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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15강.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라 (레 10:12-20)

by coroa 2021. 8. 15.

 

 

15강. 백성의 죄를 대신 담당하라 (레 10:12-20)

-.정낙원 목사

 

 

 

하나님께서 호렙산에서 양을 차던 모세를 찾아가서 애굽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산으로 데리고 와서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합니다.

이에 모세는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켜서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 산 위로 부르시고 율법과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 제도를 알려 주십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 속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하셨습니다.

출애굽 하신 후에는 이스라엘 중에서 레위 지파를 하나님의 집을 맡은 지파로 선택합니다.

성막을 짓고 난 후에는 레위 지파 중에서 아론의 가문을 선택하여서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맡은 제사장으로 삼으십니다.

 

제사장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서 성막에서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을 백성의 대표로 하여서 상대를 하십니다.

제사장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백성들의 운명이 결정이 됩니다.

제사장은 온 백성들의 운명을 어깨에 짊어지게 된 것입니다.

 

모세는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온 회중들을 성막으로 부르고 7일 동안 제사장 위임식을 거행합니다.

모세는 7일 동안 시내 산에서 받아온 명령대로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를 제사장 가문으로 선택을 입은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8일째부터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지내게 되었습니다.

아론이 대 제사장으로서 모세가 가르쳐 준대로 온 백성들을 위한 속죄 제사 제사를 드립니다.

아론이 제사를 지내자 하늘에서 불이 제단에 내려서 아론의 드린 제물을 태웁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열남하셨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온 백성들이 일제히 소리치며 엎드려서 하나님께 경배를 합니다.

모세와 아론과 온 백성들이 기뻐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론의 맏아들인 나답과 둘째 아들 아비후가 술에 취하여서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다른 불로 분향을 하다가 여호와께서 내린 불에 타 죽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일순간에 기쁨이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습니다.

 

나답과 아비후 사건으로 아론은 큰 충격에 빠지고 맙니다.

이에 모세는 이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번지지 않도록 재빨리 수습을 합니다.

모세는 얼른 아론의 사촌 동생인 미사엘과 엘사반을 불러서 조카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성막에서 끌어내서 진 밖으로 내다 버리라고 합니다.

 

그리고 모세는 아론의 셋째와 넷째 아들인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너희들은 형들의 죽음을 조금도 슬퍼하고나 애통해 하는 기색을 내지 말라고 합니다.

혹여라도 슬픔의 표시로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으면서 애통해 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은 자의 죽음을 슬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그와 연합한 자가 되어서 나답과 아비후의 저주가 너희들에게도 임하게 되고 그것이 더 나아가서 온 백성들에게 임하게 될 것이므로 너희는 제사장의 직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 사건이 일어나게 된 배경을 설명하시기를 제사장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여호와가 모세로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야 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영광을 드러내는 제사장이라고 하는 자들이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치 못하고 부정하고 정한 것을 구별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백성들을 가르칠 수가 있겠느냐고 책망을 하십니다.

 

제사장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명을 어기면 저주를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 성과 속을 구분하지 못하고 제사를 드리게 되면 이처럼 화가 임한다는 것을 나답과 아비후를 통해서 백성들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제사는 인간의 방식으로 드리지 말라는 경고인 것입니다.

 

제사를 드리기 이전이 이 제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제사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이를 알지 못하면 애굽식으로 제사를 드리게 되는데 이는 우상숭배와 같은 것이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알려준 방식으로만 제사를 지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이 책무를 다하여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에게 화가 임하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타락하면 백성들의 타락은 자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제사장 위임식을 온 회중이 보는 앞에서 칠일 동안 성대하게 치르게 하셨지만 반대로 제사장이 타락하면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당하게 된다는 것도 알려 주신 것입니다.

 

영광이 크면 책무도 큰 법입니다.

그러나 아론과 그 아들들은 제사장의 엄중함을 아직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명을 무시하고 술에 취하여서 다른 불로 분향을 하게 된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애굽식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답과 아비후를 샘플로 죽인 것입니다.

이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경계를 삼게 하신 것입니다.

또한 온 백성들 앞에서 제사장의 책무가 얼마나 막중한 것이고 제사장의 위치가 얼마나 엄중한 자리인지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나답과 아비후의 시신을 수습하고 난 후 모세가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백성들을 위하여 드린 속죄제를 지내고 난 후 남은 염소 고기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

제물의 고기를 거룩한 곳에서 먹게 함으로서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케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엘르아살과 이다말이 그 고기를 이미 불에 태워버린 것입니다.

 

그러자 모세가 대노합니다.

 

16-18절. “모세가 속죄제 드린 염소를 찾은즉 이미 불살랐는지라 그가 아론의 남은 아들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노하여 가로되 17. 이 속죄제 희생은 지극히 거룩하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거룩한 곳에서 먹지 아니 하였느뇨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18. 그 피를 성소에 들여오지 아니 하였으니 그 제육은 너희가 나의 명한 대로 거룩한 곳에서 먹었어야 할 것이니라”

 

모세는 엘르아살과 이다말에게 왜 너희가 먹어야 할 고기를 불에 태웠느냐고 합니다.

모세가 제사장에게 화를 낸 것은 단순하게 고기를 먹지 못하여서가 아닙니다.

이들이 제물의 고기를 먹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번제는 온 백성들의 죄를 위한 제사이고,

속죄제는 개인이 잘못한 죄를 위하여 드리는 제사입니다.

번제는 몽땅 불에 태워서 제사장이 먹을 고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속죄 제사의 고기는 일부는 태우고 일부는 제사장이 먹도록 하였습니다.

 

속죄제의 고기를 제사장이 먹도록 하신 것은 단순하게 분깃으로 주는 의미가 아닙니다.

제사를 지낸 고기의 일부를 제사장이 먹는 것은 제사장과 제물을 연합케 하기 위함입니다.

이렇게 되면 제사장이 드린 제사는 제사를 지낸 사람의 죄를 대신 담당하게 되는 제사가 되는 것입니다.

 

17절. “이는 너희로 회중의 죄를 담당하여 그들을 위하여 여호와 앞에 속하게 하려고 너희에게 주신 것이니라”

 

모세는 제사장들에게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제사의 고기를 먹게 하신 것은 제사장으로 하여금 회중의 죄를 담당케 하여서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서 죄를 속함 받게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제사장은 단순하게 제사를 지내는 자가 아니라 백성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과 제물과 제사장을 하나로 묶어 놓은 것입니다.

죄인은 제물의 죽음을 통해서 자신의 죽음을 보아야 하고,

제사장은 죄인들이 드린 제사의 고기를 먹음으로서 연합이 되어서 죄인의 죄를 자신이 대신 담당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몸에 새기는 의미로 제사로 드려지고 난 고기를 반드시 거룩한 곳에서 먹도록 하신 것입니다.

 

죄인은 제물을 드림으로 제물과 연합이 이루어지고,

제사장은 고기를 먹음으로 제물과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제사의 고기는 죄인을 대신 하는 것이므로 제사장이 제사의 고기를 먹는 것은 제사장이 죄인의 죄를 대신 담당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이것은 내 살이고 내 피라고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먹고 마시게 하신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물의 고기가 되어서 제자들에게 먹혀주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서 예수님과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성만찬으로 알려 주신 것입니다.

 

성만찬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사건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기념이란? 그 의미를 되새기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통해서 예수님과 연합이 된 자라는 것을 고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제자들을 위한 죽음입니다.

이를 그들의 몸에 새기기 위하여 예수님의 살과 피를 제자들에게 먹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은 제자들의 죄를 대신 하여 죽는 제물이 되고,

제자들은 제물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서 예수님과 한 몸으로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대신 죽음으로 용서 받은 자가 되면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서 예수님과 한 몸이 된 제사장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은 자는 제사장으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요 20:19-23절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20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 제자들이 주를 보고 기뻐하더라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가서 제자의 임무가 무엇인지를 알려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이 세상에 보내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담당하는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였듯이 예수님도 제자들을 세상에 보내서 제사장 직무를 담당케 하신다고 합니다.

제자들에게 제사장으로서 살아가라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숨을 내 쉬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제사장이 되어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죄를 담당하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그것이 자신들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 것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새 언약 속으로 인도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됩니다.

 

이것을 너희들이 뉘 죄이든지 사하면 사해 질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게 된다 라고 말씀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들이 증거하는 예수님의 피 맺은 새 언약 안의 복음을 믿으면 죄사함을 받게 되지만 복음을 믿지 않으면 죄가 그대로 있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제사장은 단순하게 제사를 돕는 자가 아닙니다.

죄인과 제물과 하나로 연합하여서 제사에 동참하는 자입니다.

제사장은 죄인과도 연합하고 제물과도 연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를 중보자라고 합니다.

 

이 모습이 바로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예수님은 제물이면서도 죄인과 연합하신 분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 성만찬을 주님 오실 때까지 기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기념이란? 일어난 사건을 현재화하는 것입니다.

성만찬을 하면서 2000년 전의 십자가 사건을 오늘날로 현재화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성만찬을 하면 예수님은 우리 안에서 살아서 함께 하심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만찬의 의미를 모르는 자는 성만찬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신앙이란? 이 사실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사의 고기를 먹는 것이 됩니다.

곧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이 되는 것입니다.

 

제사란? 죄인이 제물의 죽음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제사장도 고기를 먹음으로서 제사에 동참함이 되고 죄인과 제물의 연합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사장은 제사를 지내고 난 후 고기를 성막 안에서 반드시 먹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장이 고기를 거룩한 곳에서 먹음으로서 제사가 완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엘르아살과 이다말은 고기를 먹지 않고 불에 태움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과의 연합을 이루지 못하고 타자로 서 있게 된 것입니다.

이러면 제사가 무효가 되고 맙니다.

죄가 그대로 있게 됩니다.

이는 백성들의 죄를 제사장이 담당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이 제사의 고기를 먹는 것도 제사의 행위인 것입니다.

죄인의 죄는 제물에게 전이가 되었지만 그 제물을 제사장이 먹음으로서 제사장이 제물과 하나가 되어서 죄인의 죄가 제사장에게 전가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것은 장차 참 제사장으로 오시는 예수님께서 하실 일을 예표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 53:5-6절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고 합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을 시키셨습니다.

 

그란? 예수님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예수님에게 대신 담당케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맞아야 할 매를 예수님이 대신 맞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제사장이 되어서 우리의 죄를 다 담당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성막에서 드려지는 제사의 고지를 제사장이 먹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제사장은 자기를 위한 자가 아니고 백성을 위한 자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은 백성들이 드린 제사의 고기를 거룩한 곳에서 반드시 먹어야 합니다.

제사의 고기를 먹음으로 백성들의 죄를 자기 몸에 짊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위한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살고 피를 먹음으로서 속죄 받은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를 예수와 별개로 독자적으로 살게 합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 죄사함이 주어졌다는 것을 잊게 합니다.

우리 의로 살도록 미혹합니다.

 

자기 의가 많을수록 예수를 믿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 의를 깨트리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가 없음을 알게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그리스도에게만 있다는 것을 알려 주십니다.

이 사실을 기억케 하시려고 성만찬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맺은 새 언약을 믿는 자를 의롭다 여겨 주십니다.

 

의란? 예수님과 한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란? 독자적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먹는 것입니다.

타락이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을 먹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의이고,

예수 안 믿는 것이 불의입니다.

 

예수 믿는 것이 거룩이고,

예수 안 믿는 것이 타락입니다.

 

이스라엘은 비록 언약의 후손이지만 그들 속에는 애굽에 속성들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애굽의 속성은 자기 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광야에서 애굽의 방식을 빼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성막의 제사입니다.

율법을 통해서 백성들의 죄를 고발하고,

죄는 자기 방식으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흠 없는 제물이 대신 담당하는 것으로 알려주십니다.

이 사실을 몸에 새기게 하려고 제사장들에게 제물을 먹게 하신 것입니다.

 

제사는 멋지게 폼 나게 드리는 것이 아고 하나님이 정한 방식으로만 드려야 합니다.

인간의 생각은 섞지 말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야 합니다.

마귀는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을 섬기라고 합니다.

이를 인본주의라고 합니다.

 

제사장은 자기 생각이 있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정한 법대로 하아여 합니다.

이를 순종이라고 합니다.

 

죄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불순종한 제사장들을 엄히 책망함으로서 백성들을 경계케 하신 것입니다.

무서운 하나님으로 나타난 것은 하나님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타락은 교회 안에 인간의 의가 자리 잡으면서 시작이 됩니다.

이 시대 교회의 타락은 죄 문제로 접근하지 않고 인권으로 접근하기 때문입니다.

죄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은 사랑은 가짜이고 사기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인권을 외치면 예수그리스도가 죽고,

죄를 고발하면 예수그리스도가 살아나게 됩니다.

성도에게는 인간의 의가 나오면 안 되고 예수그리스도의 의가 나와야 합니다.

용서 받고 살아가는 은혜와 긍휼이 나와야 합니다.

 

교회를 아름답게 하려고 하지 마세요.

성막은 아름다운 곳이 아닙니다.

하루 종일 제물이 죽임당하고 피 냄새가 진동하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아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평가를 의식 할 필요가 없습니다.

역설적으로 교회의 거룩은 세상의 가치를 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십시오.

 

코람데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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