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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요한계시록 강해

♣(요한계시록 강해)2강. 복 받은 자와 예언의 말씀 (계 1:1-3)

by coroa 2022. 8. 25.

계 1:1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2강. 복 받은 자와 예언의 말씀 (계 1:1-3)

계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정낙원 목사

 

요한계시록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은 계시록이 주는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복 받은 자와 예언의 말씀에 대하여 상고해 보기로 합시다.

 

우리가 성경을 대할 때 항상 기억 할 것은 하나님 입장에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성도들에게 주신 편지입니다.

편지를 받은 성도는 그 편지를 주신 하나님 입장에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왜? 이런 말씀을 하시고 있는지를 상고하여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성경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곡해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자기 생각으로 자의적으로 해석하게 되면 전혀 다른 해석을 하여서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성경을 사사로이 풀지 말라고 경고 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시대고 마귀는 항상 하나님 말씀을 자기 입장에서 해석하여 어그러지게 하였습니다.

에덴동산에서부터 이 일은 일어났습니다.

역사가 지속 되는 한 마귀의 궤계는 계속 될 것입니다.

 

마귀는 예수님을 찾아 와서도 하나님 말씀을 자기 식으로 해석하여서 시험을 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 말씀을 하나님의 뜻으로 응수하였습니다.

마귀가 예수님에게 자기 식으로 하나님 말씀을 곡해하여 시험한 일들은 지금도 교회 안에서 계속하여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편지 속에는 자기 백성들을 위로하고 지키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이 절절히 담겨져 있습니다.

성령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편지를 읽을 때 하나님의 마음으로 읽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하여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주신 편지 속에는 반드시 속히 될 일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자기 백성들을 요한계시록을 흘러 듣지 않습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로 듣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요한계시록은 역사 속에서 반드시 일어날 일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만 자기 백성들만 알아보도록 하기 위하여 비밀로 상징으로 이야기 하고 있을 뿐입니다.

상징으로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제로 일어날 일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의 내용은 이미 일어난 사건도 있고,

지금도 계속하여 일어나고 있으며,

장차 일어날 일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을 읽을 때 어린아이들이 동화책 읽듯이 하여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일어날 사건으로 읽어야 합니다.

 

알다시피 이 세상은 하나님의 필요에 의하여 창조가 된 곳입니다.

하나님은 자기의 뜻을 이 세상에 펼쳐 보이십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종들에게 먼저 “나는 이렇게 일을 할 것이라”고 알려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를 예언(豫言)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들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다고 합니다.

 

오늘은 복을 받은 자들과 예언의 말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합시다.

 

우리는 복이라고 하면 물질적인 것으로 이해를 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의 가치와 기준에서의 복을 이해합니다.

이 세상의 가치적 복은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이고 현세적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가난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난 후 부자가 되었다고 하면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또한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승진을 하였다거나 혹은 병든 사람이 예수를 믿고 병을 고쳤다고 하면 복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표피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다양한 은혜에 속한 일반 은총일 수는 있어도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복은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복은 현세적인 것이 아니라 내세적인 것입니다.

이를 하늘에 속한 복이라고 합니다.

 

이 복은 오로지 하늘에 속한 성도에게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늘에 속한 복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처럼 반드시 속히 일어날 예언에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하지만 병을 고치고 재물을 얻고 승진을 하는 것은 어느 종교에서나 일어나는 일들입니다.

세상 종교는 세상에 속한 복은 주어도 하늘에 속한 것은 줄 수가 없습니다.

하늘에 속한 복은 오로지 성도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는 육적인 것을 가지고 복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함에도 이 시대는 교회 안에서 육적이고 현세적인 것을 가지고 복을 받았다고 간증하고 있습니다.

육에 속한 목사들은 이러한 사람들이 마치 신앙의 표본이라도 되는 냥 간증케 합니다.

 

이러한 간증을 듣게 되면 가난하거나 병이 들고 혹시라도 사업에 실패를 하게 되면 자신은 신앙이 없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세상 적으로 성공한 사람은 의기양양하고 실패한 사람은 반대로 의기소침하게 됩니다.

이건 비 언약적이고 비 신앙적입니다.

 

저는 지금까지 가난하고 실패한 사람들을 교회에서 간증케 하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어느 교회이고 세상적 기준과 가치관으로 잘난 사람들은 간증케 하여도 못난 사람들은 간증케 하지 않습니다.

 

간증 그러면 다 예수 믿고 성공하였다는 레퍼토리입니다.

목사들은 이런 사람들을 복 받은 사람들이라고 교인들에게 소개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사고 속에는 복(福)! 그러면 세상에서의 성공이라는 등식을 가지고 판단하게 되는 것입니다.

 

특히 기복주의에 빠진 목사들은 복을 말할 때 모두가 구약을 인용합니다.

구약의 인물들을 가지고 복 받은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의도는 구약을 가지고 신약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구약은 그림자이고 신약은 실상입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은 영원한 땅인 새 하늘과 새 땅 즉 천국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하나님은 구약이라는 그림을 가지고 신약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은 육신에 복을 주었지만 신약은 영의 복을 줍니다.

그럼에도 육에 속한 자들이 구약의 인물들을 가지고 복을 운운합니다.

이러한 것은 모두가 성경을 아전인수식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입장에서 읽지 않고 자기 입장에서 읽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이걸 하나님 말씀을 도적질 한다고 합니다.

 

예레미야 23장을 봅시다.

 

렘 23:9-27=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 10 이 땅에 행음하는 자가 가득하도다 저주로 인하여 땅이 슬퍼하며 광야의 초장들이 마르나니 그들의 행위가 악하고 힘쓰는 것이 정직하지 못함이로다 11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선지자와 제사장이 다 사특한지라 내가 내 집에서도 그들의 악을 발견하였노라 12 그러므로 그들의 길이 그들에게 흑암 중에 미끄러운 곳과 같이 되고 그들이 밀침을 받아 그 길에 엎드러질 것이라 그들을 벌하는 해에 내가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3 내가 사마리아 선지자들 중에 우매함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그릇되게 하였고 14 내가 예루살렘 선지자들 중에도 가증한 일이 있음을 보았나니 그들은 간음을 행하며 행악자의 손을 굳게 하여 사람으로 그 악에서 돌이킴이 없게 하였은즉 그들은 다 내 앞에서 소돔 사람과 다름이 없고 그 거민은 고모라 사람과 다름이 없느니라 15 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내가 선지자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우리니 이는 사악이 예루살렘 선지자들에게로서 나와서 온 땅에 퍼짐이라 하시니라 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 25 내 이름으로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에 내가 몽사를 얻었다 몽사를 얻었다 함을 내가 들었노라 26 거짓을 예언하는 선지자들이 언제까지 이 마음을 품겠느냐 그들은 그 마음의 간교한 것을 예언하느니라 27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에게 말합니다.

즉 이 시대 목사들에게 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사특(邪慝)하다고 합니다.

쉬운 말로 목사들이 교묘하게 지은 말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들은 바알을 의탁하고 예언을 한다고 합니다.

 

바알이 누구입니까?

거짓 신입니다.

우상입니다.

 

바알은 땅에 풍요를 주는 신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땅에 붙잡아 두는 신입니다.

알다시피 성도는 하늘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리고 하늘에 복을 추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땅에 것으로 미혹합니다.

교인들의 주소지를 땅에 붙잡아 둡니다.

거짓 선지자에게 미혹당하면 자기 배를 신으로 섬기게 됩니다.

언약을 잊고 자기 몸뚱이를 신으로 받들게 됩니다.

살아가는 의미를 자기 몸뚱이 편한 것에 둡니다.

 

그러니까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을 의탁하여 예언을 한다는 것은 성경을 땅 차원으로 해석한다는 뜻입니다.

이 땅에서 복 받고 잘 살아야 한다는 식으로의 육적으로 해석을 한다는 말입니다.

육적 해석이 어떤 것인가 하면 너희는 평안하고 재앙이 임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시대 버전으로 하면 예수 믿으면 고난당하지 않고 복 받고 잘 산다는 말입니다.

 

이게 바로 말씀을 어그러지게 전하는 것이고 도적질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살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고 합니다.

이는 너희가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고 하늘에 속한 자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는 지금식으로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잘 산다고 하는 목사들의 말을 듣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자기 조상들과 같이 바알을 의탁하여서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한다고 합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한 말입니다.

 

27절을 보세요.

 

27절 “그들이 서로 몽사를 말하니 그 생각인즉 그들의 열조가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린 것같이 내 백성으로 내 이름을 잊게 하려 함이로다”

 

바알로 인하여 내 이름을 잊어버리게 한다고 하지요.

무슨 말인고 하니 하나님을 바알로 둔갑을 시켜 놓았다는 말입니다.

이름은 분명히 하나님이지만 그 내용은 바알로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바알을 하나님이라고 하니까 백성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엘리야 시대가 그러했습니다.

그 당시 아합 왕이 이방 여자인 이세벨을 아내로 맞이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시집을 오면서 자기가 섬기던 신(神)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그것이 바알과 아세라입니다.

 

바알과 아세라는 부부(夫婦)입니다.

바알은 풍요(豊饒)의 신으로서 남편 신(神)이고,

아세라는 다산(多産)의 신으로서 아내 신(神)입니다.

사람들은 이 둘이 이 땅에 풍요를 주고 다산을 준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신전에 가면 다산과 풍요를 얻기 위한 종교 의식들이 있었습니다.

 

그 의식 중에 제사장들과 교접하는 행음의 의식이 있습니다.

바알 신전에서는 남자 사제들이 여 신도들과 행음을 하고,

아세라 신전에서는 여 사제들이 남 신도들과 행음을 하였습니다.

 

이러한 것을 성창 제도라고 합니다.

성창(聖娼)이란? 거룩한 창기들이란 말입니다.

그러니까 신전에서 거룩한 사제들과 교합하는 것은 거룩한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음행을 거룩한 종교 의식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백성들은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자연스럽게 신전에서 음행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바알 신전과 아세라 신전에는 문전성시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의 논리는 땅에서 백성들이 제사장과 교합을 하면 그것이 곧 하늘에 있는 신과 교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쉬운 말로 땅에서 교접을 하면 하늘에 있는 남편 신인 바알과 아내 신인 아세라가 서로 교접을 하여서 자손의 번창을 주고 땅에 풍요를 준다고 가르친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은 인간들에게 구미를 당기게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주기 때문입니다.

바알 종교는 인간 중심의 종교입니다.

그 바탕에 인본주의가 깔려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기독교) 종교(신앙)는 언약 중심의 종교입니다.

언약을 위하여 인간이 존재하는 종교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종교에서는 인간을 위한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선택을 입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이 언약엔 관심이 없고 자기 존재를 위하여 살도록 바꿔 놓은 것입니다.

신본주의에서 인본주의로 바꿔 놓았습니다.

하늘에 복을 땅에 것으로 바꿔치기 해 놓은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바로 바알로 인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잊게 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냅니다.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너희가 언제까지 두 사이에 머뭇거리겠느냐?

여호와를 택하든지 바알을 택하든지 둘 중에 하나를 택하라고 합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참 신이 누구인지 가려내는 싸움을 합니다.

엘리야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에게 너희가 섬기는 바알이 참 하나님인지 아니면 내가 섬기는 여호와가 참 하나님인지 내기를 하자고 합니다.

 

이에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이 갈멜산에서 각 자의 방식대로 자기 신에게 제사를 지내게 됩니다.

엘리야는 혼자이고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는 850명입니다.

 

바알 선지자들은 자기 몸을 피 흘리까지 학대하면서 기도합니다.

내 정성을 보아서라도 응답해 달라고 합니다.

지성이면 감천 하여야 하지 않느냐 입니다.

그러나 응답이 없습니다.

 

이제 엘리야가 기도합니다.

엘리야는 무너진 단을 수축하고 언약의 하나님을 찾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 하셨던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응답해 달라고 합니다.

이는 백성들이 내가 어떻게 살까를 궁리하지 말고 나는 언약을 위하여 선택을 입은 자라는 것을 깨닫고 언약 안으로 돌아오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러자 엘리야의 제단에 불이 내립니다.

 

엘리야의 하나님인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임을 백성들 앞에서 보여 주셨습니다.

바알의 하나님은 가짜임이 드러났습니다.

즉 자기 육신을 위하여 나아오는 것은 불신앙임이 드러난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의 악함은 백성들에게 가짜 하나님을 심어 놓는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이세벨이 갖고 온 땅에 신인 바알을 하나님으로 둔갑 시켜 놓았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미혹당하다 보니까 백성들은 이 세상에 복인 다산과 풍요를 주는 신이 하나님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백성들이 바알을 하나님으로 섬겼다는 것은 그들 속에 각인된 하나님은 자기들에게 세상에 복을 주는 신이었던 것입니다.

 

이건 마치 애굽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애굽 신처럼 섬긴 것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은 바알처럼 땅에 복을 주는 신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이걸 우상숭배라고 합니다.

 

우상숭배란? 절간에 가서 제사를 드리거나 무당 푸닥거리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이러한 것은 겉으로 드러난 것이에요.

진짜 우상 숭배는 자기 배를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봅니다.

 

빌 3:18-19=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19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신약에서는 육신의 복을 구하는 것은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예수를 누가 죽였습니까?백성들이 죽였습니다.

왜? 죽였나요?

떡을 주지 않아서입니다.

 

떡이란? 세상 문제 모두를 포괄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세상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아서 예수를 죽인 겁니다.

만약 예수님이 떡을 주고 로마의 압제로부터 해방 시켜 주었으면 왕으로 떠받들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세상 것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서 그들의 요구에 응해 주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죽였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을 위하여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예수를 죽이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것인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얻고자 나아오는 자들은 필연적으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게 되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그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원수가 누구냐?

세상 것을 구하고자 나아오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탐심을 우상 숭배라 규정 했습니다.

 

골로새서 3장을 봅니다.

 

골 3:5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우상 숭배가 뭐냐?

하나님을 복 받는 수단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이게 이세벨의 교훈입니다.

 

사람들이 이세벨의 교훈을 따르는 것은 육신의 복을 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인간들에게 있어 신이란 자기 배(의,식,주)입니다.

인간들이 신을 찾는 것은 땅에 복을 얻고자 함입니다.

 

그러므로 어느 시대이고 이세벨의 교훈은 항상 교회 안에서 진리처럼 증거 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 먹혀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도 요한에게 주신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보면 이 시대 교회 안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받고 있는 자들이 있다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2장을 봅니다.

 

계 2:18-24=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19 내가 네게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20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21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22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23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24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25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아시아의 일곱 교회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모든 교회를 상징합니다.

예언적인 의미로서는 시대적 의미가 있지만 영적으로는 어느 시대 어느 교회에도 적용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교회가 존재하는 한 이세벨의 교훈은 사라지지 않아요.

 

두아디라 교회를 보세요.

자칭 선지자들이 나오지요.

이들이 바로 예레미야 식으로 말하면 바알을 의탁하여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이고, 엘리야 시대로 말하면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입니다.

 

이들이 무슨 짓을 합니까?

교회 안에서 이세벨의 교훈을 가르쳐서 교인들로 하여금 행음하게 합니다.

하나님을 땅 차원으로 전락시키는 것입니다.

 

이 시대 교인들의 행음이 뭔가요?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것입니다.

땅에 것을 추구하게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4장입니다.

 

약 4:4절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간음이 뭔가요?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세상과 벗 된 것을 간음이라고 합니다.

즉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거리들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은 누가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주리실 때에 마귀가 찾아와서 주겠다고 하는 것들이에요.

이 마귀가 바로 바알이고 아세라에요.

 

누가복음 4장을 봅시다.

 

눅 4:5-7=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6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 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7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마귀가 무얼 주겠다고 합니까?

땅에 것이에요.

자기에게 절만 하면 세상에 부귀영화를 주겠다고 합니다.

영웅호걸이 되게 해 주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귀가 세상 것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뱀을 저주합니다.

저주의 내용이 종신토록 흙을 먹는 것입니다.

이는 땅에 기운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뱀에게 저주 받은 땅을 기업으로 준 것입니다.

 

마귀는 지금 예수님에게 그걸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세상의 부귀영화와 권세들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누구든지 나에게 절을 하는 자들에게 이러한 것을 주겠다고 합니다.

예수 너도 내게 절을 하면 세상의 부귀영화와 모든 권세를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내가 이 땅에 온 것은 세상에 부귀영화를 누리고 영웅호걸이 되어서 세상의 권세 잡기 위하여 온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내가 온 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서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존재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언약을 위하여 사는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삶을 사셨어요.

이게 복을 받은 자이고 복 된 삶이에요.

 

구원이란? 땅을 떠나 하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땅에 가치로 살던 자가 하늘에 가치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존재의 의미가 먹고 사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위하여 이끌림 당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속에는 땅에 복이 없는 것입니다.

 

성도에게 있어 복이란? 언약의 도구로 쓰임 당하는 것입니다.

 

땅에서 출세하고 영웅이 되는 것이 아니에요.

도리어 언약을 위하여 땅에 것을 빼앗기는 것이에요.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동참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동참하게 해 주세요.

 

중요한 말을 합니다.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자기 구원을 챙기고자 하는 자들이 많아요.

자기들은 마치 요한계시록의 내용을 잘 숙지하여서 이겨 낼 수 있다고 가르쳐요.

이단들은 다 여기에 속하였어요.

 

이단이 뭐냐?

구원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자들이에요.

이 말을 오해하지 말고 잘 이해하세요.

 

예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믿는 것이 아니에요.

성경이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 것은 우리더러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으란 말이 아니에요.

 

이건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을 하신다는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나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에게 구원 얻을 방법론을 주신 것이 아니에요.

 

구원은 우리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기 때문에 인간 쪽에서의 방법론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된다는 식의 구원관은 비 성격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구원 받기 위하여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단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하세요.

구원 받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것은 그 바탕에 나는 구원 받아야 해 라는 자기 사랑이 있어요.

이것은 스스로 구원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예수를 믿어서 구원을 받겠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성경에 보니까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준다고 하니까 예수 믿어서 구원을 받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예수는 도구에 불과해요.

 

구원은 우리의 원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원함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언약을 위하여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이 목적이 아니고 언약을 성취하는 것이 목적이에요.

 

창세전 언약을 이루는 것 속에 자기 백성들의 구원이 있는 것입니다.

그 언약 속에 자기 백성들은 예수 안에서 구원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데 어떻게 하느냐 예수 안에서 하세요.

 

예수 안에서 구원하는 것이 바로 예수를 믿게 해서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는 우리가 믿는 것이 아니에요.

하나님이 믿어지게 해 주어서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약 때문에 예수가 믿어지는 혜택을 입은 것이에요.

 

성경에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예수를 믿더라” 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다 예수가 믿어지게 해 주시더라는 말이에요.

이 구원을 가진 성도들은 나는 예수 믿어서 구원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어지게 해 주셨다고 해요.

 

그러나 이단들은 예수 믿어서 구원 받으라고 해요.

예수를 수단화 해요.

이런 사람들은 성경 속에서 이렇게 하면 구원을 받고, 저렇게 하면 환란을 피한다고 하면서 방법론을 추구해요.

그래서 구원 받기 위하여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 것으로 행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저렇게 해서 환란을 피하여야 한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666 짐승표를 가지고 설왕설래해요.

이들은 베리칩이 666 이니 절대로 받으면 안 된다고 합니다.

이건 호들갑을 떤다고 해서 해결 될 문제가 아니에요.

 

어떤 분들은 저에게 전화해서 물어봐요.

받아야 합니까?

말아야 합니까?

 

그럼 전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만약에 당신 말대로 베리칩이 666 표라고 한다면 그 표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은 안 받고 녹명 되지 않는 자들은 다 받게 되어 있으니까!

그 표가 666 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내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느냐 안 되었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하나님께서 안 받게 해 주실 것이고,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되지 않는 자들은 제 아무리 안 받겠다고 하여도 결국은 받게 되어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이 마치 자기가 666 표를 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불안해해요.

여러분! 하나님의 심판은 우리의 힘으로 이겨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분명히 말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불 가운데서도 지켜 주세요.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같이 7배나 더한 풀무불 속에 들어가도 지켜 주세요.

666 짐승표가 아니라 그 할애비에게서라도 지켜 주세요.

 

요한계시록은 이 약속을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환란이 닥친다 하여도 예수가 죽음에서 살아났듯이 너희도 반드시 영생을 얻게 되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마치 자기들 힘으로 환란을 이겨내고 구원을 받겠다고 하는 것은 비 성경적이고 이단들이나 하는 짓들이에요.

 

신앙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그 어떤 것으로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였어요.

이걸 믿으세요.

이게 믿어져야 해요.

 

로마서 8장을 봅시다.

 

롬 8:33-39=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협이나 칼이랴 36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잘 보세요.

누군가가 성도들을 송사하고 정죄한다고 하지요.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송사 당하지 않고 정죄당하지 않아요.

성도들을 아무리 송사하고 정죄한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송사하지 않고 정죄하지 않아요.

그러니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한 갖가지 환란과 고난을 당한다고 하지요.

그럴지라도 안 끊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우리를 넘어지게 하고 끊어지게 하려는 일들이 일어난다고 하여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꽉 붙잡고 있으니 비록 우리의 운명이 도살당하는 양 같은 처지에 놓인다고 하여도 걱정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뭐냐?

하나님의 이 약속을 믿는 것이에요.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아요.

죽음에서 살아나신 예수그리스도가 자기를 품고 있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들은 이러한 것이 믿어져요.

그래서 복인 거에요.

 

요한계시록을 보면 7 복이 나와요.

 

계 1장 3절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4장 13절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6장 15절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계 19장 9절 “천사가 내게 말하기를 기록하라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하고 또 내게 말하되 이것은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이라 하기로”

 

계 20장 6절 “이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 년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왕 노릇 하리라”

 

계 22장 7절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계 22장 14절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7복을 보세요.

모두가 영적인 것들이에요.

하나님의 언약과 관계된 것입니다.

 

모두가 그리스도의 언약에 동참하는 것들로 되어 있어요.

하나님은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진정한 복이란? 예수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에 이 땅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면 복을 받는 것이다 라고 말하고 있나요?

없어요.

도리어 이 땅에서 예수와 함께 환란을 당하는 것으로 되어 있어요.

 

신약의 산상 보훈의 8복을 보세요.

어디에 땅에서 잘 되는 것을 복이라고 한 것이 있는가요?

없어요.

 

그럼에도 이 시대 많은 교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마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주겠다고 하던 것들을 달라고 해요.

육에 속한 목사들을 그것을 따 내라고 합니다.

어떻게?

충성과 열심을 다 바쳐서 따 내라고 합니다.

이걸 뱀의 말이라고 해요.

 

성경은 육적인 것을 복이라 하지 않습니다.

땅에 있는 것은 인간들의 열심과 노력으로 얻어 낼 수가 있는 것들입니다.

복이라 함은 인간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얻어낼 수가 없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져야 하는 것들입니다.

 

에베소서 1장 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늘에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합니다.

하늘에 신령한 복이란? 육과 반대 되는 영적인 복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복입니다.

 

그래서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 있는 자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예언이라고 하면 장래 일을 점 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예언은 하나님 말씀 자체를 예언이라고 합니다.

 

성경 자체가 예언입니다.

성경을 풀어 주는 것이 예언하는 것이에요.

길흉화복을 점 쳐 주는 것이 아니고!

 

성경은 인간의 길흉화복을 점 쳐주는 책이 아니에요.

성경은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구속사 이야기에요.

그러므로 모든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예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하면서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福)이 있다고 합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복 받은 자는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안다는 것입니다.

 

계시란? 열어서 보여 주신다는 뜻입니다.

무엇을 열어서 보여주신다고 합니까?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정확히 말해서 예수그리스도가 하실 일을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자체가 예언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실 일들을 담아 놓았기 때문입니다.

 

누구에게 열어서 보여주고 있나요?자기 백성들입니다.

그래서 이 예언의 말씀들이 읽혀지고 들려지고 믿어지는 자들을 일컬어 복 있는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이 있다는 말은 복을 받은 자라는 말이에요.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수그리스도에 관한 예언들을 읽고 듣고 지킨다는 것입니다.

복이란? 우리의 노력으로 따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켜서 복을 받는 것이 아니에요.

 

오해하지 마세요.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언의 말씀을 위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세요.

 

아브라함을 일컬어 복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복 받을 짓을 해서 복의 조상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의 조상으로 만들었다는 말입니다.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복 받을 짓을 하지 않았어요.

복 받을 짓과 상관없이 복을 받았어요.

복을 받았기 때문에 복 받을 짓을 하지 않아도 복이 계속하여서 따라 다니는 것입니다.

 

복 받을 짓을 하지 않았음에도 복을 받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복인 것입니다.

그래서 복을 은혜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서 성도의 구원을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서 하나님의 사랑을 확증하셨다고 합니다.

 

롬 5장 8절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무슨 말인가요?이는 구원 받을 짓을 하지 않았는데 구원이 주어졌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은혜라고 합니다.

이 은혜가 바로 복인 것입니다.

 

시편 1편을 보면 복 받은 사람들의 모습이 나옵니다.

 

시 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복 있는 사람이란? 복을 받은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미 복이 있다는 말입니다.

복이 그 속에 있으니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입니다.

 

복의 실체이신 하나님이 그 안에 있으니까 악인의 꾀를 좇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즉 이방인과 같이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복 받은 자들은 어떻게 사느냐 하면 언약을 위하여 살아요.

언약에 이끌림 당하여서 살아가게 되어 있어요.

언약이 이끌기 때문에 이방인들과 다른 가치관으로 여호와의 말씀을 묵상하고 말씀에 붙잡혀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5장에 보면 복 받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우리가 잘 아는 팔 복입니다.

팔 복은 복을 받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현상들을 말합니다.

 

복을 받았기 때문에 심령이 가난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애통이 일어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의를 목 말라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온유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청결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화평하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긍휼이 나오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핍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팔 복은 인간에게 없는 것들입니다.

모두가 예수그리스도에게 있는 것들입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은 팔 복의 현상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건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에게 붙어 있는 성도들에게는 자연 발생적으로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이걸 금지 할 수 없는 법이라고 하고!

이렇게 나타나는 것을 다른 말로 성령의 열매라고 해요.

 

요한계시록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을 받았기 때문에 요한계시록을 읽고 듣고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읽고 듣고 보다가 보면 그 말씀이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으로 이끌어 가게 됩니다.

이렇게 말씀에 이끌림 당하는 것을 지킨다고 해요.

 

오늘 본문을 다시 봅시다.

 

계 1:1-3=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啓示)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2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3 이 예언(豫言)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福)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요한계시록의 전달 체계가 나옵니다.

그리고 최종 수신자도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주셨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인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이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위임한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6장에 보면 하나님 손에 인봉한 책이 있는데 그 책을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가 받아서 인을 하나씩 떼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을 봅니다.

 

계 5:1-5= “내가 보매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손에 책이 있으니 안팎으로 썼고 일곱 인으로 봉하였더라 2 또 보매 힘 있는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누가 책을 펴며 그 인을 떼기에 합당하냐 하니 3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4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5 장로 중에 하나가 내게 말하되 울지 말라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이 책과 그 일곱 인을 떼시리라 하더라”

 

사도요한이 보좌에 앉으신 아버지의 손에 책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 책은 일곱 인으로 봉해졌습니다.

이에 요한이 크게 웁니다.

이 때 장로 중에 한 분이 울지 말라고 합니다.

그 책은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되시는 분이 이긴 분이기 때문에 그 분이 떼신다고 합니다.

 

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란? 다윗 왕이 예표한 그 사람이란 말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입니다.

이는 장차 온 이스라엘의 진짜 왕 되시는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다윗은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역할을 구약 마당에서 연기(演技) 한 것입니다.

다윗 왕의 실상은 예수입니다.

그래서 다윗 왕의 뿌리가 되는 어린 양이신 예수님이 아버지 손에 봉인 된 책을 취하셔서 하나 둘씩 개봉을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6장을 봅시다.

 

계 6:1-8=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3 둘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둘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더니 4 이에 붉은 다른 말이 나오더라 그 탄 자가 허락을 받아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며 서로 죽이게 하고 또 큰 칼을 받았더라 5 세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들으니 세째 생물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내가 보니 검은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가 손에 저울을 가졌더라 6 내가 네 생물 사이로서 나는 듯하는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한 데나리온에 밀 한 되요 한 데나리온에 보리 석 되로다 또 감람유와 포도주는 해치 말라 하더라 7 네째 인을 떼실 때에 내가 네째 생물의 음성을 들으니 가로되 오라 하기로 8 내가 보매 청황색 말이 나오는데 그 탄 자의 이름은 사망이니 음부가 그 뒤를 따르더라 저희가 땅 사분 일의 권세를 얻어 검과 흉년과 사망과 땅의 짐승으로써 죽이더라”

 

어린 양이 책을 취합니다.

그리곤 인봉을 떼기 시작합니다.

지금 이 일은 천상(天上)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천상에서 어린 양이 인봉을 떼니까 땅에서 어떤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이는 곧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모두가 하늘에 계신 어린 양 되신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일어나고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그리스도가 하늘 위나 하늘 아래 땅이나 만물의 주인이란 말입니다.

그래서 말 탄 자들이 어린 양의 허락을 받고서 각 자에게 주어진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어린 양의 허락한 것만큼만 합니다.

 

이건 마치 욥의 시험과 같습니다.

욥이 고난당한 것은 욥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닙니다.

모두가 천상에서 하나님과 사단의 내기로 인하여 일어난 사건입니다.

 

욥기 1장을 봅시다.

 

욥 1:1-12=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2 그 소생은 남자가 일곱이요, 여자가 셋이며 3 그 소유물은 양이 칠천이요, 약대가 삼천이요, 소가 오백 겨리요, 암 나귀가 오백이며, 종도 많이 있었으니 이 사람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라 4 그 아들들이 자기 생일이면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 누이 셋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므로 5 그 잔치 날이 지나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케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사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6 하루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와서 여호와 앞에 섰고 사단도 그들 가운데 왔는지라 7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서 왔느냐?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땅에 두루 돌아 여기 저기 다녀왔나이다 8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가 세상에 없느니라 9 사단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10 그와 그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산울로 두르심이 아니니이까? 주께서 그 손으로 하는 바를 복되게 하사 그 소유물로 땅에 널리게 하셨음이니이다 11 이제 주의 손을 펴서 그의 모든 소유물을 치소서 그리하시면 정녕 대면하여 주를 욕하리이다 1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욥은 하나님도 칭찬한 사람입니다.

욥 역시 하나님을 경외하고 살았습니다.

보통 보면 자식이 많고 부해서 등 따습고 배 부르면 하나님을 떠나는데 욥을 그렇지 않았습니다.

욥은 자신이 누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습니다.

 

하루는 천상에서 어전 회의가 열렸습니다.

사단도 그 회의에 참석을 합니다.

하나님이 사단에게 묻습니다.

 

사단아!

너~! 내 종 욥을 유의하여 보았느냐?

그가 진짜 나를 잘 섬기지 않더냐!

 

하나님은 욥을 칭찬합니다.

 

그러자 사단이 말하기를 그렇게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해 주어서 하나님을 잘 섬기지 않을 인간이 어디에 있습니까?

욥을 한번 힘들게 해 보시지요.

그래도 잘 섬기는가?

 

이에 하나님께서 사단과 내기를 합니다.

그래!

그럼 니가 한번 내 종 욥을 시험해 보거라!

이에 하나님의 허락 한 것만큼만 사단이 욥을 시험하기 시작합니다.

 

욥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천상에서 의논 된 것에 의하여 시험을 당하게 됩니다.

욥의 이 모습이 바로 요한계시록 6장의 모습입니다.

말들은 예수님의 수종자들을 말하는데 천사라 할 수도 있고 사단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욥기에서처럼 말들이 어린 양의 허락을 받고 땅에서 각양의 사건들을 일으키게 되는 것입니다.

이 사건 속에 성도들도 휘말려서 잠시 고난을 당하게 됩니다.

 

이걸 다시 요한계시록으로 이야기 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세상을 다스리도록 위임하였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서 타작을 시작합니다.

 

타작이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일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이 갈라냄에 고난이 동원 되는 것입니다.

고난에 던져 보면 진짜 믿음과 가짜 믿음이 갈라져요.

 

과거 일제 식민지 시절에 신사참배로 인한 시험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신사 참배를 거부하였던 목사님을 통하여서 들은 기억이 있어요.

신사참배를 순사들이 강요 한다고 하니까 어떤 목사님들은 큰 소리 빵빵 치더래요.

그까짓거 죽으면 죽으리다 라는 마음으로 이겨 내지 라고 하면서 말이에요.

 

반면에 어떤 목사님들은 이걸 어찌할꼬!

그러면서 하나님께 주여 도와주세요.

전 감당 할 수가 없습니다 라고 울부짖었다고 해요.

 

그런데 막상 칼 앞에 서니까 큰 소리 치던 목사들이 제일 먼저 하더라는 겁니다.

그리곤 난 감당 못해 하면서 울부짖던 목사님들은 하지 않고 고난을 당하였다고 해요.

막상 시험에 던져 보니까 참과 거짓이 갈라지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환란도 이와 같은 것이에요.

이 사실을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알려 주라고 사도 요한에게 편지를 써 주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요한은 이 편지를 자기 백성들에게 읽어줍니다.

 

너희들 잠간 동안 환란을 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기 위한 것이니 너희들은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내가 미리 너희들에게 알려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우린 여기서 하나님의 관심사가 누구에게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사는 최종 수신자에게 있습니다.

최종 수신자가 누구입니까?그 종들입니다.

자기 백성들입니다.

 

자기 백성들은 이 편지를 통하여서 아버지의 마음을 읽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고난을 주시는 것은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함이 아니고 온전케 하고자 함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그 어떤 환란이 닥친다 하여도 자기 백성들은 반드시 구원을 받는다는 소식이 담겨져 있는 편지입니다.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하면 예수그리스도처럼 받는다고 합니다.

너희가 비록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다 하여도 그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다시 살기 위한 죽음이니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요한은 죽었다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한 것을 편지로 전해주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 하였습니다.

요한이 증거 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 마귀의 세력을 이겨서 만왕의 왕이고 만주의 주가 되어서 세상을 통치 한다는 것입니다.

 

드라마를 보면 주인공 중심으로 스토리가 전개 되지요.

 

이 역사도 주인공이신 예수그리스도 중심으로 돌아가요.

예수가 주인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보아야 하는 겁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였고,

지금 무슨 일을 하고 있으며,

또한 장차는 어떤 일을 하실 것인지를 보아야 해요.

이걸 알라고 사도 요한을 하늘로 올라오게 하여서 예수그리스도에 대하여 계시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도 요한에게 예수그리스가 무슨 일을 하는지 편지에 써서 지상에 있는 교회들에게 알려 주라고 했어요.

예수가 왕이고!

예수그리스도가 만물의 주인이 되어서 다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공이 누구이냐?

예수그리스도에요.

만물 가운데 일어나는 일들은 예수그리스도를 보여주기 위한 셋트에요.

 

우리도 셋트고!

적 그리스도도 셋트고!

일곱 머리 열 뿔도 셋트고!

아시아의 일곱 교회도 셋트에요.

예수그리스만 주인공이에요.

 

모두가 예수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움직여요.

그러니 셋트에 신경 쓰지 말고 주인공에게 신경을 쓰세요.

내가 지금 주인공과 어떤 관계 안에 살고 있는지를 신경 쓰란 말이에요.

주인공이 나와 관계가 있을 때 요한계시록도 나의 이야기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연애편지를 보냈어요.

자기 애인에게 썼어요.

그런데 그 편지를 모두가 알면 안 되니까 둘 만이 알아먹는 은밀한 이야기로 썼어요.

 

요한계시록이 그래요.

예수님과 자기 백성들만이 아는 은어로 기록되어 있어요.

예수님의 양들은 예수님의 보낸 편지 속의 갖가지 상징인 은어들을 다 알아요.

 

그래서 이 예언이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지키는 자들이 복을 받은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린 이미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 증거가 요한계시록에서 예수그리스도가 보인다는 것입니다.

모든 성경이 예수님 이야기로 들려진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서 예수가 보여지고!

예수가 나의 그리스도이심이 믿어지고!

그 약속이 믿어지는가요?

 

그럼 당신은 이미 복을 받은 자입니다.

그 복 안에서 안심하고 감사하면서 사세요.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예언의 말씀이 들려지고 믿어지는 복을 주심을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계속하여 우리의 눈을 여기고 귀를 여기고 마음을 열어서 예수그리스도의 예언의 말씀들이 들려지고 믿어지게 해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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