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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로마서 강해

♣(성경강해)64강. 은혜로 남겨진 자들 (롬 11:1-7)

by coroa 2021. 10. 2.

 

 

딤후 3장 12-15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64강. 은혜로 남겨진 자들 (롬 11:1-7)

-.정낙원 목사

 

 

 

어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와서 묻습니다.

선생님이여 어떻게 하면 영생을 얻습니까?

이는 영생 얻는 길을 좀 알려 달라는 말입니다.

 

아마도 예수님께서 방법을 알려 주었으면 당장이라도 영생을 따 냈을 것입니다.

과거 진 나라 시 황제가 불로장생을 위하여 불노초를 구하였듯이 인간들은 영생불사 하는 방법을 구하고 있습니다.

 

율법사의 물음이 모든 인간들의 물음입니다.

인간들은 무엇이든지 자기 쪽에서 접근을 합니다.

내가 뭔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라는 방법론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모든 종교는 이 방법론을 제시해 줍니다.

이렇게 하면 된다고 합니다.

 

여기에 가르침을 받은 신도들은 그 가르침대로 살고자 합니다.

종교에서는 자신들이 제시한 가르침대로 사는 것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이름하여 수행(修行)이고 득도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성경을 열면 이러한 것을 사정없이 묵사발을 냅니다.

거부합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라고 물으면 없어! 입니다.

인간들 쪽에서 구원을 얻어낼 길이 없다고 합니다.

 

율법사가 예수님에게 물은 그 물음을 오늘 본문식으로 해석을 하면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게 묻습니다.

하나님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습니까?

 

없어!

그러자 이스라엘이 항변합니다.

그럼 이스라엘을 버렸다는 말입니까?

 

이에 바울이 대신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아니!

그럴 수 없느니라! 고 합니다.

 

아니 조금 전에는 구원 얻을 길이 없다고 했잖아요.

그래 맞아!

구원 얻을 길이 없어!

 

그럼 우린 구원 받을 길이 없잖아요.

아니!

있어!

 

무슨 말입니까?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앞선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앞선 말씀이 뭔가요?

이건 지난 시간에 살펴본 말씀입니다.

 

다시 한 번 봅시다.

 

롬 10:13-21=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6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17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19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20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구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하였고 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 시온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희가 다 그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벌려서 오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듣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감기게 하고 귀를 막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였다는 말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손을 벌려서 오지 못하게 하였나요?

 

이는 그들의 힘으로 믿어서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손을 벌려서 야! 너희들 그 소리 들으면 안 돼! 라고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 무슨 말인가요?

 

아니~ 구원을 하려고 시온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라고 했잖아요.

그런데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면 우짭니까?

도리어 듣게 하여야지요.

 

그런데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 그러느냐?

그들이 믿어서 구원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그럼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렸단 말인가?

이에 바울은 말합니다.

아니! 라고,,,,

 

그럼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온에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였음에도 척 알아듣고 순종치 못하게 하였는가요?

이는 그들의 힘으로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왜? 안 되느냐 하면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은혜로 주어진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셔야지만 된다는 말입니다.

 

쉽게 설명합니다.

시온이란? 예루살렘을 말합니다.

이는 유대인 전체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유대인들에게 오셨습니다.

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유대인들에게 소개 합니다.

야! 이 분이 바로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말은 예수님이 너희 죄를 위하여 대신 죽어줄 하나님이 보낸 제물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너희 죄가 속량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너희들은 이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이라고 한다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척 알아보고 믿었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어주지!

그래야 했단 말입니다.

이게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한 목적이에요.

 

그런데 나타난 현상은 정 반대에요.

사람들이 말 같지 않는 소리 하지마!

그러면서 예수를 배척하고 죽였어요.

 

이런 일들을 누가 일으켰는가 하면 하나님이 일으켰어요.

우리 생각에는 하나님이 적극적으로 예수를 믿도록 해 줄 것이라고 여겨요.

그런데 성경은 정 반대로 하나님이 예수를 못 믿도록 했다고 합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원인을 사도 바울은 구원하심이 하나님의 은혜로 남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인간들이 예수를 믿어서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은 예수를 믿을 수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셔서 구원을 해 내신다는 말입니다.

이게 엄청 중요해요.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데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건 창세전 언약을 근거로 하십니다.

창세전 언약을 일컬어 은혜 언약이라고 합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잘 보세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란? 영생의 복이에요.

즉 구원의 복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이 영생의 복을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다고 합니다.

이건 예수의 공로로 공짜로 준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언약을 언제 정했다고 합니까?

창세전입니다.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이미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결정을 했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일을 하겠다고 정하셨습니다.

이제 이 기준으로 일을 해 나가십니다.

 

자 보세요.

창세전에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했다고 하지요.

택했다는 말은 우리의 행위와 상관없이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선택 했다는 말입니다.

이걸 은혜라고 합니다.

 

왜? 택했느냐 하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셨어요.

뭔가 이상하지 않나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말은 자기 백성들이 역사라는 세상 속에서는 비 거룩하고 흠이 있는 모습으로 있다는 말을 전제로 하는 말이에요.

즉 자기 백성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죄 아래 가두어지기 위해서 온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인간들은 죄 아래서 나고 죄 아래 팔린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나면서부터 죄인이에요.

이는 죄인을 조상으로 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잘잘못과 상관없이 죄 아래서 태어났어요.

왜? 그런 줄 아세요.

창세전 언약이 우리가 죄 아래 가두어져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죄 아래 가두어져 있어야 예수님이 오셔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즉 죄 아래서 건져 주신단 말입니다.

 

건져 낼 때 그냥 건져내지 않고 죄 값을 지불하고 건져내요.

죄를 주관하는 자에게 값을 지불하고 빼내 온단 말입니다.

그 죄 값으로 지불된 것이 예수님의 피에요.

즉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빼내 온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성도의 구원을 말할 때 예수의 피 값으로 산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값을 누구에게 지불을 합니까?

당연히 죄를 주관하는 자에게 지불하지요.

죄를 주관하는 자가 누구인가요?

마귀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귀 아래 붙잡혀 있는 자기 백성들을 빼내 오기 위하여 예수님을 속전으로 주신 겁니다.

예수님하고 자기 백성하고 맞 바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라는 아들을 마귀에게 주고!

마귀에게 붙잡혀 있던 자기 백성들을 빼내서 하나님 아들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이 예수라는 아들 하나를 마귀에게 주고 수많은 자기 백성들을 빼내서 자기 아들들을 만드신 것입니다.

이걸 한 알의 밀알을 땅에 떨어져 죽게 하여서 많은 열매를 맺게 하였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로 말미암아 죄에서 건져진 자들이 뭘 하는가 하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해요.

그러니까 구원의 궁극적 목적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뭘 찬미(讚美) 한다구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해요.

 

그 은혜가 뭔가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자랑하고 예수님을 찬미하라고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을 자랑하고 찬미하라고 우리를 구원했어요!

이걸 잊지 말고 기억 하세요.

 

그래서 제가 창세전 언약을 은혜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언약이기 때문에 은혜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뭐냐?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에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들이 날마다 모여서 뭘 했나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을 했어요.

교회가 뭐냐?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 모여서 어린 양을 찬미하는 곳이에요.

이 일이 바로 예수의 피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천국에서 하는 일들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을 봅시다.

 

계 4:10-11=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천국에서 구원을 받은 24장로들이 뭘 하는가요?

자기 면류관을 벗어서 어린양에게 던지고는 세세토록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지요.

24장로는 모든 성도들을 총칭하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죄악 된 세상에서 예수의 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해서 천국에 데리고 가는 목적이 어린 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면류관을 왜? 어린 양에게 벗어 던집니까?

이는 어린 양의 것이란 말입니다.

자신들의 구원이 어린 양으로부터 주어진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어린 양 아래로 종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진정으로 구원 받은 자들이 행할 자세입니다.

구원 받은 자기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구원 해 주신 분에게 감사하여야 한단 말입니다.

 

이걸 놓치지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안다고 하면서 구원해 주신 예수그리스도를 찬미하지 않고 구원 받은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있어요.

내가 구원 받기 위하여 예수님이 어떤 희생을 치렀는지 에는 관심이 없고 구원 받은 자기 영광에 도취되어서 살고 있어요.

이건 반칙이에요.

구원의 목적이 아니란 말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은혜 언약이라고 했지요.

그럼 마귀는 어떻게 창세전 언약을 훼손할까요?

그야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를 걷어내는 식으로 일을 하겠지요.

 

마귀는 어느 시대이고 역사 했어요.

어떻게 역사 하는가 하면 구원의 본질을 놓치게 만들어요.

구원해 주신 분에게 향한 눈길을 빼앗아서 구원 받은 자기 자신에게 고정하게 만들어요.

이렇게 되면 예수님에게 관심을 갖는게 아니고 예수 믿는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갖게 되어요.

 

이 시대 이러한 자들이 나타나고 있어요.

어떤 자들인가 하면 자기가 예수이고 자기가 진리라고 하는 자들이 있어요.

또한 어떤 자들은 자기는 예수처럼 산다고 하는 자들이 있어요.

이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초대교회로부터 있어 왔던 일인데 이 시대 포장지만 살짝 바꿔서 또 나타나고 있어요.

 

이런 자들을 영지주의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에도 두 가지가 있어요.

쾌락주의가 있고!

금욕주의가 있어요.

 

쾌락주의는 육체는 악하고 정신은 선하다고 하여서 진리를 아는 것이 구원이라고 하면서 몸은 방탕과 방종으로 나아가고 머리로는 지식을 습득하여 지적 유희를 즐기는 자들이에요.

금욕주의는 철저히 자기 몸을 쳐서 복종하여 마치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으로 나아간 자들입니다.

 

둘 다 자기에게 관심을 가진 이단들입니다.

이단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자기에게 관심을 두면 이단이에요.

 

마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시고 금식 하실 때 마귀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이 때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치를 챙기라고 시험해요.

네가 만약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한다면 잘 살아서 영광 돌려야 하지 않겠느냐!

세상에서 영웅호걸이 되어서 하나님 아들다움을 보이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대답하십니다.

야! 마귀야!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나를 증명하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고 아버지의 창세전 언약을 위해서 온 것이야!

내가 사는 목적은 떡이 있지 않고 하나님 말씀에 있어!

 

마귀는 자기에게 관심을 두라고 하고!

예수님은 나에게 관심두지 말고 하나님의 언약에 관심을 두라고 합니다.

여기에 신앙과 비 신앙이 극명하게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신앙은 구원 해 주신 분에게 관심을 두는 것이고!

비 신앙은 구원 받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신앙은 이런 죄인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오늘도 용서 받고 삽니다! 라고 하고,

비 신앙은 나 이렇게 살았습니다! 라고 나아와요.

하나는 구원해 주신 예수님에게 관심이 있고, 하나는 구원 받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이 있어요.

이 차이점을 아시겠어요.

 

그러므로 복음 알고 막 살아도 된다고 하는 자들도 이단이지만, 구원 받았으니 이제부터 예수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자들도 이단이에요.

둘 다 구원의 본질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입니다.

잘 분별하세요.

 

이단이란? 답을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구원의 목적을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지나친 의인도 되지 말고 지나친 악인도 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고상한 지식을 습득하여 지적 허영심을 채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성화하여 천사가 되는 것도 아니에요.

우린 죄인 일 수 밖에 없고 이런 죄인이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용서받고 그 은혜에 감사하여 찬송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냥 일상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사는 것이에요.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난 후 초대교회 성도들의 모습을 보세요.

그들은 쾌락으로 나아가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고상한 성경적 지식을 습득하는 일에 매진하지도 않았어요.

그저 죄인이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용서 받고 구원 받음에 감사하여서 그 은혜를 찬미하고 살았어요.

 

그냥 구원 받은 자로서 감사하면서 살았어요.

그것이 신앙생활이에요.

제발 신앙생활을 고상하게 생각하지 마세요.

 

예수를 믿으면 내가 예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진리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말씀이 되는 것도 아니에요.

 

나는 그저 예수의 피로 구원 받은 나 일 뿐이에요.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할 죄인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덥쳐와서 그 은혜에 감읍하여 감사하고 살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내가 진리이고 내가 예수라고 하는 자들이 있어요.

내가 진리이고!

내가 예수이고!

내가 말씀이라고 해요.

 

전부 “내가” 에요.

“내가” 무엇이 되었다고 해요.

예수는 쏙 빠지고 예수로 인하여 자기를 치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내가 살고 예수는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예수님의 십자가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고 구원을 받은 자기 자신에게 관심을 두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처럼 내가 길이요, 내가 진리요, 내가 생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아요.

성경은 예수만이 길이고!

예수만이 진리이고!

예수만이 생명이라고 말해주고 있어요.

 

우리는 예수 안에 사는 자이지 예수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어요.

이렇게 예수 안에 사는 것은 그 은혜로 산다고 합니다.

은혜라는 말은 덮어 준다는 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에게 늘 덮여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예수를 자꾸만 걷어 내라고 미혹을 해요.

예수를 떠나 독자적으로 살게 한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수다, 내가 진리다, 내가 말씀이다, 라는 망발들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건 교만이에요.

 

신앙이란? 내가 죽고 예수가 사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믿는 내가 증거 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안에서 예수를 믿게 해 주신 그 예수가 증거 되어야 한단 말입니다.

 

구원이란?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은 내가 예수를 찬미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뭐라고 했나요?

그 은혜의 영광은 찬미하는 것이라고 했지요.

 

구원이 뭐냐?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에요.

이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린 원래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하나님을 찬미하도록 지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죄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죄 아래서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찬미하고 살았어요.

 

죄가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이 그 죄를 걷어내 주셨습니다.

죄가 걷어지니까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의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니까 하나님의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찬미하는 자들로 구원을 받은 자들이에요.

내가 예수일 것 같으면 예수를 찬미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예수가 되면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날아가요.

이게 바로 마귀가 노리는 노림수인 것입니다.

 

마귀는 항상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의 자리로 나아가게 해요.

에덴동산에서 뱀이 인간을 미혹 할 때 뭐라고 했는가요?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면서 꼬셨지요.

이 뱀의 사상이 역사 속에서 말만 살짝 바꿔서 늘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에스겔 28장을 봅시다.

 

겔 28:1-19=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 ~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不義)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 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 마귀를 두로 왕으로 빗대어서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 사건으로는 하나님께서 두로 왕의 교만을 깨트리는 일을 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로 왕의 교만함을 에덴동산에서의 타락으로 말하고 있음을 볼 수가 있습니다.

 

두로 왕을 뭐라고 하는가요?

14절에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라고 하지요.

덮는 그룹이란? 천사를 말해요.

 

그런데 이 놈이 교만했어요.

이 놈이 교만하여서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히고 말았어요.

이는 하나님의 자리로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즉 자기를 따르는 자들 위에서 하나님 행세를 했단 말이에요.

이걸 불의(不義)라고 합니다.

 

불의란? 틀린 것이란 말입니다.

뭐가 틀렸느냐?

창조 목적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덮는 그룹은 하나님을 찬미하는 자이지 자기가 찬미를 받을 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이 놈은 자기가 찬미를 받고 있어요.

이게 교만이고 불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어떻게 합니까?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지요.

땅으로 내어 쫓아 버리지요.

 

이게 바로 에덴동산에서 뱀과 아담이 내어 쫓기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같이 되고자 하다가 에덴동산에서 내침을 당하잖아요.

뱀도 내침을 당합니다.

 

이 뱀이 땅에서 또 그 짓을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하나님 같이 되라고 미혹한단 말입니다.

이 미혹에 걸려들면 피조물의 자리에서 창조주의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요.

 

내가 예수다!

내가 진리다!

내가 말씀이다! 라고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빠지고 “내가” 를 남기는 것입니다.

 

피조물은 창조주가 될 수가 없어요.

구원을 받아도 피조물이지 창조주가 아니에요.

피조물은 피조물의 자리에 있을 때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자리로 나아가면 그건 보시기에 좋은 것이 아니고 악한 것이 되어요.

 

그런데 뱀은 피조물에서 창조주의 자리를 침탈하게 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되라고 한단 말입니다.

이걸 성소를 더럽힌다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고 양자에요.

아들과 양자는 달라요.

이게 엄청 중요하니까 잘 이해하세요.

 

양자는 아들로 대우해 주는 것이지 참 아들이 아니에요.

 

양자란? 어떤 목적(조건)을 위해서 아들로 삼아준 것입니다.

양자는 그 조건이 사라지면 아들도 사라져요.

그 조건 아래 있을 때 아들로 대우 받는 것입니다.

 

성도가 누구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나요?

예수님의 죽음으로 되었지요.

하나님께서 참 아들이신 예수님을 마귀에게 내어 주고 성도를 양자로 삼았어요.

 

이렇게 되면 양자는 항상 참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 때문에 아들로 대우 받고 있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되어요.

이걸 잊는 순간 내침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아버지는 참 아들이신 예수님의 죽음을 보시고 성도를 아들로 대우하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이 천국에 가서도 해야 하는 일은 참 아들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아들로 대우받고 있음에 감사하여 세세토록 어린 양을 찬미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이면 예수에게 찬미할 필요가 없어요.

내가 참 아들이 아니고 양자이기 때문에 나를 양자 되게 해 주신 그 예수님을 찬미하고 영광을 돌려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뭔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구원을 받고 천국에 가서도 예수님과 성도의 신분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로 있어요.

이건 변함이 없어요.

그러므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그 은혜를 찬미하는 일을 하는 것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언약을 세울 때도 이것을 목적으로 하였어요.

그래서 창세전 언약의 그 끝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은혜를 찬미하는 자이지 내가 예수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예수로 사는 것이 아니에요.

 

예수로 살라고 하니까

이걸 착각을 하고 내가 예수다 라고 하면 안 되어요.

예수로 살으란 말은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으란 말이지!

내가 예수다 라는 것이 아니에요.

제발 말 귀를 좀 알아먹으세요.

 

구원이란? 내가 예수가 되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짐을 당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으로 건져짐을 당하였기 때문에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주인이 나귀가 추운 날씨에 밖에서 자는 것이 너무 안쓰러워서 방안으로 들어와 자게 했더니 이 놈이 나중에 보니까 주인을 이불 바깥으로 밀어내고 자기가 주인의 자리에 떡하니 누어서 이불을 덮고 자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괘씸해서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이 시대 복음을 곡해 하는 자들이 그러해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라고 구원을 해 주었더니!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아니고 자기가 예수 행세를 한단 말입니다.

 

예수를 믿으라고 했더니!

예수는 안 믿고 자기가 예수 행세를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것을 교만이라고 하고 하나님의 성소를 더럽혔다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나를 예수 만드는 언약이 아니에요.

예수로 인하여 구원을 받고 그 은혜를 감사하고 찬송하는 언약이에요.

그러므로 성도의 신앙생활은 날마다 자기가 부인되어지고 예수그리스도만 존귀케 되는 것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세요.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살아도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 죽어서도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어 있어요.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니라”

 

사 43: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고 창조 했어요.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 살 동안에는 교회 안에서도 찬미하고!

죽어 이 세상을 떠나 천국에 가서도 찬미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어린 양을 찬송해요.

왜냐하면! 만물이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가 되었고, 예수님이 창조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이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을 보았어요.

 

계 5:11-14=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천국에 가니까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그 가운데 모든 만물들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세세토록 찬송을 드리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이 사실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어요.

 

우리는 사도요한이 전해준 성경을 통해서 이 사실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를 예수를 만들고 진리를 만들고 하늘을 만들고 말씀을 만들기 위하여 오시지 않았어요.

 

도리어 진리이고 말씀이고 하늘이신 예수님을 찬미하게 하도록 하세요.

성령이 그렇게 살도록 간섭을 해 가세요.

성령에 간섭을 당하는 성도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왜? 은혜 언약인지 살펴봅시다.

 

창세전 언약이 왜? 은혜 언약인가 하면 하나님이 하나님에게 하신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한 것이 아무 것도 없어요.

그냥 하나님이 하신 일에 혜택을 입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계획을 세우시고!

하나님이 일을 하시고!

하나님이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남진이 부른 “둥지” 라는 노래 가사와 같아요.

 

넌 그저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 줄게!

내 품에 둥지를 틀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 하려고 예수님을 보냈어요.

이 소식을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했어요.

이제 그 구약의 선지자들이 전하던 그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럼 백성들이 야호! 하고 드디어 그 분이 오셨구나!

할렐루야! 아멘! 이라고 하면서 영접을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정반대로 배척을 합니다.

그리곤 십자가에 죽여 버립니다.

 

이 일을 누가 했느냐?바울은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는가 하면 자기 백성들이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일이 하나님의 은혜로 남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백성들이 척 알아보고 예수를 믿으면 그건 은혜가 아니고 행위가 되어요.

자기들 실력이 된단 말입니다.

이러면 나 예수 믿었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구원 받은 것을 자기가 예수를 믿어 주었다는 것을 근거로 제시하게 되어요.

하나님 앞에 “나 예수 믿어 주었잖아요!” 라고 하게 된단 말입니다.

자기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을 가지고 모가지를 꼿꼿이 세운단 말입니다.

 

이러면 천국이 은혜의 나라가 아니고 법의 나라가 되어요.

다 자기가 예수를 믿었다는 것을 가지고 잘난 척 활개를 치게 된단 말입니다.

이건 천국이 아니고 지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이러한 일을 방지하기 위하여 예수를 보내 놓고서는 그들의 실력으로는 예수를 못 믿게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장을 봅시다.

 

고전 2:1-9=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2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4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5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6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7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 하였으리라 9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하나님이 우리에게 온전한 지혜를 주었어요.

그것이 뭔고 하니 예수그리스도로 자기 백성들이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관원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예수를 죽이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그랬다고 합니다.

구원을 받아야 할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말입니다.

이상하지 않나요?

 

자기 백성들을 구원 하고자 예수를 보냈어요.

그럼 자기 백성들이 예수를 알아보게 하여야 하잖아요.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를 못 알아보도록 귀를 막고 눈을 감기게 하고 마음을 어둡게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에게 예수를 몰라보게 하여서 죽이게 하였단 말입니다.

왜? 그런가 하면 자기들 실력으로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속한 것이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어서 믿어야 한단 말입니다.

그래야 예수를 믿는 것이 자기들 자랑거리가 되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기 때문입니다.

뭔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인간들이 자기 지혜로 예수를 믿으면 안 되어요.

그럼 예수 믿는 것이 자기 행위가 되어요.

그래서 자기 백성들을 위해서 세상 관원들이 예수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를 믿게 하느냐?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셔서 믿게 하십니다.

이걸 “믿음으로” ~ “믿음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가 믿어지는 믿음을 선물로 주어서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신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믿는 것이 우리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믿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셔서 믿는 것이 된단 말입니다.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셔서 믿는 것을 은혜라고 해요.

 

바울이 그 은혜를 받은 사람 중에 하나에요.

 

디모데전서 1장을 봅시다.

 

딤전 1:12-17절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이었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5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16 그러나 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절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만세의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세세토록 있어지이다 아멘?

 

바울은 스스로를 예수를 핍박한 핍박자요 악행자라고 합니다.

자기는 원래 예수를 죽인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다고 합니다.

내가 사도가 된 것은 이 사실을 세상에 알리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지금 자신을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어서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어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이 자기 자신을 그 중에 한 사람이라고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나를 봐라!

내가 바로 그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고,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약에 이스라엘을 다 버렸을 것 같으면 사도 바울 자기 자신도 예수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버리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예수를 믿는 것은 내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너희들도 알다시피 나는 바리새인 중에 바리새인이고!

율법에 특심한 사람 아니냐!

예수쟁이들을 포박하고 옥에 가두는 일에 앞장을 서서 일한 사람이었잖아!그런 내가 지금 이렇게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은 그건 내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린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남겨짐을 구약의 엘리야 시대에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7000명을 예를 들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누구입니까?

선지자를 대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나타나실 때 모세와 엘리야를 대동하고 나타났어요.

모세는 율법을 상징하고 엘리야는 선지자를 상징하고 있어요.

 

예수님이 율법을 상장하는 모세와 선지자를 상징하는 엘리야를 대동하고 나타났다는 것은 곧 율법과 선지자들이 예수님을 증거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세와 선지자들이 다 예수를 증거 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엘리야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 하면 영적으로 가장 타락한 시대였어요.

그 시대 상황을 엘리야가 표현하기를 온 이스라엘이 바알과 아세라를 쫓고 있다고 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엘리야 자기만 남았다고 할 정도로 하나님을 믿는 자들이 없던 시절이었습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봅시다.

 

열왕기상 19:10-18절?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 14 저가 대답하되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 18 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엘리야는 자기 혼자 남았다고 생각했어요.

이제 자기도 죽게 생겼다고 합니다.

저 놈들이 나를 죽이면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은 다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엘리야의 이러한 말 속에는 자기가 믿음을 지켰다는 것이 담겨져 있어요.

그래서 다른 놈들은 다 타락했고 나만 남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는 쏙 빠지고 자기가 지켰다는 행위만 남는 것입니다.

 

이게 엘리아즘이에요.

이게 지금은 자기만 복음 안다는 식으로 나타나요.

자기 신앙이 최고라는 식으로 나타나요.

그러니 남을 비판하고 정죄하고 심판을 해 대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질책을 합니다.

야 이놈아!

내가 나를 위하여 7000명을 남겨 두었어!

꼴값에 주접떨지 말고!

너 할 일이나 해!

그러시는 것입니다.

 

남겨진 7000명은 모두가 하나님이 남겨둔 자들입니다.

이걸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들이 남겨질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남겨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금도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이렇게 하나님께서 남겨 두심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쟁취하는 것이 아니에요.

구원은 우리가 쟁취하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가 지켜내는 것도 아니에요.

 

구원을 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고!

구원을 지켜주는 분도 하나님이세요.

그러므로 구원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 엘리야 시대의 하나님의 은혜로 남겨진 7000명을 이 시대로 적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엘리야 시대처럼 은혜로 남겨진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사도 바울 자신이 그 은혜로 남겨진 자에요.

 

바울이 언제 예수를 믿겠다고 했나요?

아니에요.

바울은 오히려 예수 믿는 자들을 죽이는 일을 했어요.

 

그런 그에게 하나님이 찾아 왔습니다.

그리고 사도로 삼으셨어요.

이게 은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 된 것 속에는 사도 바울의 모든 일생이 다 들어가 있습니다.

율법에 특심한 것에서부터 사도로 부르심을 입은 것까지입니다.

 

율법 아래서 종 노릇 한 것도 은혜이고!

사도가 된 것도 은혜이고!

복음을 전한 것도 은혜이고!

 

또한 사도가 되어서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을 당한 것도 은혜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나의 나 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고 보니 모든 것 속에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일하는 법칙이 하나 있어요.

 

은혜의 법칙이에요.

이건 변하지 않아요.

만고불변하는 진리에요.

 

하나님은 은혜로 일하세요.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도 은혜로 불렀어요.

노아에게 은혜를 주어서 방주를 짓게 했어요.

홍수 심판 속에서 살아남게 하는 것도 은혜로 하셨어요.

 

방주 자체가 은혜 덩어리에요.

그 은혜 덩어리 안에 있는 것도 다 은혜에요.

그 방주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은혜로 된 것만 남기겠다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힘을 철저히 거부한다는 말입니다.

우리 힘으로 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굳이 은혜로 남기실 필요가 없어요.

우리 힘으로 안 되기 때문에 은혜로 남기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하지요.

이는 예수님 자체가 은혜 덩어리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가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이 천국에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은혜에 속한 것들만 천국으로 데리고 가세요.

그래서 천국은 은혜의 나라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내 열심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또한 구원은 우리 열심으로 지켜내는 것도 아니에요.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주어지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지켜지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려지는 것도 은혜이고!

복음이 깨달아지는 것도 은혜이고!

복음을 전하는 것도 은혜이고!

복음으로 사는 것도 은혜에요.

 

은혜 아닌 것은 하나도 없어요.

은혜를 입고 보니 만사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은혜이고 죽는 것도 은혜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나 죽으나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을 한 것입니다.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 복음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이 복음이에요.

우리는 예수님이 홀로 다 이루신 것을 공짜로 혜택을 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시작부터 끝까지 예수님이 홀로 다 하셨어요.

만물이 주로 말미암고 주로 인하고 주께로 돌아간다고 하지요.

이는 주께서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 사실을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이 사실을 안 자들은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권의 축복을 받고 집에서 쫓겨납니다.

그리곤 광야에서 돌을 베개 하고서 잠을 잡니다.

이 때 하늘에서 사다리 하나가 내려옵니다.

 

무슨 말인가요?

하늘로 가는 사다리는 하늘에서 내려다 주는 것이지 인간들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구원은 하늘에서 주어지는 것이지 우리가 노력해서 올라가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 왔듯이 지금도 하나님은 야곱처럼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 받기로 작정이 된 자들에게는 찾아 가십니다.

찾아가서 하늘에서 사다리를 내려 줍니다.

 

이 하늘에서 내려온 사다리가 바로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내려다 주신 예수라는 사다리를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그것도 내 힘으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이 업고서 가세요.

그래서 은혜인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조상이 누구인가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라함도 은혜로 부르심을 입었어요.

이렇게 되면 아브라함 후손은 모두가 은혜로 난 자들이란 뜻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성을 가리는 자들을 징벌 하였어요.

다윗은 이 사실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은혜입니다.

 

그럼 다윗은 백성들에게 우리가 사는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리고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법을 보여주었어요.

그 사건이 밧세바 사건이에요.

 

다윗은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야를 죽이기 전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지를 몰랐어요.

자기 착함으로 사는 줄 알았어요.

그래서 다윗은 밧세바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는 자기가 죄인인줄 몰랐던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인줄 모르면 법으로 살게 되어요.

 

나단 선지자가 와서 다윗이 저지른 범죄를 애둘러서 비유적으로 이야기를 합니다.

어떤 고을에 양 한 마리를 자식처럼 키우고 사는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고을에 부자가 자기 집에는 수천 마리 양들이 있음에도 손님이 오니까 자기 집에 있는 양을 잡지 않고 한 마리 양을 자식처럼 키우는 그 집에 양을 잡아서 손님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비분강개하면서 이런 놈은 이스라엘에 살 자격이 없다고 하면서 그 놈이 누구인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이에 나단 선지자가 그 놈이 바로 너 다윗이라고 합니다.

너는 궁중에 수많은 궁녀들을 거느리고 살면서 옆 집에 사는 우리야의 아내를 빼앗고 그 남편 마저 죽인 아주 악한 놈이라고 합니다.

 

이에 다윗이 회개합니다.

내가 죄인 중에 출생을 한 죄인이고!

이런 죄인이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인데 그걸 모르고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용서 해 주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겠다고 합니다.

다윗은 용서 받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라고 알리는 일을 합니다.

 

후일에 자기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합니다.

다윗은 궁궐을 버리고 피접을 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러다가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 때 다윗은 신하들에게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합니다.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군대가 전쟁을 하다가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의 군대를 이깁니다.

이에 압살롬이 도망을 치다가 나뭇가지에 걸려서 죽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됩니다.

 

군사들이 이 사실을 요압에게 알리자 요압은 군사들에게 왜? 죽이지 않았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그러나 군사들은 다윗이 압살롬을 죽이지 말라고 명령하였기 때문에 죽일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요압이 달려가서 압살롬을 죽이고 맙니다.

 

이 사실을 알고 다윗이 대성통곡을 합니다.

이 모습을 본 요압이 다윗에게 따집니다.

아니 저 놈 때문에 수 많은 사람들이 죽임당하고 나라가 풍비박산이 낫는데!

저런 놈이 죽었다고 슬퍼한다면 누가 나라를 위하여 지키겠느냐고 합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요압의 말이 다 맞아요.

그러나 요압이 하나 간과한 것이 있어요.

이스라엘이 품고 있는 은혜의 속성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요압은 이스라엘이 지금 하나님 앞에 용서 받고 산다는 것을 잊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압살롬과 같은 반역자임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죽임 당하여야 할 죄인임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다윗은 밧세바 사건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어요.

그래서 진심으로 반역자인 압살롬을 살려주고자 했어요.

그런데 요압이 이러한 다윗의 마음도 모른 채 법으로 대하여서 죽인 것입니다.

 

앞서서 요압은 자기 정적들을 모두 다 그렇게 죽였어요.

계속하여 피에 보복을 일으킨 자에요.

요압은 은혜를 모르는 자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나중에 솔로몬에게 유언하기를 요압을 죽이라고 합니다.

왜? 요압을 죽이라고 합니까?

요압은 은혜를 모르고 법으로 정적들을 죽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의 은혜성을 가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를 살려두면 이스라엘이 법으로 다스려져요.

이스라엘 속에는 법으로 사는 자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성을 가려요.

이스라엘을 지탱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지 법이 아닙니다.

이 은혜성을 지키기 위하여 법으로 사는 자를 제거 하라고 유언으로 한 것입니다.

 

다윗과 요압의 이야기를 이 시대 교회와 우리 이야기로 적용해 보세요.

 

이스라엘은 교회입니다.

이 시대 교회 안에도 은혜가 왕 노릇 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서도 은혜가 왕 노릇해야 합니다.

 

은혜가 언제 왕 노릇하게 됩니까?

내가 죄인 중에 괴수임을 알 때입니다.

내가 용서 받은 자라는 것을 알 때입니다.

 

우리는 말씀 앞에서 죄인임을 발각당하여야 합니다.

말씀 앞에서 발가벗김을 당하여야 해요.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자라는 것을 자각하여야 합니다.

 

우리도 원래 법 아래서 태어났습니다.

법으로 살았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긍휼을 입었어요.

긍휼을 입었다는 사실을 알 때 은혜로 살게 되지만,

긍휼을 입었다는 것을 잊게 되면 법으로 살게 됩니다.

 

우리도 은혜로 남겨진 자들입니다.

그 은혜로 인하여 살고 있어요.

남겨진 자가 토해 낼 것은 은혜뿐입니다.

 

은혜는 늘 우리 행위를 고발해요.

행위 자체를 고발하는 것이 아니고 행위에 의미를 두는 것을 고발합니다.

행위에게서 어떤 의가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을 고발해요.

 

행위 자체는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니에요.

그러나 행위에 의미를 두면 악으로 변질을 하여서 은혜를 가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우리 안에서 은혜에 거하도록 늘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그 성령의 간섭하심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은혜!

오직 은혜입니다.

그 은혜로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은혜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부디 여러분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만 오롯이 남겨져서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사하는 삶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마땅히 저주 받아야 할 자를 은혜로 구속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사는 바탕에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있다는 이 사실을 잊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대신 죽음으로 양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나를 아들 되게 해 주신 그 예수그리스도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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