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강. 언약에 이끌려 사는 자들 (창 45장)
창 45:1-28절. “요셉이 시종하는 자들 앞에서 그 정을 억제하지 못하여 소리 질러 모든 사람을 자기에게서 물러가라 하고 그 형제에게 자기를 알리니 때에 그와 함께 한 자가 없었더라 2. 요셉이 방성대곡하니 애굽 사람에게 들리며 바로의 궁중에 들리더라 3.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나는 요셉이라 내 아버지께서 아직 살아 계시니이까 형들이 그 앞에서 놀라서 능히 대답하지 못하는지라 4.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9. 당신들은 속히 아버지께로 올라가서 고하기를 아버지의 아들 요셉의 말에 하나님이 나를 애굽 전국의 주로 세우셨으니 내게로 지체 말고 내려오사 10.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12. 당신들의 눈과 내 아우 베냐민의 눈이 보는바 당신들에게 이 말을 하는 것은 내 입이라 13. 당신들은 나의 애굽에서의 영화와 당신들의 본 모든 것을 다 내 아버지께 고하고 속히 모시고 내려오소서 하며 14. 자기 아우 베냐민의 목을 안고 우니 베냐민도 요셉의 목을 안고 우니라 15. 요셉이 또 형들과 입 맞추며 안고 우니 형들이 그제야 요셉과 말 하니라 16. 요셉의 형들이 왔다는 소문이 바로의 궁에 들리매 바로와 그 신복이 기뻐하고 17. 바로는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에게 명하기를 너희는 이렇게 하여 너희 양식을 싣고 가서 가나안 땅에 이르거든 18. 너희 아비와 너희 가속을 이끌고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애굽 땅 아름다운 것을 주리니 너희가 나라의 기름진 것을 먹으리라 19. 이제 명을 받았으니 이렇게 하라 너희는 애굽 땅에서 수레를 가져다가 너희 자녀와 아내를 태우고 너희 아비를 데려오라 20. 또 너희의 기구를 아끼지 말라 온 애굽 땅의 좋은 것이 너희 것임이니라 하라 21.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그대로 할새 요셉이 바로의 명대로 그들에게로 수레를 주고 길 양식을 주며 22. 또 그들에게 다 각기 옷 한 벌씩 주되 베냐민에게는 은 삼백과 옷 다섯 벌을 주고 23. 그가 또 이와 같이 그 아비에게 보내되 수나귀 열 필에 애굽의 아름다운 물품을 실리고 암나귀 열 필에는 아비에게 길에서 공궤 할 곡식과 떡과 양식을 실리고 24. 이에 형들을 돌려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당신들은 노중에서 다투지 말라 하였더라 25. 그들이 애굽에서 올라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서 아비 야곱에게 이르러 26. 고하여 가로되 요셉이 지금까지 살아 있어 애굽 땅 총리가 되었더이다 야곱이 그들을 믿지 아니하므로 기색하더니 27. 그들이 또 요셉이 자기들에게 부탁한 모든 말로 그 아비에게 고하매 그 아비 야곱이 요셉의 자기를 태우려고 보낸 수레를 보고야 기운이 소생한지라 28. 이스라엘이 가로되 족하도다 내 아들 요셉이 지금까지 살았으니 내가 죽기 전에 가서 그를 보리라”
오늘 본문은 요셉과 그 형제들이 상봉하는 내용입니다.
그 동안 요셉은 형제들에게 자신의 정체를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자신의 친 동생인 베냐민이 오자 그 형제들에게 자기 정체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 형제들을 어떻게 다루어 왔는지를 이야기해 줍니다.
요셉은 반전을 거듭하면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이리저리 간섭해주셨다고 것을 알려줍니다.
이 말은 곧 요셉은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고 하나님께 이끌려 다니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인생이 바로 이 세상 속에 있는 언약의 후손들의 삶에 모습인 것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언약의 후손들을 세상에서 어떻게 다루어가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역사 속에 계시된 하나님은 언약의 하나님이십니다.
이는 언약으로 일을 하신다는 뜻입니다.
언약의 내용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입니다.
이 일을 행하는 주체가 바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예수그리스도께서 일하는 장소인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수를 만유의 주를 삼는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만물을 창조하였습니다.
만물은 예수그리스도를 위히여 존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철거할 것을 창조하였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역사 속에서 창세전에 언약하신 일을 다 마치고 나면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게 되고 이 세상은 철거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이 지금 죄 아래 가두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죄에서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언약의 후손들은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운명으로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를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뜻입니다.
이들을 일컬어 하늘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세상에서 비주류입니다.
이 세상에서 나그네이고 행인이고 외국인들인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 나라가 있습니다.
그 나라는 이 세상 바깥에 있어서 세상에서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를 실상으로서 원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나라에서 하나님이 스스로에게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그걸 우리는 창세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언약은 하나님이 하나님 자신에게 하신 것입니다.
만물 속에서 이러한 일을 이렇게 일을 하겠다고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이건 마치 드라마를 찍기 전에 먼저 시나리오를 쓴 것과도 같습니다.
언약은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우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창세전이란? 이 세상이 만들어지기 전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세우신 언약을 펼치기 위해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말미암았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계시던 하나님이 보이는 이 세상에서 창세전에 하신 언약을 펼쳐 가시는 것입니다.
그 분이 바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으로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창세전에 하신 언약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오셔서 이루어 가실 창세전 언약을 구약에서는 아브라함을 통해서 예표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아브라함 언약에 담아 놓은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아브라함이 언약을 세울 때는 자식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식은 언약 이후에 생겨났습니다.
그가 이삭입니다.
이삭은 약속으로 주어진 아들입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낳아진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삭을 그리스도를 예표한다고 하였습니다.
롬 9:7-8절. “또한 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 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부터 난 자라야 네 씨라 칭하리라 하셨으니 8.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갈 3:16절.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갈 4:28절.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이삭으로 낳아진 자식들은 언약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언약이 곧 후손을 생산해 낸 것입니다.
이러면 언약의 후손들은 언약에 종속되어서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야곱의 가족들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그럼 야곱의 가족들 이야기는 곧 우리들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항상 말하는 것이지만 성경의 이야기가 우리의 이야기로 들려져야 합니다.
구약의 이야기가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국한된 것으로만 들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성경 속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일 것 같으면 성경을 볼 필요가 없어요.
우리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살펴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을 구약에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통해서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일컬어 언약의 후손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우리 이야기로 들어야 해요.
성도는 구약 이스라엘의 희노애락을 함께 공유하게 되어 있어요.
우리가 요셉의 이야기를 살펴보는 이유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서 우리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보고 듣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성경을 상고할 때 모든 이야기가 우리 이야기로 들려지게 해주시는 겁니다.
이럴 때 성경의 모든 이야기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야곱이 장자의 축복을 받고서 아버지 집에서 쫓겨나 벧엘 광야에 갔을 때에 하나님이 야곱을 찾아오십니다.
그리고 야곱과 동행하실 것을 알려주십니다.
그러자 야곱은 지금까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으로만 알았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하게 됩니다.
광야에서 조상의 하나님이 자기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교회를 통해서 성경 속의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으로 만나야 되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 이야기입니다.
요셉의 이야기도 예수님의 구속사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요셉이 구원하고자 하는 가족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셉의 가족은 예수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을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과 가족들은 한 몸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 형제들은 자기 운명 속으로 끌어당기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처음 양식을 사러 왔을 때에 곡식 값을 지불하였습니다.
그런데 요셉은 형제들 몰래 그 돈을 곡식 자루 속에 넣어서 졸지에 도둑 누명을 쓰게 만듭니다.
베냐민도 마찬가지입니다.
베냐민은 은잔을 훔치지 않았어요.
요셉이 베냐민 몰래 은잔을 넣고 도둑으로 만든 것입니다.
이는 요셉의 억울함을 그 형제들에게도 체휼케 만든 것입니다.
왜 이런 일들을 만들었을까요?
이는 형제들을 요셉의 운명으로 초청을 하기 위함입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억울하게 버림을 당하였기 때문입니다.
이건 복수혈전이 아니고 요셉의 운명 속으로 형제들을 끌어당긴 것입니다.
알다시피 요셉은 아무런 잘못도 없이 자기 형제들에게 억울하게 버림을 당하였습니다.
요셉의 형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들은 아무런 잘못도 없는데 도둑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자기가 경험한 사건 속으로 형제들을 끌어들인 것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에요.
예수님과 똑같은 길을 걷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다는 것 하나로 세상으로부터 미움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요 15:18-19.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세상은 세상 것을 사랑하는데,
우리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고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건축자들에게 버린 돌 취급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세상에서 호사스러운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버림당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소속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암튼 요셉의 형제들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고난을 당합니다.
이 때 그 형제들의 누명을 벗기 위해서 대신 희생하는 자가 나타납니다.
유다가 자기 형제들의 죄값을 대신하여 옥에 갇히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해서 죽으신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유다가 메시야가 오는 장자의 가문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유다 속에는 우리 모두가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자기 백성들을 녹명해 놓았습니다.
성도들은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가 되어서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입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된 자들만 구원을 하시는 겁니다.
예수님에 의해서 구원을 받은 자들을 장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끄집어낼 때에 유월절 어린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건져낸 것입니다.
모세는 이들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진짜 장자는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맏아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장자이신 예수님을 통해서 자기 백성들을 낳는 일을 하십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을 통해서 낳아진 자들도 하나님의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옛말에 왕 대 밭에서 왕 대가 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장자이기 때문에 예수님으로부터 낳아진 성도들도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인정을 하세요.
그래서 성도들을 하나님의 장자인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을 해 두신 것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은 장자들의 족보인 것입니다.
사극을 보면 왕권을 장자에게 물려주지요.
임금은 왕권을 또 장자에게 승계를 합니다.
장자에게 왕은 승계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 나라에 하나님의 장자로 가는 것입니다.
그럼 야곱의 장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요?
야곱의 아픔 속에 동참이 됨으로써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곱의 약전에 요셉을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야곱이 아버지 집에서 버려짐을 당하였듯이 요셉도 야곱처럼 버려짐의 인생을 산 것입니다.
야곱의 약전에 요셉을 기록해 놓았지요.
이는 요셉이 야곱의 장자라는 것입니다.
요셉은 자기 형제들도 자신과 같은 운명 속으로 끌여들어서 하나님의 장자를 만들어내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을 요셉의 형제들은 몰라요.
형제들은 아직까지 자기 앞에 있는 요셉이 자기 동생인지를 모릅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도둑 누명을 쓰게 하고서는 자신들은 억울하다는 이야기를 하게 만듭니다.
우리가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히는 것은 옛날에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사건에 보응을 받는 것이라고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게 만든 것입니다.
형제들은 우리가 옛날에 요셉을 죽인 것 때문에 지금 이런 누명을 쓰는 것이라고 토로합니다.
요셉의 의도가 그런 거예요.
형제들로 하여금 억울하게 버림당한 요셉의 사건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유다가 형제를 대신하여 죄를 짊어지겠다고 할 때까지 자기 신분을 감추고 있었습니다.
요셉은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죄를 대신 짊어지겠다고 하는 모습을 보고서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드디어 자기 정체를 밝히게 된 것입니다.
이걸 신약식으로 해석할 것 같으면 우리가 율법아래 있을 때에는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죽었다는 고백이 안 나옵니다.
그게 언제 나오게 되느냐?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오시면 일어납니다.
성령이 우리가 예수를 죽인 자들이라고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그럼 예수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합당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가운데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심어주세요.
예수그리스도의 마음을 받게 되면 형제를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이 모습이 나타났어요.
성령을 받고 나니까 유무상통하고 서로 섬기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순절에 천하 각국으로부터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회개합니다.
예수를 믿는 자들이 많이 일어납니다.
그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들은 다 나그네들입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올라온 그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누가 발 벗고 나서느냐?
예루살렘 사람들이 나서는 겁니다.
예루살렘이 있던 사람들이 자기가 소유했던 모든 것들을 형제들을 위해서 내어놓습니다.
천하 각국으로부터 올라온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밭을 팔아서 재산을 내놓는다는 것은 형제의 짐을 대신 짊어지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너와 나가 아니라 우리라는 공동체가 생겨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예수 안에서 형제라는 개념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모인 형제들을 위하여 재물을 내어 놓은 것입니다.
이를 언약공동체라고 합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양식을 주는 것은 자기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기족들이기 때문에 양식을 거져 주고 자기 식탁에 초대를 한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이 값을 주고 양식을 사 갔을 것 같으면 이것은 타자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형제들은 요셉을 타자로 여겼으니 돈을 주고 양식을 산 것이고,
요셉은 그들을 자기 가족으로 여겼기 때문에 돈을 받지 않고 공짜로 주었던 것입니다.
가족은 거래 대상이 아니에요.
그래서 형제들은 돈을 내고 양식을 샀어도 요셉은 그 돈을 돌려주고 공짜로 양식을 준 것입니다.
초대교회도 마찬가지예요.
성령이 임하니까 예루살렘에 우거하는 사람들이 자기 밭을 팔고 율법 아래서 움켜쥐고 쌓았던 재물들을 내어놓은 것입니다.
은혜를 입고 보니까 그들이 자기 형제로 보인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를 위해서 손을 펴서 내어놓게 된 것입니다.
오늘 말씀 중에 중요한 이야기가 4-8절까지 입니다.
창 45:4-8.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가로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5.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6. 이 땅에 이 년 동안 흉년이 들었으나 아직 오년은 기경도 못하고 추수도 못할지라 7.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8.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지금까지 지나온 이야기를 해 줍니다.
야곱의 가족들이 걸어온 삶은 모두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서 일어난 사건이라는 것으로 이야기해 줍니다.
하지만 형제들은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생각하고 혹시 요셉이 복수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마음으로 불안해 합니다.
그러자 요셉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이 벌리신 일이라는 것으로 설명을 합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그 때는 분명히 당신들이 나를 미워해서 버린 것이 맞다 라고 합니다.
너희들이 분명히 나를 팔았는데 내가 여기 와서 보니까 너희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내가 총리가 된 것은 내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게 해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감옥에서 바로의 꿈을 해몽해 주었는데 바로가 자신을 총리로 삼아준 것이라고 합니다.
바로에게 꿈을 준 것도 하나님이고,
그 꿈을 나에게 해몽케 한 것도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총리가 된 것은 내 능력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것이라고 합니다.
내가 총리가 된 것은 하나님이 하게 해주신 것이니까 내가 당신들에 의하여 애굽으로 팔려진 것도 당신들이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나를 팔았지만 너희들이 판 것이 아니고,
다 하나님의 큰 계획이 있어서 나를 판 것이라고 이야기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5절 보세요.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너희들이 팔았다고 자책하지 말라는 거예요.
하나님이 너희들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앞서서 애굽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장차 이 땅에 엄청난 기근이 올 것을 미리 아시고 나를 이 땅에 보낸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기근 속에서 지키려고 나를 먼저 파는 형식으로 보냈다는 것입니다.
여기 와서 보니까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시키기 위해서 이 일을 했다고 알려주는 것입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비로소 하나님의 일하심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구원코자 하는 가족들은 누구인가요?
언약의 후손들이에요
언약의 후손들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먼저 앞서 보내신 것입니다.
이걸 시편 기자는 말해주고 있어요.
시편 105편을 봅시다.
1. 여호와께 감사하며 그 이름을 불러 아뢰며 그 행사를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
2. 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지어다
3. 그 성호를 자랑하라 무릇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마음이 즐거울지로다
4. 여호와와 그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
5. 그 종 아브라함의 후손 곧 택하신 야곱의 자손 너희는
6. 그의 행하신 기사와 그 이적과 그 입의 판단을 기억할지어다
7. 그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시라 그의 판단이 온 땅에 있도다
8.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12.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14.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23.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2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사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25. 또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26. 또 그 종 모세와 그 택하신 아론을 보내시니
27. 저희가 그 백성 중에 여호와의 표징을 보이고 함 땅에서 기사를 행하였도다
28. 여호와께서 흑암을 보내사 어둡게 하시니 그 말씀을 어기지 아니하였도다
29. 저희 물을 변하여 피가 되게 하사 저희 물고기를 죽이셨도다
30. 그 땅에 개구리가 번성하여 왕의 궁실에도 있었도다
31. 여호와께서 말씀 하신즉 파리떼가 오며 저희 사경에 이가 생겼도다
32. 비 대신 우박을 내리시며 저희 땅에 화염을 내리셨도다
33. 저희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를 치시며 저희 사경의 나무를 찍으셨도다
34.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황충과 무수한 메뚜기가 이르러
35. 저희 땅에 모든 채소를 먹으며 그 밭에 열매를 먹었도다
36. 여호와께서 또 저희 땅의 모든 장자를 치시니 곧 저희 모든 기력의 시작이로다
37. 그들을 인도하여 은금을 가지고 나오게 하시니 그 지파 중에 약한 자가 하나도 없었도다
38. 그들의 떠날 때에 애굽이 기뻐하였으니 저희가 그들을 두려워함이로다
39. 여호와께서 구름을 펴사 덮개를 삼으시고 밤에 불로 밝히셨으며
40. 그들이 구한즉 메추라기로 오게 하시며 또 하늘 양식으로 그들을 만족케 하셨도다
41. 반석을 가르신즉 물이 흘러나서 마른 땅에 강 같이 흘렀으니
42. 이는 그 거룩한 말씀과 그 종 아브라함을 기억하셨음이로다
43. 그 백성으로 즐거이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44.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45.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시편 105편은 이스라엘의 이력서예요.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서 출애굽한 백성들 이야기를 하고 있어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 어떻게 내려갔는지,
그리고 어떻게 출애굽을 하는지 설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8-10절을 보세요.
8.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9.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듯이 이루어내시는 분인데
그 언약을 누구에게 주셨냐 하면 아브라함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을 이야기하면서 누구에게 끌고 가느냐 하면 요셉에게까지 끌고 갑니다.
17절을 보세요.
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요셉이 종으로 팔렸잖아요.
요셉은 왜 팔린 건가요.
아브라함의 언약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을 성취하기 위해서 형제들로 하여금 요셉을 팔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은 어떤 언약인가요.
창세기 15장을 봅시다.
창 15:13-17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17. 해가 져서 어둘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아브라함 언약은 자기 백성들이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실 때에는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 없었습니다.
이 언약 후에 이삭이 태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도 없는 상황에서 네 후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었다가 400년 만에 돌아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제부터 아브라함으로부터 태어나는 모든 후손들은 이 언약을 근거로 다스려지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 무엇이라고 했나요.
네 후손이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돌아온다고 하였습니다.
그럼 이방으로 내려가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야곱의 가족이 안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럼 강제로 내려가게 만들어야지요.
어떻게 내려보내는지를 이제부터 이야기 형식으로 풀어 봅니다.
야곱의 후손들이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할 것 같으면 가나안 땅에 거주하고 있어야 하나요.
아니면 이방으로 내려 가야 되나요.
당연히 이방으로 내려가야 됩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은 애굽으로 안 내려가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 땅에 기근을 불러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를 시편 105편에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근을 불렀다고 하는 것입니다.
기근을 불렀다는 이야기는 기근을 소환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을 소환했다는 말은 그동안 공급해 주시던 양식을 끊었다는 뜻입니다.
공중나는 새도 들의 풀도 하나님이 먹이고 입히신다고 하시지요.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생명에게 양식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하나님의 것을 먹으면서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인지를 몰라요.
이게 인간들이에요.
그러나 언약의 후손들은 이 사실을 알아야 해요.
생사화복이 다 하나님 손에 있음을 알아야 한단 말입니다.
그런데 모르고 있는 겁니다.
그럼 알려주는 일을 해야겠지요.
그래서 양식을 끊어버리는 사건을 발생시키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기근을 뭘 했다고 했나요.
불렀다고 하지요.
불렀다는 것은 소환했다는 거예요.
이젠 안 줄 거야!
그랬단 말입니다.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가지고 야곱의 후손들을 다스리고 있어요.
아브라함의 언약대로 할 것 같으면 야곱의 후손들은 이방의 객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야곱의 가족이 이방으로 안 내려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야곱이 먹는 밥을 소환해 버린 거예요.
양식을 끊어 버린 거예요.
그동안 야곱이 먹었던 양식은 누구의 것이다.
하나님의 것이지요.
호세아서에 볼 것 같으면 고멜이 돈이 있으니까 무슨 짓을 하는고 하면,
외간 남자들과 바람 피우러 다니더란 말이죠.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그러는 거예요.
네가 지금 바람피우러 다니는 그 돈이 누구 것인 줄 아느냐?
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고멜이 바람피우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돈을 소환해 버리는 거예요.
돈이 끊기니까 고멜이 “이제 본 남편에게 돌아가자” 그러는 거예요.
야곱도 보세요.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계속해서 양식을 공급해 주면 애굽에 내려가지 않아요.
아브라함의 언약이 이루어지려면 애굽으로 내려가야 되잖아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하신 것입니다.
그 첫 번째 순서가 요셉을 애굽으로 팔아버리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용서해주는 방식으로 하세요.
이걸 다른 말로는 은혜와 긍휼이라고 해요.
은혜와 긍휼이 되려면 야곱의 아들들이 자발적으로 내려가면 안 되어요.
자발적으로 내려가면 용서가 사라져 버리잖아요.
그래서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버리는 식으로 일을 진행 시킨 것입니다.
이걸 신약 식으로 하면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이는 식으로 만든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이나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판 것이나 영적 의미는 똑 같아요.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이 뭔가요.
꿈 때문이에요.
하나님이 요셉에서 주신 꿈이 뭔가요.
형제들의 주가 되고 만유의 주가 되는 것입니다.
주가 되려면 형제들이 요셉에게 굴복을 당해야 해요.
그것이 요셉이 용서해주는 방식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요셉을 애굽에 팔아버리는 것으로 진행이 된 것입니다.
물론 요셉의 형제들은 이 사실을 몰라요.
그런데 기근 때문에 양식을 사러 왔다가 요셉을 만나고 난 후에 알게 된 것입니다.
요셉과 형제들은 한 운명 공동체에요.
그래서 요셉이 자기 형제들을 자기가 당한 그 과정으로 초대한 것입니다.
그래야 요셉의 꿈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야곱의 모든 후손들을 요셉 속으로 귀속시키는 겁니다
요셉에게 귀속시키려면 요셉과 같은 운명을 겪어야 되겠지요?
그 과정을 겪게 되는 이야기가 억울하게 도둑 누명을 쓰게 되고 은잔을 훔친 사건 속으로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을 때에 유다가 나서서 그들의 잘못을 자기가 담당하겠다고 합니다.
요셉은 유다가 형제들을 위하여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정체를 밝히게 됩니다.
그러면서 형님들 슬퍼하지 마세요.
형님들이 나를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이곳에 보냈다고 합니다.
왜 나를 보냈느냐?
형제들을 살리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기근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시고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애굽으로 내려보내서 당신들의 생명을 보전시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언약에 의하면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돌아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가나안에 있던 양식을 불러들인 겁니다.
기근이 들자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가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가지고 있던 양식은 이들을 아브라함 언약으로 초대하기 위한 미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제들이 두 번째 양식을 구하러 왔을 때 자기 집으로 초대해서 식탁을 베푼 것입니다.
식탁을 베푼다는 것은 식구라는 뜻입니다.
식구란 한 형제 한 가족이라는 뜻입니다.
요셉의 식탁에 형제들을 초대한 것은 우리는 한 형제라는 싸인을 준 것이에요.
그런데 그 때는 형제들이 요셉을 몰랐어요.
요셉이 자기 정체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식탁을 베풀고 난 후에 요셉은 베냐민의 은잔 사건을 통하여서 형제애를 본 것입니다.
유다가 베냐민의 죄값을 대신 담당하겠다고 나선 것을 보면서 마음에 감동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자기 정체를 밝히고 지금까지의 스토리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형님들에게 버림을 당할 때에 억수로 원망했는데,
내가 여기 와서 보니까 하나님이 형님들을 살리기 위해서 이런 일을 벌리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앞으로 기근이 5년 동안 더 지속이 될 터인데,
가나안 땅에서 못 사니까 빨리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애굽으로 내려오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시 가족들이 안 올까봐서 요셉은 자신의 수레를 보내서 태워오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야곱은 간교한 자에요.
자식들의 말을 안 믿어요.
지금까지 자식들이 행한 행적들을 보면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뜬끔없이 죽었다고 생각한 요셉이 살았다고 합니다.
그리곤 애굽의 총리라고 하는 겁니다.
이걸 어떻게 믿겠어요.
요셉은 자기 아버지를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수레를 보내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것을 확인해주었던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이 타던 수레를 보고 가족들을 몽땅 이끌고 이방으로 내려온 것입니다.
아마 요셉의 수레를 안 보내 줬으면 안 왔을 거예요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이게 언약의 후손들이 걸어가야 할 길이고 코스에요.
구원은 잃어버렸다가 되찾는 것으로 이루어지게 되어 있어요.
지금도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들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다루어 가세요.
그래서 요셉과 그 형제들의 이야기가 우리의 구원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구원해 가시느냐?
언약으로 구원해 가세요
우리가 먼저가 아니고 언약이 먼저예요.
하나님은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펼쳐 가세요.
우리가 있기 전에 언약이 먼저 있었지요.
우리는 그 언약에 의해서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의 구원은 창세전에 이루어 진거죠.
영적으로 보면 창세전에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에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언약의 후손들을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해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걸 역사 속에서 역순으로 펼쳐가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모티브로 하고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언약을 맺을 때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에 하신 것입니다.
왜 그러느냐 하면?
창세전 언약은 우리가 만들어지기 전에 만들어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 때문에 우리가 생겨난 거예요.
우리가 죄 가운데서 태어나게 된 것도 우리의 원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원함으로 이루어진 거예요.
형제들이 요셉을 판 것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위한 것이고,
요셉이 애굽에 총리가 된 것도 아브라함의 언약 때문이고,
형제들이 애굽에 내려간 것도 아브라함의 언약을 위해서이고,
나중에 이들이 출애굽 하여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는 것도 아브라함 언약 때문입니다.
46장에 가면 야곱이 형제들과 다 애굽으로 내려갑니다.
그들이 400년 동안 종살이 하게 되는 거예요.
요셉이 살아 있을 동안 잠시 호화로운 생활을 했지만,
요셉이 죽고 나서 그때부터 그들은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이 종살이를 시키기 위해서 애굽으로 내려 보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만든 것은 가족들을 애굽으로 내려가게 하시려는 미끼인 것입니다.
만약에 애굽에서 종살이 한다고 하면 내려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프리미엄을 믿고 내려간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살아 있을 때에는 호사스럽게 살았습니다.
요셉이 죽고 난 후에 종살이를 하게 된 것입니다.
애굽의 종살이를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죄와 사망 가운데서 종노릇하는 것과 똑같은 거예요.
우리들은 역사 속에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 하면,
언약을 깨달아야 해요.
하나님의 언약을 위해서 존재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자기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을 위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것은 언약을 이루기 위한 과정에 속한 것이에요.
버려졌다가 되찾음 당하는 구원의 서정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살아갈 땅은 가나안이에요.
가나안은 천국을 상징하고 있어요.
이 세상은 애굽이고 천국은 약속의 땅이에요.
그럼 이 세상은 정착지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정착하지 못하도록 고난을 주는 거예요.
고난이 없으면 이 세상을 떠날 생각을 안 하니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400년 동안 살면서 그들이 편하게 있을 때에는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요셉을 알던 왕이 다스릴 때는 잘 살았어요.
그런데 요셉을 알지 못하는 왕이 등극을 하자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핍박이 일어나자 그동안 안 찾던 하나님을 찾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언약의 후손들을 끄집어내는 일들을 하신 것입니다.
언약의 서정을 보면,
가나안에서 애굽으로 내려가고,
애굽에서 종살이하다가,
출애굽 하여서 가나안으로 돌아오는 그림인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의 과정 과정을 겪어가는 것은 모두 아브라함의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어디서 언약을 맺나요.
가나안 땅에서 언약을 맺지요.
가나안에 있던 민족들이 애굽에 내려갔다가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으로 돌아 올 때에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의 흔적을 지니고 돌아와야 해요.
그것이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출애굽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역사에 보내서 무슨 일을 하게 하느냐?
어린양의 피 발라서 다시 데려오는 거예요
이게 창세전 언약이라니까요.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3-14.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8.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9.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10.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12.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14. 이는 우리의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이러한 계획을 세우셨어요.
자기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시고
그의 피로 죄사함을 주어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서,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게 하여서,
천국에서 그 은혜의 영광을 영원토록 찬미하게 하는 것이에요.
이 모든 것을 그 기쁘신 뜻대로 예정을 하신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뭐냐?
죄인이 예수그리스도의 피 흘리심으로 죄사함 받는 것입니다.
은혜로 용서받아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뭐 하느냐?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에요.
그러니 하나님의 아들들에게는 모두가 어린양의 희생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잘 보세요.
야곱이 가나안 땅에 양식이 있었을 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어요.
양식이 떨어지고 나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서 요셉이 준비한 양식을 먹고 살게 된 것입니다.
요셉이 주는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요셉의 은혜로 살고 있다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야곱의 가족들을 요셉의 은혜 속으로 집어넣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게 언약이 하는 일이예요.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왜 죄 아래 가두었느냐?
긍휼을 베풀려고 그랬어요.
로마서 11장을 봅시다.
롬 11:25-32.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30.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31.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2.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바울이 이방인들의 구원과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려 나간 것을 감람나무 접붙임으로 비유하였어요.
하나님께서 감람나무를 하나 심었어요.
그 감람나무는 긍휼의 감람나무에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후손들을 모두 긍휼의 나뭇가지에 접붙여서 구원을 했어요.
긍휼로 선택을 했단 말이죠.
그런데 이놈들이 긍휼을 알아야 하는데 긍휼을 모른단 말이에요.
긍휼과 전혀 다른 법을 토해 내는 겁니다.
불의를 행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오셔서 긍휼을 모르는 놈들은 잘라내 버린 겁니다.
잘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서 포로로 잡혔다가 어떻게 돌아왔나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돌아왔어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로 돌아온 자들이 지은 것이 성전이에요.
스룹바벨 성전은 은혜로 지어진 것이에요.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을 때 성전 안에서는 은혜와 긍휼이 사라져 버리고 법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법이 자리 잡고 있는 성전을 깨뜨려버렸어요.
성전이 깨어진 것이 뭐냐?
참 감람나무 가지가 잘려진 것과 같은 거예요.
참 감람나무는 은혜와 긍휼이 공급되는 나무인데 예수님의 초림 때 유대인들은 거기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긍휼의 가지가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잘라내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성전 파괴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리고 뭐하느냐?
구원과 전혀 상관없는 이방인들을 거기에 접붙여 놓았단 말이죠.
이방인이 구원을 받은 것은 긍휼 그 자체에요.
긍휼 덩어리에요.
그러면 이방인들의 신앙은 당연히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나와야 하는 겁니다.
감사와 찬송이 나와야 되는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재림 때가 되니까 초림 때 유대인과 같아진 것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와 긍휼로 접붙임 받은 이방인 교회가 법으로 세워지더란 말이죠.
구원이 자기 잘난 것이 되어버리더란 말이죠.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방인 교회에 잘난척하는 교회를 잘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예전에 잘려 나갔던 유대인들을 다시 접붙임을 하는 겁니다.
이러면 감람나무는 긍휼의 나무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유대인들을 예수님을 죽인 죄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 세계에 흩어버렸어요.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를 만들어 버렸어요.
법 때문에 잘려 나간 그놈들을 2000년 동안 디아스포라로 만들어 놓고,
결손이 된 그 자리에 이방인으로 채워 놓은 겁니다.
은혜와 긍휼로 이방인을 채워 놓았는데
시간이 지나자 이방인들이 교만하여 다시 법에 거하는 자들이 되어 버린 겁니다.
그래서 그 법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잘라내 버리고,
그 자리에 법으로 살다가 쫓겨났던 놈들을 다시 은혜와 긍휼로서 붙여버리는 거예요
이렇게 되면 그 나무는 은혜와 긍휼의 나무로서의 정체성을 유지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지금 이스라엘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일어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인 겁니다.
이건 범상하게 볼 사건이 아니에요.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는 뜻이에요.
과거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들이 저 가나안 땅인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직전이니까 이스라엘 속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지금 초대교회와 똑 같아요.
“회복”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봤는데,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유대인들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는다고 해요.
마치 초림 때 예수를 믿으면 출교를 당한 것과 같은 일들이 지금 이스라엘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유대인의 구원을 구약적 개념으로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하나님은 육적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게 아니에요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상이에요.
육적 이스라엘은 예표예요.
바울은 육적 이스라엘을 표면적 유대인이라 하고,
영적 이스라엘을 이면적 유대인이라고 하였어요.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 나라는 영적 이스라엘이 들어가요.
영적 이스라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난 자들이에요.
육적 이스라엘도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아요.
그래서 종말이 되니까 육적 이스라엘 속에서 예수 믿는 자들을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하나님이 유대인 속에서 구원하는 일을 벌리신 것입니다.
이것은 잘려 나간 가지가 다시 접붙임을 당하는 것이에요.
육적 이스라엘은 예수를 죽인 자들이예요.
예수가 이단이라고 죽인 놈들이 지금 예수를 믿고 있어요.
이건 놀라운 사건이에요.
그동안 그들은 예수를 안 믿었어요.
그런데 이 시대 육적 이스라엘 속에 예수를 믿는 영적 이스라엘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예요.
초림 때 모습이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초림 때 예수를 믿는 성도들도 성령에 의하여 믿었듯이,
지금도 동일하게 성령께서 믿어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들의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이 그들에게 예수를 믿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
은혜와 긍휼의 방식으로 구원을 한단 말이죠.
그 은혜와 긍휼의 방식으로 구원받은 백성이 천국 백성이에요.
천국에 누가 가느냐.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이 가는 거예요.
그래서 천국을 은혜의 나라라고 하는 겁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절대로 천국에 갈 수가 없어요.
천국이 용납하지 않아요.
하나님께서 천국의 모형으로 이 땅에 교회를 세웠어요.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천국의 원리로 다스려 가세요
그래서 교회는 은혜로 세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너도 나도 모두 하나님의 은혜로 용서받은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이기 때문에 법으로 다스려지면 안되어요.
교회에 가장 위험한 자가 누구냐.
법으로 사는 자예요.
법으로 사는 자는 어떤 자이냐.
자기 행위를 의지하고 나오는 자예요.
이들은 교회와 성도에게 거치는 자들이에요.
교회에서 가장 큰 걸림돌이 누구냐.
자기 행위가 특심한 것을 가지고 남을 자꾸만 판단하는 자예요.
나는 이렇게 했는데,
너는 왜 그렇게 하느냐 하며 판단하는 겁니다.
그런 사람은 은혜를 입지 못한 자에요.
자신의 언행이 스스로 불의한 자임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용서와 사랑을 입은 자들에게서 나오는 것이 뭐냐?
섬김인 거예요.
나눔이고 베품이에요.
이건 시켜서 나오는게 아니고 자발적인 거에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은혜의 행함들이 유출되는 것입니다.
이걸 야고보서에서는 믿음과 행함이 같이 일을 한다고 해요.
하나님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가르치는 거예요.
너희가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지 아느냐!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악한 죄인임을 알게 되고,
그런 죄인이 용서받고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신앙의 자람이란 날마다 내가 엄청난 은혜를 입고 있구나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 사실이 깨달아지면 그 사람 속에서 은혜와 감사가 자연히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걸 일컬어서 믿음이 일으킨 행함이라고 하는 겁니다
야고보서는 믿음과 행함은 함께 일을 한다고 하였어요.
그래서 이런 행함이 없는 것은 죽은 것이고 귀신의 믿음이라고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진짜 하나님의 은혜를 안다고 한다면 뭐를 해야 하느냐?
법 아래 있을 때보다 더 열심히 해야 되고, 더 섬겨야 되는 것입니다.
근데 요즈음 자칭 복음 안다고 하면서 아무 것도 안 하는 자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어요.
이들이 안다고 하는 복음은 짝퉁 복음이고 그들의 신앙은 영지주의 이원론 신앙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는 자를 짐승이라고 합니다.
짐승은 자기 힘(법)으로 사는 거예요.
신앙은 자기 힘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받은 은혜로 살아가는 것이에요.
은혜를 받은 사람들은 그 받은 은혜가 나로 가만 있게 하질 않고 뭔가 자꾸 움직이게 해요.
그래서 나눔과 베품과 섬김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셉이 그걸 가르치는 거예요
은혜와 긍휼과 용서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요셉을 팔려고 했을 때 반대한 사람도 있었어요.
르우벤 같은 사람은 반대했잖아요?
이것 가지고 니가 잘했니 내가 잘했니 형제들의 화목을 깨뜨리면 안된다고 가르치고 있는 거예요.
형제들아 내 일로 서로 싸우지 말라고 합니다.
너희들 잘못도 아니고 누구 잘못도 아니다.
다 하나님이 하신 일이니까 사이 좋게 지내라고 하는 겁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니가 잘 났니 내가 잘 났니 그런 거 하는 곳이 아니에요.
우린 모두가 은혜와 긍휼로 용서받은 죄인들이에요.
그러니 인간의 조건으로 인하여 잘낫니 못났니 따지지 말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보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에 농심 라면을 선전할 때 그랬어요
구봉서하고 배삼룡하고 라면을 끓여 놓고 서로 양보하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하잖아요.
형님 먼저 잡수세요.
아니 아우 먼저 드시게.
서로 주고 받고 섬기잖아요.
이런 교회가 되어야 해요.
집사님 때문에 교회가 참 좋습니다.
아닙니다.
권사님 때문에 그렇습니다.
아닙니다.
집사님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런 모습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상상을 해보세요.
형제들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라는 것을 알았어요.
아버지를 데리러 가는 그 발걸음이 얼마나 기쁘고 가볍겠어요.
얼른 올라가서 아버지! 아버지! 요셉이 죽은 것이 아니고 살아 있어요.
우리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삼아주셨어요.
이것 보세요.
수레하고 나귀하고 아름다운 물품과 곡식들을 보세요.
이 수레는 요셉이 타고 다니는 거예요.
아버지 모셔 오라고 보낸 겁니다.
요셉이 지금 만유의 주가 됐어요.
자식들이 이런 이야기 할 때에 야곱은 퍼득 깨닫는 것이 있었을 것이에요.
야곱은 요셉이 꾼 꿈 이야기를 마음속에 담아 두고 있었어요.
요셉이 아버지에게 형제들의 주고 되고 만유의 주가 되는 꿈을 이야기할 때,
절대로 형제들에게 꿈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하였어요.
입단속을 시켰어요.
야곱은 자식들이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꿈을 이루어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야곱이 내려가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이 얼마나 기가 막힙니까.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일을 하세요.
유대인들이 죽였던 그 아들을 살려서 만유의 주로 삼으셨어요.
이 사실을 성령을 보내서 너희가 죽인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셔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알려 주신 것입니다.
베드로가 성령의 감동을 입고 이 사실을 유대인들에게 알렸잖아요.
그러자 여기 저기서 아이구 우리가 예수를 죽였구나!
주여 용서해 주세요.
불쌍히 여겨 주세요.
우리가 몰라 보고 그랬습니다 라고 회개가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산다는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기를 바라세요.
지금도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와 용서와 긍휼을 알아가기를 원하세요.
감람나무 비유를 하면서 하나님이 뭐라고 했나요.
이스라엘 속에서 법에 거하는 자들을 잘라내고 그 자리에 이방인을 접붙였어요.
그런데 이방인이 교만해서 건방을 떠는 겁니다.
그러자 이제는 이방인들을 잘라내고 그 잘려 나간 자리에 다시 이스라엘을 접붙인다고 하잖아요.
이러면 이방인이나 유대인이나 몽땅 은혜와 긍휼로 접붙임바가 되는 것입니다.
이를 온 이스라엘이라고 합니다.
온 이스라엘이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생겨난 하나님의 백성들을 총칭하는 말이에요.
여기에 육적 이스라엘과 이방인도 포함되어 있어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말해요.
예수를 누가 믿느냐?
창세전에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이들이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나무가 감람나무잖아요?
그 감람나무가 무슨 나무다?
긍휼의 나무에요
그럼 긍휼의 나무에 접붙여진 가지는 전부 긍휼의 사람이 되겠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긍휼의 나무에 접붙이기 위해서 법 아래 있는 자들을 잘라냈다가 다시 찾아오는 방식으로 일을 하시는 겁니다.
이게 탕자 비유에요.
아버지의 집은 무슨 집이냐?
은혜와 긍휼이 넘치는 집이에요.
아버지의 집은 은혜를 아는 사람이 사는 집이에요
그래서 탕자가 아버지 집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 비로소 아들로 인정을 해주는 거예요.
탕자는 아버지 집을 떠나서야 우리 아버지 집이 은혜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은혜를 아는 아들에게 집을 맡기는 인장 반지를 주었어요.
이 집안을 은혜와 긍휼로 다스리라고 말이에요.
맏 아들은 그걸 모르는 거예요
너무 완벽하니까.
아버지의 명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으니까 돌아온 동생을 용납할 수가 없는 거예요.
너는 내 동생이 아니라는 겁니다.
동생을 받아준 아버지가 용서가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성질을 부리는 겁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던가요.
예야, 이 아이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온 아이가 아니냐.
얼마나 기쁘냐.
그러나 맏아들은 하나도 기쁘지 않은 것입니다.
이게 법이에요.
법은 죽이는 것이고 은혜는 살리는 것이에요.
아버지의 집은 천국을 상징해요.
은혜가 왕노릇하는 곳이에요.
그래서 아버지는 은혜를 아는 탕자에게 집을 맡긴 것입니다.
탕자 비유에서 진짜 탕자는 맏아들인 것입니다.
그 속에 법이 있기 때문에 아버지가 집안을 맏아들에게 맡길 수가 없는 겁니다.
은혜를 모르니 어찌 맡기겠어요.
천국은 맏아들처럼 회개할 것이 없는 아흔아홉 마리 양 같은 자들은 살 수가 없어요.
탕자처럼 잃어버렸다가 되찾아짐을 당한 한 마리 양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누가 신앙이 좋으냐?
자기가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신앙이 좋은 거예요
교회는 일하는 곳이 아니에요.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로 섬기는 곳이에요.
은혜 받아서 큰 소리 치라는 것이 아니고,
나 같은 죄인이 어떻게 이런 구원을 받게 되었는지 그 은혜가 너무도 커서 자기를 비워서 종처럼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 신앙은 뭘 많이 하는 것을 신앙이 좋다고 하는데,
아니에요.
신앙은 일로 평가하는 것이 아니에요.
물론 일 많이 하는 것이 은혜와 긍휼을 통해서 나올 것 같으면 좋겠지요.
일을 많이 하는 것은 좋은 것이에요.
그런데 그것이 법으로서 나올 때에는 반드시 자기 의를 행사하게 되어 있어요.
그러면 교회가 누가 누가 잘했나 교인들 간에 경쟁이 되어 버리고 시끄러워져요.
그건 교회가 아니고 절간이에요.
석가 탄신일이 되면 절간에서 등불을 걸어 놓지요.
등불마다 값이 다 달라요.
시내 거리에 붙여놓은 등불하고 절간에 붙여 놓은 등불하고는 값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요.
돈 있으면 명당자리에 이름이 걸리고 돈 없으면 변두리에 걸려요.
절간은 인간들이 만들어 놓은 종교에요.
법으로 다스려지는 세상이에요.
그러니 인간들의 정성에 따라서 차별을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나 교회는 그렇게 되면 안 되어요.
예루살렘 교회에 바나바가 있었잖아요?
바나바가 어떤 사람인가요.
자기 밭을 팔아서 교회에 헌금한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나바를 예루살렘에 두지 않고 어디로 보내느냐?
안디옥 교회로 보내 버렸어요.
왜 그러겠어요?
만약에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 그대로 있었을 것 같으면 기득권을 행사해요.
모든 인간은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하나님은 그걸 아시고 바나바가 예루살렘 교회에서 행한 헌신을 은혜로 남기기 위해서 바나바를 전혀 낯선 곳으로 보내는 겁니다.
그게 하나님께서 은혜 받은 바나바를 지키려고 하는 방식이에요.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은혜로 섬겼어요.
바나바는 그 은혜를 알았기 때문에 기득권층으로 살지 않았어요.
바나바가 바울을 초청하잖아요.
사울이라는 목회자를 초청하였어요.
이건 마치 담임 목사가 복음 잘 전하는 분을 모셔 와서 설교를 시키는 것과 같아요.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이렇게 다루어 가세요.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주세요.
그럼 은혜받은 자들은 낮은 자리에서 섬기는 겁니다.
은혜 받으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은혜의 성격이 그래요.
섬길 수밖에 없다니까요.
여러분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섬길 줄 모른다는 것은 은혜를 못 받았다는 거예요.
나누고 베풀고 이런 게 안 된다는 것은 예수 못 만난 거예요.
예수님은 생명이에요.
생명은 삶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어요.
구원은 예수님의 생명을 공급받는 것이에요.
그러므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는 반드시 예수님의 생명인 은혜로운 행위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수십 년을 다녔다고 하면서 은혜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교회 마당만 밝고 다니는 사람이에요.
구경꾼이에요.
유다서는 이런 사람을 비 없는 구름이고, 물 없는 샘이고, 열매 없는 가을나무라고 했어요.
무늬만 교인이지 실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은 손 마른 사람이고, 중풍병자이고, 앉은뱅이에요.
예수 못 만났어요.
예수를 못 만났기 때문에 손이 오그라져 있고, 앉은뱅이로 있고, 중풍병자로 있는 겁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그럴 수가 없어요.
예수 만난 사람은 손이 펴지고 일어나 걷고 뛰며 찬송하게 되어 있어요.
하나님께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가 나로 하여금 가만히 있지를 못하게 해요.
뭔가를 하게 만들어요.
기쁘면 저절로 흥얼거리듯이 은혜받으면 분주해져요.
성도들을 섬기고 나누는 모습으로 나타나요.
이건 억지가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에요.
생명의 활동은 자연스러운 유출이지 억지로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요셉의 사건을 가지고 지금 자기 백성들을 어떻게 다스리고 있는지는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요셉의 이야기가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교회 이야기가 되어버리는 것이에요.
하나님이 주시는 그 은혜와 긍휼의 양식을 공급받아 먹었을 것 같으면 여러분들의 모든 삶에 은혜와 긍휼에 대한 감사가 나타나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감사와 찬송이 없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고 하는 겁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고 귀신의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나에게 이러한 것이 나타나는지 확인해 보세요.
스스로 속지 마세요.
신앙의 끝에는 나 예수 알아요가 아니고 감사와 찬송이 나와야 해요.
그 은혜에 대한 감사와 찬송이 나와야 해요.
그 자리로 나아갈 때에 여러분들은 천국 생활을 하게 되는 겁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를 다 많이 알아가기 위함이에요.
왜 성경은 죄인의 구원을 은혜와 긍휼로 용서하는 것으로 기록해 놓았을까요?
그건 단 하나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고자 하심이에요.
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알려주고자 함이에요.
하나님께서 이렇게 자기 백성들을 간섭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간섭하심을 알고 감사의 자리로 나아가라는 거예요.
부디 여러분들의 신앙의 끝에 감사와 찬양이 나타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간섭하는 것이 결국 용서하는 방식으로 간섭하신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 용서하신다는 것이 우리삶 속에서 감사와 찬송으로 나타나게 도와주시옵소서.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잊고 살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하여 주옵소서. 이 사실이 그냥 성경을 통한 지식이 아니라 실제로 내 가슴속에서 이런 은혜를 받고 살고 있구나, 이런 용서를 받고 살고 있구나, 이게 깨달아져서 말할 수 없는 감사의 자리로 찬송의 자리로 우리 스스로가 나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정낙원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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