무저갱 불 못으로 들어가게 하고, 예수를 하늘에 양식으로 먹고 살아간 성도들은 하늘로 데리고 가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히 말하지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예수를 떡 주는 예수로 믿지 않아요.



하나님은 각 사람이 일한대로 갚아 주세요.

각자 갈 길로 인도 하신다는 뜻입니다.



아까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살펴보았잖아요.

하나님의 일은 무엇이라고 했나요?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자들은 그 약속대로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지 않은 자들은 그 약속대로 영벌에 나아가게 하세요.

이러면 각자 일한대로 갚아 주심이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보면 양과 염소를 심판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양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그리고 염소들에게는 영벌로 들어가라고 합니다.



영생과 영벌은 창세로부터 예비 된 곳입니다.

이것을 천지 창조로 보여 주셨어요.

천지(天地)는 두 세계를 말하는데 하늘나라와 땅의 나라에요.



하늘나라를 천국이라 하고 땅의 나라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였잖아요.

그럼 보이는 천지는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온 것이 되겠지요.

천지는 하늘나라와 땅의 나라를 상징한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늘나라는 천국이라고 하고 땅의 나라를 지옥이라고 했습니다.

그럼 이 땅에 하늘나라를 예표하는 천국과 땅의 나라를 예표하는 지옥이 있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천지로 나타난 것입니다.



천(天)은 하늘나라 천국이고, 지(地)는 땅의 나라 지옥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에서는 천지로 나타났지만 창세기 2장 이후에 가면 에덴동산과 그 바깥세상으로 나타났습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이고 아담이 범죄하고 쫓겨나서 살아가는 땅은 지옥인 것입니다.

아담이 살아가는 땅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이 지옥이에요.



구원이 뭐냐?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하늘나라에서 아버지께서 보내신 분에 의해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아담에게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분이에요.

예수님이 우리를 에덴동산으로 인도 하세요.



에덴동산은 이 땅에 나타난 천국입니다.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지만 에덴동산도 영원한 곳이 아니에요.

이 땅에 속한 곳이에요.



이 땅에 속한 것은 영원한 것이 없어요.

영원한 것은 이 세상 바깥 하늘나라에 있어요.

이 세상 바깥 나라는 누가 가느냐?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산 자들이 갑니다.



누가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사느냐 하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았어요.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산 것을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였잖아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내신 주 예수를 믿는 것이 아버지의 일을 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보내신 주 예수를 믿음으로 살아간 자들을 하나님의 일을 한 자로 간주하여서 그 삯으로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영생의 나라인 천국을 유업으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각자 일한대로 갚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를 상이라고 합니다.



상은 일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예수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상은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지 않은 자들은 성 밖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로서 내려온 성은 천국을 말해요.

천년 왕국을 말합니다.

성 밖에 누가 있다고 하나요?

예수 안 믿는 자들이에요.

이들을 일컬어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숭배자들과 거짓말을 좋아하고 지어내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잘 보세요,

참으로 의미심장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이 어디라고 했나요?

하늘 예루살렘입니다.

하늘 예루살렘 성은 누가 들어가느냐?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으로부터 버림당한 자들입니다.



이 땅에 있는 예루살렘에 누가 있었나요?

강도들이 있었어요.

이름하여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예수님은 땅 예루살렘으로부터 버림을 당하였어요.

땅 예루살렘에는 땅에 속한 자들이 주인으로 있었어요.

이들이 적그리스도 세력이고 거짓 선지자들입니다.

마귀의 종자들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땅 예루살렘에서는 쉴 곳이 없어요.

그래서 버림을 당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일컬어 하나님이 보내신 자들을 죽이는 곳이라고 하였어요.

이들이 바로 의인 아벨로부터 시작해서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까지입니다.

맨 마지막 주자가 예수님이에요.



하나님은 땅 예루살렘에서 버려진 자들을 주워서 하늘 예루살렘 성을 쌓았어요.

그러니까 하늘 예루살렘 성에는 이 땅 예루살렘으로부터 버림당한 자들만이 들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누가 땅 예루살렘에서 버림당하였나요?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들입니다.

다른 말로 예수를 믿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을 두루마기를 빤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7장 14절을 보면 큰 환란에서 나오는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고 합니다.



옷이란 의를 말합니다.

그럼 어린 양의 피로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다는 말은 자기 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입고 있는 것을 두루마기를 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늘 예루살렘 성에 누가 들어간다고 하였나요?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두루마기를 빠는 것이 하늘에 있는 성에 들어 갈 수 있는 권세라고 합니다.



하늘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권세는 어린 양의 피로 자기 의를 가린 자들입니다.

마치 유월절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자들만이 출애굽을 하고 홍해를 건너 것과 같은 것입니다.

홍해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른 자들만이 건널 수가 있어요.

어린 양의 피가 없는 자는 홍해에서 다 죽었어요.



장차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이 세상이라는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이 때 어린 양의 피로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만이 건너가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이 세상을 떠나는 마지막 출애굽이 일어납니다.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홍해를 건너는 것입니다.



이것을 예수님의 재림 때 공중으로 이끌려 올려 간다고 합니다.

누구만 이끌려 올라가는가 하면 어린 양의 피로 씻김 받은 자들만 올라갑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에 발가벗고 있지 말고 흰 옷을 사서 입으라는 말은 인간의 의를 버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있으라는 말입니다.



천국은 우리 옷을 입고 갈 수 없어요.

왕이 준비한 예복을 입어야 갈 수가 있어요.

그 예복은 왕이 입혀 주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하나님이 어린 양의 신부들에게 흰 세마포 옷을 입혀 주시는 것입니다.



흰 세마포 옷을 일컬어 성도의 옳은 행실이라고 합니다.

왜 흰 세마포 옷을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할까요?

이는 하나님 앞에 옳음은 예수그리스도의 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만이 하늘에 있는 성에 들어가는 권세가 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그리스도의 의에 옷을 입혀 주었어요.



신앙이란? 하나님이 입혀주신 옷을 입고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이 아담에게 입혀 주신 가죽 옷을 입고 나아가야 합니다.

가죽 옷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이 옳은 행실을 가진 자들입니다.

이 옳은 행실을 버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하늘에 있는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권세가 되기 때문입니다.

곧 그 성에 들어가는 닐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 인내하면서 소망 가운데 사시기 바랍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서 세상으로 떠내려가게 하려는 악한 때입니다. 마귀가 인간의 각종 달콤한 의로 아버지께서 입혀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벗게 하려고 합니다.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미혹 당하지 말고 끝까지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홀로 두지 마시고 눈동자같이 지켜주시옵소서. 그리하여 하늘에 있는 그 성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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