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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1~3 강해

♣(창세기 강해)10강. 저녁에서 아침으로 (창 1:5,8,13,19,23,31)

by coroa 2022. 8. 10.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10강. 저녁에서 아침으로 (창 1:5,8,13,19,23,31)

창 1장

5.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8.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니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둘째 날이니라

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세째 날이니라

19.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네째 날이니라

2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다섯째 날이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정낙원 목사

 

창조의 사역이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전개가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과는 다릅니다.

우리는 아침에서 저녁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왜 하루의 순서가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말하고 있을까요?

오늘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펼치는 창조 사역이 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지 그 이유를 살펴볼까 합니다.

 

성경은 언약의 책입니다.

언약이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을 옛 언약이라고 하고 신약을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옛 언약은 율법으로서 죄 아래 가두는 언약이고,

새 언약은 은혜로서 죄에서 건져지는 언약입니다.

순서상으로 보면 옛 언약이 먼저이고 새 언약이 나중입니다.

그럼 죄 아래 가두는 언약이 먼저이고 죄에서 건져지는 언약이 나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순서로 역사 속에서 언약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은 죄 아래 있는 자를 그 아들을 통해서 의롭게 된다는 언약을 근거로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그래서 창조된 세상의 모습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중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은 죄와 사망 가운데 놓여져 있는 모습입니다.

타락의 모습니다.

 

성경의 이야기는 구원 이야기입니다.

구원이 되려면 구원 받아야 하는 구조 속에 놓여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창조가 타락에서 회복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구원이 영생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면 사망 가운데 있어야 하고,

구원이 빛의 나라로 옮겨지는 것이라고 한다면 어둠의 나라에 갇혀 있어야 하고,

구원이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죄 아래 놓여 있어야 합니다.

 

창세전 언약은 영화의 시나리오와 같습니다.

영화는 시나리오에 의하여 나타난 결과물입니다.

이 세상 창조도 창조케 하는 시나리오가 있습니다.

 

만물을 왜 창조 하여야 하는지 그 원인이 있습니다.

이 세상은 원인이라는 시나리오에 의하여 만들어졌습니다.

원인이라는 시나리오를 창세전 언약이라고 합니다.

 

창세전 언약이라 함은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에 세워진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먼저이고 창조가 나중입니다.

언약이 만물을 창조케 한 원인이고 시나리오입니다.

 

구약에 보면 이스라엘의 생성과정이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네 후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고 합니다.

이 때는 아브라함에게는 자식이라고는 한 명도 없는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내가 이 일을 이우러 갈 테니 너는 편안히 열조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언약을 하나님이 이루신다는 의미로 아들을 낳을 수 없는 여자의 몸에서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방법으로 낳게 하십니다.

그 아들이 바로 이삭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이 할례 후에 낳아진 아들입니다.

사라의 경수가 끊어지고 난 후에 낳은 아들입니다.

할례란 남자의 생식기 표피를 잘라내는 것인데 이는 남자로서의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이름도 아브람에서 아브라함으로 개명을 시킨 것입니다.

 

남자의 생식기가 잘려진 것은 남자 구실을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자 또한 경수(월경)가 끊어졌다는 것은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남자나 여자나 죽은 몸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 속에서 산 자를 끄집어내는 일을 하셨습니다.

이것이 창조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이삭은 아브라함 자식이 아닙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능력으로 낳아진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자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낳아진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최초에 언약의 아들이 낳아진 것입니다.

 

이삭에게서 야곱이 나왔습니다.

야곱도 기도로 얻은 아들입니다.

리브가가 자식을 낳지 못하자 이삭이 하나님께 간구해서 야곱을 낳게 되었습니다.

야곱도 하나님이 낳아주신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낳습니다.

라헬은 자식을 낳지 못하였습니다.

야곱에게 나에게도 아들을 달라고 하자 야곱이 내가 하나님이냐고 회를 냅니다.

 

야곱과 라헬의 사이에 자식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라헬이 맥추 때에 합환채를 먹고서 요셉을 낳게 되었습니다.

요셉은 합환채를 먹고서 낳아진 자입니다.

 

이스라엘의 12 지파의 근원이 되는 야곱의 아들들도 기근 속에서 합환채로 낳아진 요셉의 양식을 먹고서 살아난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삭이나 야곱이나 요셉 모두가 인간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으로 낳아진 자들입니다.

그래서 구약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언약에 의하여 존재케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 하여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온 것은 아브라함과 언약 하고 430년이 지난 후입니다.

 

430년 전 언약이 430년 후 이스라엘 민족을 존재케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 언약이 이스라엘을 존재케 한 것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것도 창세전 언약에 의해서입니다.

 

만물의 창조도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언약이 만물을 존재케 한 것입니다.

그럼 이 세상이라는 만물을 존재케 하는 원인인 창세전 언약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봅시다.

 

에베소서 1장을 봅시다.

 

엡1:3-7절.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4.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7.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라”

 

4절을 보면 창세전이 나옵니다.

창세전이란? 요한복음 1장 1절의 태초와 같은 말입니다.

태초의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이는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만물이 만들어지기 전 태초라는 하나님 나라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라는 하나님들이 만물을 창조하시기로 작정을 하신 것입니다.

그 이유가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져내어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누가 하느냐 하면 성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하십니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라는 이름으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는 육신으로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는 일을 하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느냐 하면 자기 몸을 대속 제물로 드림으로서 하십니다.

자신의 죽음으로 하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십자가에서 그 피를 쏟음으로 자기 백성들을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신다는 것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1장을 봅시다.

 

골 1:13-17절.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 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14.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15.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17.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16절을 보면 만물이 그에게 창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창조가 된 세상이 하늘과 땅, 그리고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1절에서 천지(天地) 창조로 나타난 것입니다.

 

천(天)은 하늘이고,

지(地)는 땅입니다.

 

천(天)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고,

지(地)는 보이는 세계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실상이고,

보이는 세계는 허상입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원본(原本)이고,

보이는 세계는 복사본(複寫本)입니다.

 

만물을 왜 만드셨다고 합니까?

그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인가요?

 

15절에 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합니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사람의 모습을 입었지만 그는 창조주 하나님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왜 자신이 창조한 피조 세계에 피조물의 몸을 입고 오셨는가요?

그 이유를 13절에서 우리를 흑암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 주시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다른 말로 죄에서 구속시키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창조 된 세상이 죄와 사망을 상징하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중에 있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성경은 이 세상을 정의하기를 죄 아래 있다고 합니다.

다른 말로 죽음에 가두어졌다고 합니다.

이를 창조 기사에서는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창조주는 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이 이미 창조가 된 피조의 세상에 오셔서 하시는 창조의 일은 죄인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죄와 사망 가운데 가두어진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 1장에서는 창조 기사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를 가지고 구원이야기를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일터입니다.

어떤 일터인가 하면 창조(구원)의 일터입니다.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입니다.

영적으로 같은 말입니다.

 

창조(구원) 속에는 갈라내고 채움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일을 하십니다.

어둠은 어둠으로 모으고, 빛은 빛으로 모으십니다.

이를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상징적으로 십자가 상에서 두 강도로 나타난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두 강도가 갈라지게 됩니다.

한 강도는 천국으로 갔고 한 강도는 지옥으로 갔습니다.

예수님이 중심에서 너희와 저희로 갈라내신 것입니다.

이를 심판이라고 합니다.

 

심판이란? 산 자와 죽은 자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으로 갈라내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속한 자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와 아닌 자를 갈라내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을 봅시다.

 

롬 8:29-30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이 있습니다.

미리 아신 자들에게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십니다.

즉 아들 만드는 일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미리 아신 자들을 정하시고,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이를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구원한다고 합니다.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은 다 예수를 믿더라고 합니다.

땅에서 기뻐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은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에게 속한 자와 예수님에게 속하지 않은 자가 있습니다.

이름하여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입니다.

이 둘이 이 세상에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때 까지 누가 하나님의 자녀이고 누가 마귀의 자녀인지를 모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자 홍해가 갈라지듯이 이쪽과 저쪽으로 쫙 갈라지고 맙니다.

예수를 영접하는 자와 예수를 배척하는 자로 갈라지는 것입니다.

 

다 같은 인간인줄 알았는데 예수님이 오시고 나니까 다른 인간임이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자기 실존을 알게 된 것입니다.

자신의 근원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떤 이는 하늘에 속한 사람으로 드러나고,

어떤 이는 땅에 속한 사람으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이를 심판이라고 합니다.

 

요한복음 5장을 봅시다.

 

요 5:19-29절.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20.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자기의 행하시는 것을 다 아들에게 보이시고 또 그보다 더 큰 일을 보이사 너희로 기이히 여기게 하시리라 21. 아버지께서 죽은 자들을 일으켜 살리심 같이 아들도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살리느니라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치 아니 하느니라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예수님께서 아들은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한다고 합니다.

아버지가 무슨 일을 하는가 하면 죽은 자를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자신도 아버지께서 주시는 자를 마지막 날에 모두 살려내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이 일을 아버지로부터 보고 배웠다고 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뱀과 함께 에덴동산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에덴동산은 산 자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죽은 자들은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분리를 시키신 것입니다.

 

죽은 자를 가두는 곳을 무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인 아담과 뱀이 살아가는 땅을 저주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죄로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그래서 무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이 그 아들을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가서 죽은 자들 속에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에게 생명을 주어서 살려내는 창조의 일을 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는데 곧 이 때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무덤 속에 있는 자들에게 소리를 칩니다.

그러면 무덤 속에 있던 자들에게서 두 가지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어떤 사람은 생명(구원)의 부활로 나아오고,

어떤 사람은 심판(저주)의 부활로 나아오게 됩니다.

생명의 부활이라 함은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영생을 얻는 것을 말하고,

심판의 부활이라 함은 예수그리스도를 배척하고 구원에서 멀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예수님을 통해서 심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은 영적인 모습으로 나타났지만 장차는 실제적으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영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두 모습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먼저는 영적인 것으로 주어지고, 나중에 실제적인 것으로 주어집니다.

 

하나님은 태초에 천지를 창조 하셨습니다.

천지를 장소적으로 말하면 하늘에 있는 나라와 땅에 있는 나라입니다.

하늘에 있는 나라를 천국이라 하고, 땅에 있는 나라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 하와를 범죄케 한 뱀을 저주 하실 때 종신토록 흙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이것은 흙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지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옥이란 땅의 감옥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뱀과 죄인을 땅의 감옥에 가두신 것입니다.

그래서 뱀을 상징하는 마귀를 이 세상 임금이라고 하고 이 세상 신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천지를 의인화 하면 천국 백성과 지옥 백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늘에 속한 자라고 하고, 마귀의 자녀들은 땅에 속한 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천국으로 가고, 마귀의 자녀들은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이것이 신자와 불신자로 나타납니다.

자기 백성과 자기 백성 아닌 자로 나타납니다.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는 자기 백성이라 하고, 녹명되지 않는 자는 이방인이라고 합니다.

 

이를 토기장이 비유에서는 귀히 쓸 그릇과 천히 쓸 그릇이라고 합니다.

긍휼의 그릇과 진노의 그릇이라고 합니다.

이 둘은 이 세상에서 함께 섞여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예수님에 의하여 갈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영적으로 갈라졌고, 예수님의 재림 때는 실제적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이 모습을 구약의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었습니다.죄악된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 언약의 후손과 애굽인들이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약속하신 때가 차매 모세를 구원자로 보내서 언약의 후손들을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죽음의 재앙으로부터 건져 내서 광야로 인도해 내게 하셨습니다.

이 모습이 구원 받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의한 구원으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출애굽을 시키신 것입니다.

언약적으로는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러한 일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이 된 일입니다.

하나님은 창세전에 예정된 일을 역사 속에서 펼쳐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그 아들을 예수라는 이름을 주어서 보내신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신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갈라짐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의 창조 사역에서 첫째 날 참 빛의 출현으로 빛과 어둠이 나누어지고 빛을 낮이라 칭하고 어둠을 밤이라 칭하는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빛에 속한 자들을 일컬어 천국 백성이라고 하고,

어둠에 속한 자들을 일컬어 지옥 백성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빛에 속한 자들과 어둠에 속한 자들이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영적으로 나누어졌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실제적으로 빛의 나라와 어둠의 나라로 갈라집니다.

하늘에 속한 자들은 빛의 나라인 천국으로 나아가고,

땅에 속한 자는 어둠의 나라인 지옥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를 예수님은 양과 염소 비유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양과 염소를 심판 하실 때 양에게는 창세로부터 예비 된 영생의 나라로 나아가라고 하셨고 염소에게는 영벌의 나라로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에 의하여 양은 영생의 나라로 염소는 영벌의 나라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를 심판이라고 합니다.

 

양이 염소가 되고 염소가 양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조 시에 양은 양으로 창조 하시고 염소는 염소로 창조 하셨습니다.

이 둘이 이 세상 속에 공존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종말에는 양은 양의 우리로 들여보내고 염소는 염소의 우리로 들여보내는 것입니다.

 

역사의 종말이 되면 각자의 우리로 영원히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역사의 종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빛의 아들들에게는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두 가지 심판이 있습니다.

 

영적인 심판과 실제적인 심판이 있습니다.

영적인 심판은 영적으로 갈라지는 심판이고,

실제적인 심판은 실제로 갈라지는 심판입니다.

 

예수를 믿느냐 안 믿느냐로 영적인 심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자는 천국을 상징하는 교회로 부르시고,

예수를 믿지 않는 자는 지옥을 상징하는 세상에 그대로 두십니다.

 

이 모습이 7일 창조의 모습 속에 담아 두셨습니다.

6일은 이 세상 역사 전체를 축약하고 있습니다.

6일 동안은 함께 섞여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7일째가 되면 갈라집니다.

 

6일은 세상을 상징하고 7일인 일곱째 날은 안식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7일이 되면 천국 백성들은 교회로 나아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게 되고, 지옥 백성은 세상에 그대로 있으면서 자기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1,2,3,4,5,6,7 그냥 연속적인 날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1,2,3,4,5,6일과 7일은 단절이 된 불연속적인 날입니다.

 

성도들에게는 1,2,3,4,5,6일은 세상에 속한 날이지만 7일은 일곱째 날로서 세상 바깥에 있는 여호와께서 안식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7일을 일요일이라 하지 않고 주의 날이라는 뜻으로 주일이라고 합니다.

곧 안식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일곱째 날을 예수님이 부활 하신 날로 역사 바깥의 묵시 속의 날을 예표 하는 날로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곱째 날에 교회에 오는 것은 단순한 날이 아닙니다.

장차 일어날 일을 미리 예표 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6일 동안 세상에 살다가 7일이 되면 여호와의 안식일인 일곱째 날로 교회로 오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 백성들은 6일을 일곱째 날을 위하여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6일 동안 세상에 있다가 일곱째 날은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7일을 6일의 연장으로 여겨서 일요일로서 세상에서 쉬는 날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상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6일이나 7일은 연속하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 세상입니다.

그래서 7일이 되어도 세상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있어야 하는 곳이 세상이라는 지옥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지옥을 상징합니다.

 

이것은 표상입니다.

표상 속에 실상이 담겨져 있습니다.

하늘 백성들은 일곱째 날에 교회로 모이는 것은 장차 이 세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갈 것을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예표적인 의미에서도 7일이 되면 하늘 백성과 땅에 백성들은 각자 날의 의미를 달리하면서 갈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 백성은 일곱째 날로 교회로 나아오고 땅 백성은 7일로 세상에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장차 역사의 종말이 오면 하늘에 속한 백성은 천국으로 데려감을 당하고 땅에 속한 백성들은 지옥으로 데려감을 당하는 것으로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분리가 일어납니다.

두 사람이 매를 갈고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합니다.

두 사람이 밭에 있다가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지금 7일에 신자와 불신자들이 교회와 세상으로 갈라지는 것은 장차 일어날 영원한 갈라짐을 예표적으로 살아가고 있음이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그림자이지만 장차는 실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림자 속의 일곱째 날에 장차 이루어지는 일곱째 날의 실제인 것처럼 교회로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천국에서의 삶을 미리 예행연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연습을 하는 것은 실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연습과 실제는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실제가 없는 사람은 연습하지 않습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는 눈만 뜨면 연습을 합니다.

그것은 장차 일어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는 사람들은 연습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실제로 일어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국을 갈 사람은 연습하고,

천국에 가지 않는 사람은 연습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천국의 모형으로 주어진 곳입니다.

 

그래서 7일을 세상의 날로 쉬는 사람과 7일을 여호와께서 모든 일을 다 하시고 안식하는 일곱째 날로 하늘나라를 상징하는 교회로 모여서 예배하는 사람으로 나누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7일을 일곱째 날로 장차 천국에서 안식하는 날을 미리 연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성도에게는 장차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각자 믿어지는 것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을 믿는 성도는 7일을 일곱째 날로 교회에 와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삶을 살고,

천국이 믿어지지 않는 사람은 세상에서 그대로 자기의 즐거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오라고 강요할 이유가 없습니다.

교회가 좋은 사람은 교회로 오고,

세상이 좋은 사람은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행동하는 그것이 그 사람의 주소지이고 그 사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각자 믿음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의 삶으로서 장차 일어날 심판이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각자의 믿음이 곧 신앙인 것입니다.

 

그럼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일속에 담긴 영적 의미를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일하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무슨 일을 할까요?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이미 창조가 된 피조물 속에서 행하는 창조의 일은 어떤 일일까요?

죽은 자를 살리는 것입니다.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일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건짐 받는 구원을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창조와 구원을 동의어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와 사망은 죽음입니다.

죽음은 어둠입니다.

어둠은 저녁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에 가두어진 자를 의와 생명으로 옮겨 주십니다.

어둠에 속에 있던 자들을 빛의 나라로 옮겨 주셨습니다.

밤으로 살아가는 자들을 아침으로 살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창조 사역에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에 예수님을 죽은 자를 살리는 의원으로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에게 의원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의원입니다.

그것도 죽은 자를 살리는 명의(名醫)입니다.

 

예수님은 죽은 자를 찾아가서 살리는 일을 하십니다.

죽은 자는 어둠에 속하였습니다.

저녁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어둠에서 빛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옮겨 주십니다.

 

예수님이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참 빛으로서 아침에 속하신 분입니다.

어둠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불러내십니다.

흑암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주십니다.

 

이 모습이 구약에서는 애굽에 있던 언약의 후손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서 광야로 인도하신 것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애굽은 밤이고, 광야는 낮입니다.

출애굽은 흑암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짐을 당한 것입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광야에서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신 것은 광야는 애굽과 다른 곳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밤에 불기둥으로 이스라엘의 진을 지켜주신 것은 이스라엘이 살아가는 곳이 어둠이 없는 낮의 나라 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약으로 오면 죄와 사망에서 건져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을 흑암의 나라에서 빛의 나라로 옮겨졌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어둠에 속하지 않고 빛에 속하였다고 합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온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사망에 가두어져 있는 자들에게 그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게 하여서 건져내신 것입니다.

죄인들의 죄 값을 그 아들에게 대신 담당케 하심으로 구원을 해 내신 것입니다.

우리 대신 예수님이 죽은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죽음으로 자기 백성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는 일은 이미 창세전에 예정이 된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을 봅시다.

 

벧전 1:18-21절.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19.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20.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 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 21. 너희는 저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우리가 구원을 받은 것은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 바 된 것이라고 합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것인데 말세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말세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심으로 이 세상은 말세가 된 것입니다.

 

말세란? 종말이라는 뜻입니다.

끝이란 뜻입니다.

끝이 나면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새로운 시대가 끝이 나는 것은 저녁이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 되는 것은 아침입니다.

 

말세는 저녁이 되고,

새로운 시대는 아침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제자들과 만찬을 하십니다.

떡과 포도주를 주시면서 받아먹으라고 합니다.

이것은 새 언약의 피라고 하십니다.

 

새 언약이라 함은 옛 언약은 끝이 난다는 뜻입니다.

옛 언약이 끝이 나는 의미에서 최후의 만찬은 저녁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율법 시대를 끝을 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율법 아래 있던 자들도 끝이 난 것입니다.

저녁을 맞이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봅시다.

 

요 21:12-14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 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13.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14. 이것은 예수께서 죽은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후에 세 번째로 제자들에게 나타나신 것이라”

 

예수님은 부활 하신 후에 제자들을 찾아가서 조반을 먹이십니다.

조반이란? 아침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입니다.

그래서 아침을 먹이신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는 저녁을 먹이셨고,

십자가를 지시고 난 후에는 아침을 먹이셨습니다.

이것은 십자가 이전은 저녁이고 십자가 이후는 아침이라는 뜻입니다.

십자가 이후는 새로운 날이라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리게 되었습니다.

아침이 밝은 것입니다.

아침을 먹은 자는 일을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일을 시키기 위하여 아침을 먹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저녁에 속한 자들을 아침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자면 반드시 저녁의 삶을 청산하여야 합니다.

이를 종말이라고 합니다.

 

종말은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오심을 세상 마지막 때라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은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시작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고 새롭게 되었다고 합니다.

 

창세전 언약은 종말의 언약이면서 새 시대의 언약입니다.

옛 세상은 끝내고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밤이 먼저 주어지고 아침이 나중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종말이 먼저이고 창조가 나중인 것입니다.

 

언약적인 의미에서는 종말이 창조를 앞선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 창조가 된 세상이 죄와 사망 가운데 가두어진 상태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1장 2절의 모습이 바로 저녁이고 어둠인 것입니다.

 

3절에 어둠인 세상에 빛이 온 것입니다.

빛이 오자 어둠은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저녁이 먼저이고 아침이 나중이고,

죽음이 먼저이고 생명이 나중이고,

지옥이 먼저이고 천국이 나중이고,

구약이 먼저이고 신약이 나중이고,

율법이 먼저이고 은혜가 나중이고,

육적 이스라엘이 먼저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나중이고,

흙에서 난 자가 먼저이고 하늘로서 난 자가 나중입니다.

 

이 모두가 세상 속에서 언약이 펼쳐지는 과정이고 순서입니다.

죄 아래 가둔 것은 빼내기 위함입니다.

어둠에 가두어둔 것은 빛으로 불러내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먼저 타락의 모습으로 두신 것입니다.

 

이를 언약으로 보면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나오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옛 언약은 죄 아래 가두는 언약입니다.

이를 율법은 우리를 하나님의 진노 아래 가두는 것이라고 합니다.

 

롬 11:32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하나님께서 불 순종가운데 가두신 것은 긍휼을 베풀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역설입니다.

구원이 뭐냐?

긍휼을 입는 것입니다.

 

긍휼은 죄 아래 가두어진 자들에게만 주어집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죄 아래 가두어진 자라는 것을 알리는 일을 먼저 하십니다.

그것이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로마서 3장을 봅시다.

 

롬 3:19-20절.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율법을 왜 주셨는가요?

죄를 깨닫게 하시고자 함입니다.

죄를 깨닫게 하신 것은 구원 받아야 할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율법도 복음이 되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복음입니까?

죄를 깨닫게 하여서 구원을 찾게 되기 때문입니다.

마치 아프니까 병원을 찾게 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은 의원이십니다.

의원은 병자를 위해서 존재합니다.

그럼 먼저 너희는 병자라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율법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세례 요한을 먼저 보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을 일컬어 율법과 선지자라고 합니다.

율법이 곧 선지자의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선지자는 죄를 고발하여서 하나님께 돌아가라는 일을 합니다.

율법이 그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세례 요한이 죄를 고발하여서 예수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라는 일을 한 것입니다.

세례 요한을 일컬어 주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예수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게 하는 인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율법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였습니다.

율법이 세례 요한처럼 주의 길을 예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을 봅시다.

 

갈 3:23-25절. “믿음이 오기 전에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고 계시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믿음이 오기 전까지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고 합니다.

율법 아래 매인바 되었다 함은 죄와 사망 가운데 가두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너희는 지금 죄와 사망에 가두어져 있다고 고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적극적으로 율법이 죄와 사망에서 건져 주실 분을 찾아가게 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합니다.

 

몽학선생이란? 어린 아이들을 돌보는 자를 말합니다.

학교에 데려다 주기도 하고 데려 오기도 하는 일을 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예수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을 천사들의 손을 빌려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뭐냐?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누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입니다.

 

우리가 죄인이라는 사실을 어떻게 압니까?

율법을 통해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이 없으면 죄를 모르고,

죄를 모르면 예수그리스도를 믿을 수가 없습니다.

율법이 우리로 하여금 예수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해 준 것입니다.

 

율법이 죽인 자를 예수그리스도가 살리십니다.

율법은 우리 옛 사람을 죽이고, 예수그리스도는 새 사람으로 살려 내십니다.

율법과 예수그리스도는 짝이 되어서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항상 먼저 나온 것이 타락하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도 다 창세전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가인이 먼저이고, 아벨이 나중이고,

이스마엘이 먼저이고, 이삭이 나중이고,

에서가 먼저이고, 야곱이 나중이고,

사울 왕이 먼저이고, 다윗 왕이 나중이고,

육적 이스라엘이 먼저이고, 영적 이스라엘이 나중인 것입니다.

 

항상 먼저 나온 것이 타락하고 나중에 나온 것이 온전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중에 나온 것이 먼저 나온 타락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첫 아담이 뱀에게 미혹당하여서 실패한 것을 마지막 아담인 예수님께서 뱀의 머리를 깨트림으로서 회복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옛 언약이 먼저이고, 새 언약이 나중이고,

옛 사람이 먼저이고, 새 사람이 나중이고,

지옥을 먼저주고, 천국을 나중에 주는 것입니다.

 

죄에서 의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버려짐에서 되찾음으로,

고난에서 영광으로,

법에서 은혜로,

육에서 영으로,

흙에 속한 형상에서 하늘에 속한 형상으로,

구약에서 신약으로,

복사본에서 원본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창조 역시 철거 될 것을 먼저 주시고 영원한 나라는 나중에 주십니다.

이 세상이 철거가 되고 나면 새 하늘과 새 땅이 나중에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장을 봅시다.

 

히 1:10-12절.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11. 그것들은 멸망할 것이나 오직 주는 영존할 것이요 그것들은 다 옷과 같이 낡아지리니 12. 의복처럼 갈아 입을 것이요 그것들이 옷과 같이 변할 것이나 주는 여전하여 연대가 다함이 없으리라 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태초에 철거가 될 세상을 만들었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은 철거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에 나타난 세상은 철거가 될 세상인 것입니다.

용도가 다하면 폐기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허상이고 복사본입니다.

원본은 하늘에 있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로부터 나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이 세상은 복사본인 것입니다.

원본은 하늘나라인 것입니다.

 

이 땅은 복사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속한 것은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습니다.

하늘에 것은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철거가 되고 난 후 나중에 주어집니다.

 

흙에서 난 우리도 허상입니다.

실상은 하늘로부터 난 새 사람입니다.

옛 사람은 흙에서 난 죽을 몸이고, 새 사람은 하늘로서 난 영생하는 몸입니다.

땅의 장막이 무너지면 하늘로 오는 장막을 덧입게 됩니다.

 

이 세상의 삶은 장차 올 삶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삶에 올인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다 사라질 허상이기 때문입니다.

 

허상에서 실상을 준비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면 땅에 것을 벗어버리고 위에 것을 생각하고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을 봅시다.

 

골 3:1-3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았느냐?

그러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흙에서 난 몸은 가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으로 거듭난 새 사람이 진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흙에서 난 사람의 가치관으로 살지 말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는 하늘나라 가치관으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입니다.

땅의 일을 생각하지 말라고 합니다.

사라질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은 저녁이고, 신약은 아침입니다.

저녁은 비우는 삶이고, 아침은 채우는 삶입니다.

옛 사람은 저녁이고, 새 사람은 아침입니다.

옛 사람은 후패하여지고, 새 사람은 강건해져 갑니다.

 

흙에서 난 사람은 구약 사람이고,

하늘로부터 난 사람은 신약의 사람입니다.

 

구약은, 마이너스(-)로 진행이 되고,

신약은, 플러스(+)로 진행이 됩니다.

 

왜 그런가요?

구약은 죽음으로 나아가고,

신약은 영생으로 나아가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저녁에 속하였기 때문에 후패해져 가고,

새 사람은 아침에 속하였기 때문에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먼저는 흙에 속한 몸을 주시고 나중에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을 주시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봅시다.

 

고전 15:42-54절.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두 사람이 있습니다.

흙에서 난 사람과 하늘로서 난 사람이 있습니다.

흙에서 난 몸을 육이라고 하고, 하늘로서 난 몸을 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먼저 흙에서 난 육의 몸이 먼저라고 합니다.

흙에서 난 몸이 죽으면 하늘로서 난 몸을 입게 된다고 합니다.

 

흙에서 난 몸은 썩을 것이라고 하고, 하늘로서 난 몸은 신령한 것이라고 합니다.

흙에서 난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고 합니다.

흙에서 난 몸은 씨와 같고, 하늘로서 난 신령한 몸은 씨 속에 담긴 나무와 같고 열매와 같은 것입니다.

 

씨가 열매를 품고 있는 것입니다.

농부는 씨 속에 있는 나무와 열매를 끄집어내고자 씨를 죽입니다.

씨는 죽어서 나무와 열매를 내게 됩니다.

겉모양으로는 씨가 죽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씨의 삶을 버림으로서 자기 안에 있는 새로운 몸을 토해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먼저 흙에 속한 몸을 주셨습니다.

나중에 하늘에 속한 몸을 주십니다.

흙의 몸 속에 하늘의 몸을 담아 놓은 것입니다.

그 속에 하늘의 몸이 담겨져 있는 사람은 자기 안에 있는 하늘의 몸을 위해서 죽음의 길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부활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나서 하늘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하늘의 몸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십자가를 피하고자 하지 않습니다.

성령이 그 길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이 율법에서 은혜로 나아가는 것으로 진행이 됩니다.

우린 모두가 율법 아래서 시작을 하였습니다.

교회에 처음 오면 율법부터 가르침을 받게 됩니다.

율법은 그릇과 같은 것입니다.

 

그릇은 내용을 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내용과 그릇은 짝입니다.

둘 중에 하나가 없으면 불완전합니다.

둘이 짝이 되어서 온전함을 이루어냅니다.

 

율법은 그릇이고, 은혜는 내용입니다.

율법은 겉 사람이고, 은혜는 속 사람입니다.

율법은 흙으로 난 사람이고, 은혜는 영으로 난 사람입니다.

 

먼저는 육이고, 나중이 영입니다.

먼저는 흙에서 난 사람이고, 나중은 말씀으로 난 사람입니다.

먼저 사람은 흙에 속하였고, 나중 사람은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을 봅시다.

 

갈 4:1-7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성도들은 원래 하나님 나라를 유업을 이을 아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렸을 동안에는 잠시 초등학문 아래 종으로 두셨습니다.

율법을 초등학문이라고 합니다.

 

왜 율법을 초등학문이라고 할까요?

이는 강제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렸을 때는 틀이 만들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래서 자유 보다는 법으로서 형식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이를 종이라고 합니다.

 

종이란? 법으로 다스림을 받는 자입니다.

 

율법 아래서 형식을 배워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순종의 교육을 받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정한 때가 되면 율법 아래서 은혜로 옮겨주십니다.

 

성령이 오시면 종으로 살지 않고 아들로 살아가게 됩니다.

율법 아래서는 종노릇 하였지만 은혜 아래서는 아들로 살아가게 됩니다.

종에서 해방을 받고 보니 감사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서는 억지로 하였지만 은혜 아래서는 자원함으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저녁에서 아침으로 나아가는 삶을 사셨습니다.

육체로 오신 예수님은 종으로 사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 하신 후로는 만유의 주가 되셨습니다.

 

아브라함 언약도 저녁에서 아침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죄와 사망의 나라에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창 15:13-16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 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은 400년 동안 애굽에서 종노릇하면서 저녁으로 살았습니다.

죄와 사망의 그늘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언약하신 때가 차매 하나님이 모세를 보내서 빼내 오게 하셨습니다.

어린 양의 피 흘리심으로 종에서 아들의 지위를 얻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한 자들을 하나님의 장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아들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장자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아들은 종의 과정을 지나온 자들입니다.

 

천국은 지옥을 지나온 자들에게 주어지는 곳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상급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을 지옥에 두고서 천국을 소망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는 종으로 살아가게 하셨고, 천국에서는 아들로 살아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천국은 반드시 십자가를 지나가야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십자가 너머에 천국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겉으로는 죽음이지만 그 너머에는 영생입니다.

 

구원이란? 저녁을 지나 아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눈물 골짜기를 통행하는 것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리고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것입니다.

 

시 126장5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80장5절 “주께서 저희를 눈물 양식으로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시 42장3절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시 56장8절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시편기자는 눈물을 양식으로 삼았다고 합니다.

주께서 눈물 골짜기로 통행케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은 필수 코스입니다.

 

눈물로 씨를 뿌림이 없이는 기쁨으로 단을 거두는 일은 없습니다.

먼저는 눈물로 씨를 뿌림입니다.

 

나의 신앙은 어디입니까?

어디를 지나고 있습니까?

 

저녁입니까?

아침입니까?

 

밤이 깊으면 아침이 곧 밝아옵니다.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신자는 슬퍼하는 자가 아닙니다.

 

땅에 일을 생각하니까 슬퍼지는 것입니다.

마귀는 현실을 가지고 우리에게 두려움을 줍니다.

언약을 놓치면 어둠에 빠지게 됩니다.

 

성도는 세상 적으로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모든 것을 가진 자들입니다.

마귀가 환경을 어렵게 할 수는 있어도 우리의 생명은 건들 수가 없습니다.

욥처럼 고난에 빠질 수는 있어도 구원은 빼앗기지 않습니다.

 

일을 시작하신 이가 끝 날까지 반드시 이루어 가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에는 하나님의 자존심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자신의 명예를 걸고서 지켜내십니다.

 

성도는 이미 이긴 자입니다.

사망을 지나면 영생이 기다립니다.

이 세상을 떠나면 천국이 기다립니다.

 

그러니 안심하세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습니다.

 

현실이 저녁이십니까?

머물러 있는 저녁은 없습니다.

이 또한 지나갑니다.

약속을 믿음으로 이겨내십시오.

 

신앙 속에는 오래 참음도 있습니다.

인내함도 있답니다.

잘 견뎌 내는 것도 신앙입니다.

 

칠흑 같은 어둠도 아침이 오면 다 물러갑니다.

아침이 곧 옵니다.

아니지요.

지금 아침이 오고 있는 중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저녁이 없는 일곱째 날이 곧 옵니다.

날마다 아침인 일곱째 날 안식하는 날이 곧 옵니다.

육적으로는 저녁이지만 영적으로는 이미 아침입니다.

역사 속에서는 비록 여섯째 날이지만 예수 안에서는 일곱째 날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시험 당할 즈음에 이미 피할 길도 준비해 두셨습니다.

피할 길 없이 시험 당하게 하지 않습니다.

시험이 엄청난 것 같아도 믿음으로 보면 다 이겨 낼 수 있는 것들이니 낙심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체급에 맞도록 시험하십니다.

그러니 믿음 안에서 소망을 가지시고 잘 이겨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저녁에서 아침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서 아침이 오고 있음을 보게 하여서 현실의 어둠을 물리치게 하옵소서. 환경이 어려울 때 언약이 믿어지게 하시고, 육신의 아픔이 있을 때 하늘로부터 오는 새로운 몸을 입을 것을 생각케 하여서 아픔을 이겨내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언약 안에서 하늘의 소망으로 이긴 자로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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