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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35강. 두 짐승 (계 13:1-18)

by coroa 2021. 3. 16.

이 세상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하여 창조가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을 보면 만물이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는 예수님만이 만물의 옳고 그름을 정의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옳다고 하면 옳음이 되고 예수님이 그름이라고 하면 그름이 됩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천국에 다하여 일곱 가지로 비유를 하십니다.

그 비유의 맨 마지막에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갈라내는 비유를 하십니다.

고기란? 사람을 말합니다.

 

이는 곧 두 사람이 있다는 말입니다.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사람과 녹명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찾고자 하는 사람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그럼 좋은 고기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입니다.

쉬운 말로 내 새끼냐? 남의 새끼냐? 라는 말입니다.

내 새끼는 좋은 고기이고 남의 새끼는 나쁜 고기입니다.

성경은 내 새끼는 하늘에 속한 자이고 남의 새끼는 땅에 거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렇게 판단하는 것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심판이 어디에서 이루어지는가 하면 교회에서 이루어집니다.

교회를 일컬어 예수님의 타작마당이라고 합니다.

교회 안에는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를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거하는 자로 구분을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를 진리에 속하였다고 하고 땅에 거하는 자를 비진리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심으로서 예수님 자신이 진리임을 드러내셨습니다.

진리란 어떤 도가 아닙니다.

예수님 자체가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진리를 아는 것이 되고 예수 밖에 있는 자는 진리를 모르는 자가 됩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진리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를 드러내는 길라잡이입니다.

 

바울은 이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일컬어 참 진리이신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정의 하였던 것입니다.

구약은 진리가 없습니다.

다만 진리를 만나게 하는 길잡이입니다.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가 세례요한입니다.

세례요한은 구약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율법과 선지자의 마침이라고 합니다.

이는 세례요한이 하는 일이 율법의 일이고 선지지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이 무슨 일을 했나요?

예수그리스도를 증거 했습니다.

이 분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 분이 바로 ‘구약에 약속 되었던 메시야’ 라고 합니다.

이 분이 바로 ‘자기 백성들이 죄를 짊어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합니다.

 

세례요한은 정확하게 증거하였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일컬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은 나는 쇠하고 예수는 흥하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는 나는 사라지고 예수만 드러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세상에 참 빛이라고 합니다.

 

빛이 뭔가요?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것이지요.

성경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참 빛이라는 말은 거짓 빛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누가 거짓 빛입니까?

그건 예수님이 누구랑 싸웠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랑 싸웠습니까?

율법주의자들입니다.

이들을 유대교 바리새인으로 대표하여서 말하고 있습니다.

 

유대교인들은 율법을 빛이라 여겼습니다.

그래서 율법 지킴을 옳은 신앙이라고 하고 그 외에 모든 것은 틀림이라고 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만이 빛의 아들들이고 진리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인들이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는 자신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진리이니까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있는 자기들도 진리에 속하였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지키는 자기들만 진리를 알고 빛에 속한 선민이고 율법을 지키지 않는 모든 자들을 진리도 모르는 어둠에 속한 이방인으로 취급을 하고서 개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독사의 자식이라고 하면서 지옥으로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결국 예수님 앞에서 어둠으로 드러나고 비진리에 속하였음이 드러난 것입니다.

빛도 아닌 것들이 빛 노릇을 했고 진리도 모르는 자들이 진리를 아는 척 한 것입니다.

율법 안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율법 속에서 찾아낸 하나님의 뜻은 율법대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율법 지킴을 옳은 신앙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 이러한 사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율법 지킴을 진리로 사는 옳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에는 율법 지킴을 옳음이라고 여긴 것이 거짓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율법지킴이 진리로 행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것이 비진리로 드러난 것입니다.

이게 바로 거짓 빛이었습니다.

거짓 빛은 어둠입니다.

율법 지킴이 하나님 앞에 옳음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나고 난 후 하나님 앞에 옳음은 예수 믿음에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율법 외에 다른 의인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한 것입니다.

예수 앞에서 율법 지킴은 틀린 신앙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 율법 아래 있는 것을 소경이라고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어둠에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율법 지킴을 옳음이고 빛이라 여겼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어둠이고 틀림으로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을 가장 잘 안다고 하는 자들에게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이러한 일은 역사 속에서 늘 반복되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지금도 말씀 지킴을 옳은 신앙으로 가지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알미니안적 인본주의 성화주의자들입니다.

알미니안적 인본주의 성화주의자들이란? 하나님 말씀대로 사는 것을 의로 여기고 신앙의 본질로 가지고 있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은 다메섹 이전의 사울처럼 자기들이 말씀을 지킨 것을 옳음으로 여기고 자기와 다른 자들을 이단이라고 정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 이 시간도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어둠이 빛으로 둔갑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구약 성경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율법으로 예수그리스도를 보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남으로서 어둠에서 빛으로 옮겨지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이 바울에게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예수 안에 들어오고 보니까 율법 아래 있음이 어둠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동족들에게 율법은 어둠이라고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함께 동문수학한 동무들이 바울은 미친놈 이단이라고 하면서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빛이 어둠으로 대접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인생이 완전히 바뀌게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서 난 바울은 죽고 예수 안에서 난 바울로 거듭났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만나면 바울처럼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율법 아래 있던 옛 사람은 죽고 예수 안에서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 안에서 거듭난 사람은 세상으로부터 이단으로 정죄 받고 죽임당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자기 동족으로부터 버림당하게 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서 이단으로 낙인을 찍하게 됩니다.

 

누구든지 예수만 만나면 바꿔치기 당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게 되면 우리의 인생이 바뀌게 됩니다.

예수님은 모든 것을 바꿔버렸습니다.

세상도 바뀌고 사람도 바뀝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 기존의 질서가 붕괴되고 맙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서 기원이 BC(주전)에서 AD(주후)로 바뀌어졌습니다.

세상의 기원이 예수 오시기 전과 예수 오시고 난 후로 바뀌었습니다.

 

기원이란? 근본입니다.

예수로 기원이 바뀌었다는 것은 예수가 세상의 근본을 바꿔놓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서 역사가 바뀌게 된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면 사람의 역사도 바뀝니다.

아담 안에서 예수 안으로 조상이 바꿔지는 일을 당합니다.

땅에 사람은 죽고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나는 일들을 당하게 됩니다.

 

의미심장한 것은 BC는 시간을 삭제하였고 AD는 시간을 더해갑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시간을 2000에서 1000으로 1000에서 0로 지워가면서 진행이 되었고,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로는 0에서 1000으로 1000에서 2000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이게 시사(時事) 하는 바가 엄청 큽니다.

이걸 비유적으로 쉽게 설명할게요.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는 인간의 수명(壽命)은 까먹는 것으로 주어졌습니다.

이건 마치 밧데리가 100에서 0으로 방전이 되어가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의 수명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무한정 사는 것이 아니고 몇 세까지 살라고 정해졌어요.

예를 들어 100세를 산다고 합시다.

그럼 태어나면서부터 0에서 100으로 까먹으면서 가는 것입니다.

 

인간은 오래 살수록 죽음으로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이게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모습입니다.

예수를 만나기 전의 인생입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는 죽음으로 끝이 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는 이게 꺼꾸러 바뀌게 됩니다.

시간을 까 먹는 것이 아니라 시간이 더해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0으로부터 시작하여서 1000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우리 인생은 죽음으로 끝이 나지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난 후는 우리 인생은 영생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우리의 인생의 패러다임이 완전히 바뀌게 된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나이가 들고 늙어간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워지는 것이므로 두렵기도 하고 싫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산다는 것이 허무가 아니라 소망입니다.

 

그래서 성령을 받으면 늙은이들이 꿈을 꾼다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꿈입니까?

천국에서 주와 함께 영원히 사는 꿈입니다.

그 꿈이 감사와 기쁨으로 인생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구약은 끝이 있지만 신약은 끝이 없어요.

물론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역사라는 시간은 끝이 납니다.

끝이 없다는 것은 시간 바깥의 영원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오시기 전의 BC는 죽음으로 향하는 시간관을 가지고 있었고, 예수님이 오시고 난 후의 AD는 영생으로 나아가는 시간관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BC와 AD 라는 기원(紀元)을 언약적으로 말하면 구약과 신약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언약이 바뀌게 됩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은 구약이고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후로는 신약으로 바뀌었습니다.

구약은 옛 언약으로서 죽이는 언약이고, 신약은 새 언약으로서 살리는 언약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의 십자가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아담 안에서 난 우리 옛 사람이 죽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으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십자가를 통해서 옛 사람에서 새 사람으로 바뀌는 일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걸 구약의 야곱의 지팡이 사건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야곱은 죽기 전에 지팡이를 의지하고 요셉의 두 아들을 자기 아들로 입적을 시키고 장자(長子)와 차자(次子)를 뒤 바뀌게 하는 일을 합니다.

 

이걸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야곱은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서 행한 일이라고 합니다.

신약적인 의미로 예수님의 십자가로 장자와 차자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나게 된다는 뜻입니다.

우린 모두가 아담 안에서 태어난 장자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아담 안에서 난 장자는 죽고, 예수 안에서 난 차자가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태어나는 순서적으로 보면 아담 안에서 난 우리 옛 사람은 장자이고, 예수 안에서 거듭난 우리 새 사람은 차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난 차자를 하늘나라 장자로 삼아 버립니다.

 

성경은 예수 안에서 난 자를 하늘나라 장자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들이 가는 하나님 나라를 일컬어 장자들의 총회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 나라는 예수 안에서 난 장자들이 가는 나라라는 말입니다.

 

누가 하늘나라 장자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난 자들입니다.

어떻게 예수 안에서 차자가 장자가 되는가요?

이는 아담 안에서 난 장자의 죽음으로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죽이고 살려내는 방식을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예수님이 사셨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했습니다.

이는 이 땅에 몸을 버리고 하늘에 몸을 입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예수님의 운명으로 다루어 가십니다.

 

흙에서 난 사람은 죽이고 하늘로서 난 사람으로 살려내십니다.

하늘로서 난 자가 천국을 유업으로 이을 장자입니다.

그래서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왜 주 안에서 죽는 것이 복입니까?

이는 흙에 몸을 벗고 신령한 몸으로 살아나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안 바울은 자기의 소원은 하루 빨리 육신의 장막을 벗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11장을 보면 두 증인들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곤 부활을 하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두 증인은 모든 성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도 두 증인처럼 죽임을 당하고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계시록 12장부터 나타나는 것입니다.

12장을 보면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 용으로부터 핍박을 받게 됩니다.

이게 13장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을 보아도 바다에서 나오는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성도들이 마귀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짐승이 로마라는 나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이 로마에게 권세를 주어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죽이도록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일차적으로는 그 당시의 상황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거기서 머물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까지는 역사 속에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종말에는 종말에 맞는 해석을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초림 당시에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세상적으로는 로마라는 나라가 지배하고 핍박을 하였고 영적으로는 율법주의가 핍박을 했습니다.

겉으로 드러난 용의 권세는 로마 황제였지만 감추어진 용의 권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율법으로 옭아매어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우고 종노릇하게 한 유대교였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종교와 정치가 하나 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예수의 피를 가리는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종교가 국가로 나타나서 종교통합운동을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까지 나타난 정황으로 보면 이 일을 누가 하는가 하면 로마 카토릭이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17장에서 상세하게 다루고 오늘은 넘어가겠습니다.

 

암튼 하나님은 그 당시에는 로마 황제를 상징하고 종말에는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바다에서 나온 짐승에게 성도들을 넘겨줍니다.

바다는 지옥을 상징합니다.

지옥을 다른 말로 무저갱이라고도 합니다.

 

두 증인들이 무저갱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지요.

하나님께서 죽임을 당하도록 허락을 하신 것입니다.

마귀에게 죽임을 당하게 함으로서 마귀를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께서 죽음으로 마귀의 권세를 깨트린 것과 같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사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고 여기지만 실상은 죽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죽임 당하는 것은 순교로서 복된 죽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는게 복이 아니고 죽는게 복이에요.

적그리스도에게 죽임 당한다는 것은 그를 따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상대적으로 적그리스도에게 죽지 않았다는 것은 적그리스도를 따랐기 때문에 안 죽는 것입니다.

그러니 종말에는 적그리스도가 권세를 가지고 일을 할 때 사는게 저주인 것입니다.

 

5-7절을 보세요.

 

계 13:5-7=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습니다.

그 권세로 성도들과 싸워서 이깁니다.

 

7절을 보세요.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게 되고” 라고 하지요.

 

이걸 11장에서 두 증인들을 통해서 보여 주셨어요.

두 증인들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온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잖아요.

그 짐승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에요.

단수(單數)로 말하면 적그리스도이고, 복수(複數)로 하면 적그리스도 세력인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성도들을 마귀에게 내어줄까요?

이는 하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하나님의 아들로 만들기 위함입니다.

하늘나라 아들들은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가 살아나는 과정을 밟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늘나라 장자는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생겨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구약의 출애굽 사건으로 예표적으로 보여 주셨어요.

구약 이스라엘도 이 과정을 밟고 하나님의 장자가 되었습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은 애굽의 장자가 죽는 재앙에서 살아남습니다.

어떻게 살아남았는가 하면 이스라엘의 장자 대신 유월절 어린 양이 대신 죽고 살아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장자들 대신 어린 양을 받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실상이 되어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살아난 이스라엘을 일컬어 내 장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신약에서는 예수님의 피로 살아난 성도를 하늘나라 장자라고 합니다.

 

구약은 예표이고 신약이 실상이에요.

그러니 이제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면 안 되고 주 예수를 믿어야 해요.

이것을 우리 개인의 신앙에 적용하면 아담 안에서 난 장자(長子)인 우리 옛 사람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죽고 예수 안에서 난 차자(次子)가 하늘나라 장자가 되어서 가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의 아담 안에서 난 우리 옛 사람이라는 장자를 죽이고 예수 안에서 난 새 사람인 차자를 하늘나라 장자를 만들어서 천국으로 데리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반드시 옛 사람이 죽임당하는 사건을 겪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앞선 12장과 연결이 된 것입니다.

 

12장을 보면, 용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납니다.

땅으로 쫓겨난 용이 자기를 하늘에서 쫓아낸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남은 자손들에게 복수를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12장 맨 마지막인 17절을 보면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고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오늘 본문인 13장 1절에서는 바다에서 한 짐승이 올라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짐승이 올라온 바다는 앞서 12장 17절에서 용이 서 있는 ‘그 바다’입니다.

이렇게 되면 짐승이 올라온 바다란? 용이 서 있는 그 자리가 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용은 하늘에서 이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땅이 용의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용이 서 있는 곳을 바다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용이 쫓겨난 땅과 여자와 그 남은 자손들과 싸우려고 용이 서 있는 바다는 같은 의미가 됩니다.

땅이 바다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여자와 그 남은 자손도 바다에 있어요.

이 세상에 있단 말입니다.

왜 세상에 둡니까?

이는 하늘로 간 남자 아이처럼 마귀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올라가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바다라는 이 세상에서 용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에게 땅을 주었어요.

이 땅이 어떤 땅인가요?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좇아내고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해 버립니다.

그리고 뱀에게 저주 받은 그 땅(흙)을 주고서는 종신토록 떠나지 못하게 하십니다.

이건 땅의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이걸 지옥이라고 해요.

 

하나님이 뱀에게 저주 받은 땅을 주신 것입니다.

땅의 감옥(지옥)에 가둔 것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쫓겨난 옛 뱀인 용이 이 땅에 보좌를 틀고 왕 노릇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뱀이 저주 받은 땅에서 주인으로 사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뱀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고서는 종신토록 흙을 먹으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땅을 뱀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뱀이 이 땅에 주인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지옥이에요.

뱀이 사는 곳을 지옥이라고 합니다.

지옥이란 땅에 감옥이란 말입니다.

하나님이 뱀을 종신토록 흙을 떠나지 못하도록 땅이라는 감옥에 가두어 둔 것입니다.

그래서 뱀은 땅에 주인으로 행세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4장을 봅시다.

 

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예수님이 광야에서 사십일을 주리실 때 마귀가 찾아와서 자기에게 절을 하면 천하만국의 영광과 권세를 주겠다고 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자기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마귀가 예수님에게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은 다 내 것이므로 ‘내가 네게 다 주겠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입니다.

 

이게 틀린 말이 아니에요.

사실이에요.

하나님이 뱀에게 이 세상을 넘겨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땅에 것으로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땅을 천국으로 살라고 미혹해요.

세상 것으로 천국을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그러니 땅에 거하는 자들은 마귀에게 절을 하고서 땅에 것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서 천국을 누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을 봅시다.

 

요일 2:15-18=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16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17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요한일서는 요한계시록을 쓴 사도 요한이 쓴 편지입니다.

요한은 이 세상 것을 사랑치 말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요?

이는 이 세상은 뱀에게 넘겨 준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 세상 것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 것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가요?

이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하자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저주의 기운이 흐르고 있어요.

 

그래서 흙에서 난 자들은 모두가 죽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주의 기운이 흐르고 있는 이 땅을 뱀에게 주었어요.

하지만 마귀는 이 땅을 천국처럼 아름답게 포장을 해서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고 잘사는 것을 복이라고 미혹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에 거하는 자들은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복인 줄 알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도 이 세상 것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거하는 자들이 구하는 이 세상 것이 바로 마귀가 예수님에게 주겠다고 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인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눈만 뜨면 추구하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모두가 이 세상으로부터 좇아 온 것이에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인간들이 구하는 이 땅의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 아니고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 것입니다.

세상 것들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습니다.

세상으로부터 왔다는 것은 마귀가 주는 것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에 것을 주십니다.

창세전 언약이 하늘에 신령한 것을 주시기로 되어 있어요.

하늘에 것이란? 영적인 것이란 말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3-7=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하나님이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한다고 하지요.

이렇게 구원 된 자들을 일컬어 하나님의 아들들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들에게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주시기로 작정을 하셨습니다.

 

쉽게 설명할게요.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겨내지요.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에게 있어 복이란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동산은 아담이 가고 싶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오라고 해야만 갈 수가 있어요.

하나님이 에덴동산의 문을 막아 두었어요.

아담은 그 문을 열수가 없어요.

 

에덴동산에서 누군가가 와서 자신을 데리고 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면서 뱀의 머리를 깨트릴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라고 한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란? 아담을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가실 분이에요.

이를 메시야 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늘로서 온 자가 아니고서는 하늘로 데리고 갈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데리고 가도 그냥 데리고 갈 수 없어요.

아담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죄 있는 모습으로는 못 가요.

죄를 없애고 데리고 가야 합니다.

어떻게 아담의 죄를 없애는가요?

이는 범죄한 아담을 죽이는 것입니다.

 

그냥 아담을 죽이면 다시 살 수가 없으니까 부활의 주님이신 예수님이 자기 안에서 죽였다가 살려내시는 것입니다.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예수와 함께 살아나는 것입니다.

이걸 연합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혼자 죽었다 살아났지만 실상은 그 예수 안에는 수많은 자기 백성들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께서 하신 일이 모든 성도가 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간주해 주세요.

마치 아담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된 것처럼 예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마지막 아담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같은 원리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의 아담 안에서 난 땅에 목숨을 죽여서 죄를 없이 하고 에덴동산으로 데리고 가시는 것입니다.

 

아담이 아무리 에덴동산 바깥에서 잘산다고 하여도 그건 복일 수가 없어요.

아담에게 있어 복은 오로지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은 이 땅에서 승승장구하여 성공하고 사는 것이 삶에 본질이 아니고 자신을 에덴동산으로 데려갈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이 삶에 의미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인 것입니다.

 

복이란? 하나님 자신이에요.

그러므로 하늘로부터 오신 예수그리스도가 곧 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복을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하늘로부터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에 생명을 주시려고 오셨어요.

 

그러나 마귀는 이 땅에 것으로 하늘에 복을 가려 버린 것입니다.

세상의 복을 가지고 하늘에 복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인간들이 복이라고 여기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이 사실을 속입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 받은 증거라고 속입니다.

마귀를 일컬어 거짓의 아비라고 하지요.

천하를 꾀는 자이고 속이는 자라고 하지요.

 

무엇으로 속이는가요?

땅에 것으로 속이는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하는가 하면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이에요.

 

그래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두 짐승이 666이라는 짐승의 표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두 짐승을 가지고 땅에 거하는 자들을 추수하는 것입니다.

 

8-10절을 보세요.

 

계 13:8-10=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잘 보세요.

창세 이후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하지요.

이는 육적 신자는 짐승의 말을 따르게 된다는 말입니다.

 

이걸 역으로 이해 해 보세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는 짐승의 말을 안 따른다는 뜻이지요.

짐승의 말을 안 따르면 어떻게 되나요?

죽지요.

 

그래서 짐승이 성도를 이기게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죽어요.

짐승표를 안 받는다고 하다가 죽어요.

이 부분을 세 번역이 아주 잘 번역을 했어요.

 

계 13:8-10= “그러므로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때부터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모두 그에게 경배할 것입니다. 9 귀가 있는 사람은 들으십시오. 10 사로잡혀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이 되지 않는 사람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사로잡혀 가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사로잡혀 가게 될 것이고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작정이 되어 있는 사람은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무슨 말인가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짐승의 말을 거역하다가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이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의 말을 듣게 된다는 것입니다.

두 부류의 사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로잡혀 가는 자는 땅에 거하는 자이고, 칼로 죽임을 당하는 자는 하늘에 속한 자입니다.

짐승에게 사로잡힌 자는 땅에 거하는 자이고, 짐승의 칼에 죽임 당하는 자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자인 것입니다.

 

14-15절을 보세요.

 

14-15=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15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는 다 죽인다고 하잖아요.

누가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가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이에요.

 

무슨 말인가요?

예수 믿는 자들을 살려 둔다는 말인가요?

죽는다는 말인가요?

죽는다는 말이지요.

 

이 일을 누가 합니까?

짐승이 해요.

그런데 그 짐승을 다스리는 분이 누구인가요.

용이지요.

 

그럼 용을 다스리는 분은 또 누구신가요?

용을 이긴 남자 아이에요.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예수님이에요.

예수님이 용을 이겼잖아요.

그럼 용은 예수님의 말에 굴복하여야 해요.

 

예수님이 용에게 명령하는 겁니다.

창세전에 기록한 어린 양의 생명책을 주면서 여기에 녹명 된 자들을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여서 저주 받은 이 땅을 벗어나게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걸 10절에서 ‘칼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는 자’는 다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역설적이지요.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 믿으면 안 죽는다고 배워왔어요.

이 땅에서 무병장수하는 것이 복이라고 배워왔어요.

이게 모두가 마귀의 미혹으로 인간의 상식으로 성경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땅에서 죽는 것이 복이라고 합니다.

 

그냥 죽는 것이 복이 아니고 예수 안에서 죽는 것이 복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예수 때문에 죽임 당하는 것을 복이라고 합니다.

복음 때문에 핍박 받고 죽임당하는 것이 복인 겁니다.

 

10절을 다시 봅시다.

 

10절 “사로잡혀 가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기로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할 것이다. 여기에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칼에 맞아서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는 사람이면 칼에 맞아서 죽임 당한다고 하지요.

그러면서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필요합니다! 라고 합니다.

이걸 세대주의 종말론 자들은 또 오해해서 우리가 믿음으로 적그리스도와 싸워서 이겨야 한다고 합니다.

 

아니에요.

그 반대에요.

죽으라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내와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인내란? 적그리스도와 싸워서 살아남는 인내가 아니고 죽음이 닥친다 하여도 믿음을 져버리지 않고 죽음으로 신앙을 지키는 인내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못 죽으니까 믿음으로 죽으라고 하는 거애요.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에 선진들이 모두가 이 믿음에 이끌려서 죽음의 길로 나아갔어요.

이게 그 말이에요.

믿음이 적그리스도에게 경배하지 말라고 하다가 죽임 당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게 주님의 뜻이에요.

 

이 모두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의 죄의 몸을 마귀에게 넘겨주고 의에 몸으로 살려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용에게 마흔 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주어서 하늘나라 장자들을 이 땅에서 뽑아내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보면 어린 양이 일곱 인으로 봉한 책을 하나씩 떼잖아요.

거기에 보면 어린 양이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흰 말이 뛰고 붉은 말이 뛰고 검은 말이 뛰고 청황색 말이 뛰잖아요.

 

이건 어린 양의 허락 하에 일어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어린 양이 이 땅의 주인으로서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옛 뱀 마귀 사단인 용도 사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용을 이겼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용을 창세전 언약에 의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에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용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파송하면서 너희 몸을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몸과 영혼을 능히 죽이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고 하지요.

몸을 죽이는 자들이 누구인가요?

마귀에요.

 

그러니까 마귀가 너희를 죽인다고 하여도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마귀들이 누구로 나타나던가요?

제자들에게 너희가 총독과 임금들 앞에 서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이는 마귀가 세상의 임금으로 서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7장을 보면 마귀와 한 몸이 된 타락한 교회인 음녀가 이 땅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 위에 군림하고 왕 노릇하고 있는 목사들이 다 짐승이고 음녀들이에요.

이 놈들이 복음 전하는 종들을 이단이라고 죽이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섭지요.

 

그러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신앙생활 해야 해요.

어느 놈이 암까마귀고 어느 놈이 숫까마귀인지 알아야 하잖아요.

그래서 성경을 상고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면 다 넘어가게 되어 있어요.

 

종말에는 교회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여서 귀신의 처소가 된다는 말을 기억하세요.

이는 교회 안에 다양한 이야기들이 쏟아진다는 뜻입니다.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서 미혹해요.

 

그래서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가 세상에 많이 일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도 종말에는 적그리스도가 많이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한다고 하였어요.

 

적그리스도를 단수(單數)로 말하지 않고 복수(複數)로 말하고 있지요.

적그리스도가 있고,

적그리스도 세력이 있고,

적그리스도 영에 사로잡힌 거짓 선지자들이 있어요.

 

그래서 성경은 적그리스도를 어떨 땐 단수로 쓰고 어떨 땐 복수로 써요.

이는 하나이면서 여럿이라는 뜻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하나에요.

그러나 적그리스도 세력은 여럿이에요.

 

짐승은 하나이면서 그 세력은 수없이 많아요.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이걸 기억하세요.

그래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의 정체를 알 수가 있어요.

 

바다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뱀에게 이 땅을 넘겨주었지요.

이 땅은 하나님께서 저주한 곳이에요.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땅을 일컬어 지옥이라고 합니다.

 

12장에서 용이 서 있는 곳을 바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이 서 있는 바다는 타락된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바다와 땅은 동의어에요.

그래서 성경은 이 세상을 바다라고 합니다.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합니다.

그리고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합니다.

분명히 천지(天地)를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하늘이 사라지고 땅만 나타납니다.

 

하늘은 어디로 갔을까요?

그리고 왜, 땅의 이야기로 성경의 운을 뗄까요?

이는 이 땅에서 하나님이 창세전에 계획된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창조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런데 그 창조가 흑암에서 빛을 끄집어내고 하나로 섞여 있던 물을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나누고 물 속에서 땅을 끄집어내서 바다와 땅으로 갈라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전부 물 속에서 갈라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날도,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땅에서 빛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셨고,

둘째 날도, 하나로 섞여 있던 물을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갈라내는 일을 하셨고,

셋째 날도, 하나의 물 속에서 땅을 끄집어내서 땅과 바다로 갈라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갈라낸 곳에 채우는 일을 하십니다.

이걸 창조로 말하고 있습니다.

 

왜, 창조를 물에서 갈라내는 것으로 말할까요?

이는 구원이 물 속에서 끄집어냄을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물이 뭐냐?

그냥 물이냐?

아니에요.

 

물론 창세기 1장에서의 물은 그냥 물이 맞아요.

그러나 창조 이야기는 구원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그냥 물이 아니에요.

영적으로 물은 말씀을 상징해요.

 

지난 시간 살펴보았던 뱀이 강같이 토한 물이 바로 뱀의 말인 것입니다.

비 진리를 말하는 것입니다.

노아 시대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이 섞이자 모두가 죽었어요.

방주 밖에 있던 모든 생명은 다 죽었어요.

이는 영적으로 비진리로 모두가 죽는 것을 말해요.

 

이 세상은 뱀의 말로 다 죽어 있어요.

예수님께서 종말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이는 영적 상황이 노아의 때와 같이 비진리로 홍수가 일어나게 될 것을 말씀 하신 것입니다.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내는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장에 보면 예수님이 산상보훈의 결론은 홍수로 집을 시험하는 것으로 말씀하시지요.

두 집이 있습니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이 있습니다.

 

반석은 예수님을 말합니다.

그럼 모래는 뭘까요?

예수님의 반대인 적그리스도이지요.

오늘 본문을 보면 용이 바다 모래 위에 서 있다고 하지요.

그러니 반석의 반대인 모래는 적그리스도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느냐?

적그리스도의 말씀 위에 세워져 있느냐? 입니다.

결국 말씀 싸움이에요.

물 문제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이 세상의 모습을 말해요.

이 세상을 일컬어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깊음이라는 타락된 곳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둠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신은 수면(水面)에 운행하시느니라” 라고 합니다.

 

수면(水面)이 뭔가요?

물 위에요.

왜. 타락된 땅을 물로 표현할까요?

이는 뱀의 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혼돈과 공허와 흑암과 깊음에 있는 이 땅을 바다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水面) 위에 운행하시지요.

즉 하나님의 신이 바다 위에 운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바다 위에 운행하십니까?

이는 그 바다 속에 자기 백성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이 혼돈과 공허와 깊음이라는 바다 속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창조의 시작을 알리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된 세상 속에 빛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죄악된 세상 속에서 빛의 아들들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

이걸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말해주었습니다.

창조란? 구원과 같은 뜻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의 창조 이야기는 구원 이야기인 것입니다.

육적인 창조 사건을 가지고 영적인 구원이야기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두 짐승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바다에서 나오고 다른 하나는 땅에서 올라옵니다.

바다와 땅은 같은 곳입니다.

그럼 두 짐승은 같은 소속이라는 뜻입니다.

이들의 우두머리는 용입니다.

 

용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권세를 줍니다.

이것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용에게 종속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경배케 합니다.

이렇게 되면 곧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에게 종속이 된 것이 됩니다.

 

이걸 그림으로 그려보세요.

용이 제일 꼭대기에 있고,

그 밑에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있고,

그 아래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있는 것이 됩니다.

 

이건 마치 성부(聖父)와 성자(聖子)와 성령(聖靈) 삼위일체 하나님과 같습니다.

성자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이 성부입니다.

이러면 성자는 성부에게 종속이 되어 있습니다.

성자 예수님이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이러면 성령은 성자에게 종속이 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종속이란? 우열과 서열의 개념이 아닙니다.

사역적인 개념입니다.

예수님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일을 하셨어요.

성령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증거하는 일을 하십니다.

이걸 종속이론이라고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창세전 언약을 이 세상 속에서 이루어 가십니다.

창세전 언약이 뭔가요?

자기 백성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사람을 만들 때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면서 삼위 하나님이 함께 사람을 만드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뱀에 미혹당하여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렸어요.

이게 죄에요.

 

그래서 삼위 하나님이 이 땅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을 되 찾아주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되찾아 주는가 하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예수님이 낳아주는 것으로 찾아 주는 것입니다.

말이 찾아 주는 것이지 실상은 새로 창조하는 것입니다.

이걸 거듭남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일을 창세기 1장에서는 창조의 일로 보여 주셨습니다.

흑암에서 빛을 끄집어내는 것으로 보여주셨어요.

그러니까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가 신약에서는 구원이야기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일하심을 마귀가 그대로 모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과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땅에서 올라온 짐승은 마귀의 삼위일체에요.

이것이 마귀와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로 나타납니다.

오늘 본문은 이걸 말해주고 있어요.

 

다시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계 13:1-10절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한 이름 들이 있더라 2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3 그의 머리 하나가 상하여 죽게 된 것 같더니 그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으매 온 땅이 이상히 여겨 짐승을 따르고 4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6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9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10 사로잡는 자는 사로잡힐 것이요 칼에 죽이는 자는 자기도 마땅히 칼에 죽으리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먼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봅시다.

이 놈은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지고 있습니다.

뿔 마다 면류관이 있고 머리들에게는 참람한 이름들이 써져 있습니다.

이 모습은 앞선 12장에서 보았던 하늘의 전쟁에서 패하고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난 용의 모습과 같습니다.

 

용을 뭐라고 하였나요?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했습니다.

근데 그 모습이 어떠했나요?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도 일곱 머리 열 뿔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짐승은 용은 아니에요.

다만 용과 같은 권세를 가지고 용과 같은 일을 해요.

왜냐하면! 용이 짐승에게 자기의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짐승이 용으로부터 권세를 받고서 이 땅에서 용처럼 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짐승은 용의 대리자로 서 있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예수님이 아버지를 대신하여 일을 하신 것과 같아요.

마귀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철저히 모방하고 있는 것입니다.

용의 정체는 무엇이고,

무슨 일을 하는가요?

 

12장을 봅시다.

 

계 12:9-11=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라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가로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루었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 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용을 일컬어 온 천하를 꾀는 자라고 하지요.

그리고 참소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어린 양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죽인다고 합니다.

 

이건 이미 죽였고,

지금도 죽이고 있으며,

장차도 죽일 것이란 뜻입니다.

 

이 말은 항상 성도들을 괴롭힌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어느 한 시대만 말하는 것이 아니고 온 세대를 다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으로 나타나는가 하면 국가로 나타나요.

이걸 구약 시대 다니엘이 보았어요.

 

다니엘 7장을 봅시다.

 

단 7:2-8= “다니엘이 진술하여 이르되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3 큰 짐승 넷이 바다에서 나왔는데 그 모양이 각각 다르더라 4 첫째는 사자와 같은데 독수리의 날개가 있더니 내가 보는 중에 그 날개가 뽑혔고 또 땅에서 들려서 사람처럼 두 발로 서게 함을 받았으며 또 사람의 마음을 받았더라 또 보니 5 다른 짐승 곧 둘째는 곰과 같은데 그것이 몸 한쪽을 들었고 그 입의 잇사이에는 세 갈빗대가 물렸는데 그것에게 말하는 자들이 있어 이르기를 일어나서 많은 고기를 먹으라 하였더라 6 그 후에 내가 또 본즉 다른 짐승 곧 표범과 같은 것이 있는데 그 등에는 새의 날개 넷이 있고 그 짐승에게 또 머리 넷이 있으며 권세를 받았더라 7 내가 밤 환상 가운데에 그 다음에 본 넷째 짐승은 무섭고 놀라우며 또 매우 강하며 또 쇠로 된 큰 이가 있어서 먹고 부서뜨리고 그 나머지를 발로 밟았으며 이 짐승은 전의 모든 짐승과 다르고 또 열 뿔이 있더라 8 내가 그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그 사이에서 나더니 첫 번째 뿔 중의 셋이 그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이 작은 뿔에는 사람의 눈 같은 눈들이 있고 또 입이 있어 큰 말을 하였더라”

 

다니엘이 환상을 보았어요.

어떤 환상인고 하니 하늘에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붑니다.

바다란? 이 세상을 말합니다.

그런데 그 바다에서 네 짐승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첫째 짐승은, 사자 같고,

둘째 짐승은, 곰 같고,

셋째 짐승은, 표범 같고,

넷째 짐승은, 짐승은 짐승인데 이상하게 생긴 괴물인 겁니다.

 

네 짐승은 장차 이 세상에 일어날 제국들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제국들이에요.

그러니까 사단의 국가들인 것입니다.

이걸 느브갓네살에게는 신상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다니엘 2장을 봅시다.

 

단 2:31-45= “왕이여 왕이 한 큰 신상을 보셨나이다 그 신상이 왕의 앞에 섰는데 크고 광채가 특심하며 그 모양이 심히 두려우니 32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33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었나이다 ~ 36 그 꿈이 이러한즉 내가 이제 그 해석을 왕 앞에 진술하리이다 37 왕이여 왕은 열왕의 왕이시라 하늘의 하나님이 나라와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왕에게 주셨고 38 인생들과 들짐승과 공중의 새들 어느 곳에 있는 것을 무론하고 그것들을 왕의 손에 붙이사 다 다스리게 하셨으니 왕은 곧 그 금 머리니이다 39 왕의 후에 왕만 못한 다른 나라가 일어날 것이요 셋째로 또 놋 같은 나라가 일어나서 온 세계를 다스릴 것이며 40 넷째 나라는 강하기가 철 같으리니 철은 모든 물건을 부숴뜨리고 이기는 것이라 철이 모든 것을 부수는 것 같이 그 나라가 뭇 나라를 부숴뜨리고 빻을 것이며 41 왕께서 그 발과 발가락이 얼마는 토기장이의 진흙이요 얼마는 철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나누일 것이며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 나라가 철의 든든함이 있을 것이나 42 그 발가락이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인즉 그 나라가 얼마는 든든하고 얼마는 부숴질 만할 것이며 43 왕께서 철과 진흙이 섞인 것을 보셨은즉 그들이 다른 인종과 서로 섞일 것이나 피차에 합하지 아니함이 철과 진흙이 합하지 않음과 같으리이다 44 이 열 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45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 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느브갓네살이 꿈을 꾸었습니다.

꿈 속에 큰 신상이 있는 겁니다.

이걸 우상이라고 합니다.

 

그 우상의 머리는 정금이요,

가슴과 팔들은 은이요,

배와 넓적다리는 놋이요,

그 종아리는 철이요 그 발은 얼마는 철이요 얼마는 진흙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걸 장차 일어날 나라들이라고 합니다.

 

첫째인, 정금의 나라는 바벨론이고,

둘째인, 은의 나라는 메데 바사이고,

셋째인, 놋의 나라는 헬라이고,

넷째인, 철의 나라는 로마를 말합니다.

 

넷째 나라 때에 하늘에서 뜨인 돌이 나타나서 철의 나라를 멸망시키고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신다고 합니다.

그 나라는 영원하고 영원하고 영원한 나라입니다.

 

꿈대로 이 역사 속에 실제로 이러한 제국들이 나타났습니다.

바벨론과 메대 바사와 헬라와 로마로 나타났습니다.

이들은 모두가 적그리스도 국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고 핍박하고 죽였어요.

 

로마가 이스라엘을 식민지화 하고 있을 때에 예수님이 오셔서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는 하늘나라를 만드셨어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로마를 멸망시키지 않았어요.

예수님은 구약의 율법교회를 깨트렸어요.

 

예수님이 오셔서 보니까 하나님의 백성들을 억압하는 세력은 로마가 아니라 율법주의 유대교였던 겁니다.

백성들이 율법 아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종노릇하고 있었어요.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로마가 억압하고 있었지만 백성들의 신앙을 억압한 것은 율법주의 유대교였어요.

 

그러니까 겉으로 나타난 것은 로마가 적그리스도 국가이지만 영적으로는 율법주의가 적그리스도 세력이었던 것입니다.

이 비밀을 보셔야 해요.

 

이게 요한계시록에서는 종말의 타락한 교회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계시록 17장을 보면 타락한 교회를 음녀로 나타납니다.

그런데 이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는데 이 놈이 일곱 머리 열 뿔이 있는 것입니다.

이 음녀가 성도들의 피에 취하여 있어요.

이는 성도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종말에는 타락한 교회가 용의 권세를 받아서 짐승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7장을 보세요.

 

계 17:1-18=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2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3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7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8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9 지혜 있는 뜻이 여기 있으니 그 일곱 머리는 여자가 앉은 일곱 산이요 10 또 일곱 왕이라 다섯은 망하였고 하나는 있고 다른 이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으나 이르면 반드시 잠간동안 계속하리라 11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어진 짐승은 여덟째 왕이니 일곱 중에 속한 자라 저가 멸망으로 들어가리라 12 네가 보던 열 뿔은 열 왕이니 아직 나라를 얻지 못하였으나 다만 짐승으로 더불어 임금처럼 권세를 일시동안 받으리라 13 저희가 한 뜻을 가지고 자기의 능력과 권세를 짐승에게 주더라 14 저희가 어린 양으로 더불어 싸우려니와 어린 양은 만주의 주시요 만왕의 왕이시므로 저희를 이기실 터이요 또 그와 함께 있는 자들 곧 부르심을 입고 빼내심을 얻고 진실한 자들은 이기리로다 15 또 천사가 내게 말하되 네가 본 바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16 네가 본 바 이 열 뿔과 짐승이 음녀를 미워하여 망하게 하고 벌거벗게 하고 그 살을 먹고 불로 아주 사르리라 17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18 또 내가 본 바 여자는 땅의 임금들을 다스리는 큰 성이라 하더라”

 

음녀가 어디에 앉아 있나요?

많은 물 위에 앉아 있지요.

많은 물 위에 앉아서 무얼 하나요?

땅의 임금들과 같이 음행을 하지요.

 

음행이란? 비진리를 전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교회가 세속화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가치관이 이 땅에 가치를 추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물을 뭐라고 합니까?

 

15절 “음녀의 앉은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이 세상을 지배하는 세력의 말로 무장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 세상을 누가 지배합니까?

용이에요.

 

그래서 음녀가 타고 있는 짐승의 모습이 붉은 용의 모습과 같고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모습과도 같은 것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에 면류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일곱 머리 열 뿔은 17장에서 다루겠습니다.

음녀가 앉은 많은 물은 이 세상 사상을 말하고 그들의 말은 곧 뱀의 말인 것입니다.

이걸 많은 물에 앉았다고 하는 것입니다.교회가 세상의 말로 성도들을 죽이고 있는 것입니다.

 

6절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다고 하지요.

이는 교회가 성도들을 비진리로 타락 시키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종들을 이단이라고 하면서 죽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이 기이히 여기는 것입니다.

아니 어떻게 교회가 성도들을 죽이고 있느냐?

그래서 이상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종말의 교회를 보고서 놀란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음녀가 되었어요.

교인들이 세상과 짝하고 간음하고 있어요.

마치 노아의 때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혼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판다고 했어요.

 

이는 교인들이 하늘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이 땅에 것에 관심을 두고 산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가 뱀의 말로 홍수를 이루고 있어요.

마귀의 놀이터가 되고 만 것입니다.

예수 십자가의 새 언약을 말하고 하늘 이야기를 하면 이단 소리 듣는 때가 지금 이 시대에요.

 

오늘본문을 보세요.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이 무슨 짓을 하는가요?

성도들과 싸우지요.

 

계 13:6-8=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7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8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짐승이 참란된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지요.

이것은 복음 전하는 종들을 이단이라고 하고 정죄하고 심판 한다는 뜻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은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게 되는 것입니다.

 

계시록 17장을 다시 보세요.

 

계 17:8절 “네가 본 짐승은 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와 멸망으로 들어갈 자니 땅에 거하는 자들로서 창세 이후로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한 자들이 이전에 있었다가 시방 없으나 장차 나올 짐승을 보고 기이히 여기리라”

 

짐승이 어디서 나오는가요?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지요.

그리곤 멸망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짐승을 누가 따르는가 하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은 땅에 거하는 자들이 따라요.

 

육적 신자들이 따른단 말입니다.

그러니까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종말에는 타락한 교회인 음녀가 되어서 예수그리스도를 배도하는 적그리스도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배도에 대하여 살펴보고 갑시다.

 

배도한다는 말은 예수를 믿다가 버린다는 말이 아니고,,

원래 아닌 자였는데 믿는 척 하다가 그 본질을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마치 가룟 유다처럼 말이에요.

 

가룟 유다는 예수를 믿지 않았어요.

믿는 척 한 것이에요.

그러다가 자기 정체를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께로 난 자들은 절대로 예수님을 배도 할 수가 없어요.

이건 본질적으로 불가능해요.

일시적으로 베드로처럼 넘어질 수는 있어도 궁극적으로는 예수를 따르게 되어 있어요.

 

양이 염소 되고 염소가 양이 되는 것은 없어요.

야곱은 야곱이고 에서는 에서에요.

야곱이 에서 되고 에서가 야곱 되는 일은 없어요.

이와 같이 신자는 신자이고 불신자는 불신자에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이 땅에서 잠시 염소처럼 살수는 있어요.

그러다가 예수님을 만나고 난 후 자기는 염소가 아니고 양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뭐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에요.

자기의 본질과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갈 4:1-10=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님께서 아들을 잠시 종의 모습으로 두셨다고 합니다.

아들인데 종의 모습으로 두셨을 뿐이에요.

그러다가 때가 되어서 예수님을 보내서 넌 종이 아니고 아들이라고 알려줌을 당하게 됩니다.

그럼 그 때부터 아 나는 종이 아니고 아들이었네,,,

그러면서 아들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용을 가지고 땅에 거하는 자와 하늘에 거하는 자를 갈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항상 일어나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니엘에서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국가로 나타났지만,

요한계시록에서는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세력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이 세상 나라는 종말이 되면 적그리스도와 그를 따르는 세력들이 나타나서 예수그리스도를 대적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앞 절이 계시록 12장 17절인데,,,

12장 17절 내용이 어떤가요?

 

계 12:13절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

계 12:17절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붉은 용이 하늘에서 전쟁을 하다가 패하고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그러자 용이 화가 잔뜩 나서 자기를 하늘에서 쫓아낸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남은 자손 곧 예수를 믿는 성도들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니까 오늘 본문은 용이 바다에서 나온 짐승을 대리자로 내 세워서 자신을 땅으로 쫓아낸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남은 자손들에게 앙갚음하려는 것입니다.

 

남자 아이란 예수님을 말하고,

그 여자는 교회를 말하고,

그 남은 자손들은 성도를 말해요.

 

그러니까 예수에게 속한 자들은 이 땅에서 핍박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맺은 새 언약을 전하면 이단 소리 듣게 되어 있어요.

왜 그런가 하면 새 언약의 복음이 용의 정체를 폭로하기 때문입니다.

마귀의 궤계를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정체를 폭로하고 고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은 전쟁터인 겁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간의 전쟁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육에 속한 자를 땅에 거하는 자라고 합니다.

이 땅이 바로 용의 보좌가 있는 곳이에요.

 

용은 이 세상 신이에요.

그런데 이 놈이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걸 땅에 거하는 자들은 몰라요.

육에 속한 자들은 이 놈이 양의 탈을 쓴 이리인줄 몰라요.

오직 하늘로서 난 자들만 알아요.

영에 속한 자들만 알아요.

 

그러니 용이 하늘로서 난 여자와 그 자손들이 얼마나 밉겠습니까?

그래서 창세전 언약을 말하고 예수그리스도의 피 뿌림으로 맺은 새 언약을 증거하면 이단이라고 참소하고 핍박하고 죽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교계에서 이단이라고 제명당하는 것이 죽임 당하는 것입니다.

복음 전하다가 이단 소리 듣는 것이 죽임 당하는 것이에요.

누가 복음을 싫어하는가 하면 땅에 거하는 자들이에요.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자들로부터 이단 소리를 듣게 되는 것입니다.

 

13장은 용이 12장에서 당한 것을 복수하는 것입니다.

13장의 이야기는 12장의 연속이에요.

13장은 땅으로 쫓겨난 용인 옛 뱀 마귀 사단이 그 졸개들을 풀어서 역사 속에서 남자 아이를 낳은 여자와 그 남은 자들을 어떻게 핍박하는지를 말해주고 있어요.

또한 땅에 거하는 자들을 어떻게 무엇으로 미혹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그럼 용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봅시다.

용은 영적 존재에요.

이 말은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으로는 볼 수가 없어요.

 

마치 하나님과 같아요.

하나님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러나 우리 눈으로 볼 수가 없어요.

하나님은 예수님을 앞 세워서 역사 속에서 일을 하십니다.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권세를 받아서 일을 하셨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앞세워서 일을 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대리하고 있어요.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한 권세를 가지고 일을 하셨어요.

 

아버지가 아들에게 권세를 위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모습을 용이 그대로 흉내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다에서 나온 짐승이 용처럼 일곱 머리 열 뿔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다에서 나온 짐승은 용과 같다는 뜻입니다.

이는 용이 짐승에게 모든 권세를 주었기 때문입니다.

 

본문 4절을 보세요.

 

4절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지요.

그러자 짐승이 용을 경배합니다.

용이 짐승을 앞세워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짐승을 ‘데리온’ 이라고 하는데 이는 사람을 헤치는 아주 사나운 짐승을 말합니다.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자를 말해요.

사람의 영혼을 죽이는 자가 누구인가요?

마귀입니다.

 

계시록 7장에 보면 무저갱에서 황충이 올라옵니다.

이 놈을 ‘아볼르온’ 이라고 하는데 그 뜻이 ‘파괴자’에요.

 

짐승이 누구랑 싸웁니까?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과 싸웁니다.

마귀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알아요.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은 마귀에게 속한 자들로부터 핍박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짐승이 참람된 말로 하나님을 훼방하지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을 핍박하지요.

그럼 이 짐승의 정체를 알 수가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6절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누가 짐승이냐 라고 접근하지 말고,

누가 하나님을 훼방하느냐로 접근하세요.

누가 복음을 훼방하는가를 보세요.

복음을 훼방하는 자가 짐승인 겁니다.

짐승이 복음을 훼방하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참소해요.

 

여기서 훼방이란? 중상하다, 불경건하게 말하다, 참람하다, 조롱하다, 헐뜯다, 험담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복음을 폄훼하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이단이라고 중상모략 하면서 헐뜯는 것을 말해요.

 

그리고 면류관을 썼지요.

뿔에 면류관을 쓰고 있으며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어요.

머리가 아니고 머리들입니다.

이는 하나가 아니고 여럿이라는 뜻입니다.

열 면류관이니까 열 왕이라는 뜻입니다.

 

이는 적그리스도 세력들이 교회에서 왕 노릇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 머리들에는 참람 된 이름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참람하다는 말은 모독한다는 말입니다.

누구를 모독합니까?

 

하나님이에요.

복음 전하는 종들이에요.

복음을 훼방하는 모두가 짐승입니다.

 

광의적으로 말하면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왔다고 하는 것은 이 세상 자체가 짐승이라는 뜻입니다.

짐승은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와 성도들을 핍박하는 자들이고 그 세력들입니다.

그것이 개인이 될 수가 있고 집단도 될 수가 있습니다.

국가도 될 수가 있어요.

 

이것이 표피적으로는 온 세상의 이념으로 나타나면 기독교 대 반기독교로 나타날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육에 속한 자와 영에 속한 자로 나타납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에 주신 말씀이므로 짐승은 거짓 종들로 나타나게 됩니다.

성도들을 세상으로 끌고 가면 짐승이에요.

 

기억 할 것은 마귀의 활동 무대는 교회라는 것을 잊지 마세요.

미혹의 대상은 성도라는 것도 기억하세요.

양의 탈을 쓴 이리 라는 것도 잊지 마세요.

 

세상의 가치로 목사를 판단하지 말고 어떤 말씀을 증거하는지를 가지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세요.

하늘에 말인지 땅에 말인지 분별하세요.

인간의 가능성을 부추기는 것인지 하나님의 은혜를 증거하는지로 분별하세요.

옛 언약을 전하는지 새 언약을 전하는지로 분별하세요.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았어요.

어떤 명인가 하면 사람들을 땅에 붙잡아 두라는 명입니다.

어떻게 땅에 붙잡아 둘까요?

그건 다음 시간에 살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서 마칩시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뱀의 말이 홍수를 이루고 있는 악한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뱀의 말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허락해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떠한 운명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는지를 알게 하여서 그러한 일들이 닥친다 하여도 당황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아무리 뱀의 세력으로부터 참소를 당하고 고난을 받는다 하여도 예수그리스도의 계명과 그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타협이나 흔들리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약속된 그 나라에 가는 날까지 겉으로는 우겨쌈을 당한다 하여도 안으로는 예수 안에서 평강을 누리며 넉넉히 이기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정낙원 목사-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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