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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1~3 강해

♣(성경강해) 3강. 천지의 실상과 모형 (창 1:1-2절)

by coroa 2022. 7. 11.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3강. 천지의 실상과 모형 (창 1:1-2절)

창 1장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정낙원 목사

 

성경을 열면 첫 마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였다고 합니다.

천지 속에 우리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럼 하나님이 나를 창조 하셨다 라는 말씀이 됩니다.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였다는 말은 하나님이 천지의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왜 창조하셨을까요?

아무런 의미 없이 창조하시진 않았을 것이 아닙니까?

어떤 목적이 있어서 창조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어떤 원인에 의한 것이고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는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를 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까?

성경은 여기에 대한 답변을 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그 답을 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는 누굴까?

나는 어디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 앞에 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인생이 옳은 길을 가고 있는지 아니면 그릇된 길로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 하면 내 맘대로 살아도 되지만 내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내 맘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생이 전부라고 한다면야 이 세상의 가치관으로서의 성공된 인생을 살아가면 됩니다.

그러나 이생이 전부가 아니고 내생이 있다고 한다면 달라집니다.

성경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요?

 

히 9:27절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모든 인간은 죽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세상으로의 시작입니다.

그래서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계 20:12-15절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13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14 사망과 음부도 불 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 못이라 15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 못에 던지우더라”

 

심판이란? 갈라짐입니다.

그런데 그 갈라짐의 심판을 이생에서의 삶을 가지고 내생을 결정한다고 하십니다.

심판의 기준은 생명책과 다른 책들입니다.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과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은 자들입니다.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는 영생으로 나아가고,

생명책들에 녹명이 되지 않은 자들은 영벌로 나아갑니다.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이생에서 어린 양의 운명에 동참 된 삶을 살아가게 되고,

생명책에 녹명 되지 않은 자들은 사단의 운명에 동참 되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라는 삶이 그 사람의 속성을 드러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생에서의 삶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생을 전반전이라고 한다면,

내생은 후반전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후반전의 인생은 전반전에 의하여 결정이 되는 것입니다.

이생은 내생을 준비하는 인생이 됩니다.

 

이러면 이생을 대충대충 살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이생이 끝난 후에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이생에서의 삶은 우리 뜻대로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죽음 후에 일어날 심판에서 이기는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간들이 이러한 사실을 모르거나 중요치 않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중요성을 모르니까 내생에 대하여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입술로는 천국을 말하지만 실제 삶의 가치는 이 세상에 두고 있습니다.

이는 내생이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실상과 모형에 대하여 살펴볼까 합니다.

 

실상은 진짜이고,

모형은 가짜입니다.



실상이 원본이고,

모형은 복사본입니다.

 

우리의 인생도 원본의 인생이 있고, 복사본의 인생이 있습니다.

원본의 인생은 하늘나라 인생이고, 복사본의 인생은 이 세상에서의 인생입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하고, 이 세상은 유한합니다.

우리는 유한에서 영원을 준비하는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은 이를 지혜로움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누가 죽으면 좋은데 갔겠지 라고 합니다.

이것은 상투적으로 산 자들을 위로하고자 하는 말입니다.

산 자들이 그러한 말에 위로를 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자신도 타자의 죽음 앞에서 산 자들에게 하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내생에 대하여 믿지 않고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개똥밭에 굴러도 이생이 낫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잘 먹고 죽은 귀신 때깔도 곱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생이 내생보다 좋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 하면 그건 죽어 봐야 알지 라고 합니다.

 

지혜로움이란? 이생에서 내생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생이라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전반전의 삶은 길어야 100년이지만,

내생이라는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후반전의 삶은 영원하다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생의 성공된 삶 보다 내 생의 성공된 삶이 더욱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다가 내생에서 망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건 망한 인생입니다.

반대로 이생에서 망하여도 내생에서 복된 삶을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공한 인생입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이야기를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눅 16:19-31절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20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21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24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25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26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렁이 끼어 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 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7 가로되 그러면 구하노니 아버지여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소서 28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저희에게 증거하게 하여 저희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29 아브라함이 가로되 저희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지니라 30 가로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1 가로되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자색 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면서 살았습니다.

자색 옷이란 왕들이 입는 옷입니다.

이는 왕처럼 살았다는 뜻입니다.

 

반면에 부자의 집 문 앞에는 헌데를 앓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살고 있었습니다.

나사로는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였으나 그도 넉넉지 않습니다.

그런데 개들이 와서 헌데를 핥고 있습니다.

이건 개만도 못한 인생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둘 다 각자의 삶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그런데 죽음 이후에는 정반대의 삶이 나타납니다.

거지로 살았던 나사로는 천국에서 안식을 하였고,

부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부자는 이생이라는 전반전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내생이라는 후반전의 인생은 완전히 망한 인생인 것입니다.

거지 나사로는 전반전의 인생은 망한 인생이었는데, 후반전의 인생은 성공한 인생인 것입니다.

 

누가 더 지혜로운 인생을 살았나요?

거지 나사로입니다.

부자는 죽음 이후 지옥에 가서야 자기 인생은 실패한 인생임을 알았습니다.

이를 때늦은 후회라고 합니다.

 

지옥에 있는 부자가 하나님에게 청을 합니다.

저 아래 세상에 자기 형제들이 살고 있는데 그들도 자기처럼 죽음 이후라는 내생을 모르고 살고 있으니까 그들에게 내생이 있다는 것을 좀 알려주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었던 나사로를 살려 보내서 자기 형제들에게 죽음 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사실을 좀 알려 주어서 그들을 이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나사로가 살아서 가지 않아도 죽음 이후에 심판이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많이 있으니까 네 형제들이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죽었던 나사로가 살아서 간다고 하여도 듣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는 믿을 사람은 따로 정해져 있다는 뜻입니다.

죽음 이후의 세상을 믿는 자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누구인가 하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입니다.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이생에서 내생을 준비하고 살아갑니다.

그것이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내생을 준비하는 삶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세상 것을 의지하고 사는 자를 일컬어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눅 12:13-21절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어떤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탄원합니다.

자기 형이 아버지의 유업을 혼자 다 차지하고는 자기에게는 한 푼도 주지 않으니까

예수님이 자기 형에게 가서 율법에 근거한대로 동생에게 유업을 좀 나누어 주라는 말을 좀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이 야 이놈아 내가 너희들 재산을 분배해주는 재판관으로 온 줄 아느냐?

내가 온 것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기 위해서 왔다고 합니다.

사람의 생명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서 어리석은 부자 비유를 하십니다.

 

어떤 부자가 있었습니다.

이 부자는 착실하게 부를 축척하면서 살았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통장에 잔고가 쌓여가는 재미로 살았습니다.

이 부자에게 있어 삶에 의미는 재산이 쌓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밤에 하나님이 찾아와서 이 어리석은 놈아 오늘 밤 네 영혼을 데려가면 이 재물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합니다.

재물을 내생에 가지고 갈 수도 없을 뿐더러,

재물로는 내생을 살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 라고 책망합니다.

그러면서 이생에서 하나님과 화목하지 않고 재물을 모으는 자를 어리석은 자라고 합니다.

 

이생에서 내생을 준비하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부자와 같습니다.

비록 세상에서는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할지라도 하나님과 화목 되지 않은 자들은 죽음 이후 내생에서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역으로 이해하면 비록 이 땅에서 가진 것 없이 가난하게 살아도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로 살았다고 한다면 그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라는 뜻이 됩니다.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있지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습니다.

그럼 이 땅에서 내생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성도들의 인생이야말로 가장 지혜로운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후에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생을 내 맘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심판을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그럼 묻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바라는 인생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복된 인생이 어떤 인생인지 그 정답을 알아야 합니다.

 

감사하게도 성경은 그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상고하는 이유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에는 이생에서 내생을 준비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이들을 일컬어 하늘에 허다한 구름같이 둘러싼 증인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 창세전 언약과 두 태초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일하심을 보면 창세전 언약은 시나리오와 같고 천지 창조는 그 내용과 같습니다.

그래서 창세전이라는 하나님 나라인 태초가 먼저이고,

하나님 나라에 계시던 하나님이 역사의 문을 여는 태초가 그 나중임을 알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인 태초가 먼저이고,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태초가 나중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이 세상이라는 역사는 복사본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장 3절에서는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왔다고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나라가 원본이고, 보이는 나라는 복사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이 세상은 복사본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이 원본이고,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복사본인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영이라고 하고,

세상 나라를 육이라고 합니다.

영에서 육이 나왔습니다.

영이 원본이고, 육은 복사본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은 살리는 것이고, 육은 죽이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영은 생명이고, 육은 사망이라는 뜻입니다.

영은 영생하고, 육은 죽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은 영생하고, 육에 속한 사람은 영벌을 받게 됩니다.

 

이러면 육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영이 중요합니다.

육에 속한 일들은 중요치 않고, 영에 속한 일들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에 속한 일과 육에 속한 일을 알려 주셨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는 육에 속한 일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영에 속한 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이방인들처럼 육에 속한 일을 쫓아가지 말고 하나님의 백성답게 영에 속한 일을 쫓아가라고 하십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를 쫓아가는 인생은 어리석고 헛된 인생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인생은 성공한 인생이고 지혜로운 인생인 것입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는 허상이고,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것은 실상인 것입니다.

 

그럼 실상과 모형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오늘은 조금 쇼킹한 말씀을 드려야 할 텐데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동안 잘 회자되지 않은 생경한 이야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처음 듣는 말씀일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이루고자 하는 창세전 언약은 태초의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서 그 비밀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일은 이 역사 세계에 국한 된 일이라고 믿어 왔습니다.

그동안 그렇게 배워 왔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창세전 이라는 태초의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몰랐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막연하게 하나님 나라가 있었다 라고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동안 감추어 두셨던 것을 이 시대에는 벗겨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가 되면 모든 비밀이 그 종들을 통하여서 다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를 계시의 점진성이라고 합니다.

 

창세전 언약은 영원한 언약입니다.

그런데 시작과 끝이 있는 역사 속에서 펼쳐집니다.

그러므로 창세전 언약이 역사의 시간에 따라서 펼쳐져 가는 것이 점진적으로 나아가고 내용이 더욱 더 구체적이면서도 심층적으로 전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마치 씨앗을 심으면 처음에는 싹이 나고,

그 다음에는 잎사귀와 줄기로 자라고,

그 다음에는 작은 열매가 맺히고,

그리고 그 열매가 자라서 큰 열매가 되면 추수를 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씨에서 충실한 과실이 되기까지 점진적인 과정을 지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하심도 그러합니다.

하나님의 비밀도 역사의 시간표에 따라서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계시가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는 예전에 알지 못하던 것들이 밝히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표피적으로 알아서 교훈적으로 이해하던 것들이 이제는 그 속살을 다 드러내고 영적 생명의 이야기로 들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에 증거 되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비밀들은 과거에 증거 되던 것과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더 깊습니다.

그 본질은 같지만 의미와 깊이는 다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말씀일지라도 이 시대는 과거보다 더 깊은 영적 의미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태초에 하나님 나라가 있었습니다.

그 나라는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 나라는 하나님이 계신 곳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다른 말로 천국이라고 합니다.

천국이란? 하늘에 있는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하나님 나라라고 합니다.

 

하늘이란? 피조 바깥 세계를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성령의 감동으로 다녀온 셋째 하늘입니다.

삼층천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잠깐 세 가지 하늘에 대하여 살펴보고 갑시다.

바울이 셋째 하늘에 다녀왔다고 하는 것은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는 말입니다.

 

여기서 하늘을 공중이라는 개념으로 보지 마시고 나라로 보세요.

바울이 다녀온 셋째 하늘이 바로 하나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첫째 나라도 있고, 둘째 나라도 있을 것이 아닙니까?

 

첫째 나라는, 이 세상 나라를 말합니다.

둘째 나라는,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몰고 오는 천년 왕국을 말합니다.

셋째 나라는, 천년 왕국이 끝나면 피조 바깥에 있는 태초의 그 나라인 보이지 않는 원본인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삼층천은 신이 사는 나라입니다.

이 세상 바깥에 있는 셋째 나라인 하나님 나라는 어떤 곳이고,

또한 이 세상을 만들기 전에 하나님 나라에서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다행히도 하나님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그 나라에 대하여 계시를 해 주셨습니다.

 

이 세상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서 어떤 일을 있었는지를 살펴봅시다.

이걸 알아야 천지창조를 알 수가 있어집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창세전이라는 태초의 하나님 나라에서 계획된 일들을 이루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 두 태초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두 태초가 있다고 한다면 창조도 두 창조가 있음이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 라는 태초와, 세상 나라 라는 태초가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이고,

세상 나라도 하나님이 창조하신 나라입니다.

 

골 1:16절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보좌들이나 주관들이나 정사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하나님은 하늘 위 세계도 창조 하셨고, 땅 아래 세계도 창조 하셨습니다.

보좌나 주관이나 정사나 권세는 영적인 것도 있고 육적인 것도 있습니다.

보이는 것도 있고 보이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이 세상 나라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늘나라 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 나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 종속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이는 이 세상 나라를 움직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보이는 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나를 다스리는 분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 인생은 우리 것이 아니고 예수그리스도 것이라고 합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우리 인생을 다스리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도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보이지 않는 나라라고 합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치 시내산 위와 같은 곳입니다.

산 아래에서는 중간에 구름이 가리어져 있기 때문에 산 위는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있습니다.

 

모세는 시내산 위를 보았습니다.

시내산 위에서 하나님 말씀을 받아 왔습니다.

그 말씀으로 백성들에게 하늘에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증거 해 주었습니다.

 

산 위에는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산 아래는 세상 나라를 상징합니다.

산 아래 세상 나라는 산 위 하나님 나라의 지시에 따라서 움직입니다.

그것이 하늘 위를 상징하는 구름 기둥이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산 위 나라도 창조 하시고,

산 아래 나라도 창조 하셨습니다.

산 위 나라는 신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나라이고,

산 아래는 육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나라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신의 나라에서 오신 분을 직접 만났다고 합니다.

 

요한일서 1장을 봅시다.

 

요일 1:1-4절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사도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이야기 합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1장 1절에서 말하는 그 태초이고 그 말씀이신 하나님을 말합니다.

말씀이신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는데 자기는 그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보고 만나서 말씀을 듣기도 하고 손으로 만지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이 엄청난 사실을 사도 요한은 자기 제자들에게 말하는 것은 그들도 자기처럼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그 하나님을 경험케 하여서 자기와 같은 교제를 나누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비록 예수그리스도는 우리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성령 안에서 경험케 된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교제가 된다고 합니다.

 

하나님을 영이라고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영의 나라로서 영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입니다.

천사들은 영으로서 신적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피조물입니다.

 

영이라는 말은 비 물질이라는 말이 아닙니다.

신적 존재를 영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신적 존재는 신(창조주 하나님)을 수종 드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영의 반대말이 육입니다.

육은 이 세상을 말합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영적 존재라고 하고.

이 세상에 속한 자를 육적 존재라고 합니다.

 

우리가 장차 하나님 나라에 가면 영적 존재가 됩니다.

이걸 사도바울은 성도의 죽음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하늘에 장막을 덧입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육신의 몸은 땅에 반납하고 하늘에 몸을 입게 된다는 말입니다.

하늘에 몸이 바로 영적 존재입니다.

 

성도를 일컬어 성령으로 거듭났다고 합니다.

이 땅에 몸은 흙으로 났지만, 하늘의 몸은 성령으로 납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거듭난 것을 하늘로부터 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하늘에 몸으로 났다는 뜻입니다.

 

구원이 뭐냐?

육에 속한 자가 하늘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을 일컬어 하늘에 천사들보다 더 나은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면 천사들로부터 수종을 받게 됩니다. 



히 1장14절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요한계시록을 보면 사도 요한이 천국에서 천사들로부터 수종을 받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장차 우리 성도들이 받아야 하는 영광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성도들을 천사보다 귀한 존재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잠시 천사 보다 못한 모습으로 있지만 장차는 천사들이 우리를 부러워하게 됩니다.

 

천사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섬기라고 창조가 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님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으로 천사들을 종으로 부리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를 일컬어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도 하고 또한 어린 양의 신부라고 하지요.

이것은 예수님과 동등한 신분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천사들로부터 수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귀한 존재들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러한 정체성을 모르고 있습니다.

안다고 하여도 추상적입니다.

 

그러니까 땅 강아지마냥 땅에 코를 박고 땅에 기운으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도 잊은 채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서 우리의 신분이 어떤 자인지 알게 하시고 하늘에 기운으로 살아가도록 간섭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살펴본 두 창조 이야기는 경천동지 할 이야기인 것입니다.

우리를 설레게 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해가 되면 엄청난 은혜가 될 것입니다.

제발 이해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럼 하나님 나라를 살펴봅시다.

 

하나님은 태초에 하나님 나라를 창조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이 세상 바깥에 있는 나라입니다.

그 나라를 영의 나라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영의 나리인 하나님 나라에서 살아가는 천사들을 창조 하였습니다.

보이는 세상의 피조물을 육이라고 하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피조물은 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천사들을 영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영물이란 신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신에게 수종을 드는 영적 존재를 말합니다.

이렇게 영적 존재들인 천사들이 살아가는 곳을 일컬어 하나님의 동산 에덴이라고 합니다.

 

에스겔 28장을 봅시다.

 

겔 28:1-19절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인자야 너는 두로 왕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말하기를 나는 신이라 내가 하나님의 자리 곧 바다 중심에 앉았다 하도다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할지라도 너는 사람이요 신이 아니어늘 3 네가 다니엘보다 지혜로 와서 은밀한 것을 깨닫지 못할 것이 없다 하고 4 네 지혜와 총명으로 재물을 얻었으며 금 은을 곳간에 저축하였으며 5 네 큰 지혜와 장사함으로 재물을 더하고 그 재물로 인하여 네 마음이 교만하였도다 6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으니 7 그런즉 내가 외인 곧 열국의 강포한 자를 거느리고 와서 너를 치리니 그들이 칼을 빼어 네 지혜의 아름다운 것을 치며 네 영화를 더럽히며 8 또 너를 구덩이에 빠뜨려서 너로 바다 가운데서 살륙을 당한 자의 죽음 같이 바다 중심에서 죽게 할지라 9 너를 살육 하는 자 앞에서 네가 그래도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이라 하겠느냐 너를 치는 자의 수중에서 사람뿐이요 신이 아니라 10 네가 외인의 손에서 죽기를 할례 받지 않은 자의 죽음 같이 하리니 내가 말하였음이니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라 1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12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왔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에스겔 28장은 하늘나라에서 타락한 천사를 두로 왕으로 빗대어서 말하고 있습니다.

두로 왕은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2절을 보면 두로 왕이 무슨 일을 하였는가 하면 마음이 교만하여서 신처럼 행세하면서 하나님 자리를 탐하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두로 왕에게 “너는 신이 아니고 사람이요” 라고 합니다.

사람이라는 말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6절에도 보면 “네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다” 고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 같은 체 하였다”는 것은 마음속으로 “하나님 행세를 하였다”는 뜻입니다.

 

피조물 주제에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죄입니다.

마귀가 하는 짓입니다.

 

마귀가 누구냐?

하나님인 척 행세하는 타락한 천사입니다.

마귀도 피조물입니다.

 

15절을 보면 “네가 지음을 받던 날 부터” 라고 합니다.

지음을 받았다는 말은 피조물이라는 뜻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 행세를 한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를 따르는 자들에게는 신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추종하는 자들은 신처럼 따릅니다.

쉬운 예로 이단 집단을 보세요.

교주는 신처럼 행세하고 그를 따르는 자들은 교주를 신처럼 받들잖아요.

 

마귀는 신이 아닙니다.

신적 존재입니다.

신과 신적 존재는 다릅니다.

신은 창조주 하나님을 말하고,

신적 존재는 창조주 하나님을 수종 들기 위하여 지음을 받은 자를 말합니다.

 

천사(마귀)나 우리나 다 같은 피조물입니다.

그러나 다른 것은 마귀(천사)는 하늘나라 피조물이고, 우리는 세상 나라 피조물인 것입니다.

마귀는 신적 존재로서의 피조물이고, 우리는 육적 존재로서의 피조물인 것입니다.

 

죄는 피조물이 창조주 행세를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마귀나 인간이나 둘 다 피조물인 주제에 하나님 자리를 탐하다가 쫓겨났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천사가 하나님 행세를 하였고,

세상 나라에서는 인간이 하나님 행세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하와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이건 하나님인 체 한다는 뜻입니다.

마귀가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인 체 하다가 쫓겨났듯이,

인간도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인 체 하다가 쫓겨난 것입니다.

 

죄가 뭐냐?

하나님인 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리를 넘보는 것입니다.

 

천사의 타락은 죄가 무엇인지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죄가 뭐냐?

피조물이 하나님 자리를 탐하는 것입니다.

이 죄가 역사 세계에 그대로 나타났습니다.

그것이 뱀이 인간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미혹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에스겔 28장의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천사의 타락이,

이 세상 나라에서는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의 타락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의 천사 타락이 원형이고,

세상의 인간들 타락은 복사본인 것입니다.

 

13절을 보세요.

하늘나라에서 천사가 살던 동네를 “하나님의 동산 에덴”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나라에서 아담과 하와가 살던 동네도 에덴동산이라고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의 우두머리인 마귀와 그를 따르던 자들을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서 쫓아냈습니다.

세상나라에서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에덴동산에서 쫓겨냈습니다.

 

17절을 보면 하나님이 땅에 던져 버렸다고 합니다.

하늘나라의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난 곳을 땅이라고 합니다.

이 부분은 이사야를 보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사야 14장을 봅시다.

 

사 14:12-14절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13 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 14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5 그러나 이제 네가 음부 곧 구덩이의 맨 밑에 빠치우리로다”

 

하나님은 천사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부리는 종으로 창조하였습니다.

천사들 중에서도 선한 천사가 있고 악한 천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천사들 중 일부가 반역을 하였는데 이를 마귀와 그 세력이라고 합니다.

이들을 악한 천사라고 합니다.

 

타락한 악한 천사의 우두머리를 계명성이라고 합니다.

이 놈이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자기 보좌를 베풀고자 하다가 쫓겨났습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범죄하자 땅으로 쫓아낸 것과 같습니다.

하늘나라에서는 마귀가 하나님 동산인 에덴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이나,

세상 나라에서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이나 그 의미는 같은 것입니다.

 

마귀가 쫓겨난 땅을 일컬어 음부라고 합니다.

음부란? 지옥이라는 뜻입니다.

 

벧후 2:4절 “하나님이 범죄 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유다서 1:6절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하나님께서 자기 지위를 떠난 천사(마귀)들을 영원한 흑암에 가두었습니다.

자기 지위를 떠났다는 것은 창조의 목적을 상실하였다는 뜻입니다.

이를 죄라고 합니다.

 

죄란? 창조의 목적에서 이탈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창조한 것은 찬송을 받고자 함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천사들을 창조하고 그들을 위하여 악기들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겔 28:13절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천사를 위하여 악기가 준비되었다는 것은 천사의 사명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천사의 사명은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사를 통하여서 찬양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마귀가 하나님처럼 영광을 받고자 하나님의 자리를 넘보았습니다.

자기가 찬송을 받고자 하였습니다.

 

이러한 죄의 모습은 이 세상 속에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교회 안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서 마귀가 자기를 따르는 자들로부터 찬송을 받았듯이,

지금도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자기를 따르는 추종자들로부터 찬송을 받고 있습니다.

 

이단의 교주들이 이들입니다.

이단의 교주들이 마귀의 종인 것입니다.

사이비 거짓 목사들도 마귀의 종입니다.

 

누가 이단의 교주이냐?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는 자들입니다.

이들을 구약에서는 거짓 선지자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자기 배를 채우는 자들이 있습니다.

목사라는 지위를 이용하여서 교인들 위에서 왕 노릇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부와 사치로 연락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0장을 보면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이 거짓 선지자들을 잡아서 유황 불 못에 던진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동산인 에덴에 마귀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도 있었고 마귀를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선한 천사들도 있었습니다.

지금도 교회 안에는 목사를 추종하는 교인들과 하나님의 영광만 드러내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 모습이 창세기에서는 에덴동산에서 나타났고 지금은 교회에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챈 마귀를 에덴동산에서 땅으로 쫓아내 버렸습니다.

이 모습이 그대로 세상 나라에서 나타납니다.

아담이 범죄하자 땅을 저주해 버립니다.

그리고 뱀과 함께 아담을 저주 받은 땅으로 쫓아내버렸습니다.

 

세상 나라의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역으로 추적해서 올라가면 하나님 나라 에덴동산에서 일어났던 일을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마귀가 하늘나라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세상 나라 에덴동산에서도 그대로 일으키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는 천사들을 타락케 하였지만 세상 나라에서는 인간을 타락케 하였습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하였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보이는 이 세상 나라는 복사본이라고 하였습니다.

 

원본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과 동산 밖 땅이라는 음부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는 선한 천사들이 살고 있고,

동산 바깥 땅(음부, 지옥)에는 죄로 인하여 쫓겨난 악한 천사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 구조가 그대로 이 세상 나라에서도 펼쳐집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에덴동산과 범죄 한 아담과 뱀이 쫓겨난 저주 받은 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에서의 일을 이 세상에서 펼쳐 보이십니다.

태초에 계시던 하나님이 역사 속 태초로 들어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천지 창조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천지를 가지고 하늘에서의 일을 펼쳐 가십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서 쫓겨난 마귀와 그를 따르는 악한 천사들을 이 세상 나라로 쫓아 내셨습니다.

이 세상이 바로 마귀가 쫓겨난 음부이고 흑암이고 지옥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 된 땅의 모습이 하나님 나라의 음부와 같이 흑암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죽은 세상에서 새로운 창조의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창세기의 창조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이 세상 에덴동산에서 재현하십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서 뱀이 사람을 타락케 하여 에덴동산 밖으로 쫓겨나게 만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이 살아가는 땅을 저주하였는데,

그 땅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의 흑암과 혼돈과 공허한 땅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저주받은 이 세상에서 예수그리스도에 의하여 자기 백성들이 구원받는 것이 창세기의 창조 사건처럼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죄인이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함을 입고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일어난 타락 사건을 회복키 위함입니다.

그 회복의 시나리오가 바로 창세전 언약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죄인이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을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들이 하나님 나라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럴 때 창세전 언약이 완성 되는 것입니다.

 

사 43: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구원한 것은 찬송을 받고자 함이라고 합니다.

구원 받은 성도는 장차 하나님 나라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게 됩니다.

이는 천사들이 하여야 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이제는 성도들에게 시키십니다.

 

예수그리스도로 구원을 받은 성도들은 천사들처럼 영적 존재가 되어서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천사가 된다는 말이 아니고 천사와 같은 하늘에서 살아가는 존재가 된다는 뜻입니다.

영적 존재가 된 성도들은 마귀의 반역으로 빈자리가 된 찬양의 자리를 맡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될 때 비로소 창세전 언약이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한 것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케 하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영광을 받아야 하고 찬송을 받아야 하는 분입니다.

그러려고 천사를 창조하였고 악기들도 준비한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반역을 하여서 쫓겨났습니다.

 

쉬운 말로 찬양대가 공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찬양을 받아야 하는데 찬양을 해야 할 천사들이 반역을 하여서 쫓겨나서 찬양을 받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를 이 세상 속에서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여서 하나님 나라에서 찬송케 하려는 일을 벌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전 언약이 예수의 피로 죄사함 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서 그 나라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세세토록 찬미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구원 받은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4-5장을 봅시다.

 

계 4:1-11절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내가 들은 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소리 같은 그 음성이 가로되 이리로 올라 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내가 네게 보이리라 하시더라 2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3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 또 보좌에 둘려 이십 사 보좌들이 있고 그 보좌들 위에 이십 사 장로들이 흰 옷을 입고 머리에 금 면류관을 쓰고 앉았더라 ~ 10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계 5:11-14절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 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12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13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찌어다 하니 14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

 

24장로들이 면류관을 벗어서 하나님 보좌에 던지고는 세세토록 찬송을 합니다.

어린 양에게 영광을 돌립니다.

이 모습은 출애굽 한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난 후 춤을 추면서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려 드리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출애굽의 목적이 무엇인가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입니다.

예배가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에 대한 보답으로 하나님께 찬송하는 것입니다.

 

예배는 출애굽 한 자들만이 드릴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어린 양의 피로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벗어난 자들만이 드릴 수가 있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구원을 받은 성도는 기쁨으로 감사로 예배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되어 있습니다.

 

24장로는 신구약 모든 성도를 대표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24장로들입니다.

요한계시록의 천상의 모습을 이 땅에 복사본으로 만들어 놓은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어린 양의 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이 모여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입니다.

모든 성도가 구원해 주신 그 은혜에 감사하는 곳입니다.

마치 출애굽 한 백성들이 홍해바닷가에서 춤추며 찬송하였듯이 찬송하는 것입니다.

장차 하늘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교회에서 미리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란? 장차 하늘나라에서 해야 하는 일을 역사 속에서 미리 경험케 하는 곳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천국이 왔다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 하시기를 하나님 나라가 너희 안에 임하였다고 합니다.

이는 구원 받은 성도는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를 성전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전이라 함은 하나님이 거하는 집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너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임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하는 일이 성도 안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은혜에 감사하고 찬송하고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앙생활이라고 합니다.

신앙생활이란? 받은 신앙을 삶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삶을 영적 예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신앙이 뭔가요?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나라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 백성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자들입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고 나자 성도들이 구원이 일어납니다.

그러자 날마다 모여서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이게 교회입니다.

성도를 일컬어 교회라고 하는 것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을 받은 자의 특징이 감사와 찬송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감사와 찬송은 출애굽 한 자들만이 할 수가 있습니다.

즉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살아난 자들만이 행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에서는 죽은 자는 찬송하지 못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신앙을 점검해 보세요.

 

나는 산 자인가?

아니면 죽은 자인가?

그건 간단합니다.

 

교회 오는 것이 즐겁고,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봉사와 헌신이 감사와 찬송으로 나타나면 산 자이고,

이러한 일들이 즐겁지 않으면 병들었거나 죽은 자입니다.

 

신앙생활은 구원 받은 것에 대한 기쁨의 반응이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법 아래서는 억지로 하지만 은혜 아래서는 억지가 없습니다.

자발적이고 감사함으로 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척 하는 것과 믿는 것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다릅니다.

믿는 척하는 것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여서 연기를 하는 것이지만,

믿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여서 하는 것입니다.

 

바나바가 교회에 재산을 바친 것은 받은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지만,

아나니아 삽비라는 사람들로부터 영광을 받고자 연기를 한 것입니다.

바나바는 믿음으로 하였고 아나니아 삽비라는 믿는 척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천국과 지옥입니다.

 

창조가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로 나타난 것처럼,

성도의 신앙도 어떤 원인에 의한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속지 않습니다.

 

창조의 원인이 무엇인가요?

창세전 언약입니다.

창세전 언약의 결과로 나타난 것이 천지 창조입니다.

 

천지 창조는 하늘의 이야기를 땅에서 풀어가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 1장 1절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셨다고 증거 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천지란? 하늘과 땅이란 뜻입니다.

이는 하늘에 일을 땅에서 이루어 가신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천지를 창조 하였다고 하고서는 2절에는 하늘은 사라지고 땅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늘에 일이 땅에서 이루어질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가요?찬양을 맡은 천사들이 반란으로 땅으로 쫓겨났습니다.

천사들이 쫓겨난 땅을 음부라고도 하고 지옥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은 타락한 천사들을 이 세상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하늘나라의 지옥이 이 땅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늘나라 지옥은 원본이고,

이 세상 지옥은 복사본입니다.

그래서 천지 창조에서 나타난 땅의 모습이 지옥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창 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조 된 땅의 모습이 어떤가요?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지요.

이것은 지옥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땅을 만든 것이 아닙니다.

창세전 언약을 이루어 가는데 지옥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뭔가요?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죄에서 건져 내려면 자기 백성들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어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서 창조 된 땅의 모습이 흑암인 지옥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 모습이 곧 죄 아래 가두어진 인간들의 모습입니다.

지옥 속에서 자기 백성을 구원하는 모습이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 이루어지면 모형의 나라에서 실상의 나라로 옮겨가게 됩니다.

 

예레미야 4장을 봅시다.

 

렘 4:22-23절 “22 내 백성은 나를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자요 지각이 없는 미련한 자식이라 악을 행하기에는 지각이 있으나 선을 행하기에는 무지하도다 23 보라 내가 땅을 본즉 혼돈하고 공허하며 하늘에는 빛이 없으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일컬어 어리석고 지각이 없고 무지하다고 합니다.

이것을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 중에 있는 땅의 모습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가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경의 구속사를 이스라엘의 출애굽으로 말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바로 창세기 1장 2절의 땅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는 모습이 바로 흑암 중에 있는 땅의 모습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것은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끄집어내는 것과 같습니다.

신약적으로 말하면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모습을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불러내는 것으로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을 봅시다.

 

요 5:25-29절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는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온다고 합니다.

이 세상이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무덤입니다.

예수님이 무덤에 오신 것입니다.

 

무덤이 죄와 사망의 권세입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흑암입니다.

흑암이 지옥인 것입니다.

 

이 땅이 지옥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땅에서 하늘로 빼내심을 입는 것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을 천지 창조 속에서는 흑암 속에서 빛을 불러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흑암 속에서 불러낸 빛을 의인화 하면 빛의 아들들인 성도들인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은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이 세상은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죽음의 세상입니다.

죄로 죽은 세상 속에 하나님의 아들들이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구원하고자 하나님의 신이 운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잉태되어 이 땅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죄와 사망의 나라에서 자기 백성들을 찾아내는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3절부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는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창조의 모습이 세 가지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첫째는, 갈라내는 것이고,

둘째는, 채움을 입는 것입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는 갈라내고,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채움을 입습니다.

 

이것을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 고 합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갈라내는 창조는 예수님께서 육체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트리고 자기 백성들을 건져내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넷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 채우는 창조는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성도들 안에 오셔서 예수님의 것으로 채우는 일을 하시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일곱째 날 안식은 예수님이 재림을 하여서 자기백성들을 하늘로 빼내서 천년왕국에서 안식 하실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을 삼 시제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성도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냄을 당하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건 과거 시제로서 이미 끝난 구원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오심으로 인하여 현재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이것은 현재 시제로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으로 자라가는 구원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은혜를 알아가는 구원입니다.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구원의 완성 지점인 하늘나라로 옮겨지게 됩니다.

그의 나라에서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됩니다.

이것은 미래 시제로서 장차 이루어질 구원을 말합니다.

 

이것이 구약 이스라엘의 세 가지 구속사로 나타납니다.

 

첫째는 애굽에서 건져내는 구원이 있고,

둘째는 광야에서 살아가는 구원이 있고,

셋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구원이 있는 것과 같습니다.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 한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로 단번에 이루어진 과거적 구원을 말하고,

광야 사십년 행진은 예수님이 성령으로 우리 가운데 오셔서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가는 구원을 현재 이루어가는 것을 말하고,

가나안에 들어가서 왕국을 건설하고 집을 짓고 사는 것은 장차 예수님이 재림을 하시면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구원이 다 이루어지면 에스겔 28장에서 보았던 하나님 나라가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천사들이 타락하여서 비워진 찬양대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태어난 성도들로 하여금 빈자리가 채워져서 영원토록 하나님께 찬양이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형이 실상 안에서 완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계획하신 실상과 모형의 시나리오입니다.

우리의 구원도 모형에서 실상으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구원이란? 모형 속에서 실상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흙에서 난 몸은 허상입니다.

성령으로 난 몸이 실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를 알고 몸에 구속을 바랐습니다.

바울은 육신의 몸을 벗고 하늘의 몸을 덧입는 것을 사모하고 살았습니다.

 

삼층천의 바울이 실상이고 세상에 있는 바울은 모형인 것입니다.

이를 알았기에 바울은 이 땅에 모형인 육신의 몸을 벗고 하늘에 있는 실상의 신령한 몸을 입고자 소망하였던 것입니다.

 

사도 요한도 이 모습을 보고 왔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해야 하는 일들을 중간 중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실상과 모형을 알아야 합니다.

모형에서 실상으로 나아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니 땅에 것이 무너진다고 하여서 너무 낙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땅에 것이 무너질 때 하늘에 실상을 소망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의 겉 사람은 날로 후패하게 하시고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게 하는 일들을 벌리시는 것입니다.

 

실상의 그 날이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그러니 낙망하지 말고 그 나라를 소망하면서 허상이라는 현실을 잘 이겨내시길 바랍니다.

세상을 이기는 것은 오직 하나 믿음뿐입니다.

그 믿음으로 허상 속에서 실상을 소망하면서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실상과 모형을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지를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본분을 알았사오니 이 땅에서 살아가는 삶이 그의 나라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삶이 되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어떤 환경 속에서도 구원의 즐거움을 빼앗기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그 날을 소망하면서 하루 하루가 감사와 기쁨이 되게 하여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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