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19강. 만물의 찬송 (계 5:1-14)

by coroa 2020. 11. 9.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19강. 만물의 찬송 (계 5:1-14)

-.정낙원 목사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 하실 때는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을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어린 양을 찬송하는 것으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찬송은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의 열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찬송을 하나님께 드리는 찬미의 제사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가 찬송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그 자리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

 

죽은 자는 찬송 할 수가 없습니다.

찬송은 오직 산 자들만이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을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천국에서 세세토록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송하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는 실낙원을 말하고,

요한계시록은 복낙원을 말합니다.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을 예수그리스도께서 되찾아 주셨습니다.

 

무얼 잃어버렸고 무얼 되찾아 주셨는가요?

이는 하나님을 향한 찬송입니다.

오늘은 찬송이 얼마나 귀하고 영광된 것인지를 살펴보기로 합시다.

 

베토벤이라는 영화를 보면 귀머거리인 베토벤이 강가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를 보면서 9번 교향곡인 환희의 송가를 부르는 대목이 나옵니다.

하늘엔 별이 가득하고 땅엔 바람에 갈대가 흩 날리고,,

압권입니다.

 

이게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인 “기뻐하며 경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이라는 가사로 불러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찬송은 언제 어디서 불러도 흥분이 됩니다.

한번 부르시고 시작합시다.

 

♬ ♪

기뻐하며 결배하세 영광의 주 하나님

주 앞에서 우리 마음 피어나는 꽃 같아

죄와 슬픔 사라지고 의심 구름 걷히니

변함없는 기쁨의 주 밝은 빛을 주시네

♪ ♬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한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는 하나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 사실을 알았습니다.

 

사 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사 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다는 말은 구속사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25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도말하신 것은 우리를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창세기의 창조이야기를 구원이야기로 말해주고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를 기록한 성경을 창조 이야기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창조와 구원은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는 동의어(同義語)입니다.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창조란? 구원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고자 함입니다.

창세기의 창조 이야기를 만물을 창조 하였다는 것에 포카스를 두지 않고 말씀으로 갈라내고 채우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세요.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고,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갈라내고,

땅과 바다를 갈라내고,

갈라낸 곳에 채우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잖아요.

 

구원을 거듭남이라고 합니다.

거듭남이 뭡니까?

새로 태어난다는 뜻입니다.

 

태어남이란 창조입니다.

그러니까 거듭난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창조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을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났다는 의미로 위로부터 거듭났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 거듭나게 해 주셨나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성도를 낳은 것입니다.

이게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듭나는 창조인 것입니다.

 

예수로부터 낳아진 자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는 아담 안에서 잃어버린 것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회복합니까?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장자 지파가 유다입니다.

유다의 이름에 뜻이 “여호와를 찬송한다” 라는 뜻입니다.

이 유다 지파로 말미암아 메시야가 옵니다.

메시야로 낳아진 성도를 일컬어 하늘에 장자라고 합니다.

그럼 구원 받은 성도는 여호와를 찬송하기 위하여 택정함을 입은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예수로 낳아진 자들이 하늘나라 장자입니다.

그럼 예수로 낳아진 성도는 모두가 여호와를 찬송하는 장자들입니다.

이 땅에서 구원받은 장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는 곳입니다.

이게 천국의 모습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고 금수와 버러지 같은 형상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름하여 우상입니다.

 

로마서 1장을 봅시다.

 

롬 1:20-23=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22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둔하게 되어 23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하나님은 만물 속에 하나님을 알만한 것들을 담아 놓았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어버렸습니다.

쉬운 말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살아야 할 인간들이 자기들 영광으로 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서 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것을 회복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찬송을 되찾아 주시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 일을 요한계시록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창조의 목적이 하나님을 찬송키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조는 곧 구원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구원 받은 성도가 궁극적으로 하여야 하는 일은 하나님의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이를 오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장 5장은 천상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구원 받은 모든 성도를 상징하는 24장로들이 무얼 하는가 하면 새 노래로 어린 양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도의 구원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24 장로뿐만 아니라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만물이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리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계 5:11-14=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이것은 창조의 목적이 완성된 모습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완성이 되었기 때문에 천국에서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창조의 목적이 성도의 구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악의 세력들을 멸망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인 된 책을 어린 양이 취하여 봉인된 것을 떼게 되자 24장로를 위시하여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만물들이 기뻐하고 찬송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어린 양이 창세전 언약을 이루는 일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잃어버린 찬송을 되찾아 주는 일들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야호~! 하고 새 노래로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은 창세전에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입니다.

왜? 구원하십니까?

찬송 받기 위함입니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 1:3-7=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이름하여 창세전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근거로 만물을 만드셨고 만물 속에서 일을 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입니까?

자기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구원하는 것입니다.

왜? 구원 하십니까?

 

그 목적이 무엇인가요?

이는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에베소서 1장의 창세전 언약이 요한계시록 5장에서 완성된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할 그 자리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그 일입니다.

이걸 이 땅에서는 교회들에게 주셨습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을 말하고 있는 에베소서에서는 교회와 성도의 본무(本務)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는 천상의 모습을 축약하고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모습이 잠시 나타난 적이 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날마다 모여서 찬송하고 기도하면서 유무상통하며 서로 교제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2장을 봅시다.

 

행 2:42-47=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43 사람마다 두려워하는데 사도들로 인하여 기사와 표적이 많이 나타나니 44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45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46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47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

 

오순절 성령이 임하자 구원 얻는 무리들이 일어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모이기 시작합니다.

신약의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는 천상에서 24장로들이 행하는 모습들이 역사 속에 가현(假現)적으로 나타나기 시작을 한 것입니다.

즉 창세전 언약이 완성이 된 모습들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습니까?

이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셔서 이제 만유의 주의 자리에 앉으면서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가지고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그 교회를 통해서 장차 천상에서 일어날 일을 보여주셨습니다.

 

어떤 일인가요?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입니다.

그 동안 죄로 인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일을 잃어 버렸었습니다.

 

이에 하나님이 그 아들 예수를 보내서 죄로 잃어버린 찬송을 되찾아 주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를 교회를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 후 교회로 모인 성도들이 날마다 하나님을 찬미하고 기도하며 서로 교제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심의 결과물로 나타난 열매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세워진 초대교회에서는 구원의 궁극적인 목적인 그 은혜와 영광을 찬미하는 일들이 날마다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께서 “교회란 이런 곳이다” 라고 교회의 본질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이 교회가 지금 천상에 완성된 모습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상에 있는 교회들은 모두가 천상의 교회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힘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고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아담이 범죄로 인하여 잃어버린 에덴동산을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되찾아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어린 양이 하나님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취하십니다.

그러자 장로 중 하나가 그 책의 인봉을 어린 양이 떼기에 합당하다고 합니다.

이에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새 노래를 부르면서 어린 양을 찬송하며 영광을 돌리고 있습니다.

 

어째서 네 생물과 24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금 대접을 가지고 새 노래로 어린 양에게 찬송하고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왜? 하늘에 천사들과 만물들도 어린 양을 찬송하고 있을까요?

왜? 모든 피조물들이 어린 양이 책을 취하여 인봉을 떼게 되니까 찬송을 하는 것일까요?

 

이는 어린 양이 언약을 성취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만물은 어린 양이 만물을 회복해 주시기만을 고대해 왔습니다.

즉 죄를 없이하는 일을 해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죄로 인하여 인간만 고통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물도 고통당하였습니다.

그래서 만물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서 죄를 없이 하는 일을 고대하였던 것입니다.

 

죄가 원흉입니다.

그런데 그 죄를 어린 양이 척결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을 멸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어린 양이 아버지의 오른 손에 있는 책을 취하심으로 이제 본격적으로 시작이 되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어린 양이 책을 취하고 인봉을 떼게 되자 새 노래로 찬송을 하는 것입니다.

이제 어린 양이 인봉을 떼면 자기 백성들을 구원이 되고 악인은 멸하는 일들이 일어납니다.

어린 양이 일을 하면 자기 백성은 구원 받고 악의 세력은 멸망당하는 두 가지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너희와 저희로 갈라집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로 갈라집니다.

이렇게 갈라지는 것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이를 천지(天地) 창조로 말해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 이야기를 갈라내고 채우는 것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곧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갈라지고 채움을 입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예표하고 있는 것들입니다.

 

천지 창조를 구속사 적으로 보면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이고,

하늘과 땅은 천국과 지옥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이미 창세전에 계획된 것들입니다.

 

마태복음 25장을 봅시다.

 

마 25:31-41=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 하는 것 같이 하여 33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34 그 때에 임금이 그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 ~ ~ 41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마태복음 25장의 내용은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마지막 심판하는 모습입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들을 양과 염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인 양들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나라를 상속하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 백성이 아닌 염소들에게는 예비 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고 하십니다.

 

양이 갈 곳도 염소가 갈 곳도 창세전에 예비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곧 천국과 지옥은 이미 창세전에 예비가 된 곳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제가 창세기 강해를 하면서 창세기 1장 1절의 천지(天地)를 문자적으로 육적인 하늘과 땅으로만 보지 말고 영적으로 천국과 지옥으로 보라고 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굉장히 어려우니 잘 이해하고 들으세요.

 

창세기 1장 1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2절을 보면 하늘은 사라지고 땅만 나타납니다.

 

창 1:1-5=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天地)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神)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4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사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1절에서는 분명히 하늘과 땅을 창조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땅만 나타납니다.

왜? 하늘을 온데 간데 없고 땅만 있습니까?

 

이는 천지 창조를 하신 목적을 땅에서 이야기하겠다는 뜻입니다.

땅에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땅의 타락을 말합니다.

땅이 언제 타락을 했나요?

이는 죄가 들어오면서입니다.

 

창세기 3장을 봅시다.

 

창 3:17절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 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아담이 살아갈 근본(根本)인 땅을 저주하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땅의 모습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세기 1장 2절의 말씀이 아담이 범죄 한 후의 모습이 되겠지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하자 땅을 저주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주하실 때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이유 없이 저주 할 순 없어요.

창세기 1장 1절과 2절을 보아서는 왜? 땅이 저주 받았는지를 알 수가 없어요.

3장에 가서야 비로서 땅이 왜? 저주를 받았는지를 알 수가 있어집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라는 말은 완벽하신 분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완벽하신 하나님이 창세기 1장 2절처럼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그런 무질서하고 타락된 땅을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타락이란? 죄로 인하여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그럼 창세기 1장 2절의 땅에 모습은 타락 후의 땅에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타락은 죄로 인하여 나타나는 것이잖아요.

 

그럼 성경 속에서 죄가 언제 나타납니까?

창세기 3장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세기 1장 2절의 타락한 땅의 모습은 성경의 논리로 보면 창세기 3장 이후가 되는 것입니다.

 

먼저 알 것은 저는 이렇게 은혜를 받고 있어요.

창세전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면 이렇게 해석이 되어요.

제 생각에 동의가 되면 취하시고 동의 할 수 없으면 버리세요.

 

그럼 제가 왜? 이런 주장을 펴는지 설명을 합니다.

 

제가 창세기 강해를 할 때 창세기 1장은 책의 목차(目次)적인 의미가 있다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책을 보면 맨 앞 장에 그 책의 전체 내용을 목차(目次)로 기록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뜻입니다.

 

목차(目次) 속에는 서론(序論) 본론(本論) 결론(結論)이 다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목차만 보면 그 책의 내용이 대충 어떤 내용으로 기술하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어요.

창세기 1장이 이와 같아요.

 

예를 들어서 책이 100페이지라고 합시다.

 

1페이지에서 30페이지까지는 창조이야기,

31페이지부터 50페이지까지는 타락이야기,

51페이지부터 80페이지까지는 구원이야기,

81페이지부터 100페이지까지는 완성이야기로 이야기 해 주고 있어요.

 

창세기 1장이 이와 같아요.

창세기 1장 속에 모든 성경이 다 들어가 있어요.

창세기 1장의 7일 창조는 온 세상의 역사를 다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하실 일들이 곧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일들이에요.

 

창세기 1장은 난 앞으로 이렇게 일을 해 나가겠다고 미리 알려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2장부터 시작하여서 요한계시록 22장까지 펼쳐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2장부터 창세기 1장의 내용이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창세기 1장에서 7일 창조의 모습으로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창세기 1장의 일들을 역사 속에서 일을 하시고 계세요.

무슨 일인가 하면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만약에 창세기 1장이 천지 창조의 완성으로 본다면 일곱째 날에 하나님이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안식을 하셔야 합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분명히 일곱째 날에 안식하셨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하나님은 지금도 일을 하시고 있다고 하셨어요.

자신이 온 것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하시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하나님은 창조주세요.,

그럼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실까요?

당연히 창조하는 일을 하시겠지요.

그 창조의 일이 곧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와 구원을 같은 뜻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입니다.

 

요 5:1-29=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있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마른 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 기다리니 4 이는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 동한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5 거기 삼십 팔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 날은 안식일이니 10 유대인들이 병 나은 사람에게 이르되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 11 대답하되 나를 낫게 한 그가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더라 한대 12 저희가 묻되 너더러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냐 하되 13 고침을 받은 사람이 그가 누구신지 알지 못하니 이는 거기 사람이 많으므로 예수께서 이미 피하셨음이라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유대인들이 예수를 핍박하게 된지라 17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18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못가에 있는 38년 된 병자를 고치십니다.

그런데 이 날이 안식일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에게 왜? 안식일에 일을 하느냐고 따집니다.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여호와의 안식일로 지켰어요.

그런데 그 안식일에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병자는 안식일 이외 다른 날에 고쳐도 되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일부러 안식일에 고치는 것입니다.

그것도 율법을 잘 지키고 있는 유대인들이 보는 앞에서 말이에요.

이에 유대인들이 왜? 하나님이 안식하는 날에 일을 하느냐고 시비를 거는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아버지가 지금 안식하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건 유대인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이에요.

율법 아래서는 안식일에 일을 하면 죽어요.

그런데도 예수님은 율법이 금하는 안식일에 보란 듯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는 예수님은 한 술 더 나아가서 아들은 아버지가 하는 일을 보고서 그대로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곧 아버지가 하는 일이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가?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합니다.

곧 이 때라고 합니다.

아들의 음성을 듣는 자는 다 살아난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자기 백성들을 무덤에서 불러낸다는 뜻입니다.

무덤이란? 죄와 사망이에요.

이것은 마치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곳에서 하나님이 빛을 불러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창세기 1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창조하는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을 하신다고 하셨어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오셔서 아버지께서 안식하지 않고 지금도 일을 하시고 있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는고 하니 자기 백성들을 죽음에서 살려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지금도 일어나고 있음이 됩니다.

아직까지 일곱째 날이 도래하지 않고 있다는 뜻입니다.

역사는 지금도 창세기 1장의 엿새 속에 있다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의 일곱째 날은 예수님이 재림하여야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4장 5장의 천상의 모습이 바로 창세기 1장의 일곱째 날 안식일의 모습인 것입니다.

 

다시 말합니다.

제가 앞서 창조는 구원과 동의어라고 했지요.

그러니까 하나님은 지금도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일을 하고 계시다는 것은 곧 창조의 일을 하시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럼 이 역사는 아직도 창세기 1장의 엿새 속에 속한 날이 되겠지요.

일곱째 날은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서 자기 백성을 다 구원하고 난 후에 오는 날이에요.

이 날은 곧 일곱째 나팔이 울려 퍼지고 난 후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셔야 하나님이 안식을 하실 수가 있습니다.

 

이 안식의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의 천국에 모습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에서 말하는 일곱째 날 하나님께서 안식하는 것은 요한계시록의 천국의 모습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조로 볼 때 창세기 1장의 7일 창조 이야기는 창세기 2장 이후부터 역사 속에서 전개가 되어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인류 역사는 아담이 창조가 된 창세기 2장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요?

잘 이해하세요.

이건 블로그에 올려진 창세기 이야기를 참고하세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고 쫓겨나지요.

그리곤 에덴동산은 감추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범죄한 아담에게 에덴동산을 감추어 버렸어요.

아담 앞에 놓여진 세상은 저주 받은 땅이에요.

 

이걸 창세기 1장 2절에서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절에는 에덴동산을 상징하는 하늘이 없는 겁니다.

땅만 있는 거에요.

 

땅이 어떤 모습입니까?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지요.

이게 바로 타락으로 인하여 저주 받은 이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그런데 저주 받은 그 땅에 하나님의 신(神)이 수면(水面)에 운행하지요.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한다는 말은 온 세상이 물에 뒤덮여 있다는 뜻입니다.

이건 마치 노아 홍수 때와 같은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온 세상이 물 속에 잠겨 있지요.

그 위에 바람이 붑니다.

바람이 물을 걷어 내지요.

 

창 8:1절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 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물 위에 부는 “바람”을 “루아흐” 라고 합니다.

이는 곧 창세기 1장 2절의 수면 위에 운행하는 “하나님의 신”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2절의 “하나님의 신”을 “루아흐 엘로힘” 이라고 하는데 이것이 노아 홍수 때에는 바람(루아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 홍수 때 바람이(루아흐) 물을 걷어내서 땅을 나타나게 하지요.

이것이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면서 빛과 어둠을 갈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 3절을 보면 하나님이 어둠 속에서 빛을 끄집어내지요.

이는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을 구원해 내는 것과 같아요.

우린 모두가 죄 아래서 태어났어요.

 

그런데 어느 날 성령에 의하여 거듭나는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죄와 사망 가운데서 의와 생명 가운데로 건져냄을 당하였어요.

이게 구원이에요.

 

시편 104편을 봅시다.

 

시 104:29-30=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30 주의 영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시나이다”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지요.

이것은 주께서 낯을 숨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하자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고 저주 하시지요.

그러니까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은 흙으로 돌아간 것과 같은 것입니다.

 

이것을 시편 기자는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갔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호흡을 취하셨다는 것은 죽었다는 말입니다.

아담이 살아가는 땅에 속한 자들은 모두가 죽은 자들이에요.

그런데 그 죽은 자들 속에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기 백성들이 섞여있어요.

 

이건 마치 창세기 1장 2절의 흑암 속에 빛이 있는 것과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들에게 주의 영(루아흐)을 보내어 저희를 창조하사 지면을 새롭게 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해 내신다는 말입니다.

 

이 일을 누가 하나요?

주의 영(루아흐)이 하세요.

주의 영(루아흐)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수면 위에 운행하는 하나님의 신(루아흐)이고, 노아 홍수 때에는 바람(루아흐)인 것입니다.

 

이걸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하는 일로 이해해 보세요.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왜? 오셨습니까?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오셨어요.

자기 백성들이 어떤 상태입니까?

죽은 상태에요.

 

에스겔 37장의 해골골짜기의 해골들과 같아요.

그 해골들 위에 생기가 불지요.

그 생기가 바로 루아흐에요.

 

창세기 1장 2절의 수면 위에 운행하는 하나님의 신이고,

노아 홍수 때 불던 바람이고,

시편에서는 주의 영이고,

에스겔에서는 생기에요.

 

그러니까 창세기 1장 3절에서 하나님이 흑암 속에서 빛을 끄집어내는 것은 예수님이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의 모형인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창조와 신약의 구원은 동의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제 이해가 되지요.

 

예수님께서 죽은 세상에 자기 백성들을 살려주시고자 오셨어요.

이걸 새 창조라고 합니다.

왜?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까?

이는 창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창조의 목적이 뭐라고 했나요?

하나님의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새롭게 창조가 된 자들이 천국에서 새 노래로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봅시다.

 

계 14:1-5=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2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 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더라 3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4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5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시온산에 144.000명이 서 있지요.

이들은 24장로와 같아요.

모두가 구원 받은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가 하면 거문고를 가지고 새 노래로 어린 양을 찬양하고 있어요.

 

이 찬양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직 어린 양으로 구속함을 받은 자들만이 부를 수가 있는 노래입니다.

하나님은 아무나에게 영광과 찬송을 받지 않아요.

 

하나님은 죽은 자들의 찬양을 받지 않아요.

오직 어린 양 안에서 구속함을 받은 자기 백성들의 입술로 나오는 찬양만 받으세요.

그래서 시편 기자는 죽은 자는 찬양을 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시 115:17절 “죽은 자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 내려가는 아무도 못하리로다”

 

찬송은 산 자들만이 할 수 있는 것이에요.

어린 양의 피 뿌림에 의미를 아는 자들만이 찬송을 할 수가 있어요.

교회 안에서 찬송을 맡은 성가대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한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만이 할 수가 있어요.

 

교회 안에서의 찬양은 도나 개나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성악을 전공 했다고 성가대 하고,

노래 잘한다고 성가대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리고 찬양은 감사의 행위에요.

삯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교회 안에 성가대가 삯을 주고 받고 있어요.

지휘자가 돈을 받고, 반주자가 돈을 받고, 성악가가 돈을 받고 노래하고 있어요.

 

교회들이 돈이 차고 넘치니까 이 짓거리들을 하고 있어요.

돈 지랄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복음을 모른다는 말입니다.

 

이러한 것을 시키는 목사들이나,

이러한 일을 하고 있는 자들이나 복음 모르기는 매 마찬가지에요.

목사는 거짓 선지자이고 보수를 받고 지휘하고 반주하고 노래하는 자들은 매매하는 자들이에요.

이런 자들이 모인 곳을 계시록 17-18장에서는 음녀라고 합니다.

그래서 음녀가 있는 곳을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봅시다.

 

계 18:1-24=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2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 11 땅의 상고들이 그를 위하여 울고 애통하는 것은 다시 그 상품을 사는 자가 없음이라 12 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세마포와 자주 옷감과 비단과 붉은 옷감이요 각종 향목과 각종 상아 기명이요 값진 나무와 진유와 철과 옥석으로 만든 각종 기명이요 13 계피와 향료와 향과 향유와 유향과 포도주와 감람유와 고운 밀가루와 밀과 소와 양과 말과 수레와 종들과 사람의 영혼들이라 ~ 22 또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의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물론 어떠한 세공업자든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보이지 아니하고 또 맷돌 소리가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고 23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 신랑과 신부의 음성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들리지 아니하리로다 너의 상고들은 땅의 왕족들이라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24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및 땅 위에서 죽임을 당한 모든 자의 피가 이 성중에서 보였느니라 하더라”

 

계시록 17-18장은 음녀를 말하고 있어요.

이는 배도(背道)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과 타락한 교회를 말해요.

이들을 일컬어 땅에 상고들이라고 합니다.

 

상고란? 물건을 사고 파는 상인들이란 말입니다.

이들의 물품을 보세요.

거문고 타는 자와, 풍류하는 자와, 퉁소 부는 자와, 나팔 부는 자들이 있다고 하지요.

그리고 세공업자들의 맷돌 소리가 있다고 하지요.

세공업자들은 목사들을 말하고 맷돌소리는 그들이 전하는 설교를 말해요.

 

이들이 무슨 짓을 하나요.

서로 기능을 사고팔아요.

왜? 이런 짓을 한다고 합니까?

모두가 복술(卜術)에 미혹당하여서 그렇다고 합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복술에 미혹 당하였어요.

그러니 기능을 사고파는 일들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은 매매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되었어요.

 

목사는 돈을 주어서 기능을 사고 있고,

지휘자 반주자와 노래하는 자들은 돈을 받고 기능을 팔고 있어요.

교회가 기능을 사로 파는 직거래 장터가 되고 말았어요.

 

이러한 짓거리를 하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에요.

절간이에요.

목사들은 주지승이고,

삯을 받고 다니는 자들은 불자(佛者)들이에요.

 

지금은 교회 안에 죽은 자들이 가득해요.

 

복음이 뭔지,

구원이 뭔지,

찬송이 무엇인지를 몰라요.

그냥 지식적으로 알아요.

그러니 성경적 의미에 반하는 짓거리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송은 최고의 신앙 행위에요.

이건 유행가는 안 부르고 찬송가만 부른다는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는 믿음으로 받고 감사함으로 행하면 버릴 것이 없어요.

성(聖)과 속(俗)을 구분하지 마세요.

 

예수 안에서는 모두가 성(聖)이 되고,

예수 밖에서는 모두가 속(俗)이 되어요.

어린 양의 대속에 은혜를 알고 감사함으로 하면 모두가 성(聖)이 되고,

어린 양의 대속에 은혜를 모르고 기능적으로 하면 모두가 속(俗)이 되어요.

 

노래에 헌 노래가 있고 새 노래가 있는 것이 아니에요.

죽은 자가 부르면 헌 노래이고,

산 자가 부르면 새 노래에요.

그래서 천국에서 불려지는 새 노래를 모세의 노래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계 15:1-4= “2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 3 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4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하더라”

 

모세의 노래는 출애굽 때 홍해바다를 건너온 후 미리암이 소고 치며 부른 노래를 말해요.

홍해바다는 죽음의 바다에요.

그러니까 죽음의 바다를 건너온 자들이 부르는 노래가 바로 새 노래인 것입니다.

 

죽음의 바다를 건너 왔다는 것은 산 자들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 받은 모든 성도를 대표하는 24장로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을 새 노래로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거문고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구원이 뭐냐?

잃어버린 찬송을 되찾음 당하는 것이에요.

 

왜? 구원 했나?

하나님께 찬송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 모습이 오늘 본문의 모습입니다.

 

구원은 필연적으로 기도를 동반하게 되어 있어요.

왜냐하면! 구원이 되려면 반드시 악의 세력을 멸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을 결박하고 사로잡힌 자들을 끄집어내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책을 취하자 24장로들이 거문고와 향이 가득한 기도를 드리면서 빨리 그 책의 내용을 집행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럼 지금부터 24장로들의 기도를 알아봅시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준 기도가 있지요.

주기도문이잖아요.

주기도문의 내용을 한마디로 하면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가요?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악한 자들의 멸망도 포함이 되어 있습니다.

 

그럼 24장로들이 기도하는 내용이 어떤 것일까요?

예수님이 가르쳐준 것과 같은 기도이겠지요.

예수님이 가르쳐준 기도의 내용은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봅시다.

 

계 6:9-11= “다섯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보니 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10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거룩하고 참되신 대 주재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심판하여 우리 피를 신원하여 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 때까지 하시려나이까 하니 11 각각 저희에게 흰 두루마기를 주시며 가라사대 아직 잠시 동안 쉬되 저희 동무 종들과 형제들도 자기처럼 죽임을 받아 그 수가 차기까지 하라 하시더라”

 

예수님 때문에 죽임 당한 영혼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계시록 4장에서는 24장로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들이 하나님 앞에서 뭐라고 합니까?

빨리 세상을 심판해 달라고 하지요.

원수들을 멸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원수들 손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빨리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천상에서는 24 장로들로 나타나지만 이 땅에서는 성도들의 기도로 나타나고 있어요.

그러니까 하늘에서는 일찍 죽임을 당한 믿음에 선진들이 기도하고 있고,

땅에서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성도들이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8장을 봅시다.

 

계 8:1-5= “일곱째 인을 떼실 때에 하늘이 반시 동안쯤 고요하더니 2 내가 보매 하나님 앞에 시위한 일곱 천사가 있어 일곱 나팔을 받았더라 3 또 다른 천사가 와서 제단 곁에 서서 금 향로를 가지고 많은 향을 받았으니 이는 모든 성도의 기도들과 합하여 보좌 앞 금단에 드리고자 함이라 4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5 천사가 향로를 가지고 단 위의 불을 담아다가 땅에 쏟으매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나더라”

 

이 모습은 이 땅에 성도들이 기도하는 모습이에요.

천사들이 그 기도를 금 향로에 담아서 하나님 앞에 드리지요.

그러자 이 땅에 뇌성과 음성과 번개와 지진이 일어납니다.

 

이는 심판을 말해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그 원수들을 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난 후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는 것은 자기 백성들을 괴롭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이 땅에 두어서 핍박당하게 하셨어요.

이는 이 세상을 멸할 근거를 마련하고자 하심이에요.

너희들 왜? 내 백성들을 괴롭혔느냐! 라고 하면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역사를 어떻게 운행하시는가 하면 자기 백성들을 먼저 악에게 넘겨주어요.

이건 마치 아브라함 후손을 애굽의 바로에게 종살이 시킨 것과 같아요.

자기 백성들은 애굽에서 압제 당하면서 하나님께 탄원합니다.

주여 살려 주세요 라고 합니다.

이 때 하나님이 구원의 손길을 베푸십니다.

그럼 구원 받은 백성들이 찬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좌와 사망을 상징하는 애굽은 독자적으로 나올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구조로 만든 것은 자기 백성들이 출애굽 한 것이 자기들 힘으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게 하고자 함이에요.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음을 알 때 비로서 찬송이 터져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해 바다를 건너와서 나타난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은 구원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하나님께 찬송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자기 백성들을 괴롭힌 악에 세력은 너희들 왜? 내 새끼들을 괴롭혔어! 하면서 심판을 단행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하나님의 심판이 공의로운 것이 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은 하나님을 찬송하게 하려고 죄 아래 가두었다가 빼내는 일을 하시고 악한 세력들은 공의롭게 멸망시키고자 일을 벌리시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1장을 봅시다.

 

살후 1:3-12=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할지니 이것이 당연함은 너희 믿음이 더욱 자라고 너희가 다 각기 서로 사랑함이 풍성함이며 4 그리고 너희의 참는 모든 핍박과 환난 중에서 너희 인내와 믿음을 인하여 하나님의 여러 교회에서 우리가 친히 자랑함이라 5 이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의 표요 너희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니 그 나라를 위하여 너희가 또한 고난을 받으리니 6 너희로 환난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7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8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9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0 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 11 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 12 우리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대로 우리 주 예수의 이름이 너희 가운데서 영광을 얻으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영광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핍박과 환난 중에 거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자로 만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즉 환난 속에서 건져 내어야 찬송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구원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먼저 구원 받아야 하는 구조 속에 가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빼내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빼내심을 입은 자들은 하나님 고맙습니다 라고 찬송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창세전 언약의 내용이에요.

그러므로 성도는 이 세상에서 고난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고난은 장차 천국에서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한 고난이에요.

 

그래서 사도 바울은 환난 당하는 자에게는 안식으로 갚아 주시고 환난 당하게 하는 자들은 심판으로 갚아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고난당하는 것은 장차 안식을 위한 것이니 두려워하지도 말고 섭섭해 하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다 하나님의 고도의 계획된 것이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고도의 계산된 일을 알게 하시려고 성령을 주신 겁니다.

일곱 영을 온 땅으로 보내서 이 사실을 알려주게 하신 것입니다.

 

찬송과 기도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는 오직 구원 받은 자만이 할 수가 있는 특권이에요.

우린 하나님께 찬송 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어요.

 

이거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지금 얼마나 대단한 것을 얻었는지를 알기나 하고 예수를 믿으세요.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고나 믿으세요.

 

돈 몇 푼 때문에 징징거릴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사는게 좀 어렵다고 댕댕거릴 그런 군번이 아니란 말입니다.

세상 사람들이야 어차피 그들의 소속이 땅이니까 땅에 것으로 인하여 댕댕거리고 징징거리지만 성도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들이에요.

 

그러니 세상 사람들과 같은 류의 삶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가치관이 달라야 해요.

우린 하나님을 찬송할 자격을 얻은 자들이에요.

산 자들이란 말입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듯이,

성도는 망해도 하늘나라 백성이에요.

이 세상에서 거지 나사로처럼 살아도 천국에선 당당하게 성가대에 서서 하나님을 찬송 할 자들이란 말입니다.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 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러한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보고 있잖아요.

24장로들 속에서 우리 자신을 보세요.

그 속에 우리가 있어요.

그러니 서로 위로하세요.

 

그 날이 곧 도래 할 것입니다.

잠시잠간 후면 그리로 갈 것입니다.

그러니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현실을 이겨 내시길 바랍니다.

신앙생활이 찬송이 되시길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버러지 같은 인생을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 삼아 주시고 하나님을 찬송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비록 힘들고 괴롭더라도 우리의 정체성을 알게 하셔서 현실을 이겨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의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은혜를 보게 하시고, 우리의 귀를 열어서 만물을 통해서 말씀 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우리의 마음을 열어서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믿음으로서 찬송과 기도가 끊이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