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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1~3 강해

♣(창세기 1-3 강해)9강.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 (창 1:24-31)

by coroa 2022. 8. 7.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9강.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 (창 1:24-31)

창 1:24-31절.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육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고(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육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정낙원 목사

 

오늘은 여섯째 날에 대하여 살펴봅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이 된 창조가 이제 마지막 날에 도달하였습니다.

창조가 7일이지만 일곱째 날은 모든 일을 마치고 안식하는 날이므로 창조의 일은 여섯째 날로 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조는 여섯째 날로 끝이 나는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무슨 일을 하셨는가요?

짐승과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그냥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을 창조하였습니다.

 

오늘은 여섯째 날에 창조가 된 짐승과 사람의 정체가 무엇인가?

그 영적 의미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이 된 창조가 여섯째 날에 어떤 모습으로 결론이 나는지를 살펴봅시다.

 

미리 말씀 드리지만 성경이 증거하는 것은 끝은 항상 타락으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타락 할 때 하나님이 개입을 하셔서 새로운 세상을 여셨습니다.

종말은 곧 새로운 창조를 몰고 왔습니다.

창세기 1장의 태초에 하나님이 역사 속에 오셔서 하신 일이 혼돈과 흑암 속에 있는 세상을 새로운 세상으로 창조하였습니다.

 

노아 시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이 관영할 때 홍수로 쓸어버리고 새로운 세상을 창조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도 마찬가지입니다.

타락한 구약 교회를 끝내고 새로운 신약 교회 시대를 열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에 속한 타락한 교회를 끝내고 새로운 세상을 열게 됩니다.

이름하여 천년왕국 시대입니다.

 

역사는 항상 끝에는 타락으로 종말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살펴보는 여섯째 날도 역사의 종말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좋게 끝이 날 것 같지가 않습니다.

 

맞습니다.

교회의 타락이야기 입니다.

그런데 말이죠.

타락 속에 구원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우린 타락 속에서 구원을 받는 자들이므로 소망적인 것입니다.

겉으로는 실패한 것 같지만 실상은 이긴 자들입니다.

 

역설적으로 재미있는 것은 타락이 일어나야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교회가 타락해야 예수님이 재림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타락은 새로운 희망이 되는 것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잘 돌아갈 것 같으면 왜 멸망을 시키겠습니까?

안 돌아가니까 멸망을 시키고 새로운 세상을 만드는 것입니다.

 

그럼 역사의 시작과 끝을 살펴봅시다.

 

창세기 1장의 창조는 시간의 시작을 말합니다.

창세전이라는 영원 속에 계시던 하나님이 태초라는 시간 속으로 오신 것은 창세전에 계획하신 일을 역사 속에서 펼쳐보이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펼쳐 보이고자 하시는 일은 창세전 언약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창세기 1장에서 창조 사역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조의 모습이 성도의 구원 모습과 같이 갈라내고 채우고 안식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역사 속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고,

의와 생명으로 충만케 하시고,

하나님 나라에서 안식하게 하여 주십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삼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삼직은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입니다.

선지자직은 육체로 오셔서 자기 백성들의 죄를 대신하여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이루셨습니다.

제사장직은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셔서 의와 생명으로 자라가게 하십니다.

왕직은 장차 재림을 하여서 성도들을 천년왕국에서 안식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는 것으로 진행이 되는 것입니다.

시작과 끝이 있다 함은 구원이 진행되어 가는 과정이 있다는 뜻입니다.

창세전 언약의 내용이 단번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역사 속의 시간이라는 흐름과 함께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는 뜻입니다.

 

첫째 날로 시작이 된 창조의 일이 날이 진행될수록 그 모습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져서 여섯째 날이 되면 완성이 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심으로 다 이루심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 고 합니다.

그러면 일곱째 날에 모든 수고를 그치고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입니다.

창조 속에 성도들의 구원의 모습 담겨져 있습니다.

구원이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의 모습으로 전개가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 삼 시제(時制)로 되어 있듯이 창조의 모습이 세 텀으로 일어납니다.

 

첫째 텀은, 갈라내는 것이고,

둘째 텀은, 채우는 것이고,

셋째 텀은, 안식하는 것입니다.

 

첫째 텀인,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갈라내는 일을 하셨고,

둘째 텀인,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채우는 일을 하시고,

셋째 텀인, 일곱째 날은 모든 일을 다 마치시고 안식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첫째 텀과 둘째 텀은 서로 짝입니다.

 

첫째 날은 넷째 날과 짝이고,

둘째 날은 다섯째 날과 짝이고,

셋째 날은 여섯째 날과 짝이입니다.

 

첫째 날 빛이 있으라는,

넷째 날에는 해와 달과 별로 나타났고,

 

둘째 날 궁창 위와 궁창 아래로 갈라짐은,

다섯째 날 궁창 위의 새들과 궁창 아래 바다에 물고기들을 만드심으로 나타났습니다.

 

셋째 날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그 속에서 뭍을 끄집어내시고 물은 바다라 칭하시고 뭍을 땅이라 칭하시고 그 땅에 씨 맺는 채소와 과목들을 내게 하셨는데,

이것이 여섯째 날에는 땅의 짐승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으로 나타납니다.

 

이 둘 사이에는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리 할 때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짐승과 사람을 갈라내는 심판을 단행합니다.

사람인 자기 백성들은 천국으로 데리고 가고 짐승인 마귀의 자녀들은 지옥으로 보냅니다.

그리하여 역사는 종결이 됩니다.

 

역사의 존재 의미는 성도들의 구원입니다.

성도들의 구원과 함께 시작을 하고 성도들의 구원과 함께 종결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의 구원이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이라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이루어지 보니까 구원을 세 가지 시제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간과 함께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과거 시제로 “구원을 받았다” 라고 하고,

현재 시제로 “구원을 이루어가라” 하고,

미래 시제로 “구원을 이룰 것이다” 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육체로 과거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이것이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로 나타났습니다.

 

부활 후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오셔서 현재 구원을 이루어 가십니다.

이것은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로 나타났습니다.

 

장차 재림하셔서 미래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일곱째 날로 나타납니다.

 

구원은 생명의 자람과 같습니다.

 

씨가 죽는 과정이 있고,

싹을 내고 잎을 피워서 줄기는 내어 열매를 맺는 과정이 있습니다.

열매가 다 익으면 추수하여서 곡간에 들어가게 됩니다.

 

구원의 시작이 옛 사람의 죽음으로부터 시작 됩니다.

이것은 씨가 죽는 것과 같습니다.

씨가 죽는 것은 새로운 생명을 내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것이 아니고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모든 생명은 처음에는 미미하게 시작을 합니다.

처음에는 희미하던 것들이 과정을 통하여서 그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게 됩니다.

이 모습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점진적으로 나타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된 것이 여섯째 날이 되면 그 모습이 완연하게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새끼 시절에는 함께 목동의 보호로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자라가면서 점차적으로 그 본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럼 목동은 서로의 우리에 분리하여서 따로 둡니다.

 

목자가 양을 칠 때 낮에 풀을 뜯어 먹을 때는 양과 염소를 함께 풀어 놓습니다.

그러나 저녁이 되면 양과 염소를 각자의 우리로 갈라서 넣습니다.

이는 양과 염소를 한 우리에 함께 두면 양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목자는 들에 방목을 할 때는 함께 두었지만 저녁이 되면 각자의 우리로 분리를 시켜서 쉼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는 이 세상에 있는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합니다.

양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염소는 마귀의 자녀입니다.

하나님은 이 둘을 정한 때까지 함께 자라게 하십니다.

세상의 끝이 다다르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와 마귀의 자녀는 그 본성들을 드러내게 됩니다.

그 모습을 여섯째 날 짐승과 사람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천국을 7 가지로 비유 하셨습니다.

씨를 뿌리는 비유로 시작을 하여서 마지막은 그물 속에 고기를 갈라내는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7 가지 비유는 이 세상 속에서의 복음이 어떻게 확산이 되고 어떻게 끝이 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 7 가지 비유를 살펴봅시다.

 

첫째 비유는 씨 뿌리는 비유입니다.

 

마 13:3-8절 “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저희에게 말씀하여 가라사대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뿌릴새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5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 해가 돋은 후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 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것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후에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복음이 전해지다 보면 이 사람 저 사람 다 받아들이지만 그렇다고 다 결실을 맺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복음은 온 세상에 뿌려지지만 그 결실은 오직 좋은 땅만이 합니다.

좋은 땅이란 농부가 관리하는 땅을 말합니다.

이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만이 끝까지 결실하게 됩니다.

 

누가 참이고 누가 거짓인지는 각양의 시험과 환란을 통과해 보아야 합니다.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들은 처음에는 예수를 따르는 척 하다가도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게 되면 믿음을 져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는 길은 인간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는 하나님께서 믿어지게 해 주어야지만 믿을 수가 있습니다.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예수님께서 나는 하늘로서 온 산 떡이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나를 먹으면 영생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수많은 무리들이 떠나갑니다.

 

이에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너희도 떠나갈래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하여서 영생의 말씀이 여기 계신데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라고 하면서 떠나지 않겠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라도 내게 올 수가 없고 오직 아버지께서 내게 이끌어주는 자들만이 오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이끌어 준 자들만 구원을 하신다고 합니다.

제자들이 바로 아버지께서 이끌어 준 자들입니다.

 

이들이 바로 좋은 땅인 것입니다.

천부께서 심지 않은 것은 다 뽑히게 됩니다.

천부께서 심은 자들이 바로 결실하는 좋은 땅입니다.

 

천부께서 심지 않은 자들은 처음에는 믿는 척 하다가도 예수 때문에 어려운 일을 당하면 다 떠나갑니다.

이들이 바로 표적의 떡만 먹고 다 떠나간 자들입니다.

 

둘째 비유는 밭에 곡식과 가라지 비유입니다.

 

마 13:24-30절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 25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 26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보이거늘 27 집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29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30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빼내시고자 하심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로 율법에서 은혜 아래로 옮겨 놓았습니다.

이것이 오순절 강림으로 교회가 세워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교회 안에 가짜들을 심어 놓아서 예수님의 일하심을 방해합니다.

 

이들이 바로 곡식 속에 심겨진 가라지들입니다.

어느 시대이고 교회 안에는 항상 곡식과 가라지 즉 양과 염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추수 때까지 함께 두십니다.

이는 염소를 가지고 양들을 믿음 안으로 몰아넣고자 하는 일을 하십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초대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금새 분란에 휩싸이고 맙니다.

구제로 인하여 헬라파 유대인과 히브리파 유대인들 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맙니다.

 

그래서 일곱 집사를 세웁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사단의 종이 있었습니다.

니골라였습니다.

 

니골라는 영지주의자였습니다.

교회 안에 인본주의 사상을 심어 놓은 자입니다.

요한계시록 2장의 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버가모 교회를 보면 니골라 당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니골라 사상은 가라지처럼 그 뿌리를 교회 안에 깊숙이 내려서 곡식들을 시험 들게 합니다.

주인은 다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뽑지 않는 것은 곡식이 다칠까봐 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리지를 통해서 곡식들을 단련케 하시는 일을 합니다.

곡식은 비록 가리지로부터 아픔을 당할지라도 농부가 지키기 때문에 뽑히지 않습니다.

농부가 끝까지 지켜내십니다.

 

셋째와 넷째는 겨자씨와 누룩 비유입니다.

 

마 13:31-33절 “또 비유를 베풀어 가라사대 천국은 마치 사람이 자기 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32 이는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자란 후에는 나물보다 커서 나무가 되매 공중의 새들이 와서 그 가지에 깃들이느니라 33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이것은 복음이 온 세상으로 어떻게 확산이 되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겨자 씨는 모든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입니다.

이는 세상 속에 복음의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가루 서 말 속에 누룩처럼 미미하지만 결국에는 온 세상에 확산이 된다는 것입니다.

 

천국 운동은 큰 운동이 아니고 작은 운동입니다.

복음은 화려하게 전해지지 않습니다.

아주 미미하게 펴져 나갑니다.

 

예수님은 큰 배를 타지 않았습니다.

작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갔습니다.

비록 풍랑이 일어서 배에 물이 들어오긴 하였지만 침몰하지는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타고 가시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피 흘림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복음을 받으면 삶 속에 풍랑이 일어서 배에 물도 들어오고 많은 환란도 겪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침몰당하지 않습니다.

마귀는 그 토록 복음을 막고자 하였지만 복음은 끝까지 온 세상으로 전해져 왔습니다.

피 흘림 속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의 피 흘리심이 12 제자를 낳았고,

12 제자들의 피 흘림으로 속 사도들을 낳았고,

속 사도들이 피 흘림으로 가는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우리나라도 대동강 변에서 토마스 선교사의 피 뿌림으로 복음이 전해졌습니다.

 

복음은 피를 먹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으면 피 흘림의 구조 속으로 밀려들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한 알의 밀알로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다섯째와 여섯째는 밭에 감추인 보화와 진주 장사 비유입니다.

 

마 13:44-46절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그 안에 성령이 임한 성도는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 나그네와 행인으로 살아가는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하늘나라를 소망하면서 자신의 삶을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을 맛본 사람은 복음을 최고의 가치로 두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더 깊은 진리를 알아가고자 합니다.

복음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삶을 투자하게 됩니다.

하늘에 것을 위하여 땅에 것을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그 사람을 장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을 받은 성도는 복음에 이끌림을 당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겉 사람은 후패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점점 하늘에 사람으로서 그 정체성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되는 것입니다.

 

맨 마지막 일곱 째 비유는 그물 속에 들어온 고기를 갈라내는 것으로 마감합니다.

 

마 13:47-50절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종말이 되면 어부가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그물 속에 각양의 고기들이 들어 있습니다.

그럼 주인은 고기 속에서 자신이 잡고자 하는 어종만 골라내게 됩니다.

좋은 고기는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버려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의인이 있는 곳이 교회입니다.

이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심판을 말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타작마당을 추수합니다.

예수님의 타작마당은 교회입니다.

교회 안에 곡식과 가라지가 있는 것입니다.

양과 염소가 있는 것입니다.

 

종말이 되면 모두가 번성하고 충만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모습으로 드러나고,

마귀의 백성은 마귀적으로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모습을 확연하게 드러내게 됩니다.

 

계22:11절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양은 양의 본성을 드러내고, 염소는 염소의 본성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불의가 좋은 사람은 불의로 살고, 의가 좋은 사람은 의로 살아갑니다.

더러운 것을 좋아 하는 사람은 더러운 대로 살고, 거룩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룩한 것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천국이 좋은 사람은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고,

세상이 좋은 사람은 세상을 향하여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좋은 사람은 교회로 모이고, 세상이 좋은 사람은 세상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복음이 좋은 사람은 진주장사처럼 자기 인생을 팔아서 복음을 쫓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열매로 그 나무를 안다고 하신 것입니다.

삶이 곧 열매인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 하늘을 소망하는 사람이 있고,

교회에 와서 땅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하늘의 가치로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땅의 가치로 살아갑니다.

이게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골라낸다고 하는 것입니다.

 

7가지 비유는 창조 7일과 같은 것입니다.

씨 뿌리는 것이 첫째 날이라고 한다면 그물 속에 들어온 고기를 갈라내어 그릇에 담는 것은 일곱째 날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일곱 가지 비유를 하시면서 맨 마지막을 그물 속에 고기를 갈라내는 것으로 말씀 하시는 것은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갈라낸다는 뜻입니다.

지금은 그물을 온 바다에 치고 고기를 잡는 때입니다.

 

그 끝이 다다랐습니다.

잠시 후면 그물을 끌어 올립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면 영원히 갈라지게 됩니다.

 

그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직전인 여섯째 날은 사단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가 각자의 본성으로 드러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람과 짐승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은 마귀의 자녀이고,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짐승과 사람은 그 본성 자체가 다릅니다.

살아가는 방식도 다릅니다.

 

짐승은 땅에 속하였고,

사람은 하늘에 속하였습니다.

짐승은 흙의 기운으로 살아가고,

사람은 하늘의 기운으로 살아갑니다.

 

구원이 뭐냐?

흙에 사람이 하늘에 사람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성경은 흙에서 난 자를 짐승이라고 하고 하늘로 난 사람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간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이 되면 흙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는 확연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 속성들을 드러내게 됩니다.

살아가는 모습이 다름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땅에 속한 사람은 짐승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사람의 모습으로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짐승은 땅의 것을 쫓아가고, 사람은 하늘에 것을 쫓아가게 됩니다.

악인은 악인의 모습으로 드러내고, 선인은 선인의 모습을 드러내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창조 7일과 같이 전개가 됩니다.

 

막 4:26-29절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할 때는 씨를 땅에 뿌림과 같이 임하였습니다.

씨가 죽어서 싹을 내고 잎을 내고 줄기를 내고 열매를 맺어갑니다.

열매가 다 익으면 추수하여서 곡간에 들이게 됩니다.

이건 예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이라는 밭에 예수라는 씨를 뿌렸습니다.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뿌림을 당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하나님 나라는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하나님의 농사가 시작이 된 것입니다.

넉 달 농사가 시작 되었습니다.

씨가 싹을 내고 잎을 내고 줄기를 내면서 2천년 동안 열매를 맺어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 끝이 이르렀습니다.

추수 때가 가까웠습니다.

곡식과 가라지로 갈라지고 알곡과 쭉정이로 갈라지는 때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갈라짐이 일어납니다.

사람은 사람이 사는 나라로 옮겨지게 되고,

짐승은 짐승의 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이를 예수님은 마태복음 25장에서 양과 염소의 심판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창세로부터 예비 된 각자의 나라로 옮겨져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이 여섯째 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임박한 때입니다.

열매가 다 익어서 각각의 맛을 내는 때입니다.

 

산 자는 산 자로서의 맛을 내고,

죽은 자는 죽은 자의 맛을 내고 있습니다.

 

산 자는 생명의 향기를 토하고,

죽은 자는 사망의 향기를 토하게 됩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고,

땅에 속한 자는 떡을 양식으로 삼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창조 7일은 우리의 신앙의 여정과도 같습니다.

신앙은 생명의 자람과도 같습니다.

사람으로 비유하면 뱃속에 있다가 엄마의 해산의 수고로 바깥세상으로 나옵니다.

 

이건 마치 어린 양의 피로 홍해바다를 건너서 출애굽 하는 것과 같습니다.

출애굽은 애굽에서의 인생은 종말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광야로 나와서는 새로운 인생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백성은 마치 엄마 뱃속에서 나온 자들과 같습니다.

어린아이입니다.

부모의 도움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홍해바다를 건너온 것이 첫째 날이라고 한다면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은 일곱째 날이 됩니다.

광야에서 여섯째 날까지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출애굽과 동시에 광야 40년 동안 엿새가 차기까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약속의 땅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합니다.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가나안에서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가나안은 애굽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가나안에서 애굽식으로 살면 쫓겨나게 됩니다.

 

신명기 11장을 봅시다.

 

신 11:8-15절 “그러므로 너희는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모든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너희가 강성할 것이요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얻을 것이며 9 또 여호와께서 너희의 열조에게 맹세하사 그와 그 후손에게 주리라고 하신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하리라 10 네가 들어가 얻으려 하는 땅은 네가 나온 애굽 땅과 같지 아니하니 거기서는 너희가 파종한 후에 발로 물 대기를 채소밭에 댐과 같이 하였거니와 11 너희가 건너가서 얻을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1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권고하시는 땅이라 세초부터 세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13 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명하는 나의 명령을 너희가 만일 청종하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섬기면 14 여호와께서 너희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 너희가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을 얻을 것이요 15 또 육축을 위하여 들에 풀이 나게 하시리니 네가 먹고 배부를 것이라”

 

모세는 가나안은 애굽과 다른 땅이라고 합니다.

농사법이 다르다고 합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고 합니다.

애굽에서는 너희가 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가나안은 하나님이 농사를 지어준다고 합니다.

 

애굽은 물이 저축이 되어 있어서 스스로의 힘으로 농사를 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산악 지대라서 물을 저축하여서 사용할 수가 없습니다.

파종을 하고 나서는 하나님만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어서 자라게 해 주십니다.

 

가나안에서 살려면 믿음이 필요합니다.

씨를 뿌리고 난 후에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서 비를 주어서 자라게 해 준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나안은 자기 실력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이 사실을 광야 40년 동안 배워왔습니다.

이스라엘은 광야 40년 동안 단 한 번도 농사를 지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먹여 주셨습니다.

아침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서 먹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을 안다고 하면 가나안 땅에서도 그리 믿고 살아야 합니다.

믿으면 평안이고,

믿지 않으면 불안입니다.

결국 믿음의 문제입니다.

 

광야 40년은 믿음을 자라게 하는 과정입니다.

그 과정을 잘 지나온 사람들은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생사화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평안하게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면 매일 매일 불안하고 두려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 역사는 광야 40년과 같습니다.

천국에서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는 역사입니다.

교회에서 약속의 땅인 천국에서 살아 갈 수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여섯째 날은 각자의 본성이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떡으로 사는 자와 말씀으로 사는 자가 드러납니다.

짐승은 떡으로 살고, 사람은 말씀으로 살아갑니다.

양식을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이 먹을 양식이 있고, 사람이 먹을 양식이 있습니다.

 

어떤 가치로 살아가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정체성을 알 수가 있습니다.

땅에 속한 짐승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를 구하고,

하늘에 속한 사람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어디를 지향하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

 

짐승은 땅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사람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게 됩니다.

 

어떤 의(義)로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은 인간의 의로 살아가고,

사람은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갑니다.

 

어떤 원리로 살아가는지를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짐승은 법으로 살아가고,

사람은 은혜로 살아갑니다.

 

법은 죽이는 것이고,

은혜는 살리는 것입니다.

마귀에게 속한 자들은 살리는 복음을 가지고도 죽이는 일을 하고,

예수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죽이는 법을 가지고도 살리는 일을 합니다.

 

법과 은혜는 빵틀과 같습니다.

 

붕어빵 틀에서는 붕어빵이 나오고,

국화빵 틀에서는 국화빵이 나오듯이,

법에 속한 사람은 법을 토해내고,

은혜에 속한 사람은 은혜를 토해내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이를 열매로 나무를 안다고 하였습니다.

정죄와 심판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법이라는 나무이고,

용서와 긍휼의 열매를 맺는 사람은 은혜의 나무입니다.

 

법이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정죄와 비판과 사망의 냄새를 토해내게 되고,

은혜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용서와 긍휼과 사랑이라는 생명의 냄새를 풍기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살리는 복음을 가지고도 정죄하고 죽이는 일을 하고,

어떤 사람은 죽이는 율법을 가지고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예수에게 속한 산 자들은 살리는 일을 하고,

마귀에게 속한 죽은 자들은 죽이는 일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각 사람들이 각자의 냄새들을 풍기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생명의 냄새를 풍기면서 살아가고,

어떤 사람들은 사망의 냄새를 풍기고 살아갑니다.

 

창조와 구원은 동의어입니다.

성경은 만물의 창조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백성 구원하는 이야기가 중심 주제입니다.

 

그럼 여섯째 날에 창조가 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가 된 사람에 대하여 알아봅시다.

 

구원이 뭐냐?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을 봅시다.

 

롬 8:29-30절.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고전 15: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신다고 합니다.

미리 아신 자들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신 것은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구원키 위함입니다.

 

자기 백성들이 흙에 속하여 있습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시던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오셔서 흙에 속한 자기 백성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구원하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알고 우리의 구원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고 있다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에 속한 형상을 입으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와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와서 자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입혀 주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섯째 날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창조가 되는 일은 예수님께서 오셔서 흙에 속한 몸을 하늘에 속한 몸으로 바꿔주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5장을 봅시다.

 

고전 15:47-54절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예수님의 초림은 영적으로 바꿔 주었고,

예수님의 재림은 하늘에서 실제 몸으로 바꿔 주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우리가 홀연히 변화가 되어서 하늘에 몸으로 바꿔 입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아담 안에서 난 첫째 사람은 땅에서 낳고,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난 둘째 사람은 하늘로서 낳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흙에 몸을 벗고 하늘에 몸을 입게 해 주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육신의 장막에서 하늘의 장막으로 변화를 입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구원의 완성 지점을 몸의 구속이라고 했습니다.

 

롬 8:19-23절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 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이 뭐라고 합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언제 나타나는가요?

하나님의 아들이 와야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수없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의 아들들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받는 모든 성도들입니다.

 

왜 피조물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고대 할까요?

이는 아담이 범죄함으로서 이 땅이 함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인간의 타락으로 저주에 갇히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자면 참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이 오셔야 합니다.

참 아들이 와야 아들들인 양자들이 생겨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을 우리보다 피조물들이 더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만물이 예수님이 빨리 오시라고 몸살을 앓고 있는 것입니다.

 

처처에 천재지변이 일어나는 것은 지구가 시위하는 것입니다.

빨리 예수님이 오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와야 인간들이 죄의 형벌에서 끝이 나고 땅이 하나님의 저주가 풀리기 때문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땅이 그들을 토해낸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6년 동안 농사를 짓고 7년째 되는 해는 땅에게 안식을 주는 것입니다.

이게 안식년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탐욕으로 7년째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그러자 땅이 더 이상 못 견디겠다고 하면서 토해 냈습니다.

이것이 70년 동안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 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70년 동안 이방에서 포로로 생활 할 때 땅은 그 동안 누리지 못한 안식을 누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세상도 인간들이 범죄하여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하나님께 탄식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저주가 풀리느냐 하면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면 풀립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땅도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곳이 새 하늘과 새 땅인 천년 왕국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는 날이 역사의 마지막 날이 됩니다.

이를 엿새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엿새가 차기 까지 일을 하셨다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창조의 6일이 끝나고 일곱째 날로 넘어가서 천년왕국에서 안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땅이 아담의 범죄로 저주를 받았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땅은 저주가 시작이 되었으니 아담의 형기가 끝이 나면 저주가 풀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걸 땅이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하기 직전에는 온 세상이 아우성을 친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걸 징조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귀신들이 난리를 치지요.

왜 그런가요?

이제 자기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때가 끝이 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귀신들이 왜 때가 아직 남았는데 왔느냐고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가 하면 예수님의 재림 때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영적으로 일어났지만 재림 때는 실제적으로 유황 불 못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림 때는 귀신들이 아직 때가 아직 남았으니까 돼지의 몸에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고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그러라고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것도 끝이 납니다.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귀신들은 이 세상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아담이 범죄하자 하나님이 뱀을 아담과 함께 이 땅으로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 땅의 주인으로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귀를 이 세상 신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마귀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마귀를 신으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걸 영원히 누리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자면 이 땅이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을 때가 되면 철거가 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점점 망가져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자 마귀가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서 인간들이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게 하려는 작전을 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들에게 지혜를 주어서 이 세상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과학으로 인간이 늙어가는 것을 막고 무병장수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처럼 생명도 창조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이 땅을 천국으로 만들고자 합니다.

이 땅이 천국이 되어야 인간들이 땅을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인간들이 땅에 있어야 마귀가 신으로 대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귀는 인간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식으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짐승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환영을 받는 메시야입니다.

하지만 예수그리스도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배척을 당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서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빼내고자 오셨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이 땅에서 나그네와 행인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상 것을 주지 않고 하늘에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흙에서 난 몸은 세상 것으로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 것을 주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니 육신이라는 겉 사람은 후패해져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늘의 사람으로서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육신이 끝나는 날이 곧 몸의 구속이 이루어지는 날입니다.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몸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몸을 구원 했습니다.

왜냐하면 장차 천국에서 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하늘에 몸으로 바꿔치기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우리 몸에 성령을 보증으로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자라간다고 합니다.

 

엡 4:13-19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찌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성령은 지금도 몸을 구원 하는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구원 하는가 하면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몸으로 하나님께 산 제사를 드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몸으로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신앙생활이란? 삶입니다.

예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을 그 아들의 형상으로 자라가는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골 3:1-10절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너희는 하늘에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땅에 것을 생각하지 말고 하늘에 것을 찾으라고 합니다.

너희는 새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우리를 창조하신 예수그리스도의 형상을 쫓아서 새롭게 하라고 합니다.

 

아들의 형상을 입고 새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은 육신의 소욕을 죽이고 성령의 소욕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를 맺는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새사람을 입었지만,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실제적인 새사람의 몸을 입게 됩니다.

영적으로 새사람이 된 사람들은 실제적인 새사람의 몸을 입고자 고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안에 예수그리스도의 생명을 가진 성도들은 이 땅에서 하늘에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마귀는 속이는 자입니다.

스스로 속게 만듭니다.

그것이 말씀 아는 것이 마치 신앙의 본질인 냥 삶을 결여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이를 영지주의라고 합니다.

 

삶이 없는 신앙은 가짜입니다.

예를 들어서 새 아파트를 당첨 받고 기다리는 사람들은 현재 사는 집에 투자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절제하면서 살아갑니다.

왜냐하면 지금 사는 집은 사라질 것이고 잠시 후에 떠나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불편하면 불편한대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들어갈 새 아파트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고자 모든 것을 아끼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 아파트를 분양받지 않은 사람은 지금 사는 집을 고쳐서 사용하게 됩니다.

돈을 들여서 리모델링도 하고, 새로운 가구도 사들이고, 물건들도 사들이고 하면서 현재의 집에 투자하게 되는 것입니다.

낡은 집은 고치고 또 고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흙에서 난 몸은 헌집이고,

하늘로부터 덧입을 몸은 새집입니다.

우리는 하늘에 새 집을 분양을 받은 자들입니다.

성도는 하늘나라를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살리심을 받았으면 땅에 지체를 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새 집은 분양 받은 사람과 분양받지 못한 사람은 살아가는 자세가 다르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하늘나라를 분양 받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늘로 거듭난 성도들은 이 땅에서의 삶에 올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 땅을 떠나고자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 7:29-31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때가 단축하여진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형적은 지나감이니라”

 

바울은 아내 있는 자는 아내 없는 자 같이 살고,

남편 있는 자는 남편 없는 자 같이 살고,

물건은 가진 자는 없는 자 같이 살고,

없는 자는 없는 대로 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모든 형적들은 지나가는 것이고 주님의 재림의 때가 가까이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것은 하늘에 있기 때문에 땅의 것에 미련을 두지 말고 하늘의 것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잠시 잠간 후면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늘에 장막을 덧입게 되기 때문입니다.

 

고후 5:1-5절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나니 2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3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4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 진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5 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구원은 땅에 장막이 하늘에 장막으로 덧입는 것입니다.

이를 약속하기 위하여 성령을 보증으로 보내 주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늘에 것을 소망 삼고 살아가도록 간섭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장막은 참 형상이 아닙니다.

진짜는 하늘에 있습니다.

땅에 장막은 하늘에 장막이 올 때까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린 모두가 흙에서 난 짐승이었습니다.

흙의 기운으로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참 아들을 짐승의 밥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먹힘을 당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를 먹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먹기 전에는 율법 아래서 짐승으로 살았습니다.

짐승의 살았기 때문에 짐승의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짐승의 제사는 참 형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참 형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와야 된다고 합니다.

 

율법 아래서는 참 형상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 형상이 되려면 하나님의 아들이 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율법 아래서는 구원이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히 10:1절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사도 바울은 율법은 참 형상이 아니고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라고 합니다.

물론 히브리서에서는 율법적 제사가 아니고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 할 수가 없고 예수님이 와야 참 형상을 입게 된다는 것도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재림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땅이 전부라고 믿고 살아갔습니다.

그런데 성령이 우리 안에 하늘을 몰고 왔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하늘을 보고 살아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땅 강아지가 하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만나기 전에는 율법 아래서 짐승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율법 지킴이라는 짐승의 제사를 드리고 살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율법은 참 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 주셨습니다.

참 형상은 예수그리스도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짐승의 제사로 나아가지 않고 예수그리스도로 나아가게 된 것입니다.

 

지금은 역사의 종말입니다.

여섯째 날이 다 끝나가는 때입니다.

하루의 아구가 다 차 가는 때입니다.

여섯째 날이 저물어 가는 저녁 때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과 짐승이 그 형체들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교회를 짐승으로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과 간음하고 있습니다.

땅의 기운으로 살아가는 음녀가 되고 말았습니다.

 

구약 교회도 종말에는 외식으로 가득하고 불법이 성하여서 참 하나님께 속한 남은 자들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제사장들은 제물에 눈이 멀어서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전을 허물어 버렸습니다.

 

신약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시작된 교회가 지금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가 되고 말았습니다.

 

계 18:2-5절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3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4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5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

 

이 시대 교회는 온갖 잡신들의 터전이 되고 말았습니다.

꽁 잡는 것에 매라고 하듯이 목사들이 교회가 부흥이 된다고 하는 것들은 모두 끌어 들이고 있습니다.

목사들이 교회 부흥에 올인하는 것은 교회 부흥은 곧 물질의 부요를 몰고 오기 때문입니다.

 

거짓 목사들이 돈에 눈이 멀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헐었던 것들을 다시 세우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허문 성전을 다시 짓겠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율법의 의를 인간들이 선행으로 다시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여리고 성을 허물었는데 다시 세우는 것과도 같습니다.

 

이름하여 인본주의 신앙입니다.

인본주의 신앙은 인간이 주체가 되어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알미니안 성화주의자들이 인간의 선행도 의가 된다고 하면서 교인들의 주머니를 도적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소경이기 때문에 소경 목사를 따르고 있는 것입니다.

본인이 율법 아래 있기 때문에 율법을 말하는 목사를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고 합니다.

길이 아니면 가지를 말고 말씀이 아니면 듣지 말아야 합니다.

천국으로 인도하는 목사가 아니면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눈을 뜬 사람은 목사가 지옥으로 가는데 따라 가지 않습니다.

소경이니까 따라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눈을 떴느냐 입니다.

내가 소경이 아니라야 합니다.

 

이 시대 교회는 돈의 가치로 세워지고 있습니다.

교인들의 신앙도 돈의 가치로 척도당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직분도 매관매직당하고 있습니다.

돈만 내면 장로도 권사도 살 수가 있습니다.

 

육적 신자들은 장로와 권사가 무슨 벼슬이라도 되는 줄 압니다.

목사는 장로와 권사직을 팔고 돈 있는 사람은 그걸 삽니다.

매매가 형성 되는 것입니다.

2천 년 전에 예수님이 강도의 굴혈이라고 저주를 퍼부은 성전이 지금 이 시대 우리 주변에 우후죽순처럼 일어나고 있고 그 안에서 매매가 성행되고 있습니다.

 

역사는 흐르고 흘러서 그 자리입니다.

돌고 돌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2천 년 전에 살던 그 인간이 지금 그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에 마귀가 지금도 그 마귀이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에 인간들이 돈을 좋아했듯이 지금도 인간들이 돈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2천 년 전에 돈으로 예수님을 시험하던 마귀가,

지금은 교회 안에서 돈으로 교인들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늘 땅에 것으로 미혹을 하였습니다.

지금도 땅에 속한 사람은 땅의 것에 미혹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짐승과 사람은 종자가 다릅니다.

짐승이 사람 되고 사람이 짐승 되는 일을 없습니다.

하나님은 짐승은 짐승으로 창조를 하였고 사람은 사람으로 창조를 하였습니다.

 

다른 말로 하나님은 창세전에 땅에 속한 자와 하늘에 속한 자로 창조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속에 섞여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오셔서 짐승과 사람을 갈라내십니다.

 

이건 마치 아브라함의 후손들이 애굽 사람들 속에 섞여서 살고 있다가 정한 때가 되어서 모세를 통해서 빼내심을 입는 것과 같습니다.

애굽에서 태어나고 애굽 사람들과 섞여서 살았지만 언약의 후손들입니다.

언약의 후손들만 출애굽을 하였습니다.

 

이제 언약의 후손들이 세상을 출애굽 하는 그 정한 때가 오고 있습니다.

창세전에 언약하신 그 때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르렀습니다.

2천 년 전에 승천하신 예수님께서 너희가 본 대로 내가 다시 오신다고 하신 그 때가 가까이 이르렀습니다.

 

교회가 쿨쿨 잠을 자고 있습니다.

세상에 푹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신랑이라는 소리로 깨워야 합니다.

 

추수하는 종들에게 나팔을 주어서 불게 합니다.

이름하여 추수의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재림 소식입니다.

 

하나님은 이른 비와 늦은 비로 농사를 짓습니다.

이른 비는 씨를 뿌릴 때 내리는 부드러운 비입니다.

늦은 비는 추수 할 때 열매가 다 익어서 맛을 내게 할 때 뿌려지는 강한 비입니다.

 

이른 비를 통해서 농사를 짓고,

늦은 비를 통해서 추수를 하십니다.

 

이른 비는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일어났습니다.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온 세상으로 복음이 퍼져 나갔습니다.

하나님은 오순절 성령 강림으로 온 세상에 예수의 씨를 뿌리고 자라가게 하셨습니다.

이제 뿌려진 씨들이 열매를 맺어서 추수 할 때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늦은 비 성령으로 보내 주시기로 약속을 하셨습니다.

 

슥 12:10-13:2절 “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그를 위하여 통곡하기를 장자를 위하여 통곡하듯 하리로다 11 그 날에 예루살렘에 큰 애통이 있으리니 므깃도 골짜기 하다드림몬에 있던 애통과 같을 것이라 12 온 땅 각 족속이 따로 애통하되 다윗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나단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3 레위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시므이의 족속이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며 14 모든 남은 족속도 각기 따로 하고 그 아내들이 따로 하리라 13:1 그 날에 죄와 더러움을 씻는 샘이 다윗의 족속과 예루살렘 거민을 위하여 열리리라 2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우상의 이름을 이 땅에서 끊어서 기억도 되지 못하게 할 것이며 거짓 선지자와 더러운 사귀를 이 땅에서 떠나게 할 것이라”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늦은 비 성령을 부어 주십니다.

은총과 간구의 영입니다.

하나님의 은총이 임하면 자신들이 엄청난 잘못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럼 독자를 잃은 것과 같은 큰 아픔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늦은 비가 부어지면 내가 예수를 죽였구나를 알게 됩니다.

하늘에 것을 소망 삼고 살아야 할 자가 땅에 것을 소망 삼고 살았다는 것이 엄청난 수치임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애통해 하면서 회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치 오순절 성령 강림이 일어났을 때 베드로와 요한이 천하각국으로부터 올라온 경건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를 죽였다고 하자 가슴을 치면서 어찌할꼬! 큰 애통이 일어난 것처럼 종말에도 두 증인들이 교회 안에서 십자가 복음을 전하면 큰 애통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적그리스도가 먼저 일어납니다.

적그리스도가 일어나면 땅에 속한 자들은 그를 따르게 됩니다.

적그리스도는 이 땅에 천국을 주겠다고 합니다.

그럼 땅에 속한 자들은 그를 메시야로 믿고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때 하나님은 추수하는 종들을 일으키십니다.

이들이 두 증인들입니다.

하나님은 두 증인들에게 모세와 엘리야의 능력과 심령을 주십니다.

 

이들은 교회에 들어가서 외칩니다.

강력한 말씀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회개를 촉구합니다.

그리고 두 증인들은 적그리스도는 가짜 라고 알려 줍니다.

 

그럼 두 가지 반응들이 나타납니다.

마치 초림 때 베드로와 요한의 외침에 어찌할꼬! 회개하는 부류와 분개하여서 이빨을 뿌드득 가는 부류 두 가지 반응이 일어난 것과 같은 반응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회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들이고,

분노하여서 화를 내는 자들은 적그리스도에게 속한 짐승들인 것입니다.

 

복음이 전해지는 곳에는 반드시 두 가지 반응들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이는 복음이 참과 거짓을 갈라내는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였습니다.

창조 6일을 역사 6천년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은 6천년에 속한 기간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7일 안식일이 됩니다.

천년 왕국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영적으로 보면 여섯째 날입니다.

그것도 해가 저물어 가는 끝물입니다.

 

그러므로 각자의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짐승과 사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짐승들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인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이것이 이 시대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하면서 종교 통합을 외치는 WCC 운동을 추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계 17:3-6절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4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5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6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큰 음녀가 있고 땅의 음녀들이 있습니다.

큰 음녀는 적그리스도를 배출한 본부이고,

땅의 음녀들은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온 세상에 흩어져 있는 타락한 교회들을 말합니다.

큰 음녀는 하나님을 배도케 하는 주체적인 집단을 말합니다.

이 시대 나타나는 현상으로 보면 로마 카토릭입니다.

여기에 동조하는 단체인 WCC입니다.

 

WCC는 교회를 허물기 위한 단체입니다.

이들의 강령은 세상의 모든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것입니다.

그 바탕에 교회를 배도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상이 지금은 쓰나미처럼 온 세계를 뒤덮고 있습니다.

 

여기에 동참 하는 자들이 바로 땅의 음녀들입니다.

땅의 음녀들은 배도하는 세력인 WCC 운동을 하는 교회들입니다.

이 시대 한국 교회 교단들은 대부분 WCC에 가입하고 있습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교인들은 WCC는 이단이라고 반대하는데 목사들은 앞장서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상하지요.

교인들은 보수 신앙을 가지고 있는데,

목사들이 배도하는 신앙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교회가 감사하게도 목사들은 배도하는데 교인들은 참 믿음을 지키고자 싸우고 있습니다.

이 시대 깨어 있는 성도들은 마치 아합 왕 시절에 거짓 선지자들이 다 바알을 따를 때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고 믿음을 지킨 숨겨둔 7000명의 남은 자들처럼 신앙을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는 예수 이외도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는데,

성도들은 오직 예수 외에 구원의 길이 없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상식적으로 라면 교인들이 바알을 쫓아가고 목사는 그게 아니라고 돌이키게 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꺼꾸러 되어 있습니다.

교인들이 WCC는 이단이라고 하고 있는데 목사들이 아니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목사들이 바알 선지자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가 하면 여섯째 날이기 때문입니다.

짐승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체성을 드러나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양의 탈을 쓰고 광명의 천사로 위장을 하여서 교인들 피를 빨아 먹고 있었는데,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가 가까우니까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속지 말라고 그들은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사단의 종이라는 것을 확 까발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건 하나님께서 사울 왕에게 악신을 역사케 하여서 다윗을 죽이고자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목사들에게는 악신을 보내서 역사하게 합니다.

그러니까 목사로서 할 수 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이외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다 같다고 하는 것입니다.

 

종말에는 큰 배도의 물결이 쓰나미처럼 교회를 뒤 덮을 것입니다.

배도의 역사는 이미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종교 통합을 외치는 교회에서는 중들을 강단에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 하면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악신을 보내서 다윗을 죽이게 하였듯이 거짓 종들에게 거짓 영으로 보내서 배도하는 일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악신이 역사 하면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짓 영이 역사를 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싫어하는 WCC를 옳다고 외치는 거짓 목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시대 성령 운동한다고 하는 목사들을 보세요.

가관입니다.

전부 무당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무당 노릇을 하고 있는데도 본인은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담대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지키고자 저들은 양이 아니고 양의 탈을 쓴 이리라는 것을 확 까발리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나는 하나님의 종이 아니고 사단의 종이라고 커밍아웃을 하게 만든 것입니다.

그러니까 상식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짓거리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양 잡아먹는 이리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이 종말의 적그리스도를 따르는 타락한 교회인 음녀를 보니까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도 요한은 너무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예수를 믿는 자들을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교회가 배도하는 무리들과 함께 할 수가 있느냐?

의아한 것입니다.

그래서 놀란 것입니다.

앞으로 놀랄 일들이 더 많이 일어날 것입니다.

 

앞으로 교회는 점점 더 타락할 것입니다.

목사들은 노골적으로 불의를 드러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교회의 치부를 만천하에 드러내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잠시 장악하도록 허락을 하십니다.

그럼 온 세상이 적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그 때 하늘에서 예수님이 뜨인 돌로 나타나서 세상을 심판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시면 믿음을 지킨 성도는 천국으로 데리고 가고 배도한 자들은 지옥 불구덩이 속에 집어넣을 것입니다.

 

이 시대는 소돔과 고모라 같은 곳입니다.

노의 때와 같습니다.

죄악이 관영해지고 있습니다.

이는 이 시대가 여섯째 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짜와 가짜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과 짐승으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재림의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습니다.

노아의 때는 두 부류의 사람으로 나누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장차 오는 심판을 이기기 위하여 방주를 만든 사람과, 종말은 생각지 않고 현실에 안주하면서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팔고 하는 땅의 일에 몰두하고 살아가는 사람으로 나누어집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 종말을 준비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있는가 하면,

짐승처럼 땅에 일에만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도 땅의 기운으로 살고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세요.

나는 지금 어느 기운으로 살고 있는가?

하늘의 기운으로 살고 있는가?

아니면 땅의 기운으로 살고 있는가?

 

나는 사람인가?

짐승인가?

 

짐승의 혼은 아래로 내려가고 사람의 혼은 위로 올라갑니다.

짐승은 아래를 보고 살고 사람은 위를 보고 삽니다.

흙의 기운으로 산 짐승들은 지옥으로 보내고,

하늘의 기운으로 산 사람들은 천국으로 보내십니다.

각자 행한 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여섯째 날은 결론의 날입니다.

좋고 나쁨은 결론을 보아야 알 수가 있습니다.

결론이 좋으면 모든 것이 좋은 것이고 결론이 나쁘면 모든 것이 나쁜 것입니다.

 

결론이 해피엔딩이라야 합니다.

최후에 웃는 자가 웃는 자입니다.

성도를 이긴 자라고 하는 것은 최후에 웃는 자라는 뜻입니다.

 

50년 믿다가 지금 배도하면 아닌 것이고,

50년 안 믿다가 지금 믿으면 옳은 것입니다.

지금 신앙이 내 신앙입니다.

 

옛 날에 한 일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노루 때린 막대기 삼년 우려먹는다는 속담이 있듯이 옛 날 신앙을 자랑하지 마십시오.

다 지나간 것들입니다.

 

죽은 고기는 물에 떠내려가고,

살아 있는 고기는 물을 거슬러 올라갑니다.

죽은 신앙은 배도하는 물결에 휩쓸려서 떠내려 갈 것이고,

살아 있는 신앙은 거기서 나와 믿음의 정절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입니다.

 

지금 잘하십시오.

지금 잘하는 것이 신앙입니다.

영적 매너리즘에서 벗어나십시오.

영적 나르시즘에서 벗어나십시오.

 

신앙은 전쟁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피 흘리는 전쟁입니다.

신앙을 감상주의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천국 가는 것이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실제이기 때문에 실제로 그 나라를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실제로 산 사람들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올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냥 비교가 아니고 족히 비교 할 수가 없습니다.

이건 상상도 하지 못하는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인내하시고 잘 견뎌 내시길 바랍니다.

이미 이긴 자로서 여섯째 날을 보시면 희열이 일어날 것입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며 기도하라고 하였습니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지났습니다.

신랑을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할 때입니다.

 

엿새가 차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곧 오십니다.

정신을 차리십시오.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이 왔느니라,,,

 

 

기도합시다.

아버지 하나님, 노아에게 은혜를 입혀 주었듯이 우리에게도 동일한 은혜를 입혀 주옵소서. 그리하여 방주 짓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때를 아는 지혜도 주시고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믿음도 주옵소서. 눈을 들어 하늘을 보게 하시고 주의 도움을 구하고 살게 하옵소서. 하늘의 기운으로 세상을 이기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하늘빛사랑 blog https://blog.daum.net/day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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