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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강해/창세기 1~3 강해

30강.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심이 복이라 (창 3:22-24)

by coroa 2021. 2. 18.

 

마가 13:5~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

 

 

 

 

-.30강.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심이 복이라 (창 3:22-24).-

-.정낙원 목사

 

 

 

하나님을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은 미리 정하신 언약에 따라서 일을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성경이 증거하고 있어요.

성경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언약을 어떻게 성취가 하셨는지를 담아 놓은 겁니다.

 

언약은 영화의 시나리오와 같습니다.

언약이라는 시나리오는 창세전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창세전 언약을 역사 속에 풀어 놓은 것입니다.

이를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구약은 옛 언약이라고 하고,

신약은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구약과 신약은 짝입니다.

 

구약은 신약을 전제로 하고 있고,

신약을 구약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구약을 그림자라고 하고, 신약을 실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을 열면 첫 페이지가 창조 이야기로 시작이 됩니다.

첫째 날부터 시작이 되어서 여섯째 날에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일곱째 날에 안식을 합니다.

 

창조에서 안식까지 1장에 다 들어가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내용을 한 페이지에 축약해 놓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은 목차(目次)와 같아요.

 

책을 보면 맨 앞 페이지에 목차가 있지요.

목차는 각 페이지 마다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독자들은 목차를 통해서 이 책은 이러 이러한 내용으로 전개가 되는구나를 알게 됩니다.

 

창세기 1장에서 창세기 2,3장이 나왔고,

창세기 2,3장에서 성경 전체가 나왔어요.

그러니까 창세기 1,2,3장은 성경 전체의 내용을 샘플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창세기 2,3장은 아담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살았던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은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명을 어기고 죄에 빠지자 흠 없는 짐승의 희생을 통하여서 얻어진 가죽 옷으로 수치를 가려주는 이야기입니다.

 

이를 복음적으로 해석하면 범죄한 백성을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구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4장 이후부터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 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성경을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자기 백성들의 구속사 이야기라고 합니다.

 

창세기 2,3장의 이야기가 4장 이후부터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확대되어서 나타납니다.

창세기 1장에서 3장까지 이야기들을 이해하면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서 행하실 일들을 예표 적이지만 다 알 수가 있어요.

 

하나님은 창세전에 하신 언약을 역사 속에서 이루십니다.

그 내용을 살펴봅시다.

개역 한글 성경보다는 공동번역이 더 쉽게 설명이 되어 있어서 공동번역으로 살펴봅니다.

 

에베소서 1장입니다. (공동번역)

 

4-6절.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게 하시려고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주시고 당신의 사랑으로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는 자가 되게 하셔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하셨습니다. 5. 하느님께서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께서 뜻하시고 기뻐하시는 일이었습니다. 6.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거저 주신 이 영광스러운 은총에 대하여 우리는 하느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창조 이전에 이미 우리를 뽑아 주셨다고 합니다.

뽑아 주신 이유는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자가 되게 하여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를 창세전에 작정을 하셨어요.

 

작정이란? 미리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의지에요.

이를 예정이라고 합니다.

 

성도들은 창세전에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도록 예정을 입었어요.

그리고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입은 겁니다.

이 사실이 믿어지는 성도는 하나님의 그 크신 은혜를 찬양하게 되는 겁니다.

 

7-14절. “우리는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죄에서 구출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는 풍성한 은총으로 8. 우리에게 온갖 지혜와 총명을 넘치도록 주셔서 9. 당신의 심오한 뜻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시켜 이루시려고 하느님께서 미리 세워놓으셨던 계획대로 된 것으로서 10. 때가 차면 이 계획이 이루어져서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하나가 될 것입니다. 11. 모든 것을 뜻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계획을 따라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택하셔서 그리스도를 믿게 하셨습니다. 12. 그러므로 맨 먼저 그리스도께 희망을 둔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13. 여러분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여러분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복음 곧 진리의 말씀을 듣고 믿어서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을 확인하는 표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약속하셨던 성령을 주셨습니다. 14. 성령께서는 우리가 받을 상속을 보증해 주시고 하느님의 백성인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도의 구원이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사실을 성령을 보내서 알게 하시고 믿어지게 해 주셨어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사실을 성령께서 알게 해 주는 겁니다.

성령으로 이러한 사실이 믿어지는 사람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보증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 사실이 믿어지는 성도는 어떤 상황에서도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되어 있어요.

너무도 놀라워서 찬양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제가 입만 열면 ‘창세전 언약’, ‘창세전 언약’이라고 노래를 부르고 외치는 이유는 이 사실이 깨달아지고 믿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성경을 창세전 언약으로 해석을 하는 겁니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셨고 성령께서 믿어지게 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창세전 언약으로 해석을 한다 함은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해석을 한다는 뜻입니다.

만물이 주께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께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 세상 역사는 예수로 시작해서, 예수로 이루어지고, 예수로 완성이 됩니다.

결자해지(結者解之)라고 하듯이 예수님이 시작하셨기 때문에 예수님이 완성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태초에 말씀으로 계시던 하나님이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어요.

그 분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창세전에 하신 자기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는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말씀이 육신이 되어서 예수라는 이름으로 오신 겁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뭔가요?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건져주는 거잖아요.

이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 사실을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의 창조 사건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 속에 있는 땅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궁금증을 가진 적은 없나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왜 혼돈과 공허와 흑암이 깊은 죽은 세상으로 만드셨을까요?

능력이 없어서 일까요?

아니면 실수해서 일까요?

그도 아니면 이러한 땅을 만들어야지만 했을까요?

 

그 이유를 알아야겠지요.

그 이유는 바로 창세전 언약이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서 하나님 나라로 데려오는 것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2절은 죄 아래 놓여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인 것입니다.

 

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땅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다는 것은,

이 세상이 죄와 사망 가운데 놓여 있음을 의미하고 있어요.

이러한 세상에 빛이 오신 겁니다.

 

그 빛은 다름 아닌 참 빛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참 빛이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 가운데 놓인 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자기 백성들이 죄에서 구원을 받는 새로운 창조 사건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을 봅시다.

 

요 1:9-13절.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참 빛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이 세상은 참 빛이신 예수그리스도로부터 지음을 받았어요.

그런데 이 세상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겁니다.

이를 어둠이라고 하고 죄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세상의 주인으로 오셨어요.

그런데 아무도 그를 몰라봅니다.

만약에 예수님을 주인으로 알아보는 자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인간의 실력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알아보게 하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를 구주로 알아보는 자를 일컬어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죄 아래서 난 자들은 예수를 몰라보는 것이 정상이에요.

그런데 예수를 알아보는 자들이 있어요.

몰라보면 다 몰라보아야 하는데m 그 중에 알아보는 자들이 있는 겁니다.

 

예수를 다 믿지 않아야 해요.

그런데 그 중에서 예수를 믿는 자들이 있어요.

하나님께서 예수를 믿어지게 해 주신 것이에요.

그래서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는 아무나 믿을 수가 없어요.

하나님께로 난 자들이라야만 믿을 수가 있어요.

이들을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라고 합니다.

영생 주시기로 작정이 된 자들이라고 해요.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 둘로 갈라지게 되었어요.

예수를 영접하는 자와 영접 하지 않는 자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이 모습은 예수님을 가운데 두고서 십자가에 달린 두 강도를 통해서 보여주었어요.

그래서 둘 다 강도짓을 하였는데 한 강도는 예수를 영접하였고, 다른 한 강도는 예수를 영접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창조의 모습 속에 이러한 것이 담겨 있어요.

창조가 어떻게 시작이 되나요?

빛이 옴으로 시작이 되지요.

 

이 세상은 어둠이에요.

이는 죄 아래 있는 것을 말해요.

이 세상은 죄인들이 살아가는 곳이에요.

그런데 죄가 없는 의인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를 참 빛이 왔다고 합니다.

어둠에 빛이 비추었다고 합니다.

어둠에 빛이 옴으로서 창조가 시작이 됩니다.

빛이 옴으로 세상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을 한 겁니다.

 

이를 갈라지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어요.

빛과 어둠이 갈라지고,

궁창 윗물과 궁창 아랫물로 갈라지고,

땅과 바다가 갈라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원래 두 물이 하나로 섞여 있었어요.

그런데 빛이 오자 궁창 위에 물과 궁창 아래 물로 갈라지는 일들이 일어난 겁니다.

이를 심판이라고 합니다.

 

빛에 의하여 심판이 일어난 겁니다.

이러한 일들이 엿새 동안 일어납니다.

그리곤 일곱째 날에 안식하게 됩니다.

이를 “천지와 만물을 다 이루니라” 고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선언하신 것으로 나타났어요.

그럼 창조 이야기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겨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의 천지 창조가 인류 역사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로 펼쳐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 까지가 품고 있는 영적인 의미가 예수그리스도를 통한 사건으로 역사 속에서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겁니다.

 

마치 씨앗이 죽어서 싹을 내고,

싹이 자라면서 잎과 줄기를 내고,

줄기가 나무와 가지가 되어서 열매를 맺고 추수가 되는 것과 같습니다.

 

구원은 시작과 끝이 있는 시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성도의 구원도 점진적으로 심층적으로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창세전 언약은 자기 백성들이 죄에서 구원 받는 것이잖아요.

이 일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가지고 샘플로 보여 주셨어요.

 

창 2:8-10절.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10.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거기서부터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으니”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만드십니다.

엄밀히 보면 에덴과 동산이 다릅니다.

에덴에 동산을 만드셨어요.

그리고 흙으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동산에 두셨어요.

 

에덴에서 물이 발원을 합니다.

그 물이 동산으로 흘러내립니다.

물은 생명수인데 이는 생명을 뜻합니다.

생명이 에덴에서 동산으로 공급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은 창조주가 사는 곳이고,

동산은 피조물이 사는 곳이에요.

그래서 생명수 강물이 에덴에서 동산으로 주어지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하늘과 땅의 이야기입니다.

 

에덴은 하늘을 상징하고,

동산은 땅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물이 에덴에서 동산으로 흘러 주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동산은 독자적으로 살 수 없어요.

동산은 에덴에서 흘러주는 생명수로 살아가는 곳이에요.

이건 마치 하늘에서 비를 주어야 땅이 산물을 낼 수 있는 것과도 같아요.

 

땅은 하늘에서 비를 주지 않으면 죽어요.

땅이 살 수 있는 길을 오직 하나 하늘에서 비를 받는 것이에요.

땅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야 해요.

이 사실을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알려 주었어요.

 

그것이 만나 사건입니다.

광야에 나오니까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지요.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어서 살게 하셨어요.

 

광야에서는 하늘에서 만나가 안 내리면 죽어요.

그러니 백성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늘만 쳐다보고 살라고 광야로 빼낸 것입니다.

 

광야에서의 신앙이 뭐냐?

하늘 쳐다보고 사는 겁니다.

이걸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산다고 한 겁니다.

 

만나는 말씀을 상징해요.

그 말씀은 곧 예수님이고,,

그래서 예수님이 오셔서 내가 바로 하늘에서 내린 생명의 떡이라고 하신 거에요.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에 두지 않고 동산에 두신 것은 다 이유가 있어요.

동산에서 에덴으로 나아가는 것은 창세전 언약에 의한 구속사에 수순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동산에 거하는 아담에게 에덴에서 흘러주는 물을 마시고 동산에 있는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 겁니다.

영생하는 자가 되어서 에덴으로 올라오라고 하신 것이에요.

 

이렇게 되면 아담은 생명과를 먹고 영생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한 번의 거듭남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으로 창조가 된 것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성도가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늘의 사람으로 거듭 나서 하나님 나라인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과도 같아요.

 

동산에는 성질이 전혀 다른 두 과실이 있습니다.

 

먹으면 영생하는 과실과,

먹으면 죽는 과실이 있습니다.

생명과 속에는 영생이 담겨져 있고,

선악과 속에는 죽음이 담겨져 있습니다.

 

이건 마치 두 언약과도 같아요.

 

붙잡으면 죽는 언약과,

붙잡으면 영생하는 언약이 있어요.

 

옛 언약이라는 율법은 죽이는 언약이고,

새 언약이라는 은혜는 살리는 언약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두 과실의 속성을 알려줍니다.

그리고는 선악과를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하였어요.

선악과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게 된다고 경고하시고는 생명과는 반드시 먹으라고 합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두 가지 명령 중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여 선악과를 먹고 죽음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생명과를 먹고 영생의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 결정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담은 불순종의 길을 택하고 맙니다.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고 한 선악과를 먹고 맙니다.

그 이유는 선악과가 보기에 보암직하고 먹음직하고 탐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쉬운 말로 선악과는 맛나 보였고 생명과는 맛이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보기에 좋은 선악과를 따 먹고 만 것입니다.

 

아담은 자기 속에 죽음을 담고 말았습니다.

스스로가 죽음의 길을 택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담을 본래의 땅으로 내어 보내버립니다.

아담이 처음 지음을 받았던 본래의 땅인 흙의 세계로 추방 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에덴동산과 에덴동산 밖은 다른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는 에덴동산은 생명의 세계가 되고,

아담이 쫓겨난 에덴동산 바깥은 죽음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는 에덴과 동산으로 나누어졌어요.

그러나 이제는 에덴동산과 에덴동산 밖으로 나누어진 겁니다.

에덴과 동산으로 나누어질 때는 동산은 죽음의 세계가 되고, 에덴은 생명의 세계가 되지만,

에덴동산과 에덴동산 바깥으로 나누어지면 에덴동산은 생명의 세계가 되고,

에덴동산 바깥은 죽음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아담을 죽음의 세계로 쫓아낸 것입니다.

죽은 자는 생명의 세계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담이 쫓겨난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땅을 저주해 버립니다.

이건 마치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위에 있는 땅의 모습과 같습니다.

이를 지옥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모습이 이 세상 바깥 태초라고 하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있었습니다.

 

에스겔 28장을 봅시다.

 

에스겔 28장.

겔 28:12-19절. “인자야 두로 왕을 위하여 애가를 지어 그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13.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었음이여 네가 지음을 받던 날에 너를 위하여 소고와 비파가 예비되었었도다 14. 너는 기름 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 15.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16. 네 무역이 풍성하므로 네 가운데 강포가 가득하여 네가 범죄하였도다 너 덮는 그룹아 그러므로 내가 너를 더럽게 여겨 하나님의 산에서 쫓아내었고 화광석 사이에서 멸하였도다 17.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너를 땅에 던져 열왕 앞에 두어 그들의 구경거리가 되게 하였도다 18. 네가 죄악이 많고 무역이 불의하므로 네 모든 성소를 더럽혔음이여 내가 네 가운데서 불을 내어 너를 사르게 하고 너를 목도하는 모든 자 앞에서 너로 땅 위에 재가 되게 하였도다 19. 만민 중에 너를 아는 자가 너로 인하여 다 놀랄 것임이여 네가 경계거리가 되고 네가 영원히 다시 있지 못하리로다 하셨다 하라”

 

에스겔 28장을 보면 역사 바깥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에덴동산이 나옵니다.

이것은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과 다른 곳입니다.

창세기 2장은 역사 세계의 에덴동산이지만,

에스겔 28장의 에덴동산은 역사 바깥 하나님 나라의 에덴동산인 것입니다.

 

보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으로 말미암았어요.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을 말하고,

보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말합니다.

이 말은 보이는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에서 나왔다는 뜻이에요.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역사라는 피조 세계는 창조주가 사는 세계로부터 나왔다는 뜻입니다.

 

창조주가 사는 나라를 하나님 나라 라고 합니다.

이를 영의 나라 라고 해요.

영의 나라 라는 말은 영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곳이란 뜻입니다.

신들이 세계에요.

 

하나님이 영적 존재에요.

이 세상 바깥 영적 존재들이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에도 피조물이 있었어요.

이들을 영물이라고 해요.

그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에 수종드는 천사들입니다.

천사들도 피조물이에요.

 

태초라는 하나님 나라인 에덴동산에 천사들이 살았어요.

그런데 천사 중 일부가 하나님을 반역하는 사건이 일어난 겁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타락한 천사들을 땅으로 쫓아내버립니다.

그 땅을 음부라고도 하고 지옥이라고도 합니다.

 

이 모습을 그대로 만든 나라가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입니다.

천지는 하늘과 땅이에요.

천(天)을 하늘나라를 상징하고, 지(地)는 이 땅을 말합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1절에서는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 하시니라고 하시고서는, 2절에서는 하늘은 사라지고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다고 하는 겁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는 하늘과 땅을 창조 하였다는 뜻입니다.

하늘과 땅을 이중 계시로 보아야 해요.

하늘은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고, 땅은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어요.

하늘나라에 있는 에덴동산은 그대로 벤치마킹을 해서 만든 곳이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역사 속의 에덴동산은 하늘나라 에덴동산의 복사본과 같은 것입니다.

하늘나라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것을 에스겔 28장에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늘나라 에덴동산에서 반역을 일으킨 천사들을 땅으로 쫓아냈습니다.

그 땅을 창세기 1장 2절의 땅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절에서 땅의 모습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의 깊음 중에 있는 지옥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천지창조 중에서 천(天)이라는 하나님 나라는 감추어져 있고, 지(地)라는 이 땅의 모습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 2절에서는 하늘은 없고 땅이 혼돈하다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겁니다.

이해가 되시지요.

 

성경은 하늘나라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를 하나님이 이 땅에서 그 아들을 보내서 어떻게 회복하는지를 이야기해 주고 있어요.

그것이 혼돈과 공허와 흑암 중에 있는 죽은 세상에 예수그리스도가 오셔서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창세기 1장에서 창조 사건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일어나는 창조 사건은 빛이 이 세상에 옴으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에덴동산에 그대로 옮겨 놓은 겁니다.

창세기 2장의 에덴동산에서 에덴은 하늘을 상징하고, 동산은 땅을 상징해요.

그래서 창세기 2장의 역사 속 에덴동산에서 땅을 상징하는 동산에 에스겔 28장 하늘나라 에덴에서 쫓겨난 타락한 천사인 마귀가 뱀의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뱀이 어디에 있나요?

에덴인가요?

동산인가요?

인간들이 살아가는 동산에 있지요.

동산에는 인간도 있고 뱀도 있어요.

 

인간도 있고 마귀도 있는 곳이 어디인가요?

이 세상이에요.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마귀가 땅으로 쫓겨났지요.

마귀가 쫓겨난 땅이 에덴동산에서는 동산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니까 에덴동산에서의 에덴은 생명을 공급해 주시는 하나님이 계신 하늘나라를 상징하고,

동산은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음으로 살아가는 인간들이 살아가는 이 세상 나라를 상징하고 있는 것입니다.

잘 이해하세요.

 

하나님은 동산에 있던 아담이 뱀의 미혹에 넘어가서 범죄하자 에덴동산 바깥 땅으로 쫓아내고 만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서 동산에서 땅으로 쫓겨난 것은 곧 에스겔 28장에서 천사들이 범죄하자 하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땅으로 쫓아낸 것과 같아요.

 

그래서 천사들이 쫓겨난 땅과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땅의 모습이 같은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인 아담이 살아갈 땅을 저주합니다.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곳을 지옥이라고 해요.

그래서 타락한 천사인 마귀를 지옥의 사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옥은 하나님으로부터 저주 받은 땅을 말해요.

타락한 천사들이 쫓겨난 땅을 음부라고 하고,

타락한 아담과 하와가 쫓겨난 땅을 지옥이라고 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지옥이에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들어가서 무덤 속에 있던 언약의 후손들을 끄집어내어서 거룩한 성으로 데리고 가셨지요.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자기 백성들을 끄집어내어서 하늘나라로 데려가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그림인 것입니다.

 

이 세상이 무덤이에요.

그래서 예수님이 오시자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이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듣는 자는 다 살아나리라 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이라는 무덤에서 나와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교회로 옮겨진 것입니다.

 

지옥이란 땅의 감옥이라는 뜻입니다.

음부나 지옥이나 다 같은 의미에요.

천사의 타락이나 아담의 타락이나 영적으로는 동일해요.

 

하나님은 범죄 한 아담에게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시고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을 합니다.

그리고 생명나무 길을 막아 버립니다.

천사들로 하여금 그 길을 지키게 하였습니다.

이는 죽은 자가 된 아담이 생명과를 따 먹고 영생할까봐서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었어요.

죽음을 품게 되었어요.

죽은 자가 생명과를 따 먹으면 죽은 자로 영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된 아담을 죽은 세상인 땅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하신 의미에 대하여 살펴봅시다.

하나님이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을 한 것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어요.

 

첫째,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과 죽음은 본질이 달라요.

생명은 팽창하고 확장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고,

죽음은 부패하고 소멸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요.

 

서로 상극인 것입니다.

성질이 다른 둘은 하나 될 수가 없어요.

서로를 밀어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빛과 어둠이 함께 할 수가 없고,

거룩과 비거룩이 함께 할 수가 없고,,

생명과 죽음도 함께 할 수가 없어요.

 

우리가아무리 사랑하던 사람이라도 죽으면 집에 두지 않고 무덤에 묻습니다.

이는 산 자와 죽은 자는 함께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함께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죽으면 격리를 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죄인은 부정해요.

거룩과 부정은 하나 될 수 없어요.

하나님과 죄인은 하나 될 수가 없어요.

함께 있으면 서로가 피해를 입게 되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인 아담을 산 자들이 살아가는 에덴동산에서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세상으로 분리를 시킨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생명의 세계입니다.

생명의 세계는 산 자들만이 살아 갈 수가 있어요.

그것도 영원한 하나님의 생명을 가진 자들만이 살아 갈 수가 있어요.

 

하나님의 생명은 생명과에 담겨져 있어요.

아담이 생명과를 먹었으면 영생하는 자가 되어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죽은 자가 되고 말았어요.

 

죽은 자인 아담은 영생하는 에덴동산에서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죽은 자가 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낸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세요.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랑이에요.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 한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에요.

 

아담은 범죄한 후 하나님이 두려웠어요.

하나님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에덴동산 밖으로 내어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범죄하기 전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신 것도 보시기에 좋았더라 였고,

범죄 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것도 보시기에 좋았더라 입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난 후에 벌거벗음이 두려워졌어요.

선악과가 벌거벗음이 두려움으로 몰고 온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은 무화과나무 잎사귀로 치마를 만들어 해 입고서 나무 사이에 숨은 겁니다.

 

아담은 치마로 수치를 가리면 두려움이 사라지는 줄 알았어요.

그러나 치마를 만들어 해 입어도 두려움은 사라지지 않는 겁니다.

이는 죄로 인하여 죽은 자가 된 인간은 마음속에서부터 밀려오는 두려움을 외부적인 조건으로 해소하고자 하나 해소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두려우면 두려운 겁니다.

겉을 아무리 멀쩡히 포장을 해도 마음이 두려우면 백약이 무효에요.

두려운 마음으로는 살 수가 없어요.

아담은 하나님을 가까이 할 수가 없는 자가 되고 만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세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동산 바깥세상으로 내어 보낸 것입니다.

이게 사랑이에요.

 

두려운 하나님과 함께 산다는 것은 아담에게는 지옥이에요.

죽은 자가 산 자들의 세상에서 산다는 것이 지옥이에요.

죽은 자가 된 아담에게는 에덴동산이 지옥인 것입니다.

 

죄인인 아담 곁에 거룩한 하나님 계신다는 것은 아담을 고문하는 것과도 같아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 바깥으로 분가를 시켜 버린 겁니다.

마치 시부모를 어려워하는 며느리를 분가 시킨 것과도 같습니다.

시부모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너희들끼리 잘 살아가라고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어 보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곁을 떠나 분가하는 아담 입장에서는 기쁨인 것입니다.

그러나 저주의 땅으로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이신 하나님 입장에서는 엄청난 아픔입니다.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당하는 아담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마음은 마치 집을 떠나가는 탕자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심정과 같이 찢어질 것 같이 아픈 겁니다.

 

우리는 이 하나님의 아픔을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란? 죄 아래 있는 자기 백성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슬프고 아린 애끓는 마음을 알아가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이 아픈 사랑이 아담을 구원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아픈 사랑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담을 떠나보낸 하나님은 한시라도 안식 할 수가 없어요.

모든 신경이 집 떠난 아담에게 가 있는 겁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안식을 위해서 집 떠난 아담을 다시 집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것이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아담의 죄과를 도말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아담의 죄과를 도말하는 것은 하나님이 안식하고자 함입니다.

 

사 43:25절.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 아담의 죄를 도말하는 것은 하나님을 위해서입니다.

아담을 창조 하신 분이 하나님입니다.

부모이신 하나님이 죄 아래서 신음하는 아담을 두고 볼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 아담의 죄를 도말하는 일을 벌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당신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서 아담의 죄를 대신하여서 십자가에 죽에 하여서 아담의 죄과를 도말시키는 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 한 아담을 가죽 옷을 지어 입한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건 이렇게 죄인이 용서 받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흠 없는 짐승을 죽여서 그 가죽으로 범죄한 아담에게 지어 입히는 일을 에덴동산 바깥에서 행하시게 됩니다.

그래서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내어보내면서 여자의 후손을 보내준다는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이 너희들을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서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오게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에덴동산을 떠나 온 아담에게 있어서 소망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다는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는 것이 아담의 신앙입니다.

이걸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간다고 합니다.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추방한 둘째 이유는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지 못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죽은 자는 생명과를 따 먹어서는 안 되어요.

선악과 속에는 죽음이 담겨져 있고 생명과는 영생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런데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자기 안에 죽음을 담고 말았어요.

 

만약에 죽음을 담고 있는 아담이 생명과를 먹고 영생을 하게 된다면 마치 중병에 걸린 환자가 죽지 않고 영원히 병으로 고통당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 됩니다.

이건 재앙 중에서도 엄청난 재앙이에요.

저주 중에서도 엄청난 저주에요.

 

일평생 죽음에 쫓기는 중환자에게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지옥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담고 있는 아담을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필경 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아담을 그대로 에덴동산에 두었다가는 불순종의 죄가 역사를 하여서 생명과를 따 먹고 영생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나무로 가는 길을 차단하신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은 아담은 반드시 죽어야 해요.

선악의 사람이 죽지 않고서는 선악의 법으로부터 벗어 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아담을 십자가에 죽이는 일을 하신 것입니다.

이걸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고 합니다.

 

선악의 사람을 죽이는 것은 생명의 사람으로 다시 살리기 위함입니다.

생명의 사람이 되어서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범죄 한 아담이 생명과를 따 먹지 못하도록 에덴동산에서 추방하고 생명나무의 길을 차단시킨 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구원은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먼저 선악의 사람이 죽임 당하고,

그 다음에 생명의 사람으로 살아남을 입는 것입니다.

지옥에서 천국으로 나아감을 입는 거에요.

 

구원의 서정을 보면 지옥이 먼저이고 천국이 나중이에요.

먼저 에덴동산 밖에서 지옥을 경험하고, 천국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일생이 죄 아래서 태어남이 먼저이고, 죄에서 건짐 받는 것이 나중으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죽음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살고자 하는 욕망이 생기고,

죄 아래서 태어났기 때문에 죄로부터 자유롭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아담에게 유일한 소망은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입니다.

에덴동산 바깥 저주의 세계에서 아무리 성공하여서 잘 산다고 하여도 천국일 수가 없어요.

포장 된 지옥일 뿐이에요.

천국은 에덴동산 안에 있어요.

 

역설적으로,,

죽음이 영생을 소망하게 되었고,

에덴동산에서 추방되었기 때문에 다시 돌아가고자 소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에덴동산이에요.

성도의 죽음을 귀천(歸天)이라 하는 것도 원래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도의 죽음은 축복이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에덴동산은 선악의 사람이 죽어야지만 돌아갈 수가 있어요.

죄의 몸을 입고 있는 아담에게 최고의 축복은 죄의 몸을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죄의 몸에서 벗어나는 길이 곧 사는 길인 것입니다.

죽음의 몸에서 해방 시키는 방법이 죄 아래서 난 몸을 죽이는 것입니다.

 

구원의 순서는,

첫째, 죄 아래서 난 선악의 사람이 죽는 것이고,

둘째, 하늘에 사람으로 거듭나 영생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예수 안에서 주어집니다.

예수 안에서 죽어야 하늘에 생명을 주세요.

예수 안에서 땅에 장막이 무너져야 하늘에 장막을 입혀 줄 수가 있어요.

 

두 예수가 있습니다.

땅에서 난 죄인을 죽이는 예수가 있고,

하늘로서 난 자로 살리는 예수가 있어요.

 

육체로 오신 예수는 선악의 사람을 십자가에서 죽이는 일을 하십니다.

그리고 부활 하신 후 성령으로 오셔서 죽은 자들을 살려내는 일을 하십니다.

 

죽음을 먼저 주시고 영생을 나중에 주세요.

영생은 죄가 없는 새로운 몸에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몸이 바로 성령으로 거듭난 몸입니다.

 

성령은 부활의 영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난 자들은 장차 예수님의 재림으로 하늘에 몸을 입게 되어요.

그래서 성령의 오심을 부활의 보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누구에게 오는가요?

죄 사함이 이루어진 자들에게 오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한 자들에게만 오세요.

그래서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을 하신 후에 승천하여서 아버지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자기 백성들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아담의 구원은 먼저 생명과가 있는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선악의 몸으로는 에덴동산으로 들어 갈 수가 없어요.

아담이 에덴동산으로 돌아가려면 먼저 선악과를 담고 있는 아담이 죽어야 합니다.

 

그래서 육체로 오신 예수님이 먼저 죄 아래서 난 아담을 죽이는 일을 하시는 겁니다.

그것이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성도는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어요.

이를 예수 안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예수 안에서 나온 자들을 위하여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겁니다.

이를 대속이라고 해요.

하나님은 예수 안에서 나온 자들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게 하셨어요.

 

예수님이 죽을 때 성도들도 함께 죽은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 하실 때 성도들도 함께 부활을 한 거구요.

이 사실을 알게 하시려고 성령을 성도들에게 보내 주신 것입니다.

 

성령이 오셔서 이 사실을 성도들에게 알려 줍니다.

그럼 성도는 비록 죄 아래서 난 몸으로 살고 있지만 믿음으로 하늘에 사람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에서 묵시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하늘의 가치관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날마다 세상에 대한 정과 욕심을 죽이고 하늘에 소망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은 사랑입니다.

비록 인간들 눈에는 저주로 비쳐질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죽이는 것도 사랑이고, 살리는 것도 사랑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합니다.

목자가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으로도 인도 하시고,

때로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극과 극이에요.

쉴만한 물가 푸른 초장을 평안이라고 한다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고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가 되셔서 때로는 평안으로 때로는 고난으로 인도하세요.

 

성도의 생사화복이 여호와께 달렸어요.

 

삼상 2:6-7절.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7.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십니다.

여호와는 가난케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십니다.

여호와는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십니다.

 

하나님은 형통과 곤고를 가지고 다스려가세요.

 

전 7:13-14.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을 보라 하나님이 굽게 하신 것을 누가 능히 곧게 하겠느냐 14.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생각하라 하나님이 이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사 사람으로 그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를 순경과 역경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순경과 역경을 가지고 자기 백성들을 다스려 가시는 것입니다.

 

순경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역경도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천국 같은 환경도 하나님의 사랑이고,

지옥 같은 환경도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범죄하자 에덴동산으로 내어 보낸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으로 아담이 범죄하자 푸른 초장과 같은 에덴동산에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와 같은 세상으로 내어 쫓으신 것입니다.

아담의 입장에서는 저주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 입장에서는 사랑인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하나님의 섭리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백성들을 눈동자같이 지키시고 계세요.

이 사실을 믿는다고 한다면 지금 내게 일어나는 모든 희노애락의 일들은 하나님께서 필요하여서 주어진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다 주께서 벌리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아담은 에덴동산 밖에서 여자의 후손이 올 때까지 저주의 삶을 살아야 해요.

정한 때가 되면 하나님은 여자의 후손을 보내서 저주의 땅에서 빼내 주실 것입니다

이를 구약 이스라엘을 통해서 보여 주었어요.

아브라함 후손을 애굽에서 빼내주는 것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출 2:23-25절. “여러 해 후에 애굽왕은 죽었고 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24.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25.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수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 언약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스라엘의 출애굽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아브라함 언약에서 나온 자들입니다.

이건 마치 창세전 언약에서 성도가 나온 것과 같아요.

그러므로 아브라함 언약은 창세전 언약을 예표 하는 언약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하십니다.

 

창 15:13-16절.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14.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15.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16. 네 자손은 사 대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라”

 

언약의 내용이 아브라함 후손들이 이방에 객이 되었다가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 언약에 따라서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400년 동안 종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약속한 때가 차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사 출애굽을 시키신 것입니다.

출애굽을 시키실 때도 그냥 시키지 않고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출애굽을 시키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피로 죄와 사망의 권세로부터 해방을 맞이한 것과도 같습니다.

 

아담이 죄를 벗을 수 있는 길은 독자적으로는 불가능해요.

죄인 쪽에서 죄를 해결할 방법은 없어요.

죄 문제는 하나님 쪽에서 해결을 해 주어야지만 합니다.

 

아담은 독자적으로 에덴동산에 들어갈 수가 없어요.

누군가의 도움으로만 에덴동산으로 들어 갈 수가 있어요.

그래서 하나님은 아담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시면서 뱀의 머리를 깨트릴 여자의 후손을 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건 마치 이스라엘이 독자적으로 출애굽을 할 수가 없어서 모세를 보내서 출애굽을 시키신 것과도 같아요.

여자의 후손이 모세처럼 이 세상으로 와서 언약의 후손인 성도들을 죄악된 세상으로부터 구원해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여자의 후손의 도움으로 에덴동산에 들어오도록 하신 겁니다.

에덴의 문을 여는 자가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자의 후손인 것입니다.

누가 에덴의 문을 열었나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그 문을 열어 버린 것입니다.

 

마 27:50-53절.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51.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53.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성소의 휘장이 아래로 찢어집니다.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지성소로 들어갈 길이 생긴 것입니다.

이건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것과 같아요.

 

성막의 구조를 보면 뜰과 성소와 지성소로 되어 있습니다.

뜰에서 성소는 매일 제사장들이 드나들었어요.

그러나 지성소는 대 제사장이 일 년에 단 한 차례만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성소는 일반 제사장들이 드나들지만 지성소는 오직 대 제사장만이 들어 갈 수가 있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자 성소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이것은 이 예수가 바로 대 제사장이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이 대 제사장이 되어서 지성소의 문을 여신 것입니다.

이것은 에덴동산의 문을 여신 것과도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열어 놓은 그 문을 일컬어 새롭고 산 길이라고 합니다.

 

히 10:19-20절.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20.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니라”

 

아담이 쫓겨난 이후 굳게 잠겨 있던 빗장이 예수님의 죽으심으로 풀린 것입니다.

비로소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시고,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나아갈 수가 없다고 하셨어요.

 

에덴동산의 문은 예수님의 피로서만 들어 갈 수가 있어요.

죄인이 예수님의 피로 원래의 자리로 돌아 갈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창세전부터 하나님은 아담의 구원을 예수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으로 작정하신 것입니다.

 

이걸 예정이라고 합니다.

은혜라고 해요.

하나님의 나라는 은혜의 나라입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은 우리의 의로 들어갈 수가 없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은 거룩함을 입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옷을 입는 겁니다.

이를 거룩케 하시는 분 안에서 거룩케 된다고 합니다.

 

히 2:11-12절.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거룩하게 하시는 분과 거룩함을 입는 자를 한 형제라고 하지요.

이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이 의로워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의가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들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이걸 믿으라는 겁니다.

그래서 성령을 주신 것이에요.

성령이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아가게 하세요.

이를 믿음으로 산다고 합니다.

 

율법 지킴을 의로 여기고 살아가는 것은 옛 언약입니다.

옛 언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로 폐하셨어요.

예수님께서 자기 몸으로 율법의 요구를 완성 하신 것입니다.

이를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헛되게 만드는 일을 해요.

그것이 옛 언약 방식으로 살라고 미혹을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해요.

이것이 율법지킴으로 자기 의를 쌓는 형식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누구 흔적을 남기느냐의 싸움입니다.

 

내 의냐?

예수그리스도의 의냐?

 

하나님은 에덴동산을 떠나는 아담에게 여자의 후손을 기다리라고 하였어요.

그가 와서 뱀의 머리를 깨트린다고 했어요.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깨트린다는 것은 곧 뱀의 신앙을 깨트린다는 뜻입니다.

 

뱀의 신앙은 인간의 의를 쌓는 것입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입니다.

구약 교회는 율법주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시자 바리새인들이 율법 지킴이라는 자기 의로 가득했습니다.

은혜로 세워져야 하는 나라를 법으로 세워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율법주의로부터 빼내는 구원을 하신 것입니다.

 

창세전에 예정된 구원은 율법에서 은혜로 옮겨지는 것입니다.

 

갈 4:1-11절.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동안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 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하였더니 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 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10. 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11.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하나님은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을 먼저 율법 아래 나게 하십니다.

이는 율법 신앙으로부터 출발케 한다는 것입니다.

정한 때가 되면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십니다.

 

예수님의 피로 속량 받은 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십니다.

성령이 인간의 의로 살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의로 살라고 하세요.

하지만 마귀는 인간의 의로 살라고 합니다.

인간의 의로 하나님께 나아가라고 합니다.

 

그것이 율법주의로 돌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율법 신앙은 자기 의 쌓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날과 달과 절기를 지키는 율법의 조문을 도말을 하였어요.

인간의 의 쌓기 신앙을 헐어 버렸어요.

 

그래서 다시는 율법의 천한 초등학문으로 돌아가지 말라고 했어요.

율법주의로 돌아가면 예수그리스도가 허물어 놓은 것을 다시 세우는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다시 못 박는 것이 되어요.

그럼에도 사람들이 율법주의를 좋아하는 것은 율법신앙 속에 자기 자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쫓으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쫓으라고 하시면서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버리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하셨어요.

이는 율법신앙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자기 의로 하나님께 나오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로 구원을 얻고자 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신앙의 첫 걸음이 자기를 부인하는 물세례로부터 시작이 되는 것입니다.

 

물세례는 율법의 사람이 죽는 것입니다.

율법의 사람이 죽어야 생명과를 먹을 수가 있어요.

그래서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들을 대신하여서 물세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이를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합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성령이 임하십니다.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서 생명과를 먹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를 이긴 자라고 합니다.

생명과는 죄를 이긴 자만이 먹을 수가 있어요.

 

죄는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만 이길 수가 있어요.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이긴 자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들에게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먹게 해 주십니다.

 

계 2:7절.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이긴 자는 선악의 법에서 벗어난 자들입니다.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낙원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서 율법으로부터 자유한 자들만이 들어 갈 수가 있어요.


생명과를 담으려면 먼저 선악의 사람이 죽어야 해요.

그래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은 아담을 에덴동산 바깥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무덤으로 쫓아낸 것입니다.

아담이 쫓겨난 이 세상은 죽은 자들이 살아가는 무덤이에요.

 

예수님은 무덤 속에 있는 자들을 불러내십니다.

예수의 음성을 듣고 무덤에서 나온 자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의 핏값으로 산 곳입니다.

 

예수님의 피로 밭을 하나 샀는데,

그 밭을 ‘아겔다마’ 피 밭이라고 합니다.

피 밭이란 무덤이라는 뜻이에요.

 

피 밭으로 나그네들의 무덤을 삼습니다.

성도를 일컬어 이 세상에서 외국인이요 나그네요 객이라고 합니다.

나그네들이 모인 곳이 교회에요.

그래서 교회를 일컬어 나그네들의 무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선악의 사람이 교회에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고 장시지내야 해요.

 

구약 이스라엘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이 땅에 막벨라 굴이라는 무덤 하나 장만하고 갔어요.

구약의 언약의 후손들은 모두가 그 무덤 속에 장사가 되었어요.

영적인 의미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의 사람들이 죽으면 열조로 돌아갔다고 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무덤이 신약에서는 예수그리스도의 피로 산 교회로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세운 교회에는 선악의 사람 아담이 죽임 당하는 곳입니다.

범죄로 인하여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한 아담이 교회에서 예수와 함께 장사가 되고 죄 없는 자로 다시 살아나야 합니다.

그래야 에덴동산으로 다시 돌아 갈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에덴동산으로 가는 문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버지께로 갈 자가 없다고 하였어요.

 

예수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으로 가는 길이 열렸어요.

하지만 그 길이 좁고 협착하여서 찾는 이가 적다고 합니다.

이는 인간의 힘으로도 갈 수가 없고 인간의 의로도 갈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길을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들어갈 수가 있어요.

 

온 세상에 구원의 길이 열려있어요.

그러나 그 길은 아무나 들어 갈 수가 없어요.

오직 하나님께로 난 자들만이 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창세전에 영생 받기로 작정이 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그가 바로 우리들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도는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는 구원의 빙거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멸망의 빙거입니다.

 

어떤 이는 예수로 구원을 얻지만,

어떤 이는 예수로 말미암아 심판을 당합니다.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는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이지만,

믿는 우리들에게 예수는 우리를 죄에서 구속해 주는 그리스도이십니다.

에덴의 문을 열어주신 구원주이십니다.

그래서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영적으로 예수그리스도 안이 에덴동산인 것입니다.

성도는 에덴동산으로 이미 들어간 자들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이 안식의 세계인 것입니다.

성도는 비록 죄 아래 살고 있지만 안식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고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예수가 주는 의와,

예수가 주는 희락과,

예수가 주는 평안으로 안식을 누리시길 축원합니다.

 

마 17장 8절. “제자들이 눈을 들고 보매 오직 예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더라”

 

 

 

 

 

 

"여호와의 정하신 날"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용광로 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지푸라기 같을 것이라

말라기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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