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성경강해/요한복음 강해

3강. 보내심을 받은 자들 <요 1:6-8>

by coroa 2020. 7. 12.

-.3강. 보내심을 받은 자들 <요 1:6-8>.-

 

요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정낙원 목사

 

흙으로 나서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들은 보이는 세상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갑니다.

땅만 바라보고 살아가는 자들에게 하늘이 있다고 말하면 믿지를 못합니다.

왜냐하면! 땅에서는 하늘이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오신 예수님께서 "내가 하늘에 일을 말하면 알아들을 수 없다“ 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늘에 속한 천국이니! 영생이니! 하는 것들은 인간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세계를 영(靈)이라고 하고, 인간의 세계를 육(肉)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영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예수님이 하신 모든 일을 영적인 일이라고 합니다.

 

이를 성도에게 적용하면 비록 삼겹살 덩어리를 끌어안고 살아가는 육신이라 할지라도 예수님에게 속하였으면 영에 속한 사람입니다.

반대로 예수님과 상관이 없는 사람은 아무리 학문에 도통하여 고상하고 유식하여도 육에 속한 사람이 됩니다.

 

사도바울은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한다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2:14절에서 “육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일을 받지 못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하나님의 일을 알려면 하나님을 아는 지혜를 받아야 합니다.

그 지혜를 성령이라고 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십니다.

 

고전 2:10-12=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11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12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을 주신 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주신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니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아는 자가 성령 받은 성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영적인 일은 인간들에겐 미련하게 보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일이 인간의 눈에는 미련하게 보인다는 것은 곧 하나님께선 인간의 이성을 비껴가는 방식으로 이 땅에서 일을 해 나가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일을 아버지가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일이 인간의 이성으로는 어리석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기를 살려주려고 오신 메시야를 십자가에 죽이는 우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8절에서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음이라” 고 하였습니다.

 

관원의 지혜란? 인간이 자랑할 수 있는 최고의 지혜를 말합니다.

그런데 그 최고를 자랑하는 인간의 지혜가 그만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죽였다고 합니다.

결국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의 일에는 방해꺼리라는 말입니다.

즉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쓰레기 같다는 뜻입니다. 쓰레기가 아니라 원수입니다.

 

세상 지혜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인간이 십자가를 이해하려면 하나님께서 알려주지 않으면 알 수가 없는 비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들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 할 증거자를 앞서 보낸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그 증거자가 세례요한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기 전에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어서 예수그리스도가 누구이며 무슨 일을 하는 분인지를 알게 해 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5절에서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 고 하여 세상은 예수그리스도를 몰라본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빛이요 생명을 주실 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고로 성경은 세상을 어둠이고 사람들을 소경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을 먼저 보내서 예수님을 세상에 소개하라고 합니다.

 

요 1:6-8= “하나님께로서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났으니 이름은 요한이라 7 저가 증거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거하고 모든 사람으로 자기를 인하여 믿게 하려 함이라 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러 온 자라”

 

세례요한 자신은 이 빛에 대하여 증거하라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고 분명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빛이 아니고 빛이 따로 있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세례 요한과 같이 빛을 증거하는 자가 바로 목사이고 성도입니다.

 

세례요한의 이런 모습을 이 시대 목사들과 비교하면 참과 거짓이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이 시대 교인들은 교회를 증거하기에 혈안이고 목사들은 예수님을 증거하지 않고 자기 능력 있음을 증거하기에 바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목자와 양을 비유하면서 이런 자들을 목사가 아니고 삯꾼이고 강도요 절도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에 모든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례요한을 보내어 예수그리스도를 증거케 하셨다는 것은 인간의 지식으로 예수그리스도가 하는 일을 이해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유대인(세상)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 1:29절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하나님의 어린양이란? 하나님이 친히 준비한 제물이란 뜻입니다.

이는 마치 구약시대 이삭 대신에 준비하신 여호와 이레의 제물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제물을 준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제물을 받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친히 준비한 제물만 받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혼자서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하시겠답니다.

인간은 그져 떡이나 먹고 구경만 하랍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냥 양이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양”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에게 세상 죄를 짊어지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에게 인간들의 죄를 대신 담당하라고 하셨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대신 맨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신다는 말은 인간은 담당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죄를 사함 받기 위하여서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인간의 것을 받지 않고 예수님의 것만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런 뜻을 모른 채 죄사함을 위하여 열심히 어린양을 잡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이 나타나 유대인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하나님이 보낸 어린양이라고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너희가 드리는 제물은 헛것이고 예수그리스도가 너희 죄를 위하여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들 입장에선 세례요한의 이런 말은 아주 기분 나쁜 말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의 신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란 말은 구약의 대 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보내지는 “아사셀 염소”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 속죄일이 되면 어린 염소는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광야로 나가 버려짐을 당합니다.

즉 이스라엘의 모든 저주를 짊어지고 죽으러 가는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바로 이스라엘의 모든 죄를 짊어지고 가는 대속제물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대신 속량하기 위하여 죽임을 당하도록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누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율법적인 제사를 고집하는 유대인들에게는 세례요한의 이러한 소리는 이단적 소리와 같습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목이 잘리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의 운명은 곧 성도의 운명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성도 역시 예수님의 피로서만 구원이 된다고 증거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육에 속한 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소리를 해야 하는 아픔을 안고 있습니다.

그러니 증거자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아픔이 동반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십자가의 도가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미련하다는 말은 어리석다는 말입니다.

미친 소리란 뜻입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유대인의 말이 훨씬 논리적이고 이해가 되는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아니 자기가 지은 죄는 자기가 갚아야지 어떻게 남이 대신 갚아 주느냐 라고 비웃습니다.

 

인간들 세상에선 자기가 잘못한 것은 자기가 책임지는 것을 용기 있는 자라고 합니다.

자기 잘못을 남에게 전가하는 것은 용기 없는 졸장부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척한 것은 자기들은 얼마든지 말씀대로 살 수가 있고 깨끗해 질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세리와 창기 같이 더러운 사람들은 예수님이 대신 해 준다는 것을 들을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유대인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유대인들 입장에서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얼마나 수치스럽고 황당하고 우스웠겠습니까?  

아니 우리가 뭐가 부족해서 예수에게 죄 값을 갚아달라고 하느냐?

예수는 우리에겐 필요가 없으니 저기 세리와 창기들이나 아니면 이방인 동네가 가보라고 조롱하였습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유대인 중에 누가 이런 어리석은 말을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세례요한의 말을 듣는 사람이 바보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바보들이나 믿는 것입니다.  

바보란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입니다.

 

맞습니다.

성도는 자기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그렇다고 하면 예! 하고 믿을 뿐입니다.

토를 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을 어렵다고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자기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을 가지고 복음을 판단하기 때문에 믿을 수가 없고 힘이 드는 것입니다.

나 같으면! 내 생각엔 이렇게 할 텐데!

이건 아닌데! 저건 아닌데! 라는 식으로 판단하여 불평하게 됩니다.

 

세례요한은 하나님이 보낸 우편배달부입니다.

우편배달부는 전하라는 것만 전하면 됩니다.

다른 말을 전하면 안됩니다.

이 시대 교회의 타락은 배달부가 자기 편지를 전하고 있어서입니다.

그러니 교인들이 하나님의 편지는 읽지 못하고 사람의 편지만 읽게 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편지는 불이고 몽둥이라고 합니다.

바울은 칼이라고 했습니다.

불이니 몽둥이니 칼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가 인간들이 듣기 좋은 말이 아닙니다.

 

왜? 하나님께서 편지에 인간들을 공격하는 말들을 썼을까요?

이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인간들 세상은 원수들이기 때문입니다.

왜? 원수입니까?

부모도 몰라보는 종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사도요한이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을 받은 자들이 자기를 지으신 분을 몰라보더라는 것입니다.

배은망덕한 놈들이 바로 인간이랍니다.

짐승만도 못하지요.

 

그러니 이사야는 이스라엘을 일컬어 짐승보다 못한 패역한 종자들이라고 욕을 끌어 부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감정을 이입시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노아 시대는 하나님이 인간 지으심을 한탄 하셨다고 합니다.

이 정도 되면 하나님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우편배달부는 자기 말을 편지에 적어 넣으면 안 됩니다.

좋은 소식이든 나쁜 소식이든 상대방의 생각은 고려하지 말고 편지를 보낸 분의 뜻을 있는 그대로는 전달하여야 합니다.

 

옛날에 군대 간 자식의 전사 소식을 시골 할머니들에게 전하는 전보 배달부들이 이런 수모를 많이 겪었습니다.

할머니들이 글을 모르니 읽어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배달부가 내용 그대로 읽어주면 그 말을 들은 할머니는 배달부 멱살을 잡고 울고불고 난리를 칩니다.

 

그러나 배달부는 화내지 않습니다.

군대 간 자식을 자기가 죽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한 할머니의 마음을 이해하기 때문에 제 정신이 돌아 올 때까지 멱살 놀음해 주는 것뿐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의 입장이 그렇습니다.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이 너희들을 나쁜 놈이라고 한다고 하자 미움 받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아브라함 자손이 아니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여기 있는 돌들로 아브라함 자손을 만들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길길이 날뛰고 발끈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기쁘게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은 다른 복음이라고 합니다.

이는 성경 말씀이 인간들에겐 그리 좋은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니지요?

입을 삐뚤어 져도 말은 바로 합시다.

하나님은 좋게 말씀하셨는데 인간들이 좋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참 빛이고 참 생명이라고 바른 말을 했는데 단지 인간들 입장에선 기분 나쁜 겁니다.

아니 예수님이 참 빛이고 참 생명이면 그럼 우린 뭐냐는 것입니다.

그럼 우린 죽은 놈이냐 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 동방박사들이 헤롯에게 가서 방금 유대인의 왕이 나셨는데 그 유대인의 왕이 어디 있습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아니 온 천하가 헤롯이 유대인의 왕이라는 것을 다 알아요.

그런데 동방박사는 너 말고 진짜 왕이 어디 있느냐 고 물은 것입니다.

결국 넌 가짜 왕이란 뜻입니다.

 

경상도 말로 허파 뒤비지는 말입니다.

그러니 얼마나 화가 났겠습니까?

그래서 헤롯 왕이 두 살 미만의 갓 태어난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도록 명령한 것입니다.

 

지금 세례요한이 하는 말이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바른 말 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만 자기에게 듣기 좋은 말하는 사람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은 사람에게 듣기 좋은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보내신 분의 말씀을 하나도 가감없이 전해야 합니다.

비록 그 말씀을 전하다가 멱살잡이를 한다고 하여도 말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보내심을 입은 성도들을 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이란? 주인에게 종속 되어 있다는 말입니다.

종은 자기 생각으로 살지 않고 주인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성도를 일컬어 예수그리스도의 종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생각으로 살아가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가 그렇다고 하면 예! 라고만 합니다.

종에겐 아니요! 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콩을 밭이라 하여도 예! 라고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 죄를 대신 갚아 주었다” 라고 히시면 “아! 예 그랬군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해야 됩니다.  

그러나 자기 생각이 있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토를 답니다.

 

예수님! 예수님 말씀은 고맙지만요.

그렇지만 난 여전히 죄인이거든요.

보세요.

난 아직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고 있으며,

술 먹고 담배 피우고 세상 좋아하고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 걸요 라고 토를 달게 됩니다.

 

아니 네가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네 죄를 지고 가라고 나를 보내지 않았느냐?

왜? 니 꼬라지를 자꾸만 보느냐? 내가 다 해결해 주겠다는데!

 

넌 그져 가만히 있어 다 내가 해 줄께!

넌 그져 내 품에 둥지를 틀면 돼!

 

아니 그건 알겠는데요!

하지만 하나님 난 아직 부족한게 많답니다.

그러니 앞으로 열심히 해 볼께요!

최선을 다해서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겠습니다.

 

그러니 지금 좀 부족한 것을 용서해 주세요 라고 합니다.

더 열심히 기도하고 성경보고 전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하겠으니 조금만 봐 주세요 라고 합니다.

지금은 거룩하지 않아도 앞으로 거룩해 지도록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게 누구냐 하면 과거엔 유대인이었고 지금은 성화주의자들입니다.

 

이정도 되면 답이 안 나옵니다.

죽여야지! 

바울은 이런 모습을 일컬어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에 굴복하지 않았다고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롬 10:2-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사람이란 참으로 묘해서 남에게 공짜로 밥을 얻어먹으면 꼭 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밥을 사주면 이긴 자가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져서 건방을 떨곤 합니다.

반대로 밥을 얻어먹은 사람은 미안해하고 진 것 같다는 생각에 괜히 기가 죽고 쪼그라듭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에게 얻어먹는 것을 수치라 생각하고, 남에게 사 주는 것을 자랑이라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은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먹고 사는 것입니다.

막말로 내가 못하니 예수를 믿지 내가 할 수 있다면 미쳤다고 예수를 믿습니까? 라고 하는 사람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암튼 세례요한처럼 보내심을 받은 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임을 알려야 합니다.  

이러한 증거를 전도라고 합니다.

 

전도란? 예수님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분이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행하는 전도와는 너무도 다름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시대 전도는 사람들을 교회에 불러들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오면 전도 하였다고 자랑들을 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온 것을 전도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도를 전하는 것을 전도라고 합니다.

 

이 시대 교회들이 사람을 교회에 데리고 오는 것을 전도로 가르치는 것은 교회에다 교인의 숫자를 채우기 위함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으면 부흥이 되었다고 하고 자랑들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인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도는 자랑하지 않고 자기들의 교회가 큰 것을 자랑하기에 바쁜 것입니다.

 

이들의 행태를 세례요한과 비교하여서 보면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위선과 외식과 연기를 볼 수 있어야 소경이 아닙니다.

이게 가짜이고 사기로 안보이면 당신은 소경입니다.

 

일찍이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런 인간들이 많이 일어 날 것을 예언하였습니다.

 

렘 23:21-22= “이 선지자들은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달음질하며 내가 그들에게 이르지 아니하였어도 예언하였은즉 22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여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

 

하나님이 보내지 않았는데도 자기들 입맛대로 말씀을 전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하나님의 회의에 참석하였다면 즉 하나님께서 보내셨다면 사람을 긁어모으려고 하지 않고 당신은 죄인입니다 라고 말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이 무엇을 증거하는지를 보면 하나님이 보내신 자인지 아닌 자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목사는 예수그리스도만을 증거합니다.

그러나 교단이 세운 목사는 교단과 교회를 증거합니다.

교회가 죄사함을 주지 못합니다.

교단이 천국으로 넣어주지 못합니다.

 

죄사함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서만 사해집니다.

천국은 오직 예수님의 피로 서만 죄를 사함 받는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오직 세례요한과 같이 예수님만을 증거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만이 세상 죄를 지고 가신 분이라고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예수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면 세상이 싫어하고 거부한다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였듯이 세상도 성도들을 거부하게 되어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은 어두움에 속하였으므로 빛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는다는 것은 이 세상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급기야는 죽임을 당하도록 보내어 졌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자들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서 목이 짤림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그리스도도 세례요한과 같이 유대인들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이로보건데 성도의 구원은 죽임을 당하게 하기 위한 구원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천국에 우편배달부들을 세상에 보내서 죽게 만들어서 이 세상의 악함을 드러내고 멸망시킬 근거를 마련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는 너희가 나의 택함을 입은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고 죽인다고 미리 알려 주셨던 것입니다.

그 일을 당하면 놀라지 말고 기뻐하라고,,,,,

 

여러분이 진정으로 예수님으로부터 선택을 입은 성도라고 한다면 마음껏 미움을 받으십시오. 

누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복음을 전하면 미워하거든 놀라고 속상해 하지 마시고 마음으로 주님 고맙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것을 확인 받도록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고 해야 합니다.

 

아미 힘들겠지요.

쉽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어쩝니까? 하나님께서 미움 받는 증거물로 보내셨는데,,,,,

 

말씀과 현실은 너무도 다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낄 겁니다.

그래서 아! 나는 말씀대로 지킬 수 없는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말씀 앞에서 상한 심령이 되어 주의 긍휼을 바라야 합니다.

또한 이런 인간을 위해서 예수그리스도를 대속제물로 보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참 고맙습니다.

 

성경은 증거 합니다.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되다고,,,,,

부디 주 안에서 죽임 당하는 복이 당신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