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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레위기 강해

♣(성경강해)55강. 복의 민족에게 복과 저주의 의미 (레 26:1-46)

by coroa 2022. 1. 13.

 

엡 1:4-6
④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1)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⑥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55강. 복의 민족에게 복과 저주의 의미 (레 26:1-46)

-.정낙원 목사

 

레위 26:1-46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2.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3. 너희가 나의 규례와 계명을 준행하면 4. 내가 너희 비를 그 시후에 주리니 땅은 그 산물을 내고 밭의 수목은 열매를 맺을지라 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너희의 포도 따는 것은 파종할 때까지 미치리니 너희가 음식을 배불리 먹고 너희 땅에 안전히 거하리라 6.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 너희가 누우나 너희를 두렵게 할 자가 없을 것이며 내가 사나운 짐승을 그 땅에서 제할 것이요 칼이 너희 땅에 두루 행하지 아니할 것이며 7. 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8.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9. 내가 너희를 권고하여 나의 너희와 세운 언약을 이행하여 너희로 번성케 하고 너희로 창대케 할 것이며 10. 너희는 오래 두었던 묵은 곡식을 먹다가 새 곡식을 인하여 묵은 곡식을 치우게 될 것이며 11. 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13.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어 그 종된 것을 면케 한 너희 하나님 여호와라 내가 너희 멍에 빗장목을 깨뜨리고 너희로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14. 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이 모든 명령을 준행치 아니하며 15. 나의 규례를 멸시하며 마음에 나의 법도를 싫어하여 나의 모든 계명을 준행치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배반할진대 16. 내가 이같이 너희에게 행하리니 곧 내가 너희에게 놀라운 재앙을 내려 폐병과 열병으로 눈이 어둡고 생명이 쇠약하게 할 것이요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17. 내가 너희를 치리니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너희는 쫓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리라 18. 너희가 그렇게 되어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면 너희 죄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칠 배나 더 징치할지라 19. 내가 너희의 세력을 인한 교만을 꺾고 너희 하늘로 철과 같게 하며 너희 땅으로 놋과 같게 하리니 20. 너희 수고가 헛될지라 땅은 그 산물을 내지 아니하고 땅의 나무는 그 열매를 맺지 아니하리라 21. 너희가 나를 거스려 내게 청종치 않을진대 내가 너희 죄대로 너희에게 칠 배나 더 재앙을 내릴 것이라 22. 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 자녀를 움키고 너희 육축을 멸하며 너희 수효를 감소케 할지라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 23. 이런 일을 당하여도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를 대항할진대 24. 나 곧 나도 너희에게 대항하여 너희 죄를 인하여 너희를 칠 배나 더 칠지라 25. 내가 칼을 너희에게로 가져다가 너희의 배약한 원수를 갚을 것이며 너희가 성읍에 모일지라도 너희 중에 염병을 보내고 너희를 대적의 손에 붙일 것이며 26. 내가 너희 의뢰하는 양식을 끊을 때에 열 여인이 한 화덕에서 너희 떡을 구워 저울에 달아 주리니 너희가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리라 27. 너희가 이같이 될지라도 내게 청종치 아니하고 내게 대항할진대 28. 내가 진노로 너희에게 대항하되 너희 죄를 인하여 칠 배나 더 징책하리니 29. 너희가 아들의 고기를 먹을 것이요 딸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30. 내가 너희의 산당을 헐며 너희의 태양 주상을 찍어 넘기며 너희 시체를 파상한 우상 위에 던지고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할 것이며 31. 내가 너희 성읍으로 황폐케 하고 너희 성소들로 황량케 할 것이요 너희의 향기로운 향을 흠향치 아니하고 32. 그 땅을 황무케 하리니 거기 거하는 너희 대적들이 그것을 인하여 놀랄 것이며 33. 내가 너희를 열방 중에 흩을 것이요 내가 칼을 빼어 너희를 따르게 하리니 너희의 땅이 황무하며 너희의 성읍이 황폐하리라 34. 너희가 대적의 땅에 거할 동안에 너희 본토가 황무할 것이므로 땅이 안식을 누릴 것이라 그 때에 땅이 쉬어 안식을 누리리니 35. 너희가 그 땅에 거한 동안 너희 안식시에 쉼을 얻지 못하던 땅이 그 황무할 동안에는 쉬리라 36. 너희 남은 자에게는 그 대적의 땅에서 내가 그들의 마음으로 약하게 하리니 그들은 바람에 불린 잎사귀 소리에도 놀라 도망하기를 칼을 피하여 도망하듯 할 것이요 쫓는 자가 없어도 엎드러질 것이라 37. 그들은 쫓는 자가 없어도 칼 앞에 있음같이 서로 천답하여 넘어지리니 너희가 대적을 당할 힘이 없을 것이요 38. 너희가 열방 중에서 망하리니 너희 대적의 땅이 너희를 삼킬 것이라 39. 너희 남은 자가 너희 대적의 땅에서 자기의 죄로 인하여 쇠잔하며 그 열조의 죄로 인하여 그 열조같이 쇠잔하리라, 40. 그들이 자기 죄와 그 열조의 죄와 및 그들이 나를 거스린 허물을 자복하고 또 자기들이 나를 대항하였으므로 41. 나도 그들을 대항하여 그 대적의 땅으로 끌어갔음을 깨닫고 그 할례 받지 아니한 마음이 낮아져서 그 죄악의 형벌을 순히 받으면 42. 내가 야곱과 맺은 내 언약과 이삭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며 아브라함과 맺은 내 언약을 생각하고 그 땅을 권고하리라 43. 그들이 나의 법도를 싫어하며 나의 규례를 멸시하였으므로 그 땅을 떠나서 사람이 없을 때에 땅이 황폐하여 안식을 누릴 것이요 그들은 자기 죄악으로 형벌을 순히 받으리라 44. 그런즉 그들이 대적의 땅에 거할 때에 내가 싫어 버리지 아니하며 미워하지 아니하며 아주 멸하지 아니하여 나의 그들과 세운 언약을 폐하지 아니하리니 나는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 됨이라 45. 내가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 위하여 열방의 목전에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그들의 열조와 맺은 언약을 그들을 위하여 기억하리라 나는 여호와니라 46. 이상은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모세로 세우신 규례와 법도와 율법이니라”

 

 

오늘 본문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는 인간의 정성이 하늘도 감동케 한다는 뜻입니다.

인간이 왜 정성을 들여서 하늘을 감동케 하려고 합니까?

이는 하늘로부터 오는 복을 구하기 위함입니다.

 

인간들의 본능 속에는 하늘에 신이 있다고 믿습니다.

하늘에 신이 복을 준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슨 아쉬운 일이 있으면 하늘을 향하여 기도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가 하늘의 신을 움직인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종교입니다.

 

세상 종교는 복과 저주는 인간의 행함에 의하여 결정이 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종교는 착하게 살아서 복을 받으라고 합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데 어떻게 돕는가 하면 착한 사람에게는 복을 주고 악한 자에게는 벌을 내린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인간들의 조건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일방적으로 복을 받은 복의 민족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 종교와 같이 조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을 하게 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하는 것에 따라서 복을 받을 수도 있고 저주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복의 민족에게는 합당치 않는 말입니다.

모순입니다.

물론 이스라엘에게 하신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징벌 차원의 말씀이기는 하지만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것은 저주인 것은 분명한 것입니다.

 

복의 민족은 그들의 행위와 상관없이 복을 받아야지만 합니다.

 

복은 인간의 조건과 상관없이 주어져야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복의 민족이라고 하는 백성들에게 복을 받고 저주를 받는 것은 너희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그 조건을 제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는 시내 산에서 주신 말씀입니다.

출애굽을 한 후 1년 동안 광야에서 성막을 짓고 이제 광야 40년 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광야 길을 가면서 복과 저주에 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냥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면 주신다고 합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알다시피 이스라엘 민족은 애굽에서 태어난 자들입니다.

애굽은 죄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그럼 애굽에서 태어났다는 것은 죄 아래서 태어났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죄 아래서 태어난 것을 일컬어 죄의 종이라고 합니다.

 

죄의 종이라 함은 죄로부터 다스림을 받고 있다는 뜻입니다.

죄로부터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인간은 죄를 벗어 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죄인에게 죄 짖지 말라는 것은 모순입니다.

 

죄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애굽에서 나온 백성들은 근본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가 없는 자들입니다.

순종하고 싶어도 순종이 안 되는 몸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사실을 광야를 통해서 낱낱이 고발을 당합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을 추억하면서 너희는 40년 동안 하나님을 열 번이나 거역한 자라고 합니다.

이는 애굽 왕 바로가 열 번이나 거역한 것을 빗대어서 하는 말입니다.

 

이 말은 너희는 애굽 사람들처럼 죽어 마땅한 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고 있는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려주려고 광야로 인도하여서 40년 동안 가르쳤다고 합니다.

이것은 40년 후의 고백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광야 40년을 시작하는 시점입니다.

이들은 아직까지 자기들이 어떤 존재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아야 하는 자인지 아니면 저주를 받아야 하는지를 모릅니다.

 

자신들의 실존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존을 알려 주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십계명이라는 율법으로 계약을 맺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율법은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들을 시내 산으로 인도 하신 후에 모든 백성들이 보는 앞에서 모세를 시내 산 위로 올라오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십계명을 언약으로 주어서 백성들에게 물어 보라고 합니다.

 

이에 백성들은 일제히 언약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러자 모세는 흠 없는 제물을 잡아서 그 피를 백성들에게 뿌리고는 계약을 체결합니다.

이는 누구든지 계약을 어길 시에는 짐승처럼 죽임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목숨을 담보로 한 언약입니다.

 

피로 계약을 맺은 후에 모세는 시내 산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보고를 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고 약속을 하였다고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언약의 내용을 두 돌 판에 적어 줍니다.

그것이 십계명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계약서를 받아서 시내 산에서 내려오니까 산 아래 있던 백성들이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이것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춤을 추면서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상숭배 행위로서 계약 위반입니다.

 

이에 모세가 두 돌 판을 깨트려 버립니다.

이는 계약 파기를 선언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계약대로 이스라엘을 죽이기 시작합니다.

순식간에 삼천 명이 죽임당하는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광경을 본 모세가 기겁을 하면서 하나님 앞에 엎드려서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고 이 백성들을 용서해 달라고 기도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죽음의 재앙을 멈추십니다.

 

그리곤 하나님은 모세를 다시 시내 산으로 올라오게 하여서 새로운 돌 판을 만들어서 줍니다.

내용은 처음 것과 동일합니다.

그리고 성막 제도를 함께 주십니다.

이는 죄인을 살리기 위한 것입니다.

 

첫 번째 돌 판은 어느 한쪽에서 계약을 어기면 반드시 죽게 된다는 쌍무언약이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돌 판은 모세의 생명을 담보로 하여서 주신 은혜언약인 것입니다.

이를 모세 언약이라고 합니다.

 

언약을 받은 후에 1년 동안 성막을 만듭니다.

성막이 완성 되자 하나님은 회막으로 모세를 불러서 앞으로 어떻게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지를 세세하게 알려주십니다.

 

그것이 레위기입니다.

레위기는 언약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와 같은 것입니다.

지침서를 다 가르치신 후에 맨 마지막으로 복과 저주에 대하여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그 후 1년 동안 성막을 짓고 이제 광야 길을 시작하려는 시기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마치 쌍무언약과 같은 내용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한 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게 되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이 말씀대로 라고 한다면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액면 그대로 들으면 복을 주고자 하심이 아니고 저주를 주고자 하심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지키지도 못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이러한 말씀 앞에서 하나님께서 왜 이러한 말씀을 주셨는지에 대하여 하나님께 물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서 무조건 받을 것이 아니라,

왜 이미 불순종을 하여서 저주 아래 가두어진 자들에게 이러한 말씀을 주셨습니까? 라고 물어야 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하여서 복을 받으라고 주신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의도로 주셨을까요?

 

앞선 상황으로 보면 그건 아니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계약은 이미 첫 번째 돌 판의 깨어짐으로 인하여 파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백성들이 계약을 여겨서 파기가 된 것입니다.

1년 동안 성막을 짓고 그 성막의 법궤 속에 보관이 된 돌 판은 두 번째 돌 판입니다.

두 번째 돌 판은 모세의 생명을 담보로 주어진 것입니다.

법궤에 보관이 된 두 번째 돌 판은 용서로 주어진 은혜의 돌 판입니다.

 

그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는 말씀 앞에서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라고 나오면 안 되고,

‘하나님 우린 이미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을 하여서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자들입니다’ 라고 하여야 합니다.

‘우린 그 말씀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복은 고사하고 저주를 받을까 합니다’ 라고 하면서 ‘주여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여야 합니다.

 

이미 계약을 어긴 자에게는 하나님의 은혜만이 살 수가 있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이 사실을 알게 하고자 불순종한 자들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을 곡언법으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주 아래 가두어서 긍휼을 베풀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너희는 나의 긍휼로 살고 있는 자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것입니다.

은혜와 긍휼의 자리에 머물러 있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본성과 반하는 광야 길을 통행케 하시면서 백성들 속에 있는 불순종의 죄성을 끄집어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를 그 노정대로 인도 하셨다고 합니다.

 

이 비밀을 아셔야 합니다.

그래야 역설적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리 할 때 징벌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 할 수가 있습니다.

 

이건 마치 부모가 잘못한 자식을 징계하면서 이것은 내가 너를 다 사랑해서 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그 아이가 어른이 되어서 부모가 되어서 자식을 키울 때 비로소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하는 모든 일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레위기는 광야 길을 시작하면서 주신 말씀입니다.

그것이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신명기 28장에서도 똑 같이 하십니다.

 

신명기 28장은 광야 길 마지막 때 주신 말씀입니다.

가나안 입성을 앞둔 백성들에게도 주신 말씀입니다.

 

레위기는 출애굽 1 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이고,

신명기는 광야에서 태어난 2 세대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이것은 출애굽 1 세대들이나 광야에서 태어난 2 세대들이나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어느 시대나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1 세대가 지키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면,

2 세대들도 지킬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어느 시대이고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와 긍휼로서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럼 구원을 받은 자라고 한다면 우리의 조건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으로 낳아진 자들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에 의하여 낳아진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언약은 행위 언약이 아니고 은혜 언약입니다.

아브라함 언약 자체가 은혜 언약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식을 준다고 할 때 믿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반응과 상관없이 아들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다는 증거로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아들의 이름을 이삭이라고 지어 주셨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비웃음’이라는 뜻입니다.

 

비웃음의 아들을 통해서 야곱과 에서가 태어났고,

야곱을 통해서 12 아들이 생겨났고,

12 아들을 통해서 12 지파가 생겨났고,

12 지파를 통해서 이스라엘 민족이 나왔습니다.

 

이스라엘은 그 근본이 불순종이라는 조상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인 아담에게서 난 자들이 다 죄인이듯이,

불순종의 조상에게서 난 자들은 다 불순종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후손은 조상에 의하여 결정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조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은 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조상을 둔 그 후손들은 당연히 불순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 낼 때 비로소 구원이 담고 있는 의미를 알게 됩니다.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은 인간 속에 숨겨진 욕망들입니다.

그 욕망은 모두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들입니다.

이를 죄라고 합니다.

 

죄가 어떻게 발호 하는지 하나님의 명령 속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령한 것은 세 가지입니다.

 

레 26:1-2절.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지니 목상이나 주상을 세우지 말며 너희 땅에 조각한 석상을 세우고 그에게 경배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임이니라 2.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며 나의 성소를 공경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첫째, 우상 숭배하지 말 것과,

둘째, 안식일을 지킬 것과,

셋째, 성소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세 가지 모두 하나님 한 분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참이니까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이 내린 명령입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나만 섬기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 섬기면 복을 받고 하나님을 떠나면 저주를 받는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만 섬기라고 할까요?

이는 이스라엘 속에 있는 우상성을 고발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에서 우상이라는 말은 네 가지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호크마 주석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1. 아웬(사 66:3) - 존재하지 않음

2. 엘릴(사 2:8) - 아무 것도 아님, 텅빔, 헛됨, 덧없음

3. 헤벨(렘 10:8) - 쓸데없음, 무가치 함

4. 세멜(대하 33:15) - 모양이 없음

 

종합하여서 보면 존재하지도 않는 무가치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우상을 ‘엘릴’이라고 하는데,

이는 '아니다'(not, no)란 뜻의 '알'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알’은 '없음'(nothing), '공허함'(vanity), '아무 것도 아님' 이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우상은 ‘헛 것’이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왜 헛 것을 그리 좋아 할까요?

이는 인간이 헛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흙에다 생기를 담고 있는 자입니다.

생기를 일컬어 호흡이라고 합니다.

아담이 범죄하기 전에는 흙에다 호흡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이 범죄하자 흙 속에 있던 호흡을 취하여 가셨습니다.

 

시 104:29절.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호흡이 빠진 인간은 그냥 흙입니다.

그 흙을 먼지라고 합니다.

먼지라는 말은 ‘아무 것도 아니다’ 라는 뜻입니다.

 

인간이 뭐냐?

아무 것도 아닙니다.

허상인 것입니다.

 

허상인 인간이 만든 신 역시 허상인 것입니다.

우상은 인간들이 만든 신입니다.

그래서 우상을 헛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같은 것끼리 모인다는 것입니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하듯이 헛 것은 헛 것들끼리 모이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우상을 좋아하는 것은 동일한 헛 것이기 때문입니다.

헛 것과 헛 것이 만나면 부담스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자기들이 만든 신에다가 절을 하면서 복을 달라고 비는 것입니다.

 

마치 불량소년이 착한 아이를 만나면 부담스럽고 같은 부류인 불량소년을 만나면 자신의 수치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좋아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들은 참 신이신 하나님은 싫어하고 우상을 좋아하는 것입니다.

 

헛 것들은 진짜를 싫어합니다.

진짜를 만나면 자기들이 정체성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예수님께서는 빛이 어둠에 비취니까 어둠이 자기 정체가 드러나니까 빛을 미워하더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피조물은 창조주로부터 나왔습니다.

이를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다고 합니다.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원본이고, 이 세상은 복사본입니다.

원본이 실상이고, 복사본은 허상입니다.

하나님은 참이고, 우상은 허상입니다.

 

하나님이 참이고, 우리는 헛 것입니다.

그런데 헛 것이 참이 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게 죄입니다.

 

헛 것이 헛 것으로 있을 때 아름다움입니다.

헛 것이 참이 되고자 하는 것은 교만이고 불경입니다.

 

피조물은 피조물 자리에 있음이 아름다움입니다.

피조물이 신이 되고자 하는 것이 불경이고 죄입니다.

최초의 죄가 천사가 하나님의 자리를 탐하는 것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에덴동산에서 인간들이 하나님 같이 되고자 선악과를 먹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뱀이 여자에게 너희가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 같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러자 여자의 눈에 선악과가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인간이 선악과를 먹고 난 후 신이 되고자 하는 죄 아래 가두어지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인간들이 신을 만들어서 섬기는 우상숭배신앙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우상숭배 신앙은 인간이 인간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는 자기가 만든 신을 섬기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에게는 하나님같이 된다는 것은 로망이고 꿈인 것입니다.

그 꿈을 이루고자 선악과를 따 먹은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신이 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신을 이용하여서 신이 되려고 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찾는 것은 신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신의 힘이 필요하여서입니다.

그것이 우상숭배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상이 뭐냐?

자기를 위한 신입니다.

인간들은 자신의 욕망을 이루고자 신을 찾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 신 위에 있는 것입니다.

인간이 신을 만들고 그 신에게 도움을 구하는 것은 저주 아래 있는 애굽 사람들의 신앙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한 신앙은 저주 받은 애굽 백성들이나 하는 것이니까 너희는 행하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너희는 언약의 후손이니까 애굽에서 신을 섬기듯이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약에 애굽에서와 같이 하나님을 섬기게 되면 애굽 백성으로 간주하여서 가나안 땅에서 토하여 냄을 당하게 되고 이방나라에 종으로 팔려가서 고난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성으로 가득찬 백성들을 저주 아래 가두고자 하나님께서 쌍무언약적 성격으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거래 형식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할 것이라고 바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 반대로 너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시기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너희가 어떤 복을 누리고 있는지 알려주기 위함입니다.

죄를 고발하는 것은 복을 받고 있음을 알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를 죄가 많은 곳이 하나님의 은혜가 넘쳤다고 하는 것입니다.

 

복이란? 행위와 상관없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복의 민족입니다.

행위와 상관없이 복을 받고 살아가는 복의 민족입니다.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행위와 상관없이 복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말을 안 듣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신앙의 끝자락에는 이 고백이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자기 백성 사랑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을 이스라엘의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하시는 일이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배은망덕한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았는데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안 들어 먹은 민족입니다.

유대인들은 세상 속에서 가장 똑똑한 민족인데 가장 하나님에게 불순종한 민족입니다.

 

성경은 왜 가장 똑똑한 민족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장 안 들어 먹은 민족사 이야기를 바탕으로 이야기하고 있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은혜를 가장 잘 드러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가장 똑똑한 민족이 가장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들어 먹었다는 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안 듣는 인간이라는 것을 우회적으로 고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에 우리가 있습니다.

우리가 바로 유대인입니다.

우리가 바로 더럽게 말은 안 들어 쳐 먹는 인간인 것입니다.

이러한 인간이 살고 있다는 것이 은혜입니다.

 

복과 저주는 우리가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는다고 하시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방식으로 세상을 경영해 가신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들에게 동의를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통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정해 놓으셨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기준으로 다스리십니다.

이 기준에 의하면 모든 인간은 다 저주를 받아야만 합니다.

죄 아래서 태어난 인간들은 태생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죄인의 본능 속에는 불순종이 담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습니다.

 

갈 3:22절.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롬 11:32-33절.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죄 아래 가두었다는 말은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셨다는 뜻입니다.

이는 순종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순종이 안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불순종 가운데 가두어 두신 것은 긍휼을 베풀기 위함입니다.

이게 비밀입니다.

이 속에 창세전 언약이 담겨져 있습니다.

 

창세전 언약을 보면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있고,

예수그리스도와 상관이 없이 죄 아래 가두어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합니다.

 

광의적인 의미에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다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구속사적인 의미에서는 육으로 난 아들과 영으로 난 아들이 있습니다.

육으로 난 아들을 종이라 하고,

영으로 난 아들을 아들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아브라함 집안에 그대로 배치해 두셨습니다.

아브라함을 일컬어 열국의 아비라고 합니다.

열국의 아비라는 말은 열국의 조상이라는 말입니다.

이는 곧 하나님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집안에 두 아들이 있습니다.

 

갈 4:21-31절. “내게 말하라 율법 아래 있고자 하는 자들아 율법을 듣지 못하였느냐 22. 기록된바 아브라함이 두 아들이 있으니 하나는 계집종에게서 하나는 자유하는 여자에게서 났다 하였으나 23. 계집 종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하는 여자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24.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 하나는 시내산으로부터 종을 낳은 자니 곧 하가라 25. 이 하가는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 지금 있는 예루살렘과 같은 데니 저가 그 자녀들로 더불어 종노릇하고 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27. 기록된바 잉태치 못한 자여 즐거워하라 구로치 못한 자여 소리질러 외치라 이는 홀로 사는 자의 자녀가 남편 있는 자의 자녀보다 많음이라 하였으니 28.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 29. 그러나 그 때에 육체를 따라 난 자가 성령을 따라 난 자를 핍박한 것 같이 이제도 그러하도다 30. 그러나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계집 종과 그 아들을 내어 쫓으라 계집 종의 아들이 자유하는 여자의 아들로 더불어 유업을 얻지 못하리라 하였느니라 31. 그런즉 형제들아 우리는 계집 종의 자녀가 아니요 자유하는 여자의 자녀니라”

 

아브라함에게는 육으로 난 이스마엘과 약속으로 난 이삭이 있습니다.

분명히 둘 다 아들인데 하나는 유업을 얻지 못하는 종이라고 하고, 다른 하나는 유업을 이를 아들이라고 합니다.

 

두 아들은 두 민족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육으로 난 이스마엘은 종이라고 하고,

약속(성령)으로 난 이삭은 아들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에게도 아버지이고 이삭에게도 아버지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육으로 난 이스마엘은 종으로 대하시고, 약속(성령)으로 난 이삭은 아들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마엘은 율법 아래 있는 자라고 하고, 이삭은 은혜 아래 있는 자라고 합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종이라고 하고, 은혜 아래 있는 자를 아들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종은 법으로 대하고, 아들은 은혜로 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집안 이야기가 온 세상으로 확대되어서 나타납니다.

그것이 모세의 출애굽 시대에는 이스라엘과 애굽으로 나타났습니다.

애굽은 비언약의 후손으로 종이고,

이스라엘은 언약의 후손으로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의 후손은 은혜로 대하시고, 비언약의 후손은 법으로 대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세상을 멸하실 때에 애굽 사람들은 법으로 대하시고, 이스라엘은 은혜로 대하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장자들을 죽일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는 어린 양의 피를 바르게 하여서 살려 주시고 애굽 사람들은 모두 다 죽였습니다.

어린 양의 피를 바르고 살아난 자들이 광야로 나온 이스라엘입니다.

광야에 나온 이스라엘은 은혜로 살아난 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할 때 중다한 잡족들도 따라 나왔습니다.

이들을 섞여 사는 무리라고 합니다.

이것은 애굽의 모습이 그대로 광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은혜를 아는 자와 모르는 자를 가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어떻게 가려내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율법)을 주어서 가려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던져 보면 두 가지 반응들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던져보면 은혜 안에 있는 자와 법 아래 있는 자는 각자의 반응을 나타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와 법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자세가 다릅니다.

은혜 안에 있는 자는 긍휼의 자리로 나아가고,

법 아래 있는 자는 말씀을 지켜서 복을 받는다는 식으로 나아갑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광야에 나왔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은혜 아래 있는 자들에게 순종하면 복을 받고 불순종하면 저주를 받게 된다는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말씀을 어떻게 받느냐를 가지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해 내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에는 은혜로 사는 자와 법으로 사는 자가 있습니다.

 

은혜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은혜로 받고,

법으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법으로 받습니다.

 

은혜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은혜의 자리로 나아가고,

법에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법의 자리로 나아가게 됩니다.

 

은혜의 자리는 긍휼을 구하는 자리이고,

법의 자리는 말씀을 지키겠다고 하는 자리입니다.

 

동일한 말씀인데 전혀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복 받은 것을 깨닫고 감사하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복을 따내고자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두 가지 순종이 있습니다.

 

복을 받은 자로서 순종하는 것과,

복을 받기 위하여 순종하는 것이 있습니다.

 

아들은 복을 받은 자로서 순종하지만,

종은 복을 받기 위하여 순종을 하게 됩니다.

 

복을 받고자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상숭배 신앙이고,

복을 받았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래하고자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래로 받지 않습니다.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인가 얻어 내는 수단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종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인가 얻어 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인가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과 거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을 얻어내고자 하는 것은 신앙이 아닙니다.

그건 우상숭배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인가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은 애굽식 신앙입니다.

 

애굽에서는 그렇게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러나 광야에 나온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과 상관없이 구원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 여부와 상관없이 복을 받은 자들입니다.

 

어린 양의 피로 광야에 나온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무엇인가를 얻어 내고자 하는 것은 어린 양의 피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그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입니다.

 

광야에는 두 부류의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광야에 나와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솎아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도 말씀을 주어서 솎아내는 것입니다.

 

이를 신약의 유다서에서는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광야에서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다고 합니다.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교회 안에 불러 놓고서는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심판하신다는 말입니다.

 

유 1:5절. “주께서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시고 후에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멸하셨으며”

 

교회 안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율법 아래 있는 자와 은혜 아래 있는 자가 있습니다.

은혜 아래 있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엄청난 복을 받았다는 것을 깨닫고 감사와 찬송하는 자리로 나아가게 되지만,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서 복을 받고자 하는 것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속에는 두 계통이 있습니다.

 

말씀을 지키지 못하여서 멸망을 받은 계통이 있고,

말씀을 지키지 못하였는데도 살아난 계통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멸망 받은 계통은 법으로 대하셨고,

살아남은 계통은 은혜로 대하셨습니다.

 

언약의 백성은 은혜를 적용하시고,

저주의 백성은 법을 적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항상 정체성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이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킬 수 없는 말씀을 던져 줌으로 인간의 실상을 고발하는 것입니다.

자기 본질을 아는 자는 말씀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말씀이 떨어지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하게 됩니다.

 

죄인은 복 받는 길을 알려주어도 행할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죄인이 복을 받고 산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 하나님께서 긍휼히 여겨 주실 때입니다.

 

가나안 땅은 은혜로 살아가는 곳입니다.

은혜를 모르면 가나안에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은혜로 살아간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역사는 하나님의 은혜를 드러내는 장소입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배워가게 되는 것입니다.

장차 천국에서 행할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늘 불순종 하면서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죄인이 산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은혜의 결정체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희생 속에서 살고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에게 은혜를 담아 놓았습니다.

 

베드로도 예수님을 저주하였고,

바울도 예수님을 죽이는데 앞장을 선 자였습니다.

그런데도 사도의 일을 행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왜 이러한 자들을 사도로 삼으셨을까요?

이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하심입니다.

피조물이 존재하는 그 자체가 창조주의 은혜입니다.

 

은혜를 모르는 자는 성도가 아닙니다.

은혜 받은 성도가 머물 자리는 긍휼의 자리입니다.

긍휼의 자리에서 말씀을 받으면 은혜가 쏟아져 내리는 것을 알 게 됩니다.

 

오직 은혜입니다.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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